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총리잔혹사’ 재론되는 진짜 이유

한번 했으니 무사통과?…새정치 “응답하라 2013”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무총리후보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내정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27일 이완구 전 총리가 전격 사퇴한 후 한 달여간의 장고 끝에 다시 한 번 ‘구관이 명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여론은 이번에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회전문 인사’라 질타 받는 황 후보자의 총리취임은 과연 무난할까? <일요시사>가 황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해부해봤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지난 5월21일 새로운 국무총리후보자로 내정됐다. 이완구 전 총리가 ‘비리 완구백화점’이란 오명을 받으며 사퇴했기 때문에 새로운 총리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연일 황 후보자에 대한 기사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을 정도. 그러나 이를 살펴보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욱 많은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레 박근혜정부의 ‘총리잔혹사’가 떠오르는 이유다.

황교안 장관
총리로 내정

청와대는 지난달 26일 황교안 국무총리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한 달여 동안 장고한 결과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그간 100여명 가까운 인사들에 대한 검증 끝에 황 후보자를 낙점했다고 전했다. 가장 큰 이유는 청문회 검증 경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황 후보자는 이미 한 차례 송곳 검증을 거친 바 있다. 지난 2013년 3월경 법무부장관후보에 올라 야권의 검증을 받은 것. 물론 숱한 비리와 의혹들에 휩싸였지만, 결국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점이 박근혜정부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라고 정계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을 중심으로 한 야권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그들은 지난달 28일 황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이하 청문특위) 구성을 완료하고 대대적인 검증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청문특위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야권이 이번 청문회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특위 구성 이전에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당대표급인 박지원, 박영선 의원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했을 정도로 황 후보자는 안 된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박지원, 박영선 의원이라는 올스타급 특위 구성에는 실패했지만 새정치연합 입장에선 낼 수 있는 최선의 카드로 구성했다는 목소리가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구성된 위원은 여·야를 합쳐 총 13명. 의석수에 따라 위원장을 포함해 여당에서 7명을, 야당에서 6명을 선출했다. 그중 새정치연합은 대표적인 강성파로 꼽히는 우원식 의원을 간사로 선택함으로써 강경 의사를 내비쳤다.

새정치 ‘저격수’
새누리 ‘소방수’

그뿐만이 아니다. 황 후보자의 병역문제, 국가안보관 검증을 위해 국방위 소속 김광진 의원을, ‘공안’에 대한 의혹 부분 검증을 위해 판사 출신 박범계 의원을, 최근 국정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환경·노동문제를 검증하기 위해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은수미 의원을, 경제활성화 등 정책검증을 위해 기재위 소속 홍종학 의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우원식 간사를 제외하면 모두 초선 의원들로, 새정치연합의 떠오르는 ‘최신예 저격수’로 불릴 정도로 무서운 입담을 자랑한다. 또한 검사 출신을 전격 배제함으로써 ‘봐주기’ 의혹을 미연에 방지한 구성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특급 소방수들을 전진 배치했다. 특히 선택된 7명 중 4명이 검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황 후보자가 받고 있는 의혹 중 전관예우 등에 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방어할 계획인 것으로 예상된다. 위원장으로 뽑힌 장윤석 의원은 황 후보자와 검사 선후배 사이라는 점에서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정가 내부에서 들려오는 얘기다.

여·야가 전열을 정비한 가운데 서로 주고받을 공방이 흥미롭다. 때문에 야권에서는 예상되는 비리 의혹들을 중심으로 정보를 모으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제기되는 의혹들은 2013년 3월경을 기점으로 나뉜다. 황 후보자가 법무부장관으로서 청문회를 거칠 때 나왔던 의혹들 중 심대한 문제로 지적된 부분이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대형 로펌에서 한 달에 1억원 상당의 수임료를 받은 부분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오를 예정이다. 황 후보자는 1년6개월여 동안 ‘법무법인 태평양’에 근무하면서 15억6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있다. ‘전관예우’ 의혹이 불거진 순간이었다.

