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부추기는 힐링의 숲을 찾아서 ②강원 평창군

평창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고장이다. 오대산은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불법이 길이 번창할 것’이라 한 불교의 성지이자 나무의 성지다. 오래되고 기품 있는 전나무, 자작나무, 신갈나무 등은 오대산의 여름 풍경을 더욱 깊고 묵직하게 한다.

속세를 씻어내는 깨달음의 길, 오대산 선재길
쭉쭉 뻗은 전나무 향기 그윽한 천년의 숲길

오대산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1400여년 전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신라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적멸보궁에 모시기 위해 지나간 유서 깊은 길이다. 호젓한 숲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속세의 근심이 청정 계곡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오대산은 백두대간에 핀 연꽃이다. 비로봉(1563m),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31m)이 꽃잎을 이룬다. 꽃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오대천 계곡을 따라 이어진 선재길이다. 출발점은 월정사지만, 월정사 입구 매표소부터 걷는 것이 좋다.

매표소에서 상원사까지 10.7km로 4시간 정도 걸린다. 매표소를 지나 200m쯤 도로를 따르면 월정사 일주문이 나오고, 그 유명한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 시작된다. 일주문에서 월정사까지 약 700m 이어진 길을 특별히 ‘천년의 숲길’이라고 부른다.일주문 안의 나무들이 어서 오라는 듯 손짓한다.

불교의 성지
평창 오대산

길 양편으로 쭉쭉 뻗은 전나무가 1000그루도 넘는다. 보기도 좋지만 전나무 특유의 알싸한 향이 온몸을 정화한다. 성황당을 지나면 쓰러진 전나무가 보인다. 속이 텅 빈 나무 일부가 서 있고, 나머지 몸체는 편안하게 누웠다. 수령이 약 600년으로, 2006년 쓰러지기까지 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였다고 한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월정사 경내로 들어선다.


월정사는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지만, 한국전쟁 때 모조리 불타 오래된 건물이 없다. 다행히 적광전 앞에 팔각구층석탑이 남았다. 탑 앞에는 두 손을 모아 쥐고 공양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은 석조보살좌상이 있는데, 살짝 미소 짓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월정사가 끝나는 지점에 선재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선재길은 오대산이 배출한 방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이 오간 구도의 길이자, 깨달음의 길이다. 선재는 화엄경의 선재동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호젓한 오솔길 옆으로 오대천 계곡이 재잘재잘 흐르는 소리가 정겹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선재길에서 가장 수려한 계곡이 펼쳐진다. 설악산처럼 반질반질한 암반이 흐르는 물줄기와 어우러진다. 암반에 주저앉아 손을 씻는다. 시원하고 촉감이 좋다. 내 안의 번뇌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오대산장을 지나면 동피골 합류점과 만나고, 호젓한 계곡 길이 상원사 입구까지 이어진다. 상원사로 가는 길은 하늘을 찌르는 전나무 숲길이다. 길 초입에 관대걸이가 있는데, 세조가 이곳에 옷을 걸고 계곡에서 목욕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세조가 목욕할 때 마침 가까운 곳에 동자승이 있었다. 세조는 동자승을 불러 등을 밀어달라 했고, 동자승은 열심히 등을 밀었다. 흡족한 세조는 장난기가 발동해 “어디 가서 왕의 등을 밀었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다. “왕께서도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준 덕분에 세조는 피부병이 다 나았고, 이를 고맙게 여겨 상원사에 문수동자상을 세웠다고 한다.1984년 문수동자상을 문화재로 지정하려고 조사하던 중, 세조가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저고리와 다라니경 등 많은 복장 유물이 발견됐다. 문수전 안 문수보살상에 인사를 올리며 선재길 탐방을 마무리한다.

월정사 명물
석조보살좌상

선재길이 오대산의 그윽한 숲길이라면, 백룡동굴은 백운산의 동굴 속을 탐험하는 길이다. 정선아리랑 곡조처럼 구불구불 내려온 동강이 잠깐 평창 땅에 발을 담그는 지점에 백룡동굴이 자리한다. 동굴 체험은 750m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며, 1시간30분쯤 걸린다. 먼저 안내소에서 탐사용 옷으로 갈아입는다. 랜턴이 달린 헬멧, 장갑과 장화 등으로 무장하니 탐험가가 된 기분이다. 강원도 사투리가 구수한 가이드와 함께 보트를 타고 백룡동굴 입구에서 내린다. 잠깐이지만 배를 타고 동강과 함께 흐르는 맛이 기막히다.

