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④어른은 알아야 할 세뱃돈 천태만상

아이들 대목…이젠 폰으로 전달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친인척들을 보기 위해 교통체증을 무릎 쓰고 멀고 먼 고행의 길을 떠나는 모습이 매번 반복된다. 다만 신권을 쥐어주던 보편화된 세뱃돈 풍속도는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물론 의미가 변화가 아닌 방법적인 측면이라고 봐야 한다.

민족의 대명절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설날이 되면 그간 왕래가 뜸했던 친인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덕담을 주고받고 웃어른에게 세배를 한다. 이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세뱃돈이다.

설 신풍속도

세배는 무사히 겨울을 넘기고 새 해를 맞은 것을 기념해 어른들에게 문안드리는 것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인사를 찾아온 이들에게 차례음식 등을 건네며 덕담을 주고받은 것이 현재 세뱃돈의 기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해방 전까진 과일이나 떡 등을 싸주는 일이 많았지만, 이후 복주머니에 현금을 넣어주는 풍습이 생겨났다. 세뱃돈은 주로 신권이나 지갑에서 한번 접힌 정도의 깨끗한 돈으로 주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새해 첫날 받는 돈이니 부정 타지 말고 기분 좋게 사용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에는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세뱃돈의 형식도 많이 바뀌었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관련 앱을 통해 손쉽게 세뱃돈을 선물할 수 있고 종이 상품권 대신 모바일 상품권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모바일 상품권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간편하면서 직접 현금으로 주기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모바일 상품권이 대신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일반 상품권보다 5%가량 저렴해 부모들이 인터넷에서 구입해 아이들 스마트폰으로 직접 전송할 수 있다. 받는 이가 청소년일 경우엔 상품권의 사용처를 확인하기도 용이하다.

스마트폰 사용자에 필수인 데이터를 선물하는 빈도가 부쩍 증가하면서 세뱃돈을 대신할만한 모바일 상품의 종류도 한층 다양해졌다. SK텔레콤은 지난 1일부터 ‘T데이터쿠폰’을 구매하는 선착순 10만명 고객을 대상으로 ‘T데이터쿠폰 프로모션’을 시행하고 있다. T데이터쿠폰은 쿠폰에 기재된 용량만큼 스마트폰 데이터를 충전할 수 있는 선불형 데이터상품권으로 최소 100MB 부터 최대 5G까지 총 5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주머니에 현금 옛말
디지털 트렌드로 변화

젊은 부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외화 세뱃돈 세트도 눈여겨 볼 만 하다. KEB하나은행은 설을 맞이해 외국통화 세뱃돈 3만세트를 지난달 27일부터 선착순 한정으로 판매하고 있다.

외국통화 세뱃돈 세트는 ‘행운의 2달러’를 포함해 미 달러화, 유로화, 중국 위안화, 캐나다 달러화, 호주 달러화 등 5개국 통화가 전액 신권으로 구성됐으며 실용신안 특허등록으로 국내 은행에서는 KEB하나은행만이 제공할 수 있다. 기본 세트에는 미국의 유명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선물을 받은 후 모나코의 왕비가 됐다고 알려진 행운의 2달러의 유래를 비롯해 각국 화폐 및 화폐 속 등장 인물에 대한 설명 등이 표기돼 있다.

세뱃돈으로 빳빳한 신권을 주는 대신 펀드 통장을 만들어주는 광경도 그리 낯설지 않다. 세뱃돈이 당장 아이들의 군것질에 사용되지 않게 펀드 계좌를 만들어 향후 대학등록금 혹은 결혼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유망한 기업에 장기 투자하면 예금에 비해 자산을 불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은 투자와 목돈 마련의 개념을 동시에 정리할 수 있고, 부모들은 은행 통장에 돈을 넣어두는 데 익숙했던 오랜 투자 습관과 이별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대표적인 주니어 상품으로 어린이펀드가 있다. 시중 금융ㅅ들은 다양한 종류의 어린이 펀드를 판매되고 있다. 운용 방식은 일반 펀드와 유사하지만 보통 10년 이상 목표로 투자하는 상품인 만큼 장기적인 안목으로 운용된다. 증권사를 비롯한 각 판매사는 상품 가입자에게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펀드에 투자할 뿐만 아니라 교육 및 여가 활동에도 참여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어린이 펀드를 판매하는 증권사들은 상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상해 및 질병에 대비한 보험서비스 혜택이나 주말영어 캠프 참여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장 보편화된 방법은 마음을 담는다는 뜻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직접 사다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보다 10일 가량 앞당겨진 설날과 신학기 기간이 겹치면서 대형 아동복 매장에 설빔 및 신학기 선물을 찾는 고객들이 증가하고 있다.

아동복 매출이 상승세를 보이는 까닭은 아동복 성수기인 설날과 신학기 기간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근 저출산의 영향으로 한 가구당 1∼2명의 자녀를 위해 부모는 물론 조부모, 삼촌, 이모 등의 지갑이 쉽게 열린다는 의미인 ‘에잇 포켓(Eight Pocket)’ 소비 트렌드 현상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통업계는 아동복 및 책가방 할인 행사를 전개하며 설 특수를 노리기에 여념이 없다.

사이버머니 대세

유통업계 관계자는 “모바일상품권 수요가 증가한데다 창의적인 상품이 속속 나타나면서 세뱃돈 대신 평소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체크해 선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세뱃돈의 진짜 의미를 자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뱃돈 변천사, 50년 사이 5000배↑

세뱃돈은 그동안 물가상승과 경제상황, 화폐의 변화상을 반영하며 꾸준히 올랐다. 1971년 연령대별 평균 세뱃돈은 미취학 아동 50원, 국민학생 100원, 중·고교생 200원 등이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30원이었으니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1982년 500원 지폐가 동전으로 바뀌고 1000원이 지폐의 최소단위가 되면서 세뱃돈도 크게 올랐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느새 만원짜리가 보편화됐다.

그러다 1998년 IMF 위기를 겪으며 세뱃돈 액수는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설을 앞두고 1000원권과 5000원권의 수요가 IMF 이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때문에 신권교환행사를 가진 백화점들은 1000원권이 동이 나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0년 이후 다시 1만원권이 인기를 회복하며, 세뱃돈은 최대 5만원까지 껑충 뛰었다. 약 50년 사이에 세뱃돈은 5000배, 물가 상승과 구매력 등을 감안하면 50배 정도 오른 셈이다.

세뱃돈은 화폐의 시대 변화상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2006년에는 23년 만에 나온 5000원 신권이 인기를 끌었고, 2009년 5만원권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세뱃돈은 덩달아 뛰었다.

최근 여론조사 기관의 직장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세뱃돈은 5만원(38.6%)이 적당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밖에 미취학 및 초등학생은 1만원(59.5%), 중고등학생은 3만원(32.6%)으로 각각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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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