의혹만 10여가지, 파도파도 ‘파도남’
1년6개월 근무에 15억, 월급만 1억?


이는 과거 청문회 자리에 서지도 못하고 낙마한 안대희 전 총리후보자와의 형평성 문제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안 전 후보자는 당시 변호사 전업 후 5개월간 16억원 상당의 수입을 올린 게 문제가 돼 사퇴한 전력이 있다. 금액이 비슷하다는 측면에서 야당의 집중 공세가 예상된다.

과거 황 후보자의 해명에도 관심이 간다. 그는 당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급여를 받은 점에 송구스럽다”며 “일부 금액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바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4년 연말까지 법정기부금과 지적기부금을 합쳐 1억3649만원을 기부하는데 그쳤다. 이마저도 배우자의 기부금 629만원이 포함된 금액이라는 점에서 거짓말 논란이 예상된다.

병역문제는 이미 검증받은 사안 중에서 가장 문제시될 공산이 큰 대목으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특위 위원실 관계자는 “(황 후보자의) 가족과 관계없이 가장 명확하면서 확실하게 드러난 부분이 병역문제라 집중 검증이 예상된다”고 전했을 만큼 야권의 총 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의혹이다.

황 후보자는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 때 두드러기 질환 중 하나인 ‘만성 담마진’ 판정을 받고 병역을 면제 받았다. 그러나 이 질환으로 지난 10년간 면제를 받은 사람이 365만명 중 4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수치상으로 황 후보자는 ‘91만분의 1’의 확률을 뚫고 병역면제가 된 것이다.

야권에서 더욱 문제시하는 점은 그가 병역면제를 받은 다음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사실이다. 가정해 본다면 황 후보자는 군 면제를 받을 정도로 만성 담마진이 악화된 상태였음에도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저력을 보인 것이다.


황 후보자는 지난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 동안 징병검사를 연기해왔다. 이후 1980년 7월경 ‘제2국민역’ 판정을 받게 되는데 이듬해인 1981년에 제23회 사법고시를 합격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황 후보자는 한차례 해명을 한 바 있다. 그는 이어지는 병역기피 의혹에 “병역이행을 못한 점에 대해서는 늘 마음의 빚으로 생각해왔다”면서도 “1977년부터 1994년까지 치료를 받으며 약을 복용했다”며 “그러나 치료를 받은 지 10년이 지나 관련 의료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40년 전 진단서를 들고 와 해명한 이완구 전 총리와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전관예우
병역의혹

야권은 새로운 의혹 찾기에 집중하고 있다. 앞서 밝힌 ‘전관예우’ ‘병역의혹’이 비록 심대한 결격사유가 될 지라도 이미 한 번 짚고 넘어간 상황에서 더 깊게 파고들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달 초로 예정된 청문회 전까지 최대한 다양한 의혹들을 파헤친다는 복안이다. 특히 장관시절인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있었던 황 후보자의 언행과 행적을 집중적으로 알아보고 있다. 그 중 국정원 댓글사건 등 야권이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한 추가 정보 찾기가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황 후보자는 2013년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하던 특별수사팀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 밀어내기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댓글사건에 대한 수사방해 의혹 후 황 당시 법무부장관과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간 불화설이 야기된 바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채 총장에 대한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면서 때마침 황 후보자가 감찰을 지시하는 등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밀어내기 의혹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이후 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이 국정감사에서 “수사초기부터 외압이 많았다. (법무부장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폭로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서울시공무원 간첩증거조작사건, 청와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들에 대한 집중 추궁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황 후보자에 대해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먼저, 과거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던 시절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 말실수가 화근이 되고 있다. 그는 가정폭력의 원인에 대해 “부산 여자들이 드센 이유도 있다”며 “반면 남자들은 말싸움이 안 되니까 손이 먼저 올라가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 있다.

