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5.02 16:11
<일요시사>의 일원, 아니 식구가 된 지 어느덧 2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고 완연히 나의 본가로 자리매김한 <일요시사>가 창간 20돌을 맞이하였는데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그런 연유로 창간 20주년을 맞이한 <일요시사>에 무한한 축하를 보내며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필자와 <일요시사>의 만남은 한 사건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현재 <일요시사>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 <스러진 달>이 그 매개체다. 이 작품은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로 간주되고 있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이면을 그린 작품이다. 필자는 1974년 8월15일 국립극장에서 거행되었던 광복절 경축행사 중에 발생한 동 사건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과정에 심각한 괴리를 발견했다. 우리 측의 조력이 없었다면 발생할 수 없는 사건으로 결론 내리고 또 그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근거들을 찾아냈다. 그런 연유로 문학인의 양심, 나아가 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입장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으로 접근하면서 말 그대로 소설로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의 정보기관을 포함해 여러 기관이 개입된 것으로 풀어나갔다.
작금에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을 살피면 불현듯 ‘작법자폐(作法自斃)’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자기가 만든 법에 자신이 죽다'라는 뜻으로, 자기가 한 일로 인해 자신이 고통 받는 경우를 비유한다. 하여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 단어가 생겨난 배경, 즉 고사를 먼저 살펴본다. 때는 중국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년), 중국의 춘추시대 이후부터 진(秦)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으로 진·조·위·한·제·연·초의 칠웅(七雄)이 할거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초에 진나라는 칠웅 중에서 정치, 경제, 문화 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였다. 그러나 기원전 361년에 효공(孝公)이 즉위하면서 일대 반전이 이뤄진다. 효공은 보위에 오르자마자 진을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인재 등용을 가장 우선시 여기고 중국 전역에서 인재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위나라 사람으로 상앙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위나라 명문가의 자손으로 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으로부터 중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상앙이 위나라를 떠나
지난 3월 초부터 ‘서울북부기술교육원’에서 실시하는 산림관리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평소 자연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고 또 자연은 우리 후손들에게 빌려 쓴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던 필자에게, 앞서 교육에 참여했었던 친구가 동 교육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였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기대 반 의심 반으로 교육에 참여하자 친구의 말 대로 ‘무엇 한다고 아직 이런 공부도 하지 못했느냐. 도대체 지금까지 무슨 공부를 한 게냐’라는 자학이 일어날 정도로 소중함을 깨달으며 공부에 심취하게 된다. 그 과정에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 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신선함 감을 받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동 교육과정을 거쳤으면 하는 바람이 일어난다. 그런 연유로 필자의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독자들에게 정보를 주어야겠다는 심사에서 동 교육과정에 대해 잠시 소개하고 넘어가자. 총 교육기간은 10주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이루어지는데 오전은 나무와 숲과 관련한 이론 교육을 오후에는 ‘엔진톱’을 위시하여 숲 가꾸기에 필요한 도구를 익힌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현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지난 19일 4·13총선 이후 부산을 첫 방문한 자리에서 “국회의장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과 새누리당 중 어느 당에서 나와야 된다고 보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이번 총선에 나타난 민심에 따르는 게 순리”라고 답변했다. 그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살피면 지금까지의 관례에 따라 동 선거에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확보한 더민주가 국회의장 직을 맡아야 옳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나뿐만 아니라 정상적 사고를 견지하고 있는 사람 모두 그렇게 받아들였다. 아울러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국회의장은 더민주가, 국회부의장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하는 게 민의다”라고 안 대표의 주장에 지원사격을 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 안 대표가 지난 22일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직 선출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전격적으로 말을 돌리고 나섰다. 