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최강' 신림동 조폭 이글스파 대해부

잡고 또 잡아도…잡초 같은 조직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서울지역에는 약 22개의 폭력조직이 있다. 그중에서도 서울 신림동에서 주로 활동하는 토착형 폭력조직 ‘이글스파’는 서울 서남부지역 최대조직으로 손꼽힌다. 1978년 고등학교 불량서클에서 시작된 이글스파는 주로 재개발 현장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조직의 운영자금을 모아왔다. 한때 조직이 와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보란 듯이 다시 살아나 활동 중이다. 최근 이글스파 두목이 재판에 넘겨져 말이 많지만 이글스파의 영향력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에서 활동하는 조직폭력단체 ‘이글스파’의 두목이 위세를 과시하며 수억원의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심재철)는 이글스파 두목으로 활동한 윤모(53)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공갈)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내가 누군지 알아?”
공갈 일삼은 보스
 
검찰에 따르면 관악구 신림동 가야쇼핑 지하 1층에서 유흥주점을 운영 중이던 윤씨는 2008년 3월 자신의 가게가 입주해 있던 건물이 주상복합아파트로 재건축에 들어가자 재건축 시행사 대표 정모(46)씨를 만나 이주비 명목으로 6억원을 요구했다.
 
윤씨는 그해 10월 자신이 운영 중이던 식당에서 정씨를 만나 “내가 누군지는 들었느냐”며 “난 6억원을 줘야 나가니까 그런 줄 알라”고 윽박질렀다. 이글스파 두목 윤씨는 평소에도 폭력조직원들에게 큰소리로 ‘형님’이라고 외치며 90도로 인사하도록 지시하는 등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윤씨의 협박에 겁을 먹은 정씨는 결국 재건축사업에 불이익을 초래할 것을 우려해 2008년 11월부터 2010년 1월까지 7차례에 걸쳐 총 6억원을 윤씨에게 건넸다. 윤씨는 이후에도 조폭 두목으로서의 위세를 과시하며 정씨를 상대로 공갈·협박을 일삼고 각종 이권에 개입해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씨는 2013년 8월 정씨를 찾아가 새롭게 재건축된 주상복합아파트 가야위드안의 오피스텔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정씨가 분양이 이미 완료됐다며 요구를 거부하자 윤씨는 ‘죽여버리겠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정씨와 직원들을 협박했다.
 
윤씨는 2013년 9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1년4개월 동안 오피스텔을 무상으로 사용하며 총 800만원의 임대료를 내지 않았다. 또 윤씨는 이 아파트상가 2층에 약 100평 규모의 게임장을 운영하며 두 달치 월세 700만원도 떼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씨는 이밖에도 정씨를 상대로 소지하고 있던 칼을 꺼내 보이며 “옛날에는 이 칼 하나로 신림동을 제압했다”며 협박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도 받고 있다.
 
이글스파는 그간 다양한 악행을 저질러왔다. 지난 2005년 12월, 조직폭력사범 전담 서울지역 합동수사부는 유흥업소에서 보호비 명목으로 금품을 뜯고, 재개발지역 아파트 창틀 공사 등의 이권에 개입해온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로 이글스파 우두머리 김모(43)씨 등 31명을 구속기소하고 3명은 불구속기소, 24명을 지명수배했다.
 
특히 이글스파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 중고교 폭력서클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일진’들과 접촉하며 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하면 조직의 회원으로 가입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이글스파 조직원 대부분이 학교 불량 폭력서클에 가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글스파는 중고교 폭력서클이 폭력조직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이글스파 조직원들은 스마트폰을 밀수출하다 붙잡히기도 했다. 지난 2005년, 서울 강남경찰서는 장물 스마트폰 2만2460대(시가 180억원어치)를 홍콩으로 밀수출한 일당 29명 가운데 총책 이모(30)씨와 이글스파 조직원 홍모(32)씨 등 9명을 구속하고, 항공화물업체 직원 전모(46)씨 등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보호해줄게”

상습 금품갈취
 
당시 이씨 등은 2011년부터 택시기사 등으로부터 매입한 장물 스마트폰을 163차례에 걸쳐 홍콩에 밀수출해 3억4000만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총책 이씨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로 밀수출 조직을 꾸렸다.
 
특히 이글스파 조직원들은 택시기사 등으로부터 넘겨받은 장물 휴대폰을 모아 총책 이씨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에 앞서 ‘중고 휴대폰을 고가에 매입한다’는 전단을 서울 강남역 등 접근성이 좋은 거리에 뿌린 뒤 한 대당 3만∼32만원을 주고 사들였다. 대부분 택시에서 승객이 잃어버린 스마트폰이나 찜질방·술집 등에서 도난당한 스마트폰이었다. 시가 100만원 상당의 스마트폰 갤럭시S3의 경우 최고 25만원에 거래됐다.
 
