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박근혜정부 외교 성적표

계속되는 굴욕 협상 '못 먹어도 고?'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 12월, 전격 타결됐던 위안부 협상 후폭풍이 거세다. '굴욕 협상'이란 비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박근혜정부의 실익 없는 외교가 도마에 올랐다. 국정수행 지지율 40%를 웃도는 박근혜정부의 가장 큰 '무기'는 외교였다. 잇따른 국내 실정에도 불구하고 해외순방으로 지지율을 끌어 올렸던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4년차 들어 중대 고비를 맞았다.

한국은 바다 건너 일본과 인접한 국가이자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사실상의 '섬' 나라다. 서해로는 중국과 마주하고 있고, 휴전선을 경계로 북한과는 반세기 넘게 갈라져 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미국과는 적대관계를, 중국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강대국들 틈에서 한국은 필연적으로 균형 있는 처세를 요구 받는다. 냉전체제 종식 후 특정국가에 편중된 외교정책은 국제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급부상과 일본의 팽창 속에 더는 친미외교만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때문인지 역대 대통령은 저마다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균형'을 언급했다.

일본-D등급
"굴욕 외교"

박근혜 대통령도 그랬다. '통일대박'을 대표 브랜드로 앞세운 박근혜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외교성과 홍보에 열을 올렸다. 실제 성과는 어떨까. 박근혜정부 4년차를 맞아 '외교 성적표'를 뽑아봤다. 일본군 위안부 협상, 중국 열병식 참석 등 굵직한 사건들을 변수로 놓고 성적을 매겼다. 각 국가별(일본·미국·중국) A~F등급까지 주관적인 기준을 반영했다. 첫 번째 국가는 일본이다.

지난 28일 한·일 양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안을 도출하고 협상결과를 언론에 공표했다. 그러나 "위안부 소녀상 철거의 대가로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97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는 등의 보도가 나오면서 이른바 '굴욕 협상' 논란이 확대됐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교도통신, 도쿄신문, 산케이신문 등 주요 외신들이 한목소리로 한국 정부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지난 29일 "더는 사죄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빌미는 한국 정부가 제공했다. 협상 내용에 '불가역적·최종적'이란 문구를 삽입한 탓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아베 총리가 '앞으로 이 문제(위안부)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겠다. 다음 일·한 정상회담 때도 말하지 않겠다. (박 대통령에게도) 전화를 걸어 말해뒀다. 어제(28일)로 끝이다'고 말했다"라고 보도했다.

박근혜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다. 소녀상 철거 보도와 관련해 "사실이 아니다"라면서도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렇게까지 한 이상 한국이 약속을 어기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라는 등 며칠 새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과 대조적이다.

또 일본 정부는 합의문에 명시된 '책임'이란 표현과 관련해 "법적책임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설파하고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모든 보상이 끝났다는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언행들이 없길 바란다"라고 답했지만 일본 정부의 대응에 끌려가는 형국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도 미뤄질 것이란 보도가 나온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난 28일 "한국이 신청에 합류하지 않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위안부 협상 직후 기시다 외무상이 "우리가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고 자신한 배경이다.

국내 여론은 이번 합의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설문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 결과에 따르면 '잘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50.7%로 '잘했다'고 응답한 43.2%보다 7.5%P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 가운데 60세 이상은 71.3%가 '잘했다'고 응답했다.

60세 이상의 '콘크리트' 지지는 박근혜정부가 '미완의 협상'을 밀어붙인 원동력이란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외교 실무자들에게 직접 위안부 협상 연내 타결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집권 초 박 대통령이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공언한 것과 대비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벤트'를 기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12·28 한일 위안부 협상 후폭풍 거세
미국은 환영…사드 배치 강수 이어질까


박 대통령은 정권 출범으로부터 1년이 지난 2014년 3월25일에야 아베 총리와 첫 환담을 나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미국 측의 요구로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당시 아베 총리는 박 대통령과 눈을 맞추고 한국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이때만 해도 한국 정부는 일본 측의 '구애'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대일 노선 변화는 임기 반환점을 돈 지난 9월 무렵 가속화됐다. 세부적으로 따지면 중국 전승 70주년 기념식 참석 당시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합의가 계기였다. 일본은 10월8일 일본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를 통해 친서를 전달했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한 것이다.

냉랭했던 한·일관계는 11월2일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당시 일본 당국자는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에 소녀상 철구를 요구했다"라고 전했다. 반면 한국 외교부는 "양국 정상간 협의내용을 밝히지 않겠다"라고 브리핑했다.

결과적으로 위안부 소녀상 철거 여부는 합의문에 적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지 못한 반쪽짜리 합의문이 '외교적 성과'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청와대는 31일 브리핑에서 '굴욕 협상'이란 비판에 대해 "사회혼란을 야기시키는 유언비어"라고 반박했다. 재계에선 이번 위안부 협상 타결로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지만 사회적 갈등이 커졌다는 점에서 낙제점인 D등급 이상은 매기기 어렵다.

