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K중학교 살인사건 미스터리

친구 죽이고 잘 먹고 잘 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11년 전,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했던 부산 K중학교 살인사건. 동창생을 무자비한 폭행으로 사망에 이르게 했던 이 사건은 가해 학생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로 비난을 면치 못했다.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이 사건에는 의문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단 한 번도 언론에 보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당시 일각에선 가해 학생의 부친이 굉장한 권력자라는 소문도 돌았다.

2005년 10월1일 부산 K중학교에 다니는 홍모군은 친구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러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들고 있던 책이 지나가던 최군의 어깨에 부딪히게 된다. 그 순간 최군은 악마로 돌변해 홍군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부딪힌 이유를 5가지 대라” 최군이 던진 말에 홍군은 극심한 공포 속에서 5가지 이유를 만들어낸다. 이유를 한가지씩 말할 때마다 최군의 주먹은 홍군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학교생활 내내
괴롭힘 당했다

다섯 대. 고통의 순간이 끝나고 돌아가려던 홍군을 기다리고 있던 건 분이 풀리지 않은 최군의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얼굴, 가슴, 배를 가리지 않는 폭행은 끝날 줄을 몰랐다. 심지어 의자를 던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홍군은 죽어갔다.

무자비한 폭행에 죽어가고 있을 때 홍군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하는 친구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서서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군은 당시 14살의 나이에도 178cm의 큰 키를 가졌었다. 같은 학교 학생들은 물론 주위에 다른 학교에서도 무서워하는 일명 ‘짱’이었다.


평소에 학생들은 최군에게 말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최군을 말릴 용기 있는 학생은 없었던 것이다. 끔찍했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교사들이 도착했다. 학교에서 병원은 2분 거리. 이때 교사들은 병원에 옮기기보다 심폐소생술을 선택했다.

무능한 교사의 무지한 선택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홍군은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외상이 없는 상태에서 폐가 2/3 이상 파열됐고 지주막하출혈로 인해 머리 전체에 피가 고여 있었다. 더는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 가족들은 동안 죽어가는 홍군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홍군은 결국 숨을 거뒀다.

홍군의 아버지는 아들의 원통한 죽음에 교육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2007년 2월 홍군이 다니던 학교인 K중학교의 졸업식에 아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학교에 찾아갔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홍군 부모는 자녀가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주장을 펼쳤다. 홍군의 아버지는 사건이 벌어지기 한 달 전 이미 집에서 최군을 만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홍군의 아버지는 “그때 최군에게 분명히 말했다. 우리 아들은 몸이 약하고 운동신경도 발달하지 않았으니 때리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특별히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군이 덩치도 크고 운동도 잘한다는 말을 아들한테 들었는데 혹시 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고 덧붙였다.

가슴 수차례 때리고 의자로 폭행
10년이나 흘렀는데…의문 그대로

사건 전 현장학습 가기 전날 저녁에도 집에서 최군과 관련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홍군의 침대 밑에서 최군의 가발이 발견된 것. 당시 홍군은 최군이 감춰놓으라고 해서 침대 밑에 두었다고 말했다. 홍군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최군에게 “참회하고, 잘못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업보로 여기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참된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교사들은 회의를 열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토론했다. 방송사에서도 취재를 요청했으나 학교 측에서는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이후 피해자 홍군의 아버지는 학교 측이 문제를 은폐하려고만 하고 공식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다른 학교폭력 피해자 부모와 함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학교폭력 예방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학교 측의 부적절한 대응도 문제가 됐다. 사고 당시 보건교사 및 생활지도부장은 인근 병원이 학교 근처에서 승용차로 1분 거리에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심폐소생술로 20분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반성 안 보여
네티즌 분노

병원에는 학교에서 나온 교사들과 장학사, 교육감도 다녀갔지만 오히려 그들로 인해 가족들은 더 큰 상처를 받았다. K중학교 교장은 홍군의 이름도 모르면서 병원에서 날밤을 새웠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홍군의 부모는 “이런 학교에 우리 아들 그리고 수많은 아들의 친구들이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 사연이 퍼지면서 네티즌들은 관련 기사 댓글 쓰기 등을 통해 피의자 최군을 맹비난했다. 최군의 실명과 개인 사진 등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개인 블로그, 미니홈피 등을 통해 퍼뜨려 최군은 물론, 가족들과 학교 홈페이지까지 네티즌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파문이 확산되자 주요 포털 사이트들은 최군의 실명이나 사진, 전화번호 등이 포함된 게시물을 삭제하기 시작했고, 관련 기사의 댓글 쓰기를 금지했다.

포털 관계자들은 “피의자 최군이 분명 잘못한 것은 맞지만 포털 사업자 입장에서는 인권과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포털 사이트가 최군에 대한 글쓰기를 막는 것은 사건을 은폐하는 것”이라며 포털 사이트들에 대해서도 비난을 퍼부었다. 한 네티즌은 청와대의 참여마당 신문고에 “나름대로 인권보호라 하겠지만. 오히려 이것은 역효과를 낳는다”고 포털 측의 정보공개를 촉구했다.

