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실세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추적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거 보셨습니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삼각편대’를 구축했던 당·정·청이 때 아닌 난기류를 만났다. 각 분야 실세로 통하는 이들이 최근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찹쌀떡 공조’를 동력으로 순항하던 박근혜호는 최근 박차를 가하고 있는 ‘4개 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 등 구조개혁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당·정·청 간 밀착공조로 순풍을 맞던 박근혜호가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 각 영역에서 실세로 활약하던 이들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최근 사위의 마약사건과 ‘봐주기 수사’ 의혹에 휩싸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측근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외압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청와대 문고리3인방은 그동안 ‘찌라시’로 여겨왔던 소위 ‘정윤회 문건’이 검찰로부터 일부 사실로 인정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당·정·청 실세
도덕성 상처

먼저 정가를 덮은 이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사위의 마약사건 소식이다. 지난 10일 복수의 언론은 김 대표의 둘째딸과 혼인한 이모씨가 마약을 복용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지만,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됐다고 대서특필했다.

김 대표는 봐주기 의혹에 대해 즉각 반박했다. 같은날 기자회견을 열고 “사위가 재판이 끝나고 출소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됐다”며 “정치인의 인척이기 때문에 양형을 약하게 했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기사”라고 입장을 밝혔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이모씨는 지난 2011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코카인과 필로폰·엑스터시 등 마약류를 총 15차례에 걸쳐 서울시내 유흥업소나 지방 리조트 등에서 의사, CF 감독 등과 함께 마약류를 구매·투약한 혐의로 지난 2014년 말 구속 기소됐다. 법원은 지난 2월경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고,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다. 출소한 이모씨는 김 대표의 둘째딸과 지난달 26일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렸다.


양형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마약류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해당 이슈는 국정감사 대상으로까지 확대됐다.

대검 마약과장을 역임한 바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임내현 의원은 지난 10일 ▲동종 사건의 양형 범위는 징역 4년∼9년6개월이지만, 법원은 양형기준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다는 점 ▲검찰이 항소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김무성 사위
마약사건

임 의원은 ‘사회 지도층에 있는 자 또는 그 자제냐’의 여부에 따라 형의 무게가 달라졌다고 내다보고 있다. 사건에 연루된 인물은 총 6명, 사위인 이모씨를 제외한 공범 5명의 처분 결과를 보면, 판매책인 ㅅ씨는 필로폰 판매 및 투약 7회 혐의에 대해 징역 10월을 구형, 법원에서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알선책인 ㅈ씨는 판매알선 및 4회 투약 혐의로 징역 10월을 구형,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ㅈ씨는 마약전과 1범이다. 초범인 ㄱ씨는 코카인·필로폰·엑스터시 매수 및 2회 투약 혐의인데 징역 3년을 구형했고, 선고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필로폰 매매 및 엑스터시 1회 투약한 ㅂ씨는 징역 1년을 구형,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반면, 공범 중 한 명으로 강남에 위치한 한 산부인과 병원 이사장의 아들로 알려진 노모씨의 경우 필로폰·엑스터시·신종마약인 스파이스·대마매수 및 8회 투약 혐의가 있음에도 벌금 1000만원을 구형했고, 선고 역시 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위인 이모씨 또한 알려진 바대로 코카인·필로폰·엑스터시·스파이스 매수 및 15회 투약 혐의로 징역 3년을 구형, 법원에서 ‘양형기준의 하한을 이탈하여 선고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임 의원은 해당 의혹에 대해 “마약 투약에 있어서 공범끼리 유사한 행위를 했음에도 구형 기준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상습범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면 검찰은 당연히 항소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당·정·청 실세 도덕성 타격, 지지율 꺾여
김무성 사위 마약사건 배후는 친박계?

정치적 해석도 뒤따랐다. 금태섭 변호사는 지난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대표를 둘러싼 정치적 의혹에 한 표를 던졌다. 금 변호사는 마약수사가 진행됐던 시점에 주목해 “(이모씨가 수사 당시) 김 대표의 사위였다면 검사가 알았을 것”이라며 “그런데 이때는 아니었다.

김 대표 딸의 남자친구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즉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모씨 여자친구의 아버지까지 살펴보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금 변호사는 ‘김 대표 흔들기 아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런 의심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가에서도 일찍이 ‘보이지 않는 손’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권력암투설’ ‘기획사정설’ 등이 나오는 실정이다. 여권 내 한 인사는 이번 사건을 두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 당시와 비슷한 매커니즘”이라고 바라봤다.

정치적 해석을 내놓는 쪽에서는 소문이 실체로 드러난 과정에 주목한다. 일찍이 여의도에서는 김 대표 사위될 사람이 소위 ‘뽕쟁이’라는 괴소문이 나돈 바 있다. 사위가 된 사람이 아닌 미래사위에 대해 한 달 전부터 풍문이 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언론에 기사화되자마자 해당 판결문이 ‘연판장’처럼 정가에 뿌려졌다고 한다. 특정집단이 개입된 조직적 움직임이란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그 집단이 친박계 주류라고 보고 있다.
 