미국-B등급
"Poor Park"

미국은 한·일 위안부 협상 발표 직후 기다렸다는 듯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의회전문매체 더 힐은 28일(현지시간)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발표한 성명을 인용해 "오바마 행정부는 한·일 정부가 합의를 도출한 것을 축하한다"라며 "양국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라고 보도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같은 날 "이번 합의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며 "양국이 경제·안보 협력을 포함해 지속적으로 협력해나가길 기대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국내 여론과 무관하게 미국 정부의 입장은 호의적이다. 거칠게 말하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 합의인 것이다.

실제 일본 도쿄신문은 29일자 사설에서 이번 위안부 협상 배경에 대해 "동북아 패권을 노린 오바마 정권이 양국의 등을 떠밀었다"라고 분석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중국을 의식한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을 수립했다. 한·미·일 공조체제를 구축해 국제무대에서 급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구상이 핵심이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냉각되면서 3국 공조체제 역시 흔들려왔다는 것이 외교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때문에 이번 위안부 협상은 미국의 '앓던 이'를 빼준 것과 다름없다. 무엇보다 위안부 협상을 계기로 주춤했던 싸드(THH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배치 문제가 외교 현안으로 부각될지 관심이다.

지난 10월29일 마이크 트로츠키 록히드마틴 부사장은 워싱턴D.C.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국(한·미) 정책당국자 사이에 싸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를 부인했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요구가 없었다는 주장을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15일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펜타곤(미국 국방부)에 초청된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선 중국을 상대로 '싸드가 한반도에 배치될 수 있다'는 신호를 준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엉뚱한 '북핵' 얘기로 눈총을 샀다. 지난해 10월1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장에 나온 박 대통령은 현지 기자로부터 '베이징(중국)을 방문해 중국·러시아 정상과 함께 했다. 이 방문이 미국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의 속내는 이른바 '중국 경사론'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질문 내용을 모르는지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북한 핵이 전세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라고 답한 것이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박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요청한 건 중국이 국제 규범을 따르지 않으면 미국처럼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남중국해 등의 문제에서 미국 편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5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박 대통령이 미국 기자의 질문을 잊어버리자 "딱한 대통령(The poor president), 질문조차 잊은 것 같네요"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 침묵…한중 FTA·AIIB 성패 촉각
남북 정상회담 요원…변수는 반기문?

오바마 대통령의 '평가'와는 별개로 한국의 대미 외교는 무난한 수준(B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싸드 배치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적극 강권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 박 대통령도 지난 방미에서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란 발언으로 점수를 땄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한·미 관계는 최상의 상태"라고 화답했다.

문제는 중국이다.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기념식 당시 박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 성루에 올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박 대통령을 자신의 옆에 세우고 중국이 '동북아의 맹주'가 될 것임을 대내외에 공표했다. 중국 동북아 정책에서 한국은 다른 의미의 '핵심축'이었던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 취임 후 시진핑 주석은 무려 6차례나 한·중 정상회담에 응하며 한·미·일 공조체제를 깨는데 공을 들였다. 리커창 중국 총리와의 회담까지 포함하면 한·중 정상회담만 무려 10차례에 이른다. 리커창 총리는 중국 경제 분야를 총괄하는 수장이다.


중국은 박 대통령을 매개로 한·중·일 정상회의를 추진해 왔다. 전승절 이후 경색된 한·일관계가 급작스레 개선된 것이 그 증거다.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내심 정상회의를 통해 '친미' 성향인 일본을 회유 또는 압박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의 기대를 저버렸다.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대중국 억제정책에 힘을 보탰다. 미국으로서는 북핵을 핑계로 중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수위를 높일 수 있는 명분을 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이번 위안부 협상으로 자의든 타의든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네트워크에 협력하는 꼴이 됐다. 지난 29일 중국 신화통신은 양국 합의에 대해 "미국의 압력 속에서 만들어진 정치적인 선택으로 볼 측면이 크다"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중국-C등급
불가근불가원

그렇다고 한·중관계가 당장 악화될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당분간은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0일 발효된 한중FTA와 중국 주도의 첫 국제 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성공을 위해선 일정부분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변수는 북한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요원한 상황에서 중국은 박근혜정권과 김정은체제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에 이어 북한과도 전면적인 경제협력을 추진하며 영향력을 높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북한에 대해 사실상의 '고립 외교' 정책을 펴고 있는 박근혜정부는 북·중관계 복원을 우려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관련 대목에서 반기문 UN사무총장의 방북은 중국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친미 성향으로 알려진 반 총장의 방북은 미국의 간접 개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국내 정치용으로 반 총장의 방북을 돕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질 경우 중국과의 관계는 지금보다 꼬일 공산이 크다. 흥미롭게도 박 대통령은 반 총장과 모두 6차례 회동했다. 이는 시진핑 주석과 함께 세계 지도자 가운데 가장 많은 횟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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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