안 대표는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따르는 게 순리라고) 말한 그대로”라면서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는 자유”라고 말했다. 또한 &l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금번에 실시된 20대 총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이와 관련 지난 2014년 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예로 들어보겠다. 당시 동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이정현 후보가 당선되자 아내가 의외의 반응을 나타냈다. “여보, 어떻게 새누리당 후보가 전라도에서 당선될 수 있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아내에게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는 호남정서(지난 2016년 1월19일 게재한 ‘호남을 말한다’ 칼럼 참조)에 대해서 차근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짤막하게 결론 내렸다. “이제는 영남, 아니 대구가 화답해야 할 때야.” 대구, 금번 총선에서 필자가 유심히 바라본 지역이다. 새누리당의 철옹성인 그 지역에서 야당 출신의 김부겸, 홍의락 후보가 당선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선거 초반에 비록 압도적 우위를 유지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결과는 밝지 않았다. 권력에 관한한 일련의 선민의식을 지니고 있는 대구정서를 살필 때 선거 결과는 뒤바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필자의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두 사람이 대구에서 당선되는, 지금까지의 관례
박근혜정권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집권 4년 차에 들어섰다. 그를 바라보노라면, 우리 역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필자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누누이 밝혔지만, 그녀에게는 거창하게 공약 같은 게 필요치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부산물들을 살펴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만으로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집권 초기부터 인사 부분에 적지 않은 문제를 노출시켰고 이어 공약 이행 문제로 인해 내적으로, 또 미미하지만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야당과의 관계에서 불협화음을 남기며 화려한 출발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짧지 않은 기간 정치판에 몸담았었던 필자의 경험으로 바라볼 때 박근혜정권의 남은 기간 역시 순탄치 않아 보인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환경이 그녀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듯하다. 결코 19대 국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20대 국회가 박 대통령에게 호의적으로 돌아서지 않을 터다. 아울러 총선 정국이 마무리되면 치열하게 전개될 새누리당 내 당권, 나아가 대권 싸움으로 그녀의 존재감은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하여 식목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호룡이 석원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저 자네만 믿네.” 두 사람이 침묵을 지키며 가기를 잠시 석원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그야말로 화려한 음식점 앞에 차가 멈추어 섰다. 이어 음식점 종업원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차문을 열고 맞이하자 뒤따라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안내 받아 도착한 룸에 들어서자 차주선이 반갑게 맞이했다. 석원이 급히 다가가 허리를 90도 가량 꺾어 인사했다. “오늘 퇴원했다지.” “위원님 덕분입니다.” “그동안 병원에 입원하면서 생활하느라 상
일찍이 영문학을 전공했던 필자에게 4월이 되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른다. 영국의 시인 겸 평론가이자 극작가인 T.S.Eliot의 작품 <The Waste Land>(황무지)가 그 발단이다. 그런데 왜 엘리엇은 새 생명이 싹트고 인간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4월을 잔인한, 그것도 최상으로 잔인한(cruellest) 달로 표현했을까.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번 그의 시 중 일부를 살펴보자.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하략… 』 이 시에서 ‘cruel’을 어느 누군가가 잔인하게도 우리말로 ‘잔인한’으로 번역했고 그것이 회자되면서 그렇게 고착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번역해 보겠다. 『4월은 cruellest 달, 죽은 땅으로부터 라일락을 싹 틔우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얼어붙은 뿌리를 움직인다. &h
우리 역사 최고의 ‘음부’를 들라면 누구나 서슴지 않고 조선 성종 시절 혁혁한 활동을 했던 어우동을 거론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많은 남자들과 난잡한 관계를 맺은 부분도 있지만 결론은 마무리, 즉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유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녀가 죽음을 맞이한 데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우리 역사 음부의 지존이었던 세종조의 유감동을 잘못 흉내 낸 결과에 따른다. 그 사연을, 먼저 유감동의 경우를 살펴보자. 유감동은 당시 명문 사대부가의 여식으로 태어났다. 아울러 평강 현감인 최중기와 가례를 올리나 남편이 부안 현감으로 부임하자 몰래 도망하여 한양으로 올라간다. 이어 자신의 신분을 창기로 위장하여 음란한 짓을 일삼기 시작했다. 그녀의 행각이 발각되어 최초로 조사를 벌이자 조선의 명재상인 황희의 아들 호조정랑 황치신, 총제 정효문, 상호군 이효량, 해주 판관 오안로, 전 도사 이곡 등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를 보고 받은 세종이 너무나 황당하여 한때 조사를 멈추라 지시할 정도로 그녀의 애정행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조사를 마쳤을 무렵 실제 연루된 것으로 판정된 인물만 40여 명에 이르렀다.
