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현대판 사화' 시나리오

너도나도 거부권…정가 피바람 부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거부권 정국'이 정가에 피바람을 몰고 올 기세다. 어느덧 친박-비박 간 진영 싸움으로 번진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최종 목표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라는 분석이 나왔다. 과거 조선 중기 사림파가 화를 당했던 '사화'가 2015년 여의도 한복판에서 벌어질 조짐이다.

친박-비박 간 정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싱크탱크라 불리는 민주정책연구원에서는 이번 ‘거부권 정국’과 관련해 ‘여권 파워게임 상황인식 및 대응’이라는 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그 속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종국적 목표가 김무성 대표의 교체라고 되어있다.

박근혜 목표
김무성 축출?

분석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중도보수’와 ‘박근혜보수’ 간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데 결국 공천권을 사이에 둔 갈등이 거부권 정국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노리는 인물은 최근 정가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고 있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아니라 김무성 대표라고 이 보고서는 내다보고 있다.

또한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제로섬 게임은 새누리당의 딜레마’라는 문장을 볼 수 있는데, 내용인 즉슨 친박-비박의 세력 크기가 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때문에 새누리당 내 어느 계파에도 소속되지 않는 중도파들은 딜레마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이른바 중도파로 분류되는 한 비례대표 의원은 ‘출마 지역구를 정했냐’는 취재기자의 질문에 “현재 눈치만 보고 있다”며 “지금 섣불리 얘기할 수 없는 게 김무성 편을 들면 당장 친박계로부터 전화가 오고 서청원 편을 들면 비박계 측에서 전화가 온다. 이게 결국 공천권을 얻을 수 있느냐의 문젠데 어떻게 지금 정할 수 있겠냐”고 대답한 적 있다. 해당 의원뿐 아니라 다른 중도파 의원들 모두 비박-친박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친박 '훈구파' VS 비박 '사림파'
유승민 두고 친박-비박 권력다툼


지지층의 성향이 달라 중도파 의원들이 진영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과 함께할 경우 굳건한 지지층을 얻을 순 있지만 확장성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나아가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리는 50대 이상 TK 지역 지지층이 종국에는 정치인의 한계가 될 수 있다.


반면 유 원내대표 등 비박계 지도부와 손을 잡게 된다면 확장성은 충분히 보장되지만 기본 지지층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20~30대를 위시로 한 젊은 지지층은 고정 지지층으로 만들기 힘들 뿐더러 보수 진영보단 진보 측 지지자가 많아 보수 쪽에서는 믿고 가기 불안한 면이 있다.

대부분의 정치전문가들이 이번 친박-비박 간 갈등이 쉽게 풀어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가운데 그 이유로 ‘이념적 대립’을 꼽는다.

박근혜 보수
확장성 제로

최근 비박계 대부분은 ‘신보수’라 불리는 새로운 보수의 패러다임에 동조하고 있다. 소위 ‘유승민 사단’이라 불리는 이들은 당내 대표적인 경제·정책통이라 불리는 유 원내대표와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 대부분 소장파 의원들로 구성돼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성향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앞서 보고서 내에 중도보수라 불리는 집단이 이들이다.

반면 박근혜보수라 불리는 이들은 기존의 보수층을 일컫는다. 이들은 대부분 중진 이상 급의 이력을 가진 정치인들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요직을 맡고 있다. 변화보다는 기존 체제의 유지에 관심이 많은 성향을 나타내 비박계가 외치는 개혁에 반대의사를 피력해 온 것이 특징이다.


이렇듯 명확한 정치적 이념차이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두 진영의 대립을 조선 중기 훈구파와 사림파 간에 벌어진 당파싸움에 비유한다. 기존 세력인 훈구파에 사림파가 정치개혁을 주도하며 도전했듯이 기존 친박계에 비박계가 혁신 새누리당을 외치며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갈등에 대한 조짐은 이전부터 보여 왔다. 지난 2014년 1월8일 비박계 맏형인 이재오 의원이 ‘개헌론’에 대해 열변을 토하자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당시 의원은 “개헌도 시간과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이명박정부 때) 이 의원은 정권의 2인자 임에도 (개헌을) 추진하지 못했다”고 가능성을 일축한 적 있다.

