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신의 한수' 남미 구상 대해부

‘총리 김무성’ ‘당대표 서청원’ 카드는 어때요?

[일요시사] 최현목 기자 = ‘인사가 만사다.’ 인사관리에 관한 옛말을 바탕으로 박근혜정부를 평가한다면 어떤 말이 나올까. 이완구 전 총리는 지난 20일 사의를 표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더불어 재임기간 63일, 사실상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청와대는 6번째 총리 지명자를 찾고 있다. 그간 다른 자리에 비해 총리직 선임과정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총리만 국한해 본다면 ‘인사참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후 지금까지 김용준, 정홍원, 안대희, 문창극, 이완구 등 총 5명의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그 중 이 전 총리를 포함해 2명만 실제 총리가 됐다. 이제 그 두 사람 중 한 명마저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정홍원 전 총리만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유일한 총리로 남아있다.

불명예 퇴진
총리 잔혹사

박 대통령을 포함해 청와대는 현재 차기 총리를 골라내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새누리당 이상돈 전 비대위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완구 총리가 사실상 마지막 카드였다”며 “후임 인사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고 진단한 바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이는 앞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고를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그만큼 많은 후보자의 이름이 하마평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총리가 사의를 표한 후 언론을 통해서는 차기 총리에 대한 여러 기준들이 거론되고 있다. ‘정치인이냐 비정치인을 뽑을 것이냐’란 문제도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이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사퇴한 것에 비춰봤을 때 비정치인 출신이 될 것이란 이야기도 들려온다.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비정치인 출신 후보자는 조무제, 김영란, 목영준, 윤증현 등이다. 이들은 모두 도덕성과 청렴함에 있어서 검증 받은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조무제 전 대법관은 ‘딸깍발이 판사’로 알려질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유지한 인물로 손꼽힌다. 조 전 대법관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전관예우’ 의혹에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권 교체마다 차기 총리로 모셔오고 싶어 하는 인물 1순위로 꼽힌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상징성이 있는 인물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잘 알려진 ‘김영란법’을 발의한 사람이다. 김영란이란 이름이 국민들에게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각인돼 있다는 측면에서 만약 총리로 임명된다면 그간 보여준 인사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위원장 역시 대법관 출신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아 ‘전관예우’에 자유롭다.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의 이름도 들려온다. 청렴한 법조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목 전 재판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특히 그는 ‘헌법 재판관’이란 이력을 가지고 있어 향후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카드로 거론된다.


행정경험을 중시한다면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장관도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 국정의 2인자이자 행정부를 총괄하는 국무총리 자리에 현장행정가를 투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혼란을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분석이다.

도덕·청렴 우선
비정치계 거론

그러나 들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본다면 그래도 정치인 출신 인사들이 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박근혜정부에서 ‘정무감각’이란 달콤한 열매를 버릴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렴함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많은 선거를 통해 검증된 인물들이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되는 이유다.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본다면 누가 앞서 있는지 쉽사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쟁쟁하다. 황우여, 최경환 부총리의 이름도 자주 들려온다. 두 사람은 친박의 핵심실세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라 박 대통령과의 소통에도 무난하다는 진단이다.

황 부총리 측 관계자는 전화인터뷰에서 “황 부총리는 아셈회의를 위해 해외출장 중이다”라며 “전혀 그에 대한 말씀이 없으셨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도 유력한 후보자 중 한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미 이완구 전 총리가 선임되기 전 후보자로 이름이 자주 거론된 바 있으며 서민적 이미지로 도덕적인 부분에서 결함이 없다는 평가다.

행정 경험 또한 다른 인물에 비해 풍부해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실력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총리를 맡아달라고 하면 수락할 것이냐’는 <연합뉴스>의 질문에 대해 김 위원장은 “가정법을 가지고 거기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좀 이상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답한 바 있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장관은 최근 떠오르고 있는 친박계 핵심인물로 꼽혀 주목받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을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4선에 성공했다는 측면에서 국민의 검증은 끝났다는 점이 크게 작용할 것이란 말도 있다.

‘세월호 사건’을 수습했을 때 보여준 진정성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대목이란 분석이다. 이 전 장관 측 관계자는 전화를 통해 “의원님께서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것은 알고 계실 것이다”라면서도 “지금 해외출장 중에 계신다. 의원님으로부터 총리에 대한 어떤 언급도 전달 받은 게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마평 줄줄, 이완구 다음 누구?
정치인은 물론 비정치인도 물망

같은 4선 의원으로 꼽히는 이한구 의원도 유력한 후보자로 손꼽힌다. 이 의원은 원내대표를 지낸 경험이 있어 리더십이 검증됐으며 당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등 경제관련 현안을 보는 눈이 밝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라 박근혜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가장 적임자라는 평가다.

