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 ‘핫 키워드’ 7

한탕 제대로 해서 눈도장 한번 찍어볼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정감사가 오는 9월10일부터 10월8일까지 진행된다. 19대 국회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이번 국감을 두고 세간에서는 그 여느 때보다 치열한 공방을 예상하고 있다. 국감장에서 뇌관역할을 할 주요 이슈들을 <일요시사>에서 완벽 정리했다.

여·야는 ‘의정활동의 꽃’이라 불리는 국정감사(이하 국감)를 9월10일부터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지난 20일 원내수석부대표회동을 가지고 2015년 정기국회 주요일정을 도출해냈다. 당초 국감 시작은 9월4일로 예정됐으나 새정치연합이 부실국감 등을 주장하며 10월 개최를 주장했었다. 결국 추석을 끼고 분리 국감을 진행하자는 새누리당의 의견을 새정치연합이 받아들이면서 일정이 확정됐다.

분리 국감
여·야 합의

세부일정을 살펴보면, 9월1일 여·야는 본회의를 가지고 국감 대상기관을 승인할 예정이다. 이어서 9월10일부터 23일까지 1차 국감을, 10월1일부터 8일까지 2차 국감을 진행하게 된다. 추석을 전후로 나뉘게 돼 연속성에서 우려를 표하는 의견이 있다.

당초 2015년 국감은 큰 주목을 받아왔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실시될 마지막 국감이기 때문이다. 의원들 입장에서는 이번 국감이 총선을 8개월여 앞 둔 상황에서 ‘국감스타’로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특히 상대적으로 얼굴이 덜 알려진 초·재선 의원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정스타일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올해는 과연 누가 국감을 주도해 나갈지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이목이 여의도로 집중되고 있다.

여·야는 만반의 준비 태세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25일, 26일 이틀에 걸쳐 연찬회를 가지고 성공적인 국감을 기원했다. 국감에서 새누리당의 책사 역할을 하게 될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지난 25일 연찬회에 참석한 의원들을 향해 “정책위원회에서 작성한 ‘2015 정기국회 대비 상임위별 주요현안 및 법안’ 책자를 배포할 예정”이라며 “정기국회와 국정감사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등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26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소속 의원 전원을 청와대에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비록 국감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지만, 9월 정기국회를 앞둔 상황에서 여당 의원들만 초청한 자리라 단순 오찬은 아니었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새정치연합 측도 결의를 다졌다. 새정치연합 소속 의원들은 지난 28일 국회에서 워크숍을 열고 국감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대한 전략을 논의했다. 주요 의제로 꼽히는 비정규직과 청년 고용 문제 이외에도 정부의 시행령 개정, 대선 공약 파기 등을 지적하기 위해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서기호 원내대변인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청년일자리’ ‘경제민주화’ ‘세금’ ‘민생’ ‘정치개혁’ ‘남북관계’ 등에 대한 6대 ‘똑바로 세우기’ 시리즈를 제시하며 각오를 다졌다.

여·야 모두 빈틈없는 국감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다뤄질 이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정가에서 들을 수 있는 굵직굵직한 키워드는 총 7가지가 있다.

[키워드 1·2·3]
국정원·롯데·조현아


국정원 직원 자살 사건과 해킹 의혹은 가장 뜨거운 감자로 꼽힌다. 국감 기간 내내 안전행정위원회(이하 안행위)를 가득 채울 이슈 중 하나다.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위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실은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26일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국정원·검찰·경찰·군 수사기관 등이 제출받은 통신비밀자료는 총 8224만5445건으로 집계됐다”며 “영장도 없이 수사기관이 요구만 해도 제출하는 통신자료는 인권침해가 심각하므로 압수수색을 통해서만 제출받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을 포함한 5대 사정기관(국정원·법무부·검찰청·경찰청·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민간정보 취급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새정치연합 박남춘 의원은 최근 경찰의 개인정보 취급에 대해 “경찰이 국민의 개인정보를 사적으로 조회하거나 유출하여 징계를 받은 사례가 3년간 289명에 이른다”며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방대하게 보유하고 있는 경찰이 개인정보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경찰을 결코 신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선 앞둔 마지막 국감, 치열한 총성 예고
2015년 전반기 강타한 ‘뜨거운 감자’ 산재

