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③새누리 계파 삼국지

한 지붕 세 가족 ‘동상이몽’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성완종 리스트’에 정국이 뜨겁다.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유류품이 판도라의 상자였던 것일까. 목을 매 자살한 성 회장의 시신 상의에서는 이름과 액수가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한 장의 종이, 8인의 이름, 그리고 수억원의 돈. 친박·비박·친이는 진위 여부를 두고 물고 물리는 공방을 펼치고 있다.

새누리당이 시끄럽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에 여당은 역풍을 맞은 모양새다. 자칫 정권의 정당성마저 흔들릴 수 있는 이번 스캔들에 새누리당 핵심 인물들이 줄줄이 엮여 있다. 마치 ‘주초위왕’으로 시작해 ‘기묘사화’로 끝난 16세기 조선과 같은 형국이다. 사실관계는 수사 중에 있다. 그러나 친박·비박·친이계 사이에 오가는 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벌써 ‘한나라’가 ‘세나라’로 쪼개진 느낌이다.

진위 여부 두고 
물고 물리는 공방

이번 사태에 대해 당·정·청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 목소리로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소간의 입장차가 보인다. 특히 새누리당 내에서는 계파 간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평론가들은 새누리당이 크게 3개의 계파로 갈라져 있다고 본다. 이는 국민들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친박·비박·친이가 그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기자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정계에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계파와 무관하다 보기 힘들 정도로 단결된 모습을 보여줘 왔다.

이번 성완종 사태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과연 ‘친이계에서 시작된 수사가 친박계로 이어질 것인가’하는 부분이다.

잘 알려진대로 이번 사건은 박근혜정부의 ‘사정드라이브’에서 시작되었다. 이완구 총리는 지난달 12일 부패척결을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이 총리를 지지하고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총리의 선언을 두고 박 대통령의 의중과 같다고 내다봤다. 사정드라이브는 박심을 등에 업고 출발했다.

사정의 칼날이 자원외교를 향하자 친이계는 반발하기 시작했다.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은 ‘기획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정권 유지를 위한 쇼’로 규정했다. 이번 갈등의 시발점이었다.

신·구 정권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특히 포스코건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등 사정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타깃이 분명해지자 친이계는 더욱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지난달 18일, 검찰은 갑작스레 경남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발표한다.

압수수색이 발표된 날 언론은 경남기업과 석유공사가 자원외교 비리수사의 1차 타깃이 됐다며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부 기자들 중 일부에서는 ‘경남기업이라는 회사가 규모에 비해 너무 집중적인 수사를 받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4월3일 검찰은 성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성 회장은 그간 ‘MB맨’으로 지목돼 왔다. 평소 친이계 측 사람들과 친분이 있던 성 회장이 자원외교에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이었다. 이에 성 회장은 지난 3일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은 절대 MB맨이 아니라며 성토했다. 그는 “어떻게 MB정부 피해자가 MB맨일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성완종 메모
친박계 뇌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억울해서였을까. 성 회장은 기자회견을 한지 하루만인 지난 9일,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에서 300m쯤 떨어진 지점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가 남긴 비망록은 친박계에 떨어진 직격탄이었다. 적힌 8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제외한 7인이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그 중에는 박근혜정부 1·2·3기 비서실장인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 실장의 이름은 물론 이완구 국무총리,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이름 없는 ‘부산시장’이 적혀있었다.

최근 공개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전문을 보면 성 회장이 메모에 적은 ‘부산시장’은 서병수 현 부산시장인 것으로 추측된다. 녹취록에 따르면 “내가 그 양반(이완구) 공천해야 한다고 (새누리당) 서병수 사무총장한테 많이 얘기하고”라며 언급된 바 있다.

후폭풍은 대단했다. 면면이 핵심인물이란 이유도 있지만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이 거세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일련의 사태를 두고 ‘친이계를 향하던 검찰의 칼날이 부메랑이 되어 찬박계의 목을 겨누게 됐다’고 표현했다. 각종 언론에서는 금액의 진위여부를 떠나 현 정권 최고의 ‘정치 스캔들’이라 규정했다.

친박계 7인은 성 회장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공통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잘 알지 못 한다”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돈을 받은 사실은 절대 없다”가 그것이다. 유일하게 비박계로 분류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자신은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부인하면서도 “메모에 등장하는 명단은 모두 (성 회장의) 청탁을 거절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정계의 최대 화두는 이완구 총리의 거취문제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내 계파 간에도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다. 심지어 탄핵 얘기까지 야당이 아닌 여당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친박 vs 비박·친이 책임 공방전
MB쪽 향하던 검날 당으로 부메랑
총리가 총대? 꼬리자르기 ‘솔솔’


성완종 스캔들의 전말을 살펴보면 이 총리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녹취록 전문을 살펴봐도 이 총리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대화의 큰 줄기는 이 총리에 대한 대화에서 파생되어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JTBC에서 단독으로 입수한 소위 ‘성완종 다이어리’를 살펴봐도 성 회장은 이 총리를 20개월간 23차례 만난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다이어리에 나온 정치인 중 최다 만남 횟수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이 총리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 헌정 사상 현직 국무총리를 수사한 전례가 없다는 측면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친박·비박·친이계 사이에서도 설전이 오가고 있다.

먼저 친이계 측에서는 이 총리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막중한 책임이 있는 총리가 부패 혐의에 연루돼 있고, 청와대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부패에 연루돼 있다”며 “총리는 사실 여부를 떠나 검찰에서 밝혀질 일이니 정치적으로 국정의 막중한 책임이 있다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관계된 사람들이 스스로 거취를 정해서 당과 대통령의 부담을 줄여주지 않는다면 당은 이들에 대해서 엄혹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 달 전 부정부패 청산 소식에 ‘기획수사’ ‘표적수사’를 주장했던 때와는 입장이 180도 변한 것이다.

