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노린 강신명 경찰청장 속사정

한상균, 충성경쟁 제물 됐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1급 수배자의 실질적인 죄명은 집시법 위반과 일반교통방해죄다. 경찰은 1계급 특진까지 내걸며 '한상균 검거'에 매진했다. 검거 과정에서 청와대 출신 전·현직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누가 더 '충심'이 깊은지 경쟁했다. 충성경쟁의 제물이 된 민주노총은 오는 16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지난 8일 오전 11시30분께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해 있는 조계사를 깜짝 방문했다.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 언론은 구 청장의 조계사 방문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이날 구 청장은 조계사 주지인 지현스님과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스님을 만나고자 했다. 구 청장은 면담에서 한 위원장의 자진 퇴거를 요청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사 방문
충성경쟁 전조

그러나 구 청장은 이들 스님을 만나지 못했다. 두 스님 모두 면담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구 청장은 조계사에서 삼배를 올리고 준비해 온 서한을 전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구 청장의 조계사 방문은 사전 조율이 생략된 '일방적인 진입'이었다.

비공개 면담이 가능했지만 서울지방경찰청은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구 청장의 조계사 방문 소식을 흘렸다. 면담이 거부되자 구 청장은 "한상균 위원장의 도피 행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라며 "빠른 시일 내로 자진 퇴거할 것을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수십대의 마이크가 구 청장 앞에 몰렸고, 이곳저곳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구 청장은 "법적 절차에 따라 영장 집행을 할 수 밖에 없다"라고도 했다.

구 청장의 강경발언에 여론은 들썩였다. 주목할 것은 강신명 경찰청장의 급작스런 입장 변화다. 하루 전인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강 청장은 "여러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중략) 제일 낮은 단계는 경찰이 조계사에 물밑작업을 하는 것이겠고, 제일 높은 단계는 영장을 집행하는 것"이라면서도 "지금으로서는 조계사 진입을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 예컨대 1∼5단계를 계획했을 때 2단계쯤에서 해결되면 진입을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런데 강 청장은 구 청장이 조계사에 방문하자 하루도 못가 입장을 바꿨다. 8일 오후 경찰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강 청장은 "9일 오후 4시까지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집행에 나서겠다"라며 조계종을 압박했다.

'사생결단'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신병확보 과정서 구은수와 신경전

특히 이날 강 청장의 발언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즐겨 쓰는 표현인 '배신'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강 청장은 "12월6일까지 자진 퇴거 약속을 어기고 불법투쟁을 선언한 것은 20일 넘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준 국민과 불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후 상황은 경찰의 조계사 경내 진입과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의 중재, 한 위원장의 자진 퇴거로 이어졌다. 경찰 입장에서 보면 목표했던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셈이다. 그럼에도 강 청장의 입지는 여전히 위태롭다. 11일 오전 강 청장의 거취와 관련한 풍문이 확산되는 등 경찰 안팎에서는 교체론이 대두되는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강 청장의 교체설과 얽힌 인물이 바로 구 청장이다. 지난 7~8월쯤 구 청장은 '강 청장이 총선을 앞두고 사임하면 경찰 총수를 꿰찰 것'이란 소문에 휩싸였다. 강 청장은 이 같은 '총선 출마설'을 적극 부인했다. "내년 8월로 예정된 임기를 마치겠다"라는 입장을 수차례 드러냈다.

지난해 8월까지 구 청장은 대통령비서실 사회안전비서관(치안감)을 역임했다. 파견이 종료되자 구 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에 내정됐다. 이는 박근혜정부 들어 '청와대 출신 서울청장' 코스를 밟았던 강 청장과 같은 이력이다.

불거진 경질설
박심은 구은수?