1993년 초의 일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개혁을 주창하며 자신의 재산 17억7822만6070원을 공개했다. 이를 시발로 정부 각료 등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재산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비밀에 쌓여있던 이들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재산이 낱낱이 밝혀지자 우리 사회는 일순간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어 언론이 앞장서서 인민재판식으로 여론을 몰아가면서 이들에 대한 이른바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그들의 재산 형성 과정 등 세부 내용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드러난 사실만이 판단 대상이었고 그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이렇다 할 변명도 제대로 못하고 여론에 밀려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당시 정치판의 중심에 있었던 필자는 그 일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개탄을 금치 못했었다. 그 사람들 중 일부의 경우 조금만 사려 깊게 바라보면 사회통념상 충분히 이해 가능한데 그야말로 마녀사냥에 희생당하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고질에 대해 심지어 우려까지 품었었다. 이 일은 지금부터 20년도 더 지난 시절의 일이다. 그런데 2016년인 지금, 그 시절과 조금도 오차를 보이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세심하게 살피면
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보위에 오른 중종은 사림파의 대표 주자인 조광조를 전격적으로 발탁한다. 그에게 전권을 위임하며 개혁과 동시에 당시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던 훈구파들을 견제하라는 주문을 준다. 이에 따라 조광조는 현량과(賢良科,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시정으로 선발한 제도)를 설치해 사림 출신들을 대거 발탁, 홍문관·사간원 등 요직에 등용하며 중종이 주문한 일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조광조가 추진하는 개혁은 너무나 급진적이며 이상주의로 흐르게 된다. 또한 훈구파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무소불위의 힘으로 반정공신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76명의 위훈을 박탈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중종은 고민에 빠져든다. 조광조가 실시하는 개혁이 이상주의로 흐르고 훈구파에 대해서는 견제 차원을 넘어 몰살시키려는 상황을 살피면서 훈구파를 사림파가 대신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보내고, 결국 중종은 훈구파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이어 훈구파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조광조, 김식, 김구, 김안국, 김정국 등을 비롯한 70여명의 사림파 관료들이 반역죄로 목숨을 잃거나 처벌을 당했으며 사람파가 주도한 개혁 역시 거의 모두 폐지된다. 이 사건이 이른바 &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조선조 8대 임금인 예종이 승하하자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여걸로 평가받고 있는,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실시했던 정희왕후(세조의 부인)가 전교를 내린다. 조선왕조실록을 인용한다. 『이제 원자가 바야흐로 어리고, 또 월산군은 어려서부터 병에 걸렸으며, 자을산군이 비록 어리기는 하나 세조께서 일찍이 그 도량을 칭찬하여 태조에 비하는 데에 이르렀으니, 그로 하여금 주상을 삼는 것이 어떠하냐?』 상기 기록에 등장하는 원자는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고 월산군은 오래전에 사망한 큰 아들 덕종과 인수대비의 큰 아들이고 자을산군은 덕종의 둘째 아들이다. 조선조 왕위 승계절차를 살피면 당연히 제안대군이 보위에 올라야했다. 그러나 정희왕후는 이외의 선택을 한다. 제안대군 그리고 서열 2위인 월산군을 제치고 서열 3위였던 자을산군을 선택한다. 그것도 예종이 죽은 바로 그 날 말이다. 이와 관련해 정희왕후는 세조를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의 정치역학을 살피면 답이 나온다. 정희왕후가 비록 왕실 최고의 어른이었지만 절대권력은 지니지 못했다. 하여 그녀는 한명회의 딸 공혜왕후와 가례를 맺은 성종을 선택해 훈구파와 결탁하고, 이후 강력한
