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심리학자 닮은 화가 권인경

"흔적으로 남은 기억을 그리죠"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동양화가 권인경이 오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 아트비앤에서 개인전을 연다. 여덟 번째 개인전 제목은 '상상된 기억들(Imagined memories)'이다. 전통적인 화풍으로 현대적인 도시 풍경을 담아 온 권 작가는 공간에 스민 '휴머니즘의 흔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권 작가는 현실과 무의식을 연결 짓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실과 무의식의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물리적 공간은 한지다. 권 작가의 상상은 수묵과 아크릴을 혼용한 작품으로 탄생한다. 단 하나의 공간에서 발생한 단 하나의 사건은 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복합적인 기억'과는 차이가 있다.

무의식을 연결

권 작가가 쓴 작업노트를 빌면 인간은 그들이 속해 있는 장소나 특정 공간, 사물에서 기억과 기대 그리고 추억을 만든다. 공간 속 사물과 인간은 크건 작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과 관계 맺고, 유대·소통·공감 등 심리적 작용을 경험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집과 소유물을 잃었다면 그 사람을 지배하는 감정은 상실감이다. 보통의 인간은 공간 또는 사물에 자신의 정체성을 이입한다. 권 작가는 '우리를 둘러싼 물건들은 결국 우리인 것과 분리될 수 없다'는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의 말을 인용했다.

이번 개인전에 전시된 12점의 작품은 모두 모호한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기억을 겹겹이 쌓아올린 풍경은 꿈결처럼 생생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권 작가 작품에 등장하는 무의식의 파편은 '온화한 지휘자'의 손에서 조율된다. 권 작가는 무균질의 기억을 제어하기보다는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울림을 극대화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이선영씨의 평론에 따르면 '상상된 기억들'전은 권 작가 지인이 겪고 있는 심각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됐다. 이씨는 권 작가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의 공간>이란 책을 예로 들었다. 강제수용소가 트라우마의 장소인 것은 그곳에서 자행된 폭력의 과도함이 인간적 이해력과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해될 수 있고 표출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니다.

전통화풍으로 현대 풍경·공간 담아
12점 작품 모두 모호한 기억에 의존

권 작가의 작품에는 전형적인 동양화가 지닌 '여백' 또는 '여유로움'이 없다. 대신 화면 빼곡한 각 조형이 상징하는 '강박'이 있다. 이들 조형은 서로 무질서하게 뒤엉켜 편집증적 징후를 드러낸다. 다만 이씨는 권 작가의 작품에 대해 "부정보다는 긍정적 요소가 강하다"라며 "도피보다는 전진을 떠올리게 하는 경쾌한 에너지가 있다"라고 평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어떤 사물이나 공간이 상기하는 불안에 잠식된다. 이들은 자신만의 도피공간 혹은 치유가 가능한 물건을 만들어 안식을 느끼고자 한다. 친구들과 자주 갔던 카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목걸이 등이 트라우마를 잠시나마 잊게 한다. 이들 매개는 과거의 기억을 해체시키는 버팀목이 되며, 상상 속에서 해체된 기억은 트라우마가 아닌 '철지난 추억'으로 입력된다.

트라우마 치유

권 작가는 작품 '두개의 문'에서 화분과 창문, 사람을 배치했다. 어떤 창에는 밤이, 어떤 창에는 낮이 찾아 왔다. 그림 속에는 또 다른 그림이, 풍경 속에는 또 다른 풍경이 배치됐다. 작가는 이들을 지켜보는 관찰자로 화분을 제시했다. 화분은 달빛처럼 평등한 시선으로 모두를 내려 봤다. 화분은 텅 빈 공간에 놓인 의자와 함께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공유했다.

권 작가의 작품에서 인간은 시간 속 흔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기억과 지각밖에 없다. 왜곡된 시공간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기억은 은하수를 연상시킨다. 집을 잊지 않으려 귀로 곳곳에 쿠키를 남겼던 헨젤과 그레텔처럼 권 작가는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 그들이 남긴 추억을 가슴에 새긴다.



<angeli@ilyosisa.co.kr>


[권인경 작가는?]

▲홍익대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석·박사 졸업
▲개인전 공평아트센터(2005) 문화일보갤러리(2006) 가나아트스페이스(2011) 한국문화원(2013) 등 8회
▲기획전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그랜드하얏트 홍콩,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그림손 갤러리, 부산 벡스코,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등 다수
▲Cite des Arts(Paris), OCI 레지던시 등 입주
▲제25회 중앙미술대전 특선(2003) 제7회 송은미술대상전(2007) 63스카이아트 미술관 New Artist Project 신진작가(2011) 서울시립미술관 Emerging Artist(2013) 가송예술상(2014) 등 수상
▲<도시에 미학을 입히다>(고명서 저), ㈜두산동아 중학교 미술교과서 등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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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