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김기종 아이템’ 활용 노림수

종북숙주 VS 종북몰이 선거판에 때 아닌 북풍 “김기종 대체 넌 뭐냐?”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지난 5일 언론사들은 일제히 보도를 통해 다급한 현장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했다. 국민들은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선혈이 낭자한 사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대사가 습격 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미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왔다.

김기종.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의 뇌리에 그의 이름은 똑똑히 각인됐다. 칼을 휘두른 목적이 이것이었다면 대단히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 그만큼 사건은 충격적이었고 촉각을 다툴 만큼 위급하게 전개됐다. 사건 직후 과거 일 대사에게 콘크리트를 투척하는 등 그의 지난 행적이 드러나면서 ‘김기종’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후 사태는 이념적 갈등을 지나 ‘선거’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정치전문가들은 말한다.

미 대사 피습
김기종 사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가 25cm 과도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했다. 현장에서 김씨를 체포한 경찰은 그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수색 후 경찰은 중간수사 브리핑을 통해 이적성이 의심되는 서적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압수한 증거 중 도서 17점, 간행물 26점, 유인물 23점 중 일부 증거에서 이적성이 의심되는 부분을 포착해 내용과 문구 등을 분석 중이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경찰은 압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13점에서 이적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료에는 북한의 주체사상 교육용으로 사용되는 <정치사상강좌>라는 유인물을 비롯해 김정일이 쓴 <영화예술론>도 포함돼 있었다.

또한 그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김일성은 20세기 민족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는 반식민지 사회이지만 북한은 자주적인 정권이라 생각한다” 등의 진술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그가 가진 이념이 ‘종북’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쟁점은 그가 한 행동이 개인 일탈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이 있는지에 맞춰져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두고 긴장감 넘치는 설전이 오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보도되고 있는 김씨의 기이한 언행을 근거로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돌출행동’이라 규정한다. 현재 김씨는 “김일성을 존경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북은 아니다”고 말하는가 하면 리퍼트 대사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두른 바로 다음날 웃으면서 대사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7차례나 북한을 다녀온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북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는 등 갈지자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김씨를 두고 리퍼트 대사의 치료 전반을 책임졌던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은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김씨가)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이 김씨의 ‘개인적 일탈’에 의해 발생했을 확률이 높음을 시사했다.

종북숙주
새정치연합

반면 보수 측은 이번 사태를 종북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종택 <뉴스타운> 객원논설위원은 ‘종북 수사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소위 종북세력에 대해 ‘숟가락으로 밥 먹고 두 발로 걸어 다니니까 사람일 뿐 도무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인간이다’라며 ‘이번 미국대사 테러사건을 계기로 종북세력을 말끔히 소탕하고 국민 혈세만 빨아먹는 흡혈귀단체들도 싹 다 정리해 버리자!’고 강력 주장했다.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는 보수단체 회원 3000여명이 모여 ‘반국가 종북세력 대척결 국민대회’를 열고 종북세력 척결을 촉구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길로 가려면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종북주의자들을 모조리 쓸어 북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 쓸 때”
야당 “종북 올가미 덧씌우려는 속셈”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 국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시민들 간의 이러한 이념적 대립이 오히려 순수해 보일 정도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야 모두 이번 사건을 발판 삼아 4.29재보선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까지 가져가려 하고 있다. 치열한 동상이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 간에 원색적 ‘헐뜯기’부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을 향해 ‘종북숙주’라고 칭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현안관련 브리핑에서 “(야당은) ‘종북몰이’ 운운하며 역색깔론을 펼칠 때가 아니다”며 “지금은 새정치연합이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을 쓸 때다”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했다. 즉 새누리당은 김기종의 ‘배후세력’으로 새정치연합을 지목한 것이다.


당 지도부도 이에 합세했다. 김무성 대표는 리퍼트 대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사건은 종북좌파들이 한미동맹을 깨려는 시도였지만 오히려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고 더 결속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의 발언을 두고 “종북좌파를 명확히 언급함으로써 논쟁의 포커스가 흐트러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라 평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회의자리에서 “종북세력에 대한 관리를 사법당국이 철저히 해야 하고, 강력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어느 정치권이 뭐라고 하든 이번에 배후를 철저히 가려내 이런 세력이 이 땅에 더 존재하지 않는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의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불투명하던 4·29재보선 향방이 유리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전망한다. 만약 사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내년 총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계속적인 종북전략을 펼칠 것이라 내다봤다.

한편 새정치연합은 이런 새누리당을 두고 종북몰이라 주장하고 있다.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사건 직후 ‘새누리당은 비겁한 정치 행태 즉각 중단하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여당 대변인이 오늘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을 종북숙주라고 공격했다”며 “김기종의 과거행적을 들먹이며 야당을 걸고 넘어가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야당에게 종북올가미를 씌워보려는 그 속셈이 너무도 뻔해 일일이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는 서 대변인의 이러한 발언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현함과 동시에 개인의 일탈행동으로 규정짓는 것”이라고 봤다.


사태가 누그러들지 않자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이군현 사무총장, 박대출 대변인, 김진태 의원, 하태경 의원, 심재철 의원에 대해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의 책임을 묻기 위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밝혔다. 이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새정치연합을 종북세력의 배후로 지목한 인사들이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빠르게 선 긋기에 나섰다. 유은혜 대변인은 사건 직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김씨는) 성균관대 법대 80학번으로 잘 아는 선배”라며 “워낙 개인적 돌출행동을 반복적으로 많이 했다”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성균관대 81학번으로 80학번인 김씨의 대학 후배다.