이즈음 조그마한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연개소문, 이순신 장군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삶이 전혀 부럽지 않다. 비록 그분들이 우리 역사에서 훌륭한 족적을 남겼으나 개인 차원에서 바라볼 때 오히려 측은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른바 향유하는 문명에 대해서다. 우리 세대는 등잔불을 사용했던 시대의 삶의 방식은 물론 최첨단의 현대문명 모두를 누리고 있으니, 인류 역사를 살필 때 그야말로 선택받은 세대라는 자부심까지 지니고 있다. 그런데 급속한 변화로 인해 얻는 행복감과는 달리 인간의 사고, 특히 정치 영역의 퇴보는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 정치가 부응하여야 하건만 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난장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는 반드시 희망을 전제해야 하고 또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필자의 지론에 따라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는 차원에서 네 가지 사항을 제시한다. 첫째, 권력 구조에 대해서다. 그동안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제도와 그를 운용하는 사람 사이의 문제로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에 종사하고 또 종사하려 하는 인간들의 수준은 최하위로 규정내릴 수 있다. 실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잠시 시간을 거슬러 삼국시대 말기로 돌아가 보자. 백제의 의자왕이 보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왕권강화를 위해 신라의 대야성(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을 공격한다. 이른바 642년에 발생한 대야성 전투다. 그 전투에서 백제의 윤충 장군은 대야성 성주인 품석과 그의 부인 고타소를 비롯해 많은 신라인들의 목숨을 취한다. 그러자 고타소의 아버지인 김춘추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깊은 상심에 빠져들고 이모인 선덕여왕을 찾는다. 김춘추는 선덕여왕을 닦달해 신라의 사절로 원병을 청하기 위해 고구려를 방문한다. 당시 고구려는 보장왕이 막 보위에 올랐으나 실권은 영양왕을 죽이고 보장을 왕으로 앉힌 연개소문이 장악하고 있었다. 연개소문이 영양왕을 죽이고 보장을 보위에 앉힌 사유는 영양왕이 당나라에게 너무 비굴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던 데에 따른다. 하여 연개소문은 백제를 우군으로 삼아 신라를 견제하고 당나라를 공략하려했다. 그런 그에게 김춘추가 백제를 멸하기 위해 원군을 요청했으니 먹혀들 리 없다. 결국 연개소문이 구실을 만들어 김춘추를 의도적으로 하옥하고 또 김춘추가 도망가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며 풀어준다. 자,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자. 필자는
<일요시사>를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를 반영한 ‘김무성의, 김무성에 의한, 김무성을 위한’ 상향식 공천은 김 대표의 대권가도를 위한 전략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김무성식의 상향식 공천을 실시할 경우 김 대표의 텃밭인 영남은 현 상황이 유지되지만 야권 지지세가 강한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새누리당의 유력 인사들이 본선은 고사하고 당내 경선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그 사유로 역선택의 함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지적했고, 안대희 전 대법관을 실례로 들었었다. 안 전 대법관이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다면 당내 경선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한 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이하 당협위원장)에게 무참하게 패할 것이라 했다. 이제 필자의 일관된 주장의 진위 여부에 대해 살펴본다. 최근 모 언론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중에서 영남과 안 전 대법관에 대해 실시한 두 건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먼저 새누리당의 아성인 영남, 즉 대구 동갑 조사 결과다. 류성걸 현 의원이 41.6%,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19.9%, 그리고 손종익 예비후보 역시 19.9%를
일전에 ‘안철수의 분탕질, 참으로 역겹다’라는 제하로 안철수의 지난 행동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었다. 그런데 그 글을 접했던 한 사람이 인터넷 다음의 아고라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황천우라는 극우·수구 보수 색채의 소설가 겸 칼럼니스트가 극렬히 안철수를 비판하는 칼럼을 올렸더군요. 가끔 문재인 지지자들이나 야권 지지자들 중에서 안철수의 정체성에 의심을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새누리당(극우·수구 보수 세력)은 안철수 죽이기에 목숨을 걸까요?…(이하 생략)’ 필자가 극우·수구인지 보수인지는 차치하고 새누리당이 안철수 죽이기에 발 벗고 나섰다는 이야기,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새누리당은 오히려 안철수를 살려서 더불어 민주당과 당당하게 세를 겨루도록 해야 할 입장인데...... 최근 우연히 모 종편 방송을 시청하는 중에 이와 유사한 경우를 목격했다. 