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VS 서청원 벼랑 끝 치킨게임

누가 죽고 누가 살든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한나라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하였다.” 정도전은 술에 취하면 위와 같은 말을 자주 했다고 전해진다. 신하가 군주를 이용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생각이었다. 이와는 달리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피를 흘릴 때도 단심가를 불렀다. 감히 두 위인을 현대 정치인에게 대입할 수 없지만 일련의 상황은 너무도 흡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김무성과 서청원. 두 사람의 격돌에 여권 전체가 흔들릴 정도다. 지난 2일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무성 대표 앞에서 책상을 치며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이게 뭐 하자는 거냐.”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이하 최고위)에서 두 사람은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처럼 험악하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군현 사무총장이 올린 부실 당협위원장 8명에 대한 교체 건 때문이었다.

점진적 혁신
전면적 개혁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교체 의견이 나오는 부실 당협위원장은 서울 동대문을(김형진)과 부산 사하을(안준태), 인천 부평을(김연광), 충남 공주(오정섭)를 포함해 총 8명이다. 교체가 거론된 이들 대부분은 친박계 핵심인물인 홍문종 전 사무총장이 임명한 인사들로 지난해 7·14 전당대회 당시 서 최고위원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측근의 교체를 제안하자 서 최고위원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친박계는 이런 김 대표의 제안이 ‘표적교체’를 위함이라 주장했다. 논쟁이 이어지자 서 최고위원은 고함을 치며 책상까지 내려쳤고 급기야 서류를 집어던지며 항의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의 언급에 따르면 고성과 막말까지 오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서 최고위원은 논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회의장을 빠져나온 그는 기자들 앞에서 “나중에 여러분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날이 있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유연하고 여유롭게 반응했다.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정당에서 