이어서 유 대변인은 김씨를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명명했다. 또한 기자간담회 배경에 대해서는 “개인적 범죄행위가 불필요한 이념논쟁으로 번지거나 조직적 연계 가능성 등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 봐 정보 차원에서 개인의 삶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종북몰이
새누리당

새정치연합 문 대표는 “미국 측에서도 이번 사건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논평을 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마치 종북세력에 의한 것으로 정치에 악용하려 한다면 오히려 한미 양국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리퍼트 대사가 어제 퇴원하면서 한국말로 ‘동네 아저씨로 남겠다. 같이 갑시다’라고 인사하는 것을 보며 성숙한 미국의 대응을 봤다”며 “이와 반대로 우리는 무모하게 종북몰이를 하며 사실상 국익을 해치는 것에 심각히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현정부라고 평가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지던 지지율(국정수행 긍정평가)에서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일주일 전 대비 4.0%포인트가 반등한 39.3%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리얼미터는 “중동 순방과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둘러싼 종북 논란으로 보수층이 결집하며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40%에 근접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야 ‘법적 대응’ 여 ‘부끄럽다’ 소송전 예고
박근혜 제부 ‘석고대죄’ 단식 “과하다”

사건 이후에 나온 북한의 반응도 지지율 반등에 한몫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는 지난 8일 “남측이 고의로 리퍼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를 북한과 연계시키고 있다”며 “전쟁 책동을 반대하는 행동이 테러라면 안중근 의거도 테러라고 해야 하는가”며 억지 논리를 펼쳤다. 한 북한전문가는 “안중근 의사와 김씨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북한의 백마비마적 논리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분노했고 결국 반작용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제부까지 이번 사태에 뛰어들었다. 공화당 신동욱 총재는 리퍼트 대사가 입원한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때 아닌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석고대죄’란 글귀와 함께 단식을 시작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석고대죄는 예부터 왕실에서만 했다”며 “일반인이 하는 것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현 대통령의 제부가 곡기를 끊고 길가에서 밤을 새면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하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자신의 단식을 분명한 ‘정치활동’이라 알렸다.

이러한 신 총재의 기행에 사회 각층 인사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개인 SNS를 통해 “조선시대에도 중국 사신 앞에서 석고대죄한 신하는 없었다”고 잘못을 지적했다. 진중권 교수는 “꿈에서나 볼법한 어이없는 상황”이라 일축했다. 국민들의 시선 또한 차갑기는 마찬가지였다.


‘미 대사 피습사건’ 수사본부는 김씨가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은 국내 종북세력이나 이적단체 등과 연계되지 않은 단독 범행인 것으로 잠정 결론냈다. 수사관계자는 “김씨는 대단한 위인이 아니다. 그 사람이 무슨 대단한 위인이라고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국내 이적단체나 종북단체에 배후세력이 있겠느냐”며 “현재까지는 김씨 개인의 단독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신동욱 총재
석고대죄 단식

사건 당일 당사국인 대한민국과 미국의 반응은 여야의 반응만큼이나 극명하게 엇갈렸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에서 백주대낮에 미국대사가 테러를 당했다는 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에게 충격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즉 이번 사건을 조직적인 테러로 규정한다는 말이었다.

반면 미국 측은 테러라는 용어 대신 공격이나 폭력행위라는 표현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대변인은 “끔찍한 폭력행위였던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범행동기나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지는 않겠다”고 못 박았다.

리퍼트 대사는 수술 후 여야 지도부와의 만남에서 “이번 사건이 양국관계를 손상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지는 데 도움이 되도록 여당과 야당 모두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는 달리 현재 정치권은 서로 소송 전에 들어갈 것으로 관측되는 등 진흙탕 싸움을 예견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가능할지, 이번 기회에 ‘종북’이란 단어를 뿌리 뽑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태경 "김기종 변호인이 더한 종북"

‘종북’에 대한 논란은 이제 김씨의 담당 변호인인 황상현 변호사에게까지 번진 상황이다. 황 변호사는 김씨를 두고 “예전에 분신을 해 수전증이 있고 손가락도 틀어져 있어 사실상 살해할 능력은 안되고, 치밀하게 준비한 것도 아니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황 변호사를 두고 “김씨보다 더 한 종북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 의원실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황 변호사를 더한 종북으로 주장하는 근거가 있음을 알렸다. 자료를 살펴보면 한 포탈사이트에서 황 변호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4개의 글을 볼 수 있다.

문제의 글은 모두 특정사이트에 개제된 것으로써 2011년에 집중적으로 작성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지도자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며’라는 제하의 글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행 열차에서 지병으로 갑자기 서거하였다. (중략) 내년은 강성대국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면서 북미대결의 종지부를 찍는 마당이었는데…”라고 적혀있다.

‘황장엽, 북한 핵융합 성공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해서는 해당 사이트에 링크를 걸며 ‘뒤늦게 찾은 뉴스다. 그렇다면 판은 끝났다고 봐야지. 음~~~’이라며 의미심장한 댓글을 달았다.

문제의 사이트는 현재 비공개카페로 전환돼 열람이 불가능한 상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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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