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국에 김무성 ‘친기업 행보’ 노림수

‘박심’ 등에 업은 이완구 앞차기…“결국 대통령 돌려차기?”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부정부패 발본색원.” 이완구 국무총리는 취임 후 가진 첫 대국민담화 자리에서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는 이 총리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는 해석이 유력 정치인들 사이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 와중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보여준 일련의 행보는 마치 박 대통령의 의중에 반하는 것으로 보여 눈길을 끈다.

권력을 향한 ‘골육상쟁’이 시작됐다. 정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국무총리는 치열한 파워게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위치에서 서로 교감하며 당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던 관계에서 벗어나 이젠 경쟁자의 자격으로 서로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최근 동향을 분석해 보면 한쪽에서는 기업의 비리를 파헤치고 한쪽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가 없도록 상처를 보듬어주는 등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

부정부패
발본색원

지난 12일 이 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그중 핵심은 부정부패 척결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총리는 “취임 한 달 동안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을 해 왔고 국정운영의 큰 걸림돌이 사회 곳곳에 잔존하고 있는 고질적인 부정부패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총리실 관계자는 담화 발표 배경에 대해 “고질적 부패구조와 공직기강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경제 살리기와 개혁 성공 등 국정과제 추진이 힘들다고 이 총리가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많은 수의 여야 의원들은 이러한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두고 ‘이 총리의 판단’이 아닌 ‘박심(朴心 : 박 대통령의 생각)’으로 보고 있다. ‘발본색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과거 유신정권 시절에 많이 사용됐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는 의원도 있다.

박 대통령의 지원사격이 이어졌다.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이번에 국무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부패청산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고 국민들과 나라경제를 위한 사명감으로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면 청와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척점에서 움직이는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바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다. 이 총리의 발언이 있은 지 4일 후인 지난 16일 새누리당은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와 정책간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기업들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기업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김 대표의 발언은 ‘부정부패 척결’을 주장하는 청와대의 입장이 발표된 후 나온 것이라 정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첩파동’에 이은 또 다른 홀로서기 시그널이라는 주장도 있다.

박 대통령과 이 총리는 발언에 앞서 대표적인 부정부패로 다음의 4가지 사례를 꼽았다. ‘방위사업 비리’ ‘해외 자원개발 부실 투자’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및 횡령’ ‘공적문서 유출’이 그것이다. 이 총리는 항목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철저한 ‘무관용 원칙’에 따라 근절해 나가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적폐청산
드라이브

검찰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지난 13일 검찰은 포스코건설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감으로써 사실상의 기업 압박에 들어갔다. 회사 관계자에 대한 소환조사 또한 실시중이다. 이 총리의 발본색원 발표가 있은 지 하루 만이었다.

수사에 들어간 서울중앙지검은 인천 송도에 위치한 포스코건설 본사에 수사관들을 보내 해외 건설사업 관련 내부자료와 회계장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도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현재 정 전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는데 곧 검찰 소환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회장 임명 당시 낙하산인사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수사란 게 가장 가까운 것을 하는 것이다. 5~6년씩 묵혀놨다가 정권 끝나고 뒤집나”라며 “검찰이 그때 권력의 부패를 잡아내야지, 그때는 가만뒀다가 정권이 바뀌면 한다? 그러니까 ‘정치검찰’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검찰은 정 전 회장을 이미 3년 전에 내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부패청산에 대해 발언한 지 하루가 지난 18일에는 기업수사의 규모가 더욱 확장됐다. 검찰이 자원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 한국광물자원공사와 경남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완구 “부정부패 발본색원” 선언
박근혜 “부정부패 척결
총리 지지

대기업 비자금에 대한 수사도 넓어지고 있다.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동국제강과 금호아시아나, 신세계, 동부그룹 등도 수사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에 재계는 ‘기업 쥐어짜기’라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박 대통령의 대기업 사정을 두고 역대 정권에서 보여주던 자연스런 움직임이라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역대 정권은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대대적 사정을 해왔던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2010년 한화그룹, 노무현정부는 2005년 두산그룹을 상대로 각각 대대적 수사를 벌인 바 있다.