친박계 쪽은 반발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소설’이라는 반응이다. 한 친박계 인사는 “마약 사위를 정권이 사주해서 만들었나. 아니면 결혼을 시키라고 등 떠밀어 만들었나”며 “단순 마약사범 사건을 이런 식으로 소설을 써서 얽어매는 의도가 더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친박계는 마약 사위 사건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김 대표에 대한 공세의 칼날이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의심의 눈길은 계속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채용개입 의혹

지난 15일 윤상현 청와대 정무특보는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대표에 대해 “당 지지율이 40%대인데 김 대표 지지율은 20%대에 머물고 있어 아쉽다”며 “내년 총선으로 4선이 될 친박 의원들 중에 차기 대선에 도전할 분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정가에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내년 총선에서 당선될 경우 4선이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 대표 측은 ‘저의가 뭐냐’는 반응이다. 김 대표 측은 윤 특보의 발언에 대해 경고성 성명을 내려다 김 대표의 만류로 취소했다는 후문이 정가에서 들려온다.


친박계에서 미는 대선후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최 부총리는 최근 ‘취업개입’ 의혹 등으로 도덕성에 큰 상처가 났다.

지난 14일 국회 산업통산자원위원회(이하 산자위)의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국감에서 새정치연합 이원욱 의원은 최 부총리가 2009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지역구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인턴 황모씨의 중진공 취업 과정에서 외압을 넣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2013년 중진공 신입직원 채용 과정에서 특정직원이 합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게 바로 최경환 부총리다”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진공은 2013년 하반기 신입직원 채용과정에서 서류전형과 임원면접에서 탈락한 황모씨의 점수를 변경해 최종 합격시켰다. 감사원은 지난 7월경 이를 적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초 서류전형에서 2299위였던 황모씨는 원인모를 이유로 1차에 1200위, 2차에는 176위까지 올랐다. 그래도 합격기준을 통과하지 못하자 배수 인원을 기존 170명에서 174명으로 늘려 합격시켰다.

최경환 잇단 취업청탁 의혹, 압력 넣었나?
찌라시→첩보문건, ‘정윤회 문건’은 사실

산자위 소속 야권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최 부총리의 외압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감사원 보고서 내에는 중진공 이사장이 “외부인사의 요망이 있었다”라며 말한 것으로 적시되어 있는데, 그 외부 인사가 최 부총리라는 것이다.

결국 감사원은 박철규 전 중진공 이사장에 대해 취업압력 의혹 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다. 정가는 실세라 불리는 최 부총리에게까지 수사가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해명자료를 내고 “중진공 신입직원 채용 과정에 전혀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후속 의혹도 제시됐다. <한겨레>는 최 부총리가 초선의원으로 활동할 때 7급비서로 운전을 맡았던 ㄱ씨를 황모씨 이전에 중진공에 취업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보도내용에 따르면, 중진공은 2008년 8월경 용역직원으로 ㄱ씨를 채용한 후 2010년 시설관리담당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했다. ▲ㄱ씨가 시설관리 분야에 경험이 전무하단 점 ▲청소·경비·시설관리 용역직원이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이 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외압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를 제기했던 이원욱 의원은 “중진공은 최 부총리의 취업청탁 해결 창구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며 “10월 종합국감에서 최 부총리가 직접 나와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압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최 부총리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의견도 있다. 측근이라곤 해도 인턴과 운전기사의 공공기관 취업을 위해 최 부총리가 나섰다는 게 납득하기 힘들다는 의견이다.

해당 의혹으로 인해 그동안 청년 일자리 창출을 내세운 박근혜정부 입장에서는 명분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최 부총리가 노동개혁 등 정부의 개혁의지를 관철시키는 중심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면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지난 16일 최 부총리는 부산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노동개혁의 목표는 기업이 청년인력을 부담 없이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검찰이 속칭 ‘정윤회 문건’에 대한 입장을 바꿔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은 해당 문건에 대해 ‘찌라시’로 폄하하다 지난 14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공무상 비밀이 포함된 범죄첩보 문건’으로 수정했다.

정윤회 문건
검찰 사실 인정

특히 ‘정씨를 포함한 십상시의 정기모임’ 여부에 대해 검찰은 지난 1월경 ‘없었음’이라고 발표했으나, 최근 이를 바꿔 “일부 내용이 허위일 수 있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검찰은 또한 “(정윤회 문건) 내용 전부를 허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씨와 3인방을 포함해 문건에서 ‘십상시’로 지목된 청와대 비서관·행정관 8인은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는데, 검찰의 입장 변경으로 존재가 인정되는 꼴이 됐다.

일각에선 검찰이 갑작스레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해당 문건을 유출한 것이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각각 징역 2년과 10년을 구형받았다.

반면 검찰이 수사 중 ‘자승자박’에 빠졌다는 의견도 있다. 발표 중 검찰은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 사건 수사는 종료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이는 문건과 관련해 새롭게 수사되고 있는 내용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검찰의 추가 정보 입수라는 주장과 문건 내용을 모두 부인하려다 암초를 만난 것이라는 분석이 공존하고 있는 가운데 다음달 15일로 예정된 판결 선고에서는 검찰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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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