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그룹 ‘수상한 세풍’ 막후

10년 악연의 굴레…또 시작?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부영그룹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회사 측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 세무당국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는 다르다. 돌아가는 낌새가 이상하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작동된 형국이다.

재계 순위 20위(공기업 제외)인 부영그룹을 덮친 ‘세풍’이 심상찮다. 세무당국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부영주택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요원 40∼50명을 사전 예고 없이 현장에 투입해 회계 및 세무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한폭탄 작동

이번 세무조사는 5년 만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이 2011년 부영그룹 내 비상장 계열사인 동광주택을 뒤진 적이 있다. 회사 측은 “별일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조사를 맡은 부서가 ‘조사4국’이란 점에서 단순 세무조사가 아닐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실제 서울국세청 조사4국은 부영주택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정기 세무조사는 조사1국과 조사2국이 담당한다. 조사3국의 경우 기업의 상속·증여세 및 양도소득세 등 재산세, 자본거래세 분야를 맡고 있다.

‘국세청 중수부’라고 불리는 조사4국은 특별 세무조사를 맡는다. 주로 기업의 비자금, 횡령, 탈세 등의 무거운 의혹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일정을 통보한 후 시작하는 일반 세무조사와 달리 특정 혐의가 인지된 경우에만 조사에 착수한다. 이번 부영 세무조사가 심상치 않은 이유다.


국세청은 공식적으로 “세무조사 중인 기업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세무당국 관계자는 “(부영에 대한 세무조사는) ‘특별하다’란 점만 확인해 줄 수 있다”며 “특정 사안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귀띔했다. 재계 한 임원은 “조사4국이 나섰다면 문제가 심각하다”며 “추징금이 적지 않는 등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작동된 형국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부영 측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회사 관계자는 “세무조사라니 모르겠다.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해당 부서 등에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한 뒤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와 달리 세무당국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는 다르다. 국세청이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일각에선 갑작스런 세무조사를 두고 국세청에 밉보인 부영이 ‘괘씸죄’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사실 부영그룹과 국세청은 악연이 깊다. 세무조사와 추징 금액을 놓고 날선 각을 세워왔다. 그 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회장은 세금 34억9000여만원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실형을 피하기 위해 1심 선고 전날 은행에 공소제기된 탈세액과 같은 금액을 냈다. 이 회장은 납부 영수증을 재판부에 제출했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벌금 120억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이후 세무서에 소득세 수정신고서를 제출하고 13억여원을 추가로 납부했다.  이 회장은 2006년 돌연 태도를 바꿔 “1심 선고 직전에 낸 돈은 납세신고 등 조세 채무가 없음에도 실형을 면하려 낸 것”이라며 그동안 낸 세금을 포함해 51억9000여만원을 돌려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법원은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조사4국 출격 심상찮은 세무조사
배경 두고 설왕설래…괘씸죄 추측

증여세 반환을 놓고도 부영그룹과 국세청 사이에 묘한 긴장 기류가 조성됐다. 이 회장은 2007년 친인척들이 갖고 있던 부영과 대화도시가스 주식을 자신의 명의로 이전하고, 2008년 해당 주식 물납 방식으로 약 800억원의 증여세를 국세청에 납부했다.

이도 잠시. 이 회장은 “이 주식은 원래 자신의 소유로, 친인척들에게 명의신탁한 것”이라고 뒤늦게 주장하면서 국세청에 증여세 반환을 신청했다. 국세청은 “자진 납부한 세금을 무효로 보기 어렵다”며 이 회장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세청 결정에 반발한 이 회장은 2010년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판원은 이 회장의 명의신탁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일부 주식에 대해서만 명의신탁을 인정해 환급 조치했다. 이 회장은 되돌려 받은 주식이 증여세로 낸 800억원에 턱없이 모자라자 행정소송을 걸어 결국 세금 일부를 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세청은 재반격에 나섰다. 부영의 주식 변동 내역에 대해 다시 조사에 착수, 2013년 이 회장 일가에 부당무신고 가산세와 납부불성실 가산세를 포함한 증여세 260억원을 통보했다. 이를 두고도 역시 분쟁이 생겼다. 이 회장은 국세청의 가산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심판청구를 냈지만, 조세심판원은 문제가 없다고 결론 냈다.

부영그룹과 국세청이 끈끈했던(?) 시절도 있었다. 뇌물을 주고 편의를 봐준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그랬다. 봉태열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이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04년 5월 구속됐다. 검찰 수사결과 이 회장은 2001년 12월∼2002년 6월 봉 전 청장에게 세무조사를 받지 않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3차례에 걸쳐 모두 1억3000만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건넨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뭔가 걸렸다?

재계엔 조사4국에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는 얘기가 있다. 시쳇말로 빡세서다. 추징금이 어마어마하다.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세금폭탄이 떨어진다. 세무조사 기간은 보통 90∼100일 정도, 길면 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따라서 이르면 4∼5월, 늦어도 7월까진 부영 세무조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부영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좀 더 지켜볼 일이다.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조사4국 덮친 기업은?

서울국세청 조사4국이 현재 조사 중인 기업은 3∼4곳이다. 조사4국은 지난달 ‘국민연료 썬연료’란 씨엠송으로 유명한 썬그룹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썬그룹 서울사무소에 사전 예고 없이 투입, 관련 자료를 확보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조사4국은 지난 1월 삼성물산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세무조사는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한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12월부턴 국내 여행업계 1위 하나투어가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이 역시 조사4국이 투입됐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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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