비박-친이계
이번에 끝장?

비박계는 사태를 예의주시하지만 전반적으로 친이계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당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용태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총리는 명명백백한 진실 규명을 위해 총리직을 사퇴해야 한다”면서 “검찰이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이 총리가 결단해주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아침소리’는 지난 13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특별검사(이하 특검) 실시를 촉구한 바 있다. 그들은 “국민적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성완종 파문과 관련해 특검제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친박계 또한 표면적으론 이 총리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친박계 한 의원은 “국민 정서가 부정적이다”며 “이 총리가 총리직을 지킬수록 의혹은 확대될 것이다. 더 이상의 확대는 당 차원에서 좋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퇴 요구는 야속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다. 또 다른 친박계 의원은 “당에서 자진사퇴를 얘기하고 있다”며 “종이에 적힌 몇 자로 내치는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을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15일 ‘이 총리 사퇴론’에 대해 “의견을 잘 수렴해 보겠다”며 아직 결정된 것이 없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친박과 비박·친이계 간의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친박계 측은 이번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연기해야 된다는 야당과 일부 여당 의원들의 요구에 ‘연기할 이유가 없다’며 거부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날을 세우고 있는 친이계를 비롯한 비박계에서는 ‘대통령이 없는 동안 부패 문제로 수사를 받느냐 마느냐 하는 총리가 직무를 대행할 수 있겠나’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대통령의 부재 시 직무를 대행해야 되는 국무총리가 이미 식물총리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 일정을 연기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계속된 계파 간 싸움에 보수층도 등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새누리당 입장에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주요한 문제다.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활빈단’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지난달 23일에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포스코 관련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요구한 바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공방을 두고 야당을 포함한 정계 관계자·정치전문가들은 ‘꼬리자르기’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은 지난 15일 대정부질문에서 “총리의 검찰 수사는 정권의 꼬리자르기”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총리는 “그럴 리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의혹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요 계파 3곳에서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이면에는 이 총리 선에서 끝내겠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라 보고 있다.

4일간 진행된 대정부질문은 이 총리에 대한 청문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공세에 이 총리는 “4월은 내게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자리에 착석해 있던 의원들은 폭소를 터트렸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완구 끝?
꼬리자르기

사실 새누리당 내 계파 싸움을 두고 ‘삼국지’에 비유하는 것은 오늘내일의 일이 아니다. 2010년 당시 한나라당 내에서 이상득·이재오·박근혜 간 권력 다툼을 두고 여러 언론에서 ‘계파 삼국지’를 논한 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위·촉·오가 서로 전쟁을 벌였던 삼국지처럼 서로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계파 간 갈등은 케케묵은 논쟁거리인 것이다.

초·재선 모임인 ‘아침소리’는 지난 1월5일 친박과 친이, 비박 등으로 당이 분열되는 모습을 두고 ‘당의 망조’라며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앞으로의 새누리당을 우려하는 목소리와도 같다. 이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김용태 의원은 지난 16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계파 간 시각으로 보는 순간 새누리당은 그냥 망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은 지금과 같이 반복되는 당내 싸움에 집권여당으로서의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국민들이 ‘정권 교체’라는 매를 들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삼국을 통일한 나라가 서로 치고받던 위·촉·오가 아닌 싸움을 지켜본 ‘진나라’인 것처럼 말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완구 총리 거짓말 의혹 해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이미경 의원이 대정부질문에서 이완구 국무총리의 그간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해 화제다. 이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본 회의장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 총리의 거짓말 시리즈라는 피켓을 들고 질의했다. 이 총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크게 3가지, ‘2012년 대선 유세’ ‘3000만원 후원금’ ‘성완종 회장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첫 번째 ‘2012년 대선 유세’의 경우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도왔다는 의혹에 대해 이 총리는 혈액암 투병 중이어서 선거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공개된 사진과 동영상에서는 유세 현장에 나타나 박 후보 지지연설을 하는 모습이 포착돼 거짓말 의혹이 제기됐다.

두 번째 ‘3000만원 후원금’ 의혹에 대해 이 의원은 “후원금을 한 푼도 받은 적 없다고 했지만 선거사무소에서 3000만원을 줬다는 말이 나왔다”고 비판했다.

이 총리는 지난 14일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성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어떠한 증거라도 나오면 목숨을 내 놓겠다”고 초강수를 둔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5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2013년 4·24재선거를 앞두고 부여에 위치한 이 총리의 선거사무소에 성 회장이 방문해 ‘비타 500’ 박스를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세 번째 ‘성 회장과의 만남’은 이 총리가 그간 극구 부인해 온 내용이다. 이 총리는 그간 성 회장과 친분이 별로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난 14일 JTBC에서 보도된 내용은 그의 주장과 맞지 않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성 회장과 이 총리는 2013년 8월부터 2014년 3월까지 20개월간 총 23차례 만남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국회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혹에 대해 이 총리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만난 것이고 순수한 개인적인 문제를 갖고 속내를 털어놓는 관계는 아니었다”라고 재차 부인했다.

새정치연합 측에서 제시되는 일련의 거짓말 의혹에 이 총리는 지난 15일 “거짓말한 적 없다. 표현상의 차이나 기억의 착오는 있을지 모르지만 큰 틀 속에서 줄기가 변한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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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