이들은 이렇게 모은 장물 휴대폰을 매입가보다 1만∼2만원씩 더 받고 총책 이씨에게 넘겼다. 이씨는 항공화물업체 직원 전씨를 통해 스마트폰을 홍콩으로 빼돌린 뒤 다시 한 대당 1만∼2만원의 웃돈을 얹어 조선족 환치기 일당을 통해 중국 총책 장모(34)씨에게 팔아치운 것으로 조사됐다.
 
영세상인 협박 수억원 갈취한 두목 기소
‘달동네 주름’ 서민 상대로 인정사정 없어
 
당시 경찰은 “경찰 관리 대상인 신림 이글스파는 추종 세력 65명을 포함해 총 100여명이 활동 중인 ‘족보 있는’ 조직”이라며 “세력이 위축되고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결국 장물 스마트폰 밀수출에까지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에는 노름돈을 갈취했다. 당시 서울 서초경찰서는 조직원을 동원해 도박장에서 돈을 빼앗은 조직폭력배 이글스파 행동대장 정모(33)씨 등 조직원 12명을 공동 공갈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 등은 2012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 도박장에서 도박 참가자들을 협박해 1200여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았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당시 도박장에서 850여만원을 잃은 조직 부두목 이모(46)씨의 연락을 받고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앞서 경찰은 노름돈을 빼앗은 이글스파 조직원 13명 가운데 부두목 이씨 등 10여명을 입건한 바 있다.
 
지난해 이글스파는 속칭 ‘보도방’ 업주와 여성 도우미들을 폭행하고 상습적으로 금품을 상납받아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히기도 했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 같은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로 신이글스파 조직원 고모(44)씨 등 4명을 구속하고 최모(42)씨 등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신이글스파는 이글스파와 상도동파, 시흥동 산이슬파 등이 연합해 지난 1999년 만든 폭력조직으로 관악구와 동작구를 근거지로 하며 조직원은 수십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 등은 지난 2011년 초부터 지난해 2월까지 동작구 상도동과 관악구 신림동 일대 소규모 유흥업소와 보도방 업주, 여성 도우미 등 40여명을 상대로 폭행과 협박을 일삼으며 보호비 등 명목으로 총 3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았다.
 
이들에게 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보도방 업주와 여성 도우미들이었다. 이들은 불법으로 여성 도우미를 노래방 등에 공급하기 때문에 경찰에 피해신고를 하기 어렵다. 고씨 등은 보도방 업주와 실장, 여성 도우미 등에게 “신림동 일대는 ‘신이글스파’가 장악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편하게 보도방을 운영하게 해주겠다”고 협박한 뒤 보호비 명목으로 4년 동안 2억2000만원을 갈취했다.


동네 장악하면서
재개발 이권개입
 
보도방 여성 도우미들은 수십차례에 걸쳐 신이글스파 조직원들의 회식자리에 불려갔지만 접대비도 받지 못했다. 여기에 2차 성접대에 나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일삼기도 했다. 여성 도우미들을 관리하는 보도방 실장 20여명은 도우미들이 보는 앞에서 쇠파이프로 수십차례 폭행 당하거나 고씨 등 신이글스파 조직원들의 가족 칠순잔치와 결혼, 돌, 개업 등 각종 경조사비 명목으로 지속적인 상납을 강요당했다.
 
또 갈취 대상 보도방 실장들에게 1만원대 치약 선물세트를 돌린 뒤 “난 선물했다. 너희들은 안 주냐? 나도 명절 지내야지”라며 10만원대 고급 한우갈비세트 등을 얻어내는 수법도 동원했다. 향후 경찰이 수사에 나설 경우 일방적으로 상납을 강요한 것이 아닌 ‘선물교환’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해 처벌을 피할 목적이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상도동과 신림동에 문을 여는 소규모 유흥업소에 돈을 투자한 뒤 업소가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하면 “투자금액을 상환하라”며 영업을 방해하는 식으로 다수의 건물주를 협박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월세 300만원 상당의 건물에 월세 100만원 조건으로 2년 동안 입주해 임대료 차액 6000만원을 챙겼다. 헐값에 입주했는데도 월세 100만원도 매번 제대로 내지 않아 건물주가 밀린 월세 700만원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주점을 비워주는 조건으로 300만원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차례 조직와해 위기
보란 듯 부활해 여전히 세 과시
 