서 의원이 개헌론에 찬물을 끼얹었음에도 김 대표가 다시 한번 군불을 지펴 논란이 됐다. 지난 2014년 10월16일 김 대표는 중국 상하이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대표는 청와대가 불쾌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즉시 ‘말실수’라며 사과했지만 정치권 한켠에서는 의도된 발언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 원내대표의 최근 연설을 통해서도 두 진영 간 이념적 대립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월9일 유 원내대표의 첫 국회 교섭단체 연설은 파격 그 자체였다. 연설의 내용이 기존 보수 정당에서 보여준 그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유 원내대표는 야당보다 더 야당적인 정치관, 당파성, 조세와 성장잠재력 확충 방안, 재벌정책까지 박근혜정부와 전혀 다른 노선의 연설을 펼쳤다.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고 연설이 끝난 후에는 유은혜 대변인으로부터 “명연설이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특히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평소 철학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유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더욱 가치 있는 연설이었다. 조세 부분에서 박근혜정부가 그동안 ‘증세없는 복지’를 강조해 왔던 것에 반해 유 원내대표는 ‘중부담-중복지’라는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자 이에 호응하는 초·재선 의원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결국 ‘유승민 사단’이라 불리며 최근 유 원내대표를 보호하고 있는 의원들은 대부분 평소 생각을 같이하는 젊은 의원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유 원내대표의 연설 후 친박계를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친박계 핵심 중 한 명인 홍문종 의원은 연설이 끝난 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너무 의욕이 지나쳐 개인의 대중적 인기에 집착하면, 당 전체를 희생해서 개인의 인기가 오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다”며 “(유 원내대표)본인의 개인 인기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평가 절하했다.

비박계 신보수
기본 지지층↓

일련의 과정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 정가는 친박-비박 간 정쟁을 넘어 사화로 비화될지 중대 기로에 서있다. 정가에서 박 대통령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를 중심으로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 중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유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 가능성이다. 몇몇 정치평론가들은 박 대통령의 성향을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적으로 떠오른 유 원내대표에 대한 표적 수사를 지시한다는 시나리오다. 이미 플랜A가 실패로 돌아간 상태에서 마땅한 플랜B가 없다는 측면에서 사정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예상이다.


그러나 정가 소식에 밝은 전문가들은 가능성을 낮게 점친다. 너무 노골적인 ‘찍어내기’에 오히려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메르스 사태 등으로 민심이 이반된 상태에서는 박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유 원내대표가 정치인 중 도덕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인물이라는 점도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꺼려지는 요소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만약 유 원내대표에 대한 조사가 암암리에 진행된다고 해도 헛수고에 그칠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너무 급하면서 노골적이라는 측면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하책’으로 꼽힌다.

이념적 대립 양상 '구보수vs신보수'
중간 낀 중도파 '등 터질라' 눈치만


‘중책’으로 거론되는 것은 최고위원들의 집단 사퇴 카드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재 당직 인선이 한창인 시점이라 효과가 더욱 극대화 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면 비박계 지도부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5명의 최고위원이 모두 친박계 또는 그러한 성향을 지닌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기존 서청원·김태호·이정현 최고위원은 물론이고 이인제 최고위원까지 이들과 힘을 합치고 있다. 김을동 최고위원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그간의 성향을 봤을 때 친박계와 함께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그러나 이 또한 여론의 질타를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책으로 꼽힌다.


가장 ‘상책’으로 거론되는 것이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장기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비박계 지도부가 먼저 20대 총선까지 보는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친박계 측에서도 템포에 맞춘 장기전 싸움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과거 김 대표가 당권을 쥐기 위해 ‘통일경제교실’ 등 여러 프로젝트를 펼친 것처럼 친박계에서도 여러 컨셉의 정책토론회 등을 열어 결속을 다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내실을 다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책으로 꼽힌다.


상책·중책·하책
박근혜 카드는?

결국 이번 갈등의 핵심이 공천권 쟁탈전이라는 측면에서 향후 오픈프라이머리를 쟁점으로 한 2라운드가 예상된다. 친박계 입장에서는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박 대통령의 입김이 약해진다는 측면에서 비박계에서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박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보물에서 빼는 등 새누리당 소속 지방정치인들 중에 박근혜 지우기에 나선 사람이 많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친박계 측은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공천권을 향한 ‘치킨게임’이 예고된 상황에서 과연 권력을 쥔 박 대통령의 다음 행보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chm@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