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품앗이 법안 발의’ 꼼수 열전

전시입법, 양은 늘고 질은 떨어졌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정치권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로 한바탕 갑론을박을 벌인 바 있다. 지난달 26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혁신위원회가 의원 정수를 기존 300명에서 369명으로 늘리는 안을 내놓으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국민의 과반수 이상은 ‘지금의 국회의원도 많다’고 생각한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여기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지난달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5차 혁신안을 내놓으면서 “국회의원 정수는 369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후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정수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정치권 불신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반대’ 의사를 표현한 사람이 전체 57.6%로 나타났다. 이는 ‘찬성’이라고 응답한 27.3%의 2배를 넘는 수치다. ‘잘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은 15.1%를 기록했다. 더욱이 ‘의원 수를 늘리는 대신 세비를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전제가 있었음에도 이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점은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과 <중앙SUNDAY>가 공동기획으로 조사한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 입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얼마나 낮은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26일에 나온 ‘대한민국 불평등 리포트’ 편을 보면 6개의 국가 기관(대통령·중앙행정기관·청와대·사법부·입법부·국회의원) 중 입법부(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가 최하위(5.2%)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10.2%였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국민들은 ‘처음 만난 사람보다 국회의원을 덜 신뢰하고 있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 3월29일 발표된 한 보고서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정해식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보건복지포럼’ 3월호에 게재한 보고서에 따르면 입법부에 대해 ‘매우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단 1.0%에 그쳤다. ‘다소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 16.4%를 합해도 신뢰도는 17.4%에 그친다. 보고서를 발표한 정 부연구위원은 당시 결과에 대해 “소통, 투명성, 일관성 등을 기대하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까. 의안정보시스템에 공개된 내용을 종합·분석 해보면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아 보인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법안의 ‘양’은 많아진 반면 ‘질’은 떨어졌다. 법안 수 채우기 급급한 나머지 꼼수가 남발하고 있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19대 국회에서 지금까지(지난 12일 기준) 발의된 법안은 총 1만6796건, 그중 정부와 의장·위원장을 제외하고 의원들이 지금까지 발의한 법안은 1만4082건이다. 18대 국회 때 접수된 법안이 총 1만3913건임을 감안한다면 아직 1년여가 남은 상황에서 이미 18대 국회를 넘어섰다. 이는 헌정사상 최고 수치다.(17대 7489건, 16대 2507건, 15대 1951건, 14대 902건)

법안 통과율 단 6.83%, 71.15%는 계류 중
최소요건 법안 증가추세, 19대 국회 끝났나?

그렇다면 질적인 측면은 어떨까. 아쉽게도 19대 국회가 헌정사상 최하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발의된 법안들 중 71.15%인 1만19건이 계류 중에 있다. 그중에는 2012년 5월30일에 발의돼 계류되고 있는 것도 있다. 계류 중인 법안들은 19대 국회가 끝나는 순간 자동 폐기된다.

그 외 발의된 법안들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나머지 3101건의 법안들 중 폐기(폐기·대안반영폐기·임기만료폐기)는 2935건, 철회된 법안이 165건, 부결이 1건이었다. 반면 원안 그대로 또는 수정 가결된 것은 단 962건에 불과하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중 단 6.83%만이 공표된 것이다. 역대 최저 법안 통과율을 보였던 18대 국회(13.60%) 때보다 절반 이상 더 떨어진 수치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되고 있는 것일까. 대표적으로 ‘선거’ ‘의리’ ‘평가’ 등의 이유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0대 총선을 위한 선거가 다가올수록 제대로 검토 안 된 법안이 발의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단적인 예다. 시간이 지날수록 최소요건만 충족한 법안이 발의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회법’ 제79조(의안의 발의 또는 제출)에 따르면 “의원은 10인 이상의 찬성으로 의안을 발의하되, 일정한 안을 갖추고 이유를 붙여 의장에게 제출하도록”하여 의원발의 의안에 대하여만 일정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을 뿐 명확한 규정이 없다. 즉 의원 10명만 있으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지난 12일을 기준으로 최근 1000건의 법안 중 단 ‘10명의 의원’이 찬성해 발의된 법안은 총 520건, 52%의 법안이 최소요건만 충족해 발의됐다. 이는 19대 국회 출범을 기준으로 했을 때 1000건의 법안 중 285건, 28.5%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중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물론 법안 발의자가 10명이라고 해서 법이 허술하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만큼 급하게 발의되는 법안이 많아지고 있다고 비판 가능한 대목이다.

여의도에 만연한 의리문화 또한 이러한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한 의원실 관계자의 입을 통해 쉽게 확인 가능했다. 그는 이러한 문화에 대해 “의원들이 서로 의리를 위해 법안을 발의하고 도장을 찍어주기도 한다”며 “그런 ‘품앗이 발의’를 여기(국회)서 많이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경우 법안을 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어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꼼수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본 회의장에 출석한 의원들이 연판장 돌리듯 직접 동료의원들에게 서명이나 도장을 받는 경우도 있고, 친한 의원들에게 미리 언질을 준 후 보좌관을 시켜 의원실을 돌며 도장을 받아오게 하는 경우도 있다.

발의된 법안 개수가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지표로 활용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익명의 의원실 보좌관은 “발의한 법안으로 국회 또는 언론사에서 상을 받으면 나중에 의정보고서 같은 것을 찍어 낼 때 한 글자라도 더 적을 수 있게 된다”며 “발의된 많은 법안 중 하나라도 상을 받게 되면 홍보에 유리하게 쓰이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질보단 양

<권영철의 Why뉴스>에 나온 내용에 따르면 국회의원 1인당 소요되는 세비는 연 1억4320만원에 이른다. 보좌진과 차량유지비 등을 감안하면 7억원 정도가 매년 나가고 있다. 이렇듯 많은 세금이 나가고 있지만 최근 국회의원들은 법안의 질을 높이기보단 양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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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