국정원 댓글, 비선실세 수사개입 의혹
100점 총리? “80점 맞고 통과만 되자”

이에 시민단체는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달 28일 성명을 내고 “가정폭력의 원인은 바로 황 총리후보자와 같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적이고 여성비하적인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이라고 즉각적인 사죄를 요구했다.

또 다른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이는 황 후보자의 ‘기독교 편향’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지난 2012년 황 후보자가 저술한 <교회가 알아야 할 교회법 이야기>를 보면 “우리 기독교인들로서는 세상법보다 교회법이 우선 적용돼야 한다”며 “하나님이 이 세상보다 크고 앞서시기 때문”이라고 명시돼 있다. 법조인으로서 부적절한 내용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황 후보자는 지난달 28일 “다른 종교를 존중한다”라며 짤막하게 해명했지만 국정의 2인자가 될 사람치고 ‘국민통합능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불교계는 적극 반발하고 나섰다. 불교소식을 전하는 언론사인 <불교닷컴>은 지난달 28일 한 중앙교역직 스님이 “황교안 후보가 총리가 되면 불교는 최소 10년 후퇴한다”고 말한 부분을 보도했다. 또한 “국무총리후보자가 종교적으로 심각한 사람이다. 대통령이 일부러 그런 것 같다. 우리가 불이익을 당하고, 불사를 못하거나 감옥에 간다고 해도 우리 목소리를 낼 때는 제대로 내야 한다”고 당시 스님들 사이에서 나온 발언들을 전했다. 자칫 두 종교 간 갈등으로 번질 조짐이 보여 우려되는 상황이다.

총리 지명에 대한 진정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새정치연합 원혜영 의원은 지난달 25일 자신의 개인 SNS를 통해 “수많은 국민들은 황 총리후보 내정의 이면에 ‘성완종 게이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즉, 원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황 후보자는 ‘성완종 사태’를 불법대선자금 수사에서 특별사면의혹 수사로 전환시키는데 적임자라는 것이다. 황 후보자가 지난 4월29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한 사람이 두 차례 사면 받은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며 “범죄단서가 나오면 수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한 것에 근거한 주장으로 풀이된다. 당시 황 후보자의 발언을 두고 야권에서는 ‘전형적인 물타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무대응 전략
80점 컷 통과

황 후보자와 그의 청문회 통과라는 중대 임무를 맡고 있는 ‘인사청문준비단’의 전략은 명료하다. 40년 전 진단서를 들고 오는 등 적극적 해명에 오히려 발목 잡힌 이완구 전 총리의 전철을 밟지 않겠단 모습이다.

황 후보자는 최대한 ‘저자세’ ‘모범답안’ 전략으로 언론의 압박을 피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소상한 내용은 청문회에서 말씀 드리겠다” “국민께 걱정 끼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등 모든 문제에 ‘무대응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준비단도 마찬가지다. 내부에서는 “청문회에서 100점 맞을 생각 대신 80점으로 통과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라는 말이 들릴 정도다.

다음 주로 예정된 청문회에서 과연 황 총리후보자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총리로 거듭날 수 있을지, 100점 만점짜리 총리를 원하는 것은 과연 국민의 욕심일 뿐인지 인사청문회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황교안 돕는 준비팀 대해부

‘총리 인사청문준비단’에 현직 부장검사가 차출되면서 준비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정수봉 부산지검 형사1부장, 권순정 의정부지검 형사5부장 등 두 명. 이들은 인사·조직·예산을 관리하는 법무부 검찰과와 청와대 파견근무 경력자들로 ‘엘리트 기획통’ 검사들로 손꼽힌다.


정 부장은 개인 신상과 관련된 부분을, 권 부장은 법무정책 분야에 대한 답변 자료를 각각 준비할 것으로 분석된다.

현역부터 장관급까지, 엘리트만 모였다

이들과 함께 준비단 내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이다. 청문회 준비단장을 맡으며 진두지휘하고 있는 추 실장은 장관급임에도 이례적으로 직접 단장을 맡고 있다. 추 실장은 과거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이완구 전 총리를 통과시킨 이력이 있어 청와대에서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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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