단 이들은 경찰 내 서로 다른 이익집단을 대변한다. 강 청장은 엘리트그룹인 경찰대 출신이며, 구 청장은 기존 기득권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출신이다. 때문에 강 청장과 구 청장의 관계는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강 청장 측에서는 총선 출마설을 비롯한 '음해성 루머'를 퍼뜨린 배후로 '동국대 라인'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구 청장은 지난 2일 검찰 수장이 된 김수남 검찰총장처럼 청와대의 강한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8일 조계사 방문도 강 청장의 지시가 아닌 다른 경로의 요구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강 청장의 발언 수위가 높아진 배경에는 일종의 '위기의식'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강 청장의 '라이벌'이자 소위 '조정정년' 대상자인 구 청장은 어떤 형태로든 연말 인사가 불가피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정정년은 경찰청장을 제외한 만 57세 이상 경무관이 스스로 용퇴하는 경찰 조직만의 관행이다. 조정정년에 따를 경우 구 청장은 늦어도 올해 안에는 옷을 벗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일찌감치 강 청장의 후임으로 구 청장을 낙점했다고 한다. 차기 경찰청장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 보호의 책무를 진 막중한 자리다. 때문에 강 청장은 지난 6월 "조정정년 폐지를 검토하겠다"라고 한 바 있다. 자신의 임기를 보장해주면 'BH(청와대)의 뜻'에 따르겠다는 신호를 준 셈이다.

위기의 강신명
제물이 필요해

그러나 2000년부터 이어 내려온 관행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경찰 고위간부의 인사 적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경찰 안팎에서 제기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구 청장의 조계사 방문은 청와대를 의식한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서울지방경찰청은 보안수사대, 광역수사대, 정보과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수사본부를 설치해 지난달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자를 수사하기도 했다.

이를 견제하듯 강 청장은 '조계사 진입 예고'라는 초강수로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했다. 수천명의 경찰 병력은 한 위원장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심'을 붙잡기 위해 움직였다. 다시 말하면 경찰 내 충성경쟁의 불똥이 조계사로 옮아붙은 것이다. 현재 강 청장은 민주노총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며 청와대와의 교감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7일 경찰청은 한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쌍용차지부 조합원 이모씨를 구속했다고 알렸다. 같은 혐의로 구속된 사람은 11일 기준 10명이다. 경찰은 관련 수사대상자가 731명에 이른다고도 밝혔다.

청와대 출신 전현직 서울청장 
인사설 맞물려 '박심' 경쟁

지난달 21일 강 청장은 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민주노총 본부를 겨냥한 압수수색은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이후 처음이다. 강 청장은 지난 2013년 12월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재직했을 당시 경향신문 사옥 민주노총 본부에 5000여명의 경찰력을 투입해 철도노조 간부 검거 작전을 지휘했다. 이때 남긴 강렬한 인상이 지금의 강 청장을 있게 한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강 청장에 대해 "양면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말단 직원의 경조사를 기억하고, 고충을 상담하면서 '격려 문자'도 직접 보내는 등 배려가 있는 리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처럼 제거해야 할 '적'이라고 인식되면 가혹할 정도로 수사를 밀어붙인다고 덧붙였다. 농민 백남기씨에 대한 직사살수, 사고 수습 과정에서의 사과 거부는 강 청장의 양면성을 잘 드러내는 사건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16일 총파업을 시작으로 19일 3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집회의 명분은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5법' 통과를 막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업종을 뿌리산업까지 확대하는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주류 언론이 만든 '폭력시위' 프레임에 갇혀 시민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

경찰 안팎에선 16일과 19일 집회를 어떻게 막느냐에 따라 강 청장과 구 청장의 명암이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 청장의 해임은 구 청장의 영전을 의미하며, 강 청장의 유임은 구 청장의 인사 발령과 연결된다. 강 청장이 유임된다면 구 청장은 공석인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내정될 가능성이 있다.

19일이 기로
구은수 거취는?

11일 유포된 '경찰 고위간부 인사설'은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공석이 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구 청장의 후임으로 윤종기 인천지방경찰청장, 황성찬 경찰대학장, 이상원 경찰청 차장 등이 경합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강신명 교체설'의 연장선으로 풀이되는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민주노총에 대한 공세가 더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법질서 확립을 부르짖고 있는 권력 이면에는 청와대를 향한 '충성경쟁'과 '자리싸움'이 혼재한다. 경찰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731명 외에도 시위 가담자 800명에 대한 신원확인을 진행 중이다. 최근 경찰이 한 위원장에 대해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충성경쟁의 발로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국무회의 당시 집회 참가자를 "아이스(IS)"라고 지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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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