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 돌입 ‘4·29 재보선’ 판세 분석

‘일여다야’ 구도…이겨도 본전 지면 패당망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4·29재·보궐선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다음달 9일부터 10일까지 이틀간 후보자 등록 신청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하는 이번 재보선은 많은 변수를 내재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많은 후보들이 출마 선언을 하고 열전에 돌입한 시점에서 <일요시사>가 지역별 판세를 짚어보고자 한다.

재보선이 치러지는 지역은 총 4곳.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해산과 맞물려 공석이 된 지역인 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 중원, 광주 서구을 등 총 3곳에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최근 새누리당 안덕수 의원의 당선이 무효로 확정됨에 따라 인천 서·강화을 지역이 추가됐다. 이번 선거가 규모는 작지만 내년 총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험대’라는 점에서 여·야 모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미니 총선
여야 셈법

2015년을 맞이할 때만 해도 이번 재보선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낙승이 예상됐다. 아무리 통진당 해산의 여파가 있다고 해도 전통적으로 야당이 표를 많이 가져간 텃밭이기 때문이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던 시점이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새정치연합의 우세를 점쳤다.

그러나 최근엔 그러한 판세가 완전히 뒤집혀 새누리당의 승리를 예견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그들은 야권이 힘이 분산됐다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현재 지역별로 1명의 여당후보와 2~3명의 야당후보가 격돌하는 구도가 성립됐다. 즉 ‘일(一)여 다(多)야’의 상황이 되다보니 표가 분산될 것이란 예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점도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데 한몫했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중동 4개국 순방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옴에 따라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기종 사태가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된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 양승조 사무총장 또한 이번 재보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양 총장은 지난 17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재보선 4개 지역구를 보면 4곳 모두 우리 쪽에서 현역의원이 나온 지역이 아니다”며 “일여 대 다야 구도로 치르는 선거에서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야권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했다. 그 이유에 대해 양 총장은 “성남의 정환석, 관악의 정태호, 광주의 조영택 후보가 경선을 통해 후보자로 확정된 지 며칠 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야권연대를 운운하는 것은 당원들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후보들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 연대에 나설 것이라고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양 총장이 말한 당 차원의 연대는 없을지 모르나 후보자 간 연대는 모른 척 넘어가 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양 총장이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한 점은 이러한 상황을 잘 대변해 주는 발언으로 보인다.

이렇듯 새정치연합이 오히려 수세에 몰리고 있는 형국을 두고 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야당 텃밭에서 표를 걱정해야 된다”며 “현재 제1야당이 현 정부의 대안이 되지 못하는 모습이 가장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일여 vs 다야
연대는
글쎄

현재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각각의 선거전략을 내놓은 상황이다. 먼저 새누리당은 ‘지역일꾼론’을 들고 나왔다. 토박이 전략을 기반으로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지역경제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기조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지난 7·30재보선 때 전략공천을 최소화한 상황에서 지역일꾼론으로 압승을 거둔 좋은 기억이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남 곡성의 주민들이 지역을 누비고 다닌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은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이번 선거는 어디까지나 ‘지역경제 살리기에 최적임자가 누구냐’는 선거라고 생각을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정책을 개발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은 ‘민생제일 경제정당’을 전면에 내세웠다. 지금껏 유지해오던 네거티브 전략에서 벗어나 ‘유능한 경제정당’의 이미지로 탈바꿈해 지지를 얻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현 정국의 핵심 키워드가 ‘경제’라는 측면에서 새정치연합 측은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재보선 후보 공천장 수여식에서 “제가 생각하는 이번 재보선의 의의는 먹고 사는 것이 버거워 절망하는 국민들께 국민의 지갑을 지키겠다는 약속”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일련의 상황은 새정치연합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일보>가 여론조사전문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양일간 조사해본 결과, 서울 관악을 1000명 중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에게 33.5%의 유권자가 지지를 보내 31.2%가 나온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를 2.4%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왔다.

야권후보 난립 “당 차원 연대 없을 것”
새누리 ‘3곳 중 1곳 이기면 본전’ 여유

성남 중원에서는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가 인지도가 높아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지난 2001년 대한의사협회회장을 지낸 이력이 있는 신 전 의원은 이미 성남 중원에서 17~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어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다. 이러한 점은 지금처럼 야권후보가 많은 상황에서 더욱 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정치평론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14일 경선을 통해 정환석 지역위원장을 성남 중원의 후보로 낙점했다. 정 후보는 한국노총 성남시지부 부의장 출신으로 경기도의원을 지낸 경력이 있다.

정의당 측 후보가 아직 미정인 상황에서 무소속으로 김미희 전 통진당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그녀는 지난 19일 “새누리당은 경기도 성남 중원구 주민들을 종북세력으로 매도했다”며 사죄를 요구하는 등 후보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이번에 새로운 선거 지역으로 추가된 인천 서·강화을은 전통적으로 여권의 표가 많이 나온 지역이라는 점에서 새누리당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아직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선만 통과하면 당선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새누리당에서 고려하고 있는 후보는 안상수 전 인천시장을 비롯해 이경재 전 의원, 계민석 교육부장관 정책보좌관, 유천호 전 강화군수 등이다.