서울 서남부지역 최대조직인 이글스파는 서울 동작구와 금천구 일대의 세력을 연합해 신이글스파를 형성했다. 수도권에선 조폭들의 입지가 좁아지다 보니 조직 간 세력을 규합해 예전 명성을 되찾고자 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이글스파는 1978년께 당시 모 상업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윤모씨 등 12명이 결성한 불량서클 ‘이글스’에서 출발했다. 윤씨는 79년 8월께 강간치상혐의로 출교된 뒤 평소 친분이 있던 인근 건달들을 한데 모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사거리를 중심으로 금품을 갈취하며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80년 신군부가 사회정화운동의 일환으로 단행한 ‘삼청교육대’에 윤씨 등 조직원 대부분이 끌려가 조직와해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멤버들이 다시 조직을 결정했다.
 
87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민정당 관악지구당 청년국장이었던 A씨는 이글스를 선거운동에 동원하기로 계획했다. 윤씨는 A씨의 요구에 따라 한가람청년회를 결성했다. 이후 이를 모태로 영세상인들을 상대로 한 금품갈취 행각이 본격화됐다. 이후 이글스파는 유흥업소에 조직원을 강제 취업시키고 발생한 수익을 갈취하는 수법으로 돈을 챙겼다. 그리고 인근 폭력조직인 ‘산이슬파’ ‘선우회’ 등 군소조직을 규합해 조직원을 늘렸다.
 
조직원 대부분이 신림동에서 자란 이글스파는 외부 세력의 침범을 허용치 않는 매우 배타적인 속성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진다. 88년에는 충북 괴산군 화양계곡에 집결해 씨름과 장기자랑 등 단합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글스파는 다른 조직과 유사한 행동강령을 정하고 지정한 합숙소에서 정기 모임을 가졌다. 매달 축구대회를 열어 땀을 흘리며 조직의 기강을 다졌다. 그리고 서울 관악구 일대 중고교 불량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조직원으로 키웠다. 윤씨는 이런 식으로 조직을 움직이며 신림동 일대의 상권을 차례로 장악했다.
 
1999년 1월에는 시흥과 상도동 일대의 폭력조직을 통합한 뒤 신림동 일대의 단란주점과 이발소, 나이트클럽에 지분을 넣고 조직원들을 영업부장 등으로 취직시켜 매달 200만∼300만원을 뜯어냈다. 유흥업소들에서 1억8000만원어치의 공짜 술을 마셨다. 2001년 11월에는 서울 강북구 미아동 ㅇ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이권을 놓고 다른 폭력조직과 대치하는 등 재개발 지역의 이권에 개입하면서 총 공사액의 20%를 경비로 받아서 이 중 40%를 조직의 운영자금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글스파는 악랄한 범행 수법으로 유명했다. 업주들이 상납을 거부하면 비가 쏟아지는 대로변에 무릎을 꿇리고 폭행하는가 하면 옷을 찢어 알몸으로 만든 뒤 맥주병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려 피투성이로 만드는 등 신림사거리의 무법자로 자리했다.

예전같지 않지만
여전한 생명력
 
이글스파는 폭행, 갈취행각을 벌이면서도 자신들의 비행을 은폐키 위해 듀엣 가수 ‘수와 진’에게 심장기금을 제공하면서 자선단체인 것처럼 세간의 눈을 속이기도 했다. 또한 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유명우와도 친하게 지내면서 그의 이름을 빌려 명우개발이라는 사무실을 개설해 합법적 기업으로 가장하기도 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검찰과 경찰은 수차례 집중 수사를 벌여 이글스파를 감옥에 잡아넣었지만 이글스파는 보란 듯이 부활했다. 특히 재개발현장이 많은 지역의 아파트 공사 이권에 여전히 개입하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치킨·족발 들고 경찰서 간 '조폭 스토리'
 
범죄를 저지른 동네 조폭이 제발로 경찰서에 찾아와 붙잡혔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놀이터에서 노는 초등학생 A(11)군과 A군의 어머니 B씨의 뺨을 때리고 동네 주점 등에서 상습적으로 업무를 방해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허모(50)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한 뒤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허씨는 4월26일 서울 용산구의 한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논다는 이유로 초등학생 A군의 뺨을 때리고 이를 말리던 어머니 B씨를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동종 전과 등 전과 18범인 허씨는 지난 3월부터 이달 초까지 5차례에 걸쳐 용산구의 주점 상인 4명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욕을 하고 손님들에게 시비를 거는 등 업무방해를 하기도 했다. 허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경찰서에 족발과 치킨, 음료수 등을 사와 “살려 달라”며 애원하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허씨가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며 “업무방해를 한 상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피해자들에게 반성의 모습을 비쳤다”고 말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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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