패널 중 한 사람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상향식 공천 실현에 정치적 운명을 내걸고 있는 사유를 김무성의 경험에서 풀어내고 있었다. 2008년 실시된 18대 총선 당시 친박계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고, 또 201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로부터 “반기문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대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반 총장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주십시오”라는 질문을 받자 “국제사회에서 여러 나라 지도자를 만나도 반 총장이 성실하게 유엔 사무총장직을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더라”고 말했다. 이어 “왜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지 저는 모르고, 그것은 국민께 여론조사를 해서 ‘왜 찬성하십니까’ 물어봐야 그게 제일 정확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반 총장에 대한 언급을 살피면 구체적인 평가 내용은 밝히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새누리당 내에 소위 친박 의원들도 암암리에 ‘반기문 대망론’을 띄우고 있다. 그들의 생각을 요약하면 반 총장을 대통령으로 세워 외교를 담당하도록 하고 새누리당 친박 세력이 내치를 책임지는 이원집정부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이와 관련해 친박 핵심으로 지칭되는 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충청도 출신인 반
나는 서울 토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든 나의 제2의 고향은 호남이라 강변한다. 호남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대한 아련한 추억, 그리고 친구들이 있어 지금도 수시로 문상 등의 사유로 찾는다. 나와 호남과의 인연은 군 복무 시절부터 시작된다.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근 31개월에 달하는 기간 동안 호남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복무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고, 그 과정에 과분할 정도의 인정을 실감하게 된다. 인정뿐만 아니라 그 원인 역시 발견하게 된다. 가도 가도 끝이 닿지 않는 드넓고 기름진 땅, 그리고 사시사철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풍요한 바다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즉 풍요로운 환경이 호남의 인정을 만들어냈다고 말이다. 이 대목에서 우스갯소리 한번 하자. 강진에 유배되어 16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을 보냈던 정약용에 대해서다. 만약 그가 호남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그 기간 유배생활을 했다면 생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천만에다. 우리 역사를 살피면 호남이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쉽사리 알게 된다. 여하튼 난 제대 후 복학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정당사무처 조직 파트에 배치되자 호남 출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하여 호남 지역을 담당한다. 이후 수시로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너는 어떻게 할래?” “사무실도 없어질 텐데, 뭘 어떻게 하냐. 나도 이쯤에서 그만 손 접고 내 살 도리 해야지.” “윤대중 선생은 구출하지 않고?” “이미 남조선에 가 계신 분을 어떻게 구출하냐?” 마치 그 말의 의미라도 생각한다는 듯이 석원이 침묵을 지키며 자신의 잔과 상철의 잔을 채웠다. “속담에 이런 말 있지 않냐.” “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
지난 2013년 민주통합당(이하 새정치민주연합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민주당으로 칭함) 5.4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당시의 일이다. 김상현 전 의원이 모 방송에 출연하여 차기 당 대표로 누가 선출되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개인적 차원임을 전제로 김한길 후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 사유를 묻자 “김 후보가 소설가 출신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 없고 아울러 곤경에 처한 민주당의 단합을 도모하여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 답변했다. 당시 필자 역시 김 전 의원의 혜안에 조용히 찬사를 보냈었다. 소설가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그러기에 여하한 경우라도 불가능이 있을 수 없다는 필자의 지론과 괘를 함께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소설가, 소설가라는 미명하에 글 장난하는 글쟁이가 아닌 자신만의 철학과 사상을 겸비하고 있어야 하는 문학인으로서 소설가는 세상에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지저분하게 세상 살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필자도 김 후보가 제1야당의 대표가 되어 낙후된 이 나라의 정치를 업그레이드 시켜주기를 고대했다. 그런데 민주당 대표로 당선된 김한길 의원이 의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