새정치연합은 신동근 지역위원장의 출마가 유력한데, 그가 17대 총선 출마 이후 꾸준히 강화에서 활동해오며 지역 입지를 다진 측면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정의당은 박종현 인천시당 사무처장을 일찌감치 낙점했다. 강화 출신인 박 사무처장은 지역에서 인맥이 넒은 것으로 알려져 당에서는 기대를 걸고 있다.


새누리당 목표
한곳이면 본전

현재 정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지역은 광주 서구을이다. 전통적으로 야권의 메카와 같던 이 지역에서 지각변동의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짐은 의외의 곳에서 시작됐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이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새정치연합 인사들이 ‘천정배 전 장관은 당에 남지 않겠나?’라고 예상한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 그 이유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이에 천 후보는 한 라디오에 출연해 “야당이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며 “새정치연합은 야당과 대안세력으로서의 비전을 잃었다고 생각한다”고 심정을 밝혓다.

현재 야권 사이에는 이를 두고 설전이 오가고 있다. 새정치연합 양승조 사무총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천 전 장관이 말한) 탈당의 변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새정치연합이 비전을 상실하고 무능하다고 하셨는데 지금 우리당은 30% 내외의 지지율이 나오고 있다”고 반박했다.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정동영 국민모임 인재영입위원장이 천 전 장관을 지지할 뜻을 내비쳐 또 하나의 변수로 떠올랐다. 두 인사 간 연대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천 전 장관도 “연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천 전 장관이 연대 의사는 있지만 국민모임에 대한 합류의 뜻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위원장도 천 전 장관의 합류는 당분간 성사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정 위원장은 “광주에서 광주 기득권, 일당독재를 깨자는 목표점에 대해선 (천 전 장관과) 일치한다”면서도 “앞으로 계속 천정배, 광주 시민사회, 그리고 국민모임이 어떻게 하면 광주 기득권을 깨트리는데 함께 할 것인지 문제를 논의해 갈 것”이라고 말해 의견을 조율해 나갈 뜻을 내비쳤다. 자신을 둘러싼 서울 관악을 출마 소문에 대해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천 전 장관에 대한 맞수로 새누리당은 정 승 전 식약처장을 내세웠다. 정 전 처장은 “광주 발전을 10년 앞당기는 예산불독 국회의원이 돼 광주시민을 정승(政丞)처럼 모시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예고했다. 정계는 이미 정 전 처장이 지난 7·30재보선에서 파란을 일으킨 이정현 최고위원의 행보를 따라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도 그의 공천을 두고 ‘제2의 이정현을 위해 차출했다’고 밝힐 만큼 큰 기대감을 표했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정 전 처장이 천 전 장관을 제치고 당선된다면 전 지역 승리라는 파랑새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정 전 처장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현장을 누빌 수 있을지, 이전에 지역에서 얼마나 입지를 다져놨는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 내다봤다.

새정치 ‘재보선 1곳만 이겨도 승리’ 엄살
박지원 “1곳 승리는 패배주의적인 발상”

천 전 장관을 놓친 새정치연합에서는 조영택 전 의원을 내세웠다. 조 전 의원은 20일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열고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천 전 장관보다 인지도적인 면에서 부족한 조 전 의원에게 당지도부 차원에서 얼마나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변수가 존재한다. 바로 문 대표가 호남지역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특히 광주지역 민심 중 반노정서가 생각보다 큰 것으로 알려져 이를 우려하는 의원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호남총리론’ 발언처럼 자칫 엉뚱한 곳에서 뇌관이 터진다면 재보선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안민석 의원은 TBS라디오 <열린아침 고성국입니다>에 출연해 “(광주 지역에서 패배한다면) 천 전 장관의 탈당에 대한 책임도 문 대표가 질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출범하자마자 문 대표가 독박을 쓰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내다봤다.

이번 재보선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 간의 대결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특히 문 대표의 경우에는 당권을 잡은 후 처음 맡는 선거라는 측면에서 정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양당에서 이번 재보선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세간의 이목을 끈다. 새누리당 김 대표는 “세 곳 중 한 곳은 이겨야 본전으로 보지 않겠냐”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인 반면 새정치연합 양 사무총장은 “현 상황이 녹록치 않다”며 “(1석 이상이) 최소한의 의미있는 승리라는 것은 당 내부적으로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정치연합 목표
한곳 이상 승리

이러한 새정치연합의 모습에 박지원 의원이 쓴소리를 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선거 지역이) 야권성향이 강한 지역인데 3곳 중 1곳만 승리하면 된다는 것은 패배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크게 비난했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의원은 “야당은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인데 이렇게 목표를 낮게 잡으면 당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 뿐만 아니라 당 내부에는 저자세로 나가는 지도부를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새정치연합이 만약 재보선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면 슬며시 나오고 있는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민모임 김세균 신당추진위원회 공동추진위원장

국민모임 김세균 신당추진위원회 공동추진위원장은 4·29재보선에 정동영 인재영입위원장이 출마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 위원장은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이번 기회에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국민모임의) 밀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당내에서도 거듭 뜻이 없음을 밝혀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어떠한 국회의원 자리에도 욕심이 없다고 강조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나가달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가혹한 주문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정동영,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야…”

현재 서울 관악을 지역은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 정의당 이동영 후보, 무소속 이상규 후보가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정 위원장이 후보로 출마한다고 해도 당선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관악을 지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모임 정동영 위원장의 지지율은 18.2%로 나타나 33.5%가 나온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에게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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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