 덜컹! 동굴 문이 열리자 가슴이 콩콩 뛴다. 뚜벅뚜벅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구들장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사람이 산 흔적이다. 가이드가 앞쪽의 작은 웅덩이를 가리킨다. 쭈그리고 앉아서 물속을 들여다보니 새우 같은 것이 눈에 띈다. 아시아동굴옆새우다. 백룡동굴에는 생명체 56종이 산다고 한다. 겨울에는 박쥐도 볼 수 있다. 웅덩이를 지나면 빛은 완전히 사라진다.


백룡동굴은 훼손을 막기 위해 조명을 아예 설치하지 않았다. 배를 바닥에 깔고 기어 ‘개구멍’을 통과하자, 비로소 백룡동굴의 진면목이 펼쳐진다. ‘신의 손’이란 별명이 붙은 대형 종유석, 피사의 사탑처럼 생긴 석순, 천장에 길게 형성된 베이컨 시트는 일명 만리장성이라고 한다. 석순이 1mm 자라려면 1년이 걸린다고 하니, 동굴 안에서 인간의 존재는 참으로 하찮다. 동굴 생성물의 화려한 모습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종착점인 대광장에 이른다. 가이드가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랜턴을 모두 끈다. 잠시 후 눈을 뜨자 온통 어둠이다. 이런 완벽한 어둠을 만난 적이 있던가. 백룡동굴 탐사의 마지막 ‘어둠 체험’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알펜시아리조트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주 무대다. 스키점프와 바이애슬론, 스노보드, 알파인스키 등 경기가 펼쳐진다. 리조트 안에 들어서면 언덕 위에 솟은 스키점핑타워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스키점핑타워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알펜시아스타디움에서 모노레일과 엘리베이터를 번갈아 타면 전망대로 올라간다. 전망대에서는 알펜시아리조트와 대관령의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알펜시아스타디움 안에는 대관령 스키역사관이 자리한다. 스키의 발상부터 우리나라 스키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코스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오대산 선재길

1박 2일 코스
· 첫째 날: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알펜시아 스키점핑타워(전망대)&대관령 스키역사관
· 둘째 날: 오대산 선재길

관련 웹사이트
· 평창문화관광 http://tour.pc.go.kr
· 오대산국립공원(선재길) http://odae.knps.or.kr
·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 http://cave.maha.or.kr
· 알펜시아 스키점핑타워 http:www.alpensiaresort.co.kr

문의 전화
· 평창군청 문화관광과 033-330-2762
· 오대산국립공원 033-332-6417
·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 033-334-7200~1
· 알펜시아 스키점핑타워033-339-0000

대중교통(버스)
· 서울-평창: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9회 운행(07:00~18: 46), 약 2시간 5분 소요.
· 서울-진부: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24회 운행(06:22~20:05), 약 2시간 15분 소요.
· 진부-월정사: 진부공용버스정류장에서 하루 14회(06:30~19:40) 운행, 약 20분 소요.
· 진부-상원사: (월정사 경유), 진부공용버스정류장에서 하루 9회(07:30~16:40) 운행, 약 4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진부공용버스정류장 033-335-6307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 새말 IC→안흥면→방림면→평창읍→미탄면→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평창읍→진부 IC→오대산→대관령 IC→알펜시아리조트

숙박
· 숲속의요정: 봉평면 팔송로, 033-336-2225
· 알펜시아리조트: 대관령면 솔봉로, 033-339-0000
· 용평리조트: 대관령면 올림픽로, 033-335-5757
· 켄싱턴플로라호텔: 진부면 진고개로, 033-330-5000

식당
· 오대산농원식당: 산채정식·산채비빔밥, 진부면 진고개로, 033-332-6738
· 부일식당: 산채정식·산채비빔밥, 진부면 진부중앙로, 033-335-7232
· 이조막국수: 막국수·편육, 평창읍 여만길, 033-334-2157

주변 볼거리
방아다리약수, 대관령하늘목장, 이효석 문학의 숲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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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