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노린 강신명 경찰청장 속사정

한상균, 충성경쟁 제물 됐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1급 수배자의 실질적인 죄명은 집시법 위반과 일반교통방해죄다. 경찰은 1계급 특진까지 내걸며 '한상균 검거'에 매진했다. 검거 과정에서 청와대 출신 전·현직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누가 더 '충심'이 깊은지 경쟁했다. 충성경쟁의 제물이 된 민주노총은 오는 16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지난 8일 오전 11시30분께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해 있는 조계사를 깜짝 방문했다.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 언론은 구 청장의 조계사 방문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이날 구 청장은 조계사 주지인 지현스님과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스님을 만나고자 했다. 구 청장은 면담에서 한 위원장의 자진 퇴거를 요청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사 방문
충성경쟁 전조

그러나 구 청장은 이들 스님을 만나지 못했다. 두 스님 모두 면담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구 청장은 조계사에서 삼배를 올리고 준비해 온 서한을 전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구 청장의 조계사 방문은 사전 조율이 생략된 '일방적인 진입'이었다.

비공개 면담이 가능했지만 서울지방경찰청은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구 청장의 조계사 방문 소식을 흘렸다. 면담이 거부되자 구 청장은 "한상균 위원장의 도피 행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라며 "빠른 시일 내로 자진 퇴거할 것을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수십대의 마이크가 구 청장 앞에 몰렸고, 이곳저곳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구 청장은 "법적 절차에 따라 영장 집행을 할 수 밖에 없다"라고도 했다.

구 청장의 강경발언에 여론은 들썩였다. 주목할 것은 강신명 경찰청장의 급작스런 입장 변화다. 하루 전인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강 청장은 "여러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중략) 제일 낮은 단계는 경찰이 조계사에 물밑작업을 하는 것이겠고, 제일 높은 단계는 영장을 집행하는 것"이라면서도 "지금으로서는 조계사 진입을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 예컨대 1∼5단계를 계획했을 때 2단계쯤에서 해결되면 진입을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런데 강 청장은 구 청장이 조계사에 방문하자 하루도 못가 입장을 바꿨다. 8일 오후 경찰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강 청장은 "9일 오후 4시까지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집행에 나서겠다"라며 조계종을 압박했다.

'사생결단'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신병확보 과정서 구은수와 신경전

특히 이날 강 청장의 발언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즐겨 쓰는 표현인 '배신'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강 청장은 "12월6일까지 자진 퇴거 약속을 어기고 불법투쟁을 선언한 것은 20일 넘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준 국민과 불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후 상황은 경찰의 조계사 경내 진입과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의 중재, 한 위원장의 자진 퇴거로 이어졌다. 경찰 입장에서 보면 목표했던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셈이다. 그럼에도 강 청장의 입지는 여전히 위태롭다. 11일 오전 강 청장의 거취와 관련한 풍문이 확산되는 등 경찰 안팎에서는 교체론이 대두되는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강 청장의 교체설과 얽힌 인물이 바로 구 청장이다. 지난 7~8월쯤 구 청장은 '강 청장이 총선을 앞두고 사임하면 경찰 총수를 꿰찰 것'이란 소문에 휩싸였다. 강 청장은 이 같은 '총선 출마설'을 적극 부인했다. "내년 8월로 예정된 임기를 마치겠다"라는 입장을 수차례 드러냈다.

지난해 8월까지 구 청장은 대통령비서실 사회안전비서관(치안감)을 역임했다. 파견이 종료되자 구 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에 내정됐다. 이는 박근혜정부 들어 '청와대 출신 서울청장' 코스를 밟았던 강 청장과 같은 이력이다.

불거진 경질설
박심은 구은수?