그러나 5대 사정기관에 대한 충분한 견제가 가능할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주장이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전화를 통해 “(정부기관에) 요청한 자료가 3분의 1도 오지 않았다”며 “제대로 하고 싶어도 도와주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롯데 사태는 또 다른 정가의 주요 이슈다. 여·야는 모두 한 목소리로 신동빈 롯데 회장의 국감장 출석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문제가 있는 재벌 총수는 이번 국정감사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정치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지난 26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국감에 대비해 문제가 있었던 대기업을 상대로 증인명단을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여·야 모두 공통분모로 신 회장을 지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증인 출석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 2012년 대기업 골목상권 침해와 관련해 이미 증인 출석 요구를 받았으나 해외출장 등의 이유로 응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지난 2014년 12월부터 대한민국을 달군 ‘땅콩회항’ 사건도 이번 국감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야권 관계자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한진그룹 임원들에 대한 증인 소환을 고려 중에 있다”며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승무원을 압박·회유하라는 회사차원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키워드 4·5]
메르스·탄저균

보건복지위원회는 메르스 사태 관련 국정감사를 하루 정해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소속 의원들은 보건복지부가 메르스에 관한 초동 대처에 소홀했던 점을 집중적으로 알아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9월10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되는 1차 국감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있는 세종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있는 오송을 오가며 관계자들을 만난다. 특히 21일에는 국회에서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를 출석시켜 메르스에 대한 집중 추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책임을 묻기가 사실상 힘들다고 전망하는 사람도 있다. 장관이 교체됐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임식을 갖고 자리를 승계했다. 책임자가 교체된 상황에서 전임 장관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 여부가 이번 메르스 관련 국감을 관통하는 전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원·롯데·메르스 사태 등 상임위별 이슈
부실국감 우려 여전, 이번에도 호통치다 끝?

보건뿐 아니라 복지 분야에 대한 이슈도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위 일정을 확인해 보면 10월1일부터 8일까지 진행되는 2차 국감이 대부분 연금·복지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에 대해 야권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공약에 대해서도 한번 짚고 넘어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미군 탄저균 반입 사건과 관련해서는 외교통일위원회가 준비 중이다. 비록 메르스 사태와 겹쳐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졌지만, 소속 의원들은 확실한 문제로 인식하고 국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 직후 외통위 측은 탄저균 배달사고를 두고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규정이 불리해 발생한 것 아닌가”라고 외교부 관계자를 문책했다. 또한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SOFA 조항의 수정보다 권고사항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이와 관련된 질의가 국감장에서 오고 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5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통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물질이 국내에 특별한 허가절차 없이 반입되는 것을 막는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키워드 6·7]
자원외교·성완종

자원외교 문제도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다시 한 번 이전 정권의 비리와 국부유출 문제를 지적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경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검찰 수사가 사실상 소득 없이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4월경 종료된 국회 자원외교국정조사특위 이후 5개월여 만에 진행될 이번 국감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관련된 사항도 국감에서 다뤄질 수 있다. 경남기업이 금융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해 기소된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혐의사실을 부인했지만 의혹은 여전하다. 관련 상임위는 경남기업 관계자들을 국회로 불러 금융권으로부터 특혜성 자금지원이 있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물을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발언이 야권에서 나올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분리 국감에 터지는 불만

여·야가 합의한 국정감사(이하 국감) 날짜가 발표되자 의원실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추석연휴는 좀 쉬어보나 생각했던 보좌진들은 국감일정이 9월10~23일과 10월1~8일에 분리돼 실시된다는 소식에 연휴를 일찌감치 반납했다.

지역활동에 매진해야 할 시기임에도 국감 일정이 겹쳐 보좌진들은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서울을 제외한 지역 의원들의 보좌진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오고 있다. 한정된 인력으로 장거리 이동뿐만 아니라 국감 준비까지 병행해야 되기 때문이다.

추석연휴 반납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어느 순간 국감이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됐다는 의견이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전파를 타는 국감을 소홀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역민들과의 접촉면을 줄여가면서 국감을 준비할 수도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국감이 끝나는 10월8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초선을 지낸 여성의원을 보좌하는 경우 더욱 힘들다는 주장도 들려온다. 최근까지 보좌관을 지낸 여권의 한 여성관계자는 “초선 여성의원을 수행할 때 주위에서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며 “그런 상황에서 의정활동까지 챙겨야하니 그때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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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