<기획연재> 스러진 달 (46) 청평 나들이

임박한 거사…마지막 회포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좋지요. 그러나 좌석은 행사 주최 측에서 사전에 배치하기에 쉽지 않을 수 있소.”

“그런데…초청장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남조선에 입국하면 초청장을 받을 수 있다 하였는데.”

“물론 행사 당일 초청장을 전하도록 하겠소. 그런데 지금 고타로 상의 말을 들어보니 한번 모험을 강행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오.”

“자세하게 말씀 주십시오.”

“초청장을 무시하자는 이야기요. 어차피 고타로 상에게 발급될 수 있는 초청장 자리는 거사를 위한 최적의 장소는 될 수 없을 테니 말이오.”


“그 말씀은?”

“행사장에 들어가서 고타로 상이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 거사를 성공시키자 이 말이오.”

석원이 마치 그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카소네 상, 그 문제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저, 이왕에 남조선에 입국한 김에 윤대중 선생을 만났으면 싶습니다.”

“윤대중!”

“어차피 이 일이 그 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한번 뵙고 싶습니다.”

“그 사람에게 무엇을 제공하려 하오?”


잠시 침묵을 지켰던 동일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제공하다니요?”

“지금 윤대중 선생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아요. 그 사람 주변을 남조선 중앙정보부 사람들이 24시간 감시하고 있소. 또한 만난다고 한다면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런 경우라면 이 일을 반드시 성사시킨 연후에 이 일의 결과를 가지고 만나는 게 옳을 듯하오.”

동일의 차분한 말에 석원이 윤대중 선생을 되뇌었다.

“지금 나이아가라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밤 열 시쯤 호텔로 경수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곳에서 뭐하고 있는가?”

“나이트 클럽의 호스티스와 함께 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놈이 그야말로 섹스관광 왔군.”

동일이 가볍게 말을 받고는 실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단순히 호스티스가 맞는가. 혹여 무슨 연고라도 있는 사람이 아닌가?”

“연고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들어갔으면 밤새 작업하겠다는 의미인데. 굳이 감시할 필요는 없을 듯하네. 그러니 자네가 판단하도록 하게.”

경수가 잠시 생각한다는 듯 침묵을 지키는 모양으로 전화기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제가 이곳에서 머물고 이 친구와 일정을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여하튼 수고해주게나.”

경수가 알겠다며 전화를 끊자 동일 역시 전화를 내려놓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뭐라 합니까?”


경수의 급보를 받고 강철이 호텔 룸으로 동일을 찾아왔던 터였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 나이트 클럽에 들른 모양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호스티스와 함께 룸에 투숙했다 합니다.”

“그러면 그 짓거리 하려고 청평까지 갔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보아야지요.”

“허허, 거참 진짜 미친놈일세. 아니 그런 미친놈이…”

“미쳤으니까 대통령 각하를 암살하겠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강철이 말문이 막히는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오늘만이 아닙니다.”

“네! 그러면?”

“어제 저녁에도 시도했던 모양입니다.”

“어제도요!”

“아니,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그저께부터라고 해야지요.”

“그날은 그 친구에게 자유 시간을 준 첫 날 아닙니까?”

“당일 호텔 내에 있는 여행사를 찾아 서울 시내를 관광한 모양입니다. 그쪽을 통해 알아보니 창경궁, 비원, 동대문 시장 그리고 남산을 순환하는 코스라 합디다.”

“그건 단순한 관광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이 친구가 그 과정에서 일본인 여행객들을 만나 중요한 정보를 받은 모양입니다.”

“바로 그 정보요?”

“그래서 어제 저녁 역시 시내 야간 관광을 빌미로 모종의 거사를 획책했었는데 착오가 발생하여 무산되고 말았지요. 그리고 오늘 아예 작심하고 택시를 대절해서 청평으로 날아간 거지요.”

“참나, 이 나라 어떻게 되려고 일본 놈들의 섹스관광 천국이 되었다는 말입니까.”

“일본이 대만과 수교를 단절한 이후 일어난 일 아니겠습니까?”