또한 네티즌들 사이에서 최군에 대한 거짓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는가 하면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해 유언비어와 조작된 글이 퍼지기도 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최군에 관련된 글이 모두 삭제된 것을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최군의 아버지가 포털 사이트의 사장이 아닐까 하는 루머 돌기도 했다. 

또 최군의 할아버지가 고위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이라는 소문, 포털 사이트에 거액의 돈을 주고 무마했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추측들이 난무했다. 결국 루머는 루머일 뿐 근거는 없었다. 

이 외에 최군 사건과 관련한 몇 개의 루머들은 인터넷에서 창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악의적으로 담임교사 및 최군의 친구로 속인 글을 남기고 이게 다시 인터넷에 퍼지면서 사건을 더 촉발시킨 측면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 중에 뭐가 진짜고 거짓인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담임교사의 글에는 “한 명의 선한 아이를 살인자로 만들어 이 세상에서 매장 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하며 “최군이 평소에 얼마나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착한 아이란 걸 아신다면 이런 글을 감히 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쓰여있다.

또 “평소 공부도 아주 잘하고 리더십도 있으며 얼굴도 잘생기고 신체 건강한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라며 최군을 옹호하고 있다. 글의 마지막에는 “너무 한쪽의 일방적인 말만 믿지 말길 바라며…사랑하는 sam”이라고 쓰여있었다. 

이후 최군은 폭행치사 혐의로 소년부 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중간에 보석금을 내고 가출소 해 재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종 판결은 불명이지만 살인죄를 저질렀던 터라 그냥 집행유예 등을 받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군은 이름을 개명했으며 2007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당히 술먹는
사진 올리기도

사건은 잊히는 듯했으나 2009년 9월27일 최군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나 연세대 의대 수시 합격했다’는 글이 캡처된 사진이 인터넷상에 퍼져 다시 한 번 이 사건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연세대에 알아본 결과 그런 학생이 합격했다는 내용은 없다고 한다. 앞의 글 때문에 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져 한 사이트에서는 처벌하자고 서명운동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웹툰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이트 측이 대사와 댓글을 삭제했고 연재가 중단되기에 이른다. 이에 반발한 네티즌들이 외압설을 제기했지만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가해자는 공식적으로 처벌을 받았고 위에서 나왔듯 소년원에 가서 복역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이 사건을 맛있는 떡밥으로 강화한 루머 중 많은 부분이 오해와 거짓이었기 때문에 연재를 중지했다고 밝혔다.

가해자 주위 학교 평정한 ‘짱’
보석금 내고 가출소 상태 재판

2012년에 가해자 최군이 개명한 상태에서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이 나돌았다. 처벌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반성은커녕 너무나 즐겁게 찍은 사진들이 네티즌들의 혈압을 상승시켰고 맹공격이 쏟아지자 금방 최군의 페이스북은 닫혔다. 

신상털이로 최군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도 얼굴을 떳떳하게 올려놔서 이게 본인이 맞나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로 인한 부수적인 피해로 페이스북의 동명이인들은 악플과 욕설에 시달려야만 했다. 

또한 '누구누구 왕따다. 내가 세 명 다 왕따 시켰으니깐' '살인도 좋은 경험. 덕분에 인간은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어차피 난 법적으론 살인이 아니니' 등 다수의 네티즌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이미 고인이 된 피해 학생에게 쓴 편지라고 올라온 글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정말 너한테 한 거 미안하다. 정말 두 손 모아 사죄한다. 너는 아마 좋은 데 갔을 거다. 이 뭐 같은 세상 살 바엔 그냥 죽는 게 안 낫나?”라는 내용은 네티즌들로 하여금 사죄가 아닌 또 다른 폭력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 같은 캡처 이미지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많은 네티즌이 내 일처럼 가슴 아파했던 홍군의 사망과 가해 학생에 대한 비난이 단순한 ‘냄비 근성’으로 비난 받는 것에 대한 방증으로 이들은 다시 가해 학생에게 공격을 시작했다. 

이 사건이 이 정도로 퍼져나가게 된 결정적 이유는 ‘학교 내의 교실에서 같은 반 학생들이 보는 앞인 데도 구타해 죽인’ 이례적인 사건의 특징과 한 아이를 구타해서 살인했는 데도 자신의 메신저를 통해 전혀 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최군에게 있다. 

애초에 사건의 발단 등 루머가 아닌 진실만 보더라도 피해 학생이 사망하는데 최군의 고의성이 짙게 깔렸으니 말이다. 이렇다 보니 설령 사건이 TV나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려졌다 하더라도 최군의 반성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루머 의혹 증폭
외압설도 제기

이처럼 가해자 최군이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여러 포털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검색어가 차단되거나 관련 글에 대한 게시중단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잊지 않았다' '반성할 때까지 네티즌들의 응징은 계속 될 것이다'라는 등 이 학생을 혐오하는 여론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K중학교 운동장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추모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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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