단 이들은 경찰 내 서로 다른 이익집단을 대변한다. 강 청장은 엘리트그룹인 경찰대 출신이며, 구 청장은 기존 기득권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출신이다. 때문에 강 청장과 구 청장의 관계는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강 청장 측에서는 총선 출마설을 비롯한 '음해성 루머'를 퍼뜨린 배후로 '동국대 라인'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구 청장은 지난 2일 검찰 수장이 된 김수남 검찰총장처럼 청와대의 강한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8일 조계사 방문도 강 청장의 지시가 아닌 다른 경로의 요구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강 청장의 발언 수위가 높아진 배경에는 일종의 '위기의식'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강 청장의 '라이벌'이자 소위 '조정정년' 대상자인 구 청장은 어떤 형태로든 연말 인사가 불가피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정정년은 경찰청장을 제외한 만 57세 이상 경무관이 스스로 용퇴하는 경찰 조직만의 관행이다. 조정정년에 따를 경우 구 청장은 늦어도 올해 안에는 옷을 벗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일찌감치 강 청장의 후임으로 구 청장을 낙점했다고 한다. 차기 경찰청장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 보호의 책무를 진 막중한 자리다. 때문에 강 청장은 지난 6월 "조정정년 폐지를 검토하겠다"라고 한 바 있다. 자신의 임기를 보장해주면 'BH(청와대)의 뜻'에 따르겠다는 신호를 준 셈이다.

위기의 강신명
제물이 필요해

그러나 2000년부터 이어 내려온 관행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경찰 고위간부의 인사 적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경찰 안팎에서 제기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구 청장의 조계사 방문은 청와대를 의식한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서울지방경찰청은 보안수사대, 광역수사대, 정보과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수사본부를 설치해 지난달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자를 수사하기도 했다.

이를 견제하듯 강 청장은 '조계사 진입 예고'라는 초강수로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했다. 수천명의 경찰 병력은 한 위원장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심'을 붙잡기 위해 움직였다. 다시 말하면 경찰 내 충성경쟁의 불똥이 조계사로 옮아붙은 것이다. 현재 강 청장은 민주노총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며 청와대와의 교감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7일 경찰청은 한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쌍용차지부 조합원 이모씨를 구속했다고 알렸다. 같은 혐의로 구속된 사람은 11일 기준 10명이다. 경찰은 관련 수사대상자가 731명에 이른다고도 밝혔다.

청와대 출신 전현직 서울청장 
인사설 맞물려 '박심' 경쟁

지난달 21일 강 청장은 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민주노총 본부를 겨냥한 압수수색은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이후 처음이다. 강 청장은 지난 2013년 12월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재직했을 당시 경향신문 사옥 민주노총 본부에 5000여명의 경찰력을 투입해 철도노조 간부 검거 작전을 지휘했다. 이때 남긴 강렬한 인상이 지금의 강 청장을 있게 한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강 청장에 대해 "양면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말단 직원의 경조사를 기억하고, 고충을 상담하면서 '격려 문자'도 직접 보내는 등 배려가 있는 리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처럼 제거해야 할 '적'이라고 인식되면 가혹할 정도로 수사를 밀어붙인다고 덧붙였다. 농민 백남기씨에 대한 직사살수, 사고 수습 과정에서의 사과 거부는 강 청장의 양면성을 잘 드러내는 사건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16일 총파업을 시작으로 19일 3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집회의 명분은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5법' 통과를 막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업종을 뿌리산업까지 확대하는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주류 언론이 만든 '폭력시위' 프레임에 갇혀 시민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


경찰 안팎에선 16일과 19일 집회를 어떻게 막느냐에 따라 강 청장과 구 청장의 명암이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 청장의 해임은 구 청장의 영전을 의미하며, 강 청장의 유임은 구 청장의 인사 발령과 연결된다. 강 청장이 유임된다면 구 청장은 공석인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내정될 가능성이 있다.

19일이 기로
구은수 거취는?

11일 유포된 '경찰 고위간부 인사설'은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공석이 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구 청장의 후임으로 윤종기 인천지방경찰청장, 황성찬 경찰대학장, 이상원 경찰청 차장 등이 경합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강신명 교체설'의 연장선으로 풀이되는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민주노총에 대한 공세가 더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법질서 확립을 부르짖고 있는 권력 이면에는 청와대를 향한 '충성경쟁'과 '자리싸움'이 혼재한다. 경찰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731명 외에도 시위 가담자 800명에 대한 신원확인을 진행 중이다. 최근 경찰이 한 위원장에 대해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충성경쟁의 발로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국무회의 당시 집회 참가자를 "아이스(IS)"라고 지칭한 바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