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삼켜버린 핵이슈들 5

국민안전이 우선인가 정권안위가 우선인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메르스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연일 불안한 소식과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온 국민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때문에 관심은 온통 메르스 전파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스리슬쩍 넘어가선 안 되는 현안들이 있어 종합해 봤다.


인터넷신문, TV뉴스 등 각종 매체에서는 연일 메르스 소식을 담아내기 급급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소식들이 갱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국민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는 국민들의 눈과 귀가 주요 현안들에서 멀어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메르스가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이 시점에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주요 이슈들을 정리했다.

성완종 리스트
주사종결 수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가 종결 단계에 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 1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 관련 수사 결과는 이번주(16~20일) 안에 발표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늦출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옷에서 리스트가 발견될 당시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까지 꾸려 철저한 진실규명을 천명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내는 모양새다. 결국 이완구 전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대한 불구속 기소 방침만 밝힌 가운데 허태열·김기춘·이병기 등 전·현직 비서실장 라인,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유정복 인천시장·서병수 부산시장(추정) 등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된 인사들에 대해서는 혐의를 밝히지 못하고 종결 수순에 들어갔다.

이 전 총리와 홍 지사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한 한모 경남기업 전 재무본부장과 윤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에 대한 처벌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지만 일각에서는 그동안 검찰 수사 등에 적극 협조했다는 측면에서 가벼운 선으로 매듭지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예상대로 수사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이번 스캔들의 핵심 증인인 성 전 회장이 자살해 결정적 증언을 확보하기 어렵다보니 리스트 내 인물들의 자백에 중점을 두고 수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해당 인물들의 적극 부인으로 수사가 난항을 겪었다. 이 전 총리·홍 지사 등도 한씨와 윤씨 등의 진술이 없었다면 불구속 기소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한씨와 윤씨에 대한 처벌이 어려울 수 있는 방증이기도 하다.

결정적 물증 확보에도 실패했다. 특별수사팀은 경남기업을 세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했지만 핵심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세간에서 들려왔던 ‘비밀장부’는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갑자기 투 트랙 수사로 전환되는 일도 있었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 이외에 성 전 회장이 과거 참여정부 시절 두 차례에 걸쳐 특별사면을 받았다는 점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가시화됐다. 이는 결국 수사력이 흩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평이 검찰 내부에서도 들려왔다.

부실수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홍문종·유정복·서병수 등 이른바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친박핵심 3인방으로 불리는 인물들에 대한 계좌추적초자 하지 않았다며 검찰이 수사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8일 새정치연합 박수현 대변인은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청와대에서 가이드라인이 내려온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반문했다.


이제 화살은 여의도로 돌아왔다. 메르스로 국민의 관심이 멀어진 상황에서 특검 도입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일찍이 성완종 사태를 ‘친박게이트’로 규정한 새정치연합은 성명을 통해 특검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에서도 특검 도입에 대해선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방법론에선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성완종 사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해외자원개발 비리의혹도 함께 묶어 특검을 실시하자며 ‘슈퍼특검’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슈퍼특검 도입에 반대하며 상설특검법에 기초한 특검만 수용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야가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와중에 정치전문가들은 야권도 연계돼 있을지 모르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쉽사리 특검으로 전환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황교안 청문회
버티기 한판승

황교안 국무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졸속의 연속이었다. 지난 18일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사임한 지 59일 만에 황교안 총리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국정2인자’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료 제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버티기 전략으로 일관해 논란이 되고 있다.

황 총리에 대한 청문회는 이례적으로 4일 동안 진행됐다. 보통의 인사청문회가 3일 동안 진행되는데 반해 지난 8일부터 시작된 청문회는 11일까지 이어졌다. 하루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더욱 세심한 검증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증인·참고인 출석과 자료 제출 요구의 건이 가결된 지난 2일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황 총리후보자 측에서 자료 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 특검 도입되나?
황교안 인사청문회, 버티니까 국무총리


황 총리는 인사청문위원회 의결로 요청된 총 39건의 자료제출 요구에 단 7건만 정상제출, 자료제출률이 17.9%에 그쳐 구설수에 올랐다. 새정치연합 우원식 최고위원은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황교안 후보자의 핵심 의혹 버티기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은수미 의원은 9일 있었던 청문회에서 당시 황 총리후보자의 자료 미제출 유형을 ‘자료가 없다’ ‘사생활이다’ ‘줄 수 없다’ 등 세 가지로 정리해 지적했다.

의혹은 많았다. 그 중 담마진에 의한 병역 면제 의혹, 법무법인 태평양 근무 시절 고액 수임료, 역사관 및 종교적 편향성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됐지만 제대로 된 검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과거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던 당시의 청문회와 기시감(旣視感)이 든다는 측면에서 계획된 전략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황 총리는 2013년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때도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황 총리는 국무총리 내정 당시 “청문회 때 모든 것을 답하겠다”고 밝혔으나 말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게 황교안 전 법무부장관이 메르스 사태를 틈타 대한민국 제44대 국무총리로 취임하게 됐다.

탄저균 배달사고
SOFA 개정은?