반면 강력한 후보임에도 위험부담이 있는 후보자들이 있다. 오세훈, 황교안이 그들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경우 최근 새누리당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이미 정계 복귀를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들어간 것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장을 지낸 이력이 있어 총리직도 무난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복지’와 관련해 야당과 대척점에 있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관련 사항에 대해 문의하려 오 전 시장 측 측근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황교안 법무부장관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황 장관은 공안검사 출신으로 그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등 굵직한 사안을 박 대통령과 소통하며 진행했다는 점에서 유력 후보로 꼽힌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국정 공백을 불러온 ‘성완종 사건’이 수사 중에 있다는 점에서 황 장관이 총리로 낙점될 경우 정가 내외에서 반발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감각·경험 우선
정치계 후보들

지역적 기준으로 총리를 선임할 것이란 전망도 나와 눈길을 끈다. 거론되고 있는 지역은 충청권과 호남권이다. 충청권이 거론되는 것은 다시 한 번 박 대통령이 기회를 줄 수도 있다는 분석에 기인한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를 가져갈 때 충청민심이 많은 힘을 실어줬다는 점이 아직 청와대 내부에서 작용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이다.
 

그런 채무의식이 충청 총리를 밀어줄 수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졌다. 현재 거론되는 충청권 인사는 이인제, 강창희, 정우택 등이다. 이들 의원실과 통화해본 결과 공통적으로 “의원님으로부터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면서도 “하마평에 거론되는 것은 언론을 통해 아마 알고 계실 것”이라고 밝혔다.

충청 인사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인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기획원 법무담당관 출신으로 충청북도지사를 역임하는 등 이력과 경험에 있어선 충분하다는 평가다. 3선 의원까지 성공해 준비된 카드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들려오고 있다. 정 의원실 한 관계자는 “공식입장은 없다”면서도 “충청민들이 느꼈을 아픔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후보만 10명 이상, 일인지하 만인지상은?
누가 되더라도 ‘독이 든 성배’ 변함없어

호남지역 총리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당대표의 입에서 나온 얘기라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23일 4·29재보선 광주 서구 지원유세에서 “박근혜 대통령께 말씀 드린다”며 “이번 기회에 이완구 총리가 경질되면 그 자리에 전라도 사람 한번 총리를 시켜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정현 최고위원이 총리를 하면 얼마나 잘하겠냐”며 “또 정 승 후보가 이번 선거에 당선돼 최고위원이 되고, (이 최고위원이) 총리를 하면 얼마나 일을 잘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즉, 이 최고위원이 총리로 가면 공석이 된 자리에 정 승 후보를 앉히겠다는 것이다. 정 후보 당선을 위한 파격 공약 중 하나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정작 친박계를 통해서는 ‘김무성 총리 임명’이라는 파격적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 최고위원을 총리로, 정 후보를 최고위원으로’라고 밝힌 김 대표의 발언과 유사한 전략이라 더욱 눈길이 간다. 친박계 내부에서 나온 말을 종합해보면 ‘김무성 대표를 총리로, 공석이 된 당대표 자리에는 서청원 최고위원을 앉힌다’는 시나리오다.

김 대표가 총리가 됐을 때 박근혜정부가 가질 수 있는 득을 생각해본다면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다. 청와대 입장에서 봤을 때 ‘양수겸장’ 측면에서 김 대표가 적임자라는 분석이다.

첫 번째 김 대표는 여당 최고의 유력 대권주자다. 그런 대권주자를 총리로 임명한다면 떨어지는 지지율을 붙잡을 수 있다. 최근 언론은 물론 정계에서는 이번 성완종 사태로 인한 ‘조기 레임덕’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데드덕’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심각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두 번째는 비박계 최고 핵심을 곁에 둘 수 있다는 이점이다. ‘적은 가까이 두라’는 옛말처럼 최근 기치를 높이고 있는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만약 서 최고위원이 김 대표를 대신해 당대표가 된다면 국정 운영에 있어서 순풍을 달 수 있다고 친박계는 풀이한다.

김무성 총리?
서청원 대표?

이에 대해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실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서 최고위원 측 관계자는 “누가 얘길 꺼냈는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발상”이라며 “전혀 들어본 적 없는 허무맹랑한 시나리오”라고 했다. 김 대표 측 관계자 역시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총리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으시다”고 말했다. 두 관계자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흔히 들리는 소문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남미 4개국 순방길에서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어떤 보따리를 풀어놓을까? 아직 결정권자인 박 대통령의 ‘신의 한수’가 미정인 상황에서 총리 후보자에 대한 하마평은 어디까지나 예상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끊이지 않는 ‘이완구 잔혹사’

최근 <조선일보>를 통해 이완구 전 총리가 인척관계에 있는 검찰 관계자에게 수사상황을 문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총리실 측은 이 전 총리가 직접 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내용에 따르면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전화 통화내역 등을 살펴보던 중 이 전 총리와 인척관계에 있는 검찰 간부와 수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고, 이 전 총리도 성 전 회장의 자살 이후 해당 간부와 자주 통화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고 지난 23일 보도했다.

총리실 직원, 검찰 측에 수사 문의 논란

이러한 기사가 나간 이후 총리실 관계자는 <KBS>를 통해 “총리 본인이 검찰 간부와 직접 통화한 적은 없다”며 “다만 총리실 직원 이모씨가 이 전 총리와 인척인 검찰 간부에게 전화해 수사상황을 문의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수사상황을 문의한 이씨는 이 전 총리가 충남지사로 근무할 때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측근으로 이 총리 취임 이후 총리비서실에서 근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직원은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조만간 총리실에 사표를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검찰은 이 전 총리의 인척이자 성 전 회장이 이끈 ‘충청포럼’ 멤버로 알려진 검찰 간부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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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