1972년 일본이 실리를 지향하여 대만과 외교관계를 청산하고 중공과 수교를 맺으면서 대만으로의 섹스여행의 대안으로 떠오른 게 한국이었다.

당시까지 대만은 일본인들의 섹스관광 천국으로까지 떠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국교단절로 일본 여행사들이 엔화강세를 빌미로 대한민국의 매춘 시장을 공략했던 데에 따랐다.

강철이 가볍게 혀를 차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왔다.

“이 친구 이거 끝까지 가겠습니까?”

강철이 동일의 잔을 채워주며 다시 혀를 찼다.

“막상 자신 있게 대하고는 있지만 이 친구 하는 모습을 살피면 흡사 살얼음판을 걷는 듯합니다. 도대체가…”

동일 역시 잔을 비우며 가볍게 혀를 찼다.

“여하튼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단단히 고삐를 죄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그런데…”

청평으로 향한 석원…동일·강철의 감시
VIP저격 위치 점검…호텔방 비밀문서는?

동일이 말하다 말고 강철의 얼굴을 주시했다.

“왜 그러십니까?”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슨…”

“각하께서 윤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해 조만간 중요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강철이 잠시 동일을 주시하다 잔을 비워냈다.

“저도 어제 실장께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광복절 전날 윤대중 사건을 정식으로 종결하신다 합니다.”

“그게 사실이군요. 하면 각하께 지금의 일이 보고된 걸로 봐도 무방합니까?”

“그는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를 두고 오비이락이란 사자성어가 생겨난 듯합니다.”

“우연의 일치라는 말입니까?”

“실장께서 아직 보고 드리지 않았으니 그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실장께서는 보고 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동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광복절 당일 하실 말씀과 연계시켜보아야 할 문제인 듯한데. 여하튼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실장께서 보고 드렸다면 당연히 저희들에게 통보해주셨을 테지요. 그리고 본인 역시 그를 부인하고 있는 입장이니 그리 알아야지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사건을 반드시 완벽하게 성사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당연히 그러하시겠지요.”

“그건 그렇고. 이전에 말씀하셨던 행사장 연단 배치가 중요할 터인데 가능하겠습니까.”

“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행사장 좌석 배치도 경호상 필요하다면 실장의 소관입니다.”

동일이 안심된다는 듯 표정을 밝게 했다.

“며칠 전 문석원과 함께 국립극장을 사전 점검한 바 있습니다.”

“내부도 들어가 보셨습니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요.”

동일이 답하고는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대신 극장 배치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면, 저격 위치는 결정하였습니까?”

“여러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이 특보께서 행사장 내에서 저격하도록 유도해야겠지요.”

“당연히 그리할 일입니다. 그런데 문석원이 행사장 내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행사 당일 접하겠지요.”

“허허, 거 참.”

잠시 허탈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던 강철의 눈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생각 들어 그런데. 지금 우리가 술 마시는 것도 좋지만 저 친구 방에 들어가서 그간 행적을 한번 살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철의 제안에 동일이 자동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말 나온 김에 지금 당장 가보지요.”

강철 역시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두 사람이 석원의 룸으로 들어갔다.

석원의 성정을 그대로 나타내듯 어지러웠다.

아니 일본에 머물 당시 주선을 통해 단단히 일러두었었다.

퇴실하는 순간까지 그 어느 누구도 룸에 들이지 말라고.

그를 생각하며 룸 이곳저곳을 둘러보자 더욱 어지러워 보였다.

이어 잠시 전경을 훑다가는 비닐장갑을 끼고 석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물건들에 대해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거 좀 봐주시겠습니까?”

동일이 침대 위에 있던 물건들을 살피는 중에 강철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강철에게 시선을 돌리자 술병이 널려 있는 테이블에서 노트를 들고 그 내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일이 급하게 다가서자 강철이 노트를 동일에게 건넸다.

동일이 일본어로 휘갈겨 쓴 노트를 받아들었다.

그야말로 술 마시다가 울적한 마음에 휘갈겨놓은 듯했다.

“무슨 내용입니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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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