‘탄저균 배달 사고’의 경우 메르스 사태와 겹쳐 음모론으로 잠시 주목 받은 바 있지만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관심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달 27일 ‘살아있는 탄저균이 주한미군 오산기지에 반입됐다’는 미 국방부 발표가 나오면서 탄저균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28일 주한미군 관계자는 한 매체를 통해 “미국 유타주의 군 연구소에서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을 캘리포니아와 메릴랜드 등 9개 주로 보냈으며, 이 가운데 표본 1개가 오산에 있는 주한미군의 합동위협인식연구소(ITRP)로 배달됐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즉시 주한미군사령부는 “실수로 오산 기지에 잘못 배송된 살아있는 탄저균에 실험요원 22명이 노출됐지만 현재까지 감염 증상을 보이는 요원은 없다”며 “응급격리시설에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규정에 따라 탄저균 표본을 폐기 처분했다”고 수습했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있어 정부의 안일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메르스 사태로 질타를 받고 있는 질병관리본부는 당시 탄저균에 대해서도 “고병원 위험체를 정부 허가 없이 국내로 들여오면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이지만 비활성화 상태로 판단해 일반 물품으로 취급했다면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비판을 받았다.

탄저균 배달사고, SOFA 개정은 뒷전
SNS감청법·북한군귀순, 조용한 날 없다


늑장대응도 문제로 지적됐다. 사고가 일어난 지 20일이 지나도록 국방부에서는 제대로 된 조사나 대책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미가 맺은 소파(SOFA)협정에 대한 개정 여론이 거세졌지만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지난 16일 연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새정치연합 김광진 의원이 “문제가 된 소파 9조(통관과 관세) 부분을 수정할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한 장관은 “소파 개정에 대한 강한 입장은 없다”며 “권고사항 정도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소파 9조 5항에 따르면 ‘명령에 따라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미군 구성원, 공용봉인(봉인)이 있는 미국 군사우편, 미군에 탁송되는 군사화물은 세관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측은 이러한 조항으로 인해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쉽게 넘어가지 않겠단 입장을 보이고 있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과 ‘2030정치공동체 청년하다’ 등으로 이뤄진 대학생 50여명은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미 대사관 근처에서 ‘탄저균 밀반입 미국 규탄 대학생 집회’를 갖고 살아있는 탄저균을 한국으로 보낸 미국 당국에 항의했다.

‘녹색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5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탄저균 불법 반입 실험규탄 시민사회대책회의’는 21일 자정까지 국민고발단을 모집, 그렇게 모인 고발장을 검찰에 접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NS 감청법
북한군 귀순

새누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일명 ‘SNS 감청법’이 발의돼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일 박민식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 12명은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일부개정안’을 통해 통신사업자라면 누구나 감청협조설비 구비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검찰·경찰 등 사정당국에서 수사를 진행할 시 모든 전기통신에 대해 법원 영장에 따라 감청을 허용하고 있지만 감청을 할 수 있는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아 해당 업체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 설치를 의무화해 수사를 용이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개정안 제안 이유를 보면 ‘현행법은 휴대전화를 포함한 모든 전기통신에 대해 법원의 영장에 따라 감청을 허용하고 있지만, 휴대전화 감청에 필요한 설비 등의 불비로 수사기관이 영장을 집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전방위 사찰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검·경 등 사정당국에 막강한 권한이 주어짐으로 인해 국민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이버사찰긴급행동’ 등 관련 시민단체는 발의 직후 성명을 내고 통비법 개정안의 철회를 요구했다.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은 이날 성명에서 “가히 ‘통신감청의무화법안’이라 부를 만하다”며 “감청장비 구비 의무화는 세계적으로도 인권침해 논란이 큰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적법 절차에 따른 감청일지라도 개인 사생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국가기관의 과거와 같은 불법감청 요소를 원천차단하고 합법적 휴대폰 감청을 보장해 주려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해명하고 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대표발의한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발의를 하고 난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통비법 개정안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의 휴대폰을 무차별 감청하는 것’ ‘국민의 SNS를 다 들여다보는 것’ 등이라고 혹세무민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있어 한심스럽다”고 맞받아쳤다.

지난 15일에는 북한군 10대 병사가 귀순해 화제가 됐다. 19살의 이 소년병사는 상습적인 구타를 참지 못하고 탈영, 그대로 남쪽으로 향했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 의사를 밝혔다.

강원도 화천 중동부전선의 경계초소(이하 GP) 쪽으로 남하한 이 소년은 군사분계선을 넘은 직후 GP경계병에게 발견됐다고 전해진다. 이어진 국정원 조사에서 “북한군에 근무하면서 상습적인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려 귀순을 결심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소년은 지난 7일 탈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근무하던 그는 약 200km정도의 거리를 일주일 동안 이동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렇게 이동한 소년은 김화지역에 있는 북한군 초소에 있다가 약초를 캐러 왔다고 둘러대며 14일 저녁까지 대기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지난 2012년 10월에 있었던 사건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은 북한군 1명이 GP를 지나 동부전선 철책까지 뚫고 넘어와 GOP 부대 내 생활관 문을 두드리며 귀순 의사를 밝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이 병사가 최전방 소초 경계망을 뚫고 들어온 것으로 확인돼 책임자들이 줄줄이 문책당하는 등 큰 파문이 인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우리군 GP소초 5m 앞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귀순을 했다고 해서 ‘숙박 귀순’ 사건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군의 경계가 허술했던 거 아니냐는 지적이 따랐다. 또한 키 163cm에 몸무게 54kg으로 왜소한 체구를 가진 소년이 어떻게 일주일을 이동했으며, 북한 내 수많은 검문을 뚫고 내려온 방법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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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