나홀로 친기업
독자노선 행보


김 대표는 청와대와 정반대에서 소위 ‘기업 보듬기’에 들어갔다. 김 대표는 대한상의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등 주요 재계 인사와 만나 기업 경제활성화 방안을 모색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발언을 하던 중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정치권의 보여주기식 규제개혁 남발로 인해 기업의 경영사정이 악화됐을 것이다”며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법인세와 임금 인상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언급하며 “기업 경영환경이 매우 악화됐는데도 불구하고 기업의 힘든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업소득환류세제 신설, 법인세 인상, 임금 인상 등을 압박하는 것에 여러분의 속이 많이 상하실 것으로 안다”고 위로했다.

최근 논란이 진행 중인 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기업의 편에 섰다. 김 대표는 “기업인들이 임금 문제는 노사자율에 맡겨야지, 정치권에서 거론할 사항이 아니라며 굉장히 우려를 표했다”며 “이에 대해 저희들이 동감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타격으로 다가올 수 있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법인세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재계와) 뜻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김무성 “속상했을 것” 기업 보듬기
이재오 “대표가 말려서 참는다” 울분

이러한 김 대표의 행보를 두고 정치 평론가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첫 번째는 친기업이미지 구축을 위해서라 보고 있다. 이 총리와 현 정부가 기업 때리기에 앞장설 때 김 대표가 그들을 막아서며 기업친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란 뜻이다. 대선 승리를 위해선 기업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사전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두 번째는 친박계와 대립각을 세워 권력지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 비단 이 총리만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있다고 말한다. 김 대표의 이날 발언은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과 상반된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옥죄고 있는 최근 친박계 동향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세 번째는 김 대표의 가족관계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대한상의에 참석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김 대표의 조카로 잘 알려져 있다. 현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바로 김 대표의 친누나다. 기업인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겪고 있는 일련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보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이 총리를 위해 박 대통령이 지원사격을 했다면 김 대표의 지원자로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나섰다. 유 원내대표는 17일 임금인상 문제와 관련해 “임금은 노사가 정하는 것”이라며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소비회복을 위해서 적정 수준의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며 재계에 임금인상을 압박한 최 부총리의 입장과 거리를 두는 것은 물론 하루 전 친기업행보를 보인 김 대표에게 지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새누리당을 이끌고 있는 비박 실세 두 명이 한 목소리를 냄으로 인해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친박계 핵심인사들의 입각과 정무특보 임명 등 일련의 인사를 보면 이미 친박과 비박 간 권력지도가 완성된 모습이다. 여당의 핵심 계파 둘이 서로 반목하고 있어 지도 위 국경선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친박·비박·친이
계파갈등 심화

두 거대 계파의 싸움에 친이계는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건설과 자원외교 비리 사정 등 청와대의 압박에 위기감을 느낀 친이계가 당 지도부를 맡고 있는 비박계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18일에 있었던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재오 의원은 “(정무특보 임명 등 청와대 중심의 국정에 대해) 마지막으로 제가 마음먹고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당대표께서 오늘은 하지 말라고 해서 당을 존중해 오늘은 말을 줄이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에 김 대표는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이 의원의 어깨를 감싸주는 모습을 연출했다.

한 당내 관계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금처럼 당·청관계가 서로 간 견제 양상으로 흘러간다면 그 사이에서 친이계는 두 계파 간 싸움에서 어부지리를 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자신의 저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서 과도한 경쟁이 주는 폐해를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승자는 경쟁에서 이겼지만 승리를 위하여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커다란 후유증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여당 내 경쟁에 대해서도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계파싸움으로 지난해 7·30재보선에서 패배한 새정치민주연합처럼 새누리당도 지금과 같이 계파 간 대결을 이어간다면 향후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무성 대표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로봇연기 도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정치참여 어플리케이션(이하 어플)의 명칭 공모를 위한 홍보영상에 직접 출연해 화제가 됐다.

영상에서 김 대표는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장수원씨의 ‘로봇연기’를 패러디했다.
영상은 약 50초 분량으로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에서 지난 14일 유투브를 통해 공개했다.
김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추운 겨울, 한강에서 열심히 촬영했다”며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달라”고 소감을 밝혔다.

‘손가락으로 이루는 정치혁신’이라는 부제로 진행되는 이번 공모전은 모바일정당 실현을 위해 새누리당의 새로운 소통창구가 될 어플의 명칭을 국민과 함께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공모전을 주도하는 여의도연구원 측은 “정치참여 앱 명칭 공모전을 16일부터 23일까지 당 홈페이지(www.saenuriparty.kr
)에서 진행한다”며 “수상작은 30일 발표하며, 현재 개발 중인 새누리당 정치참여 앱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이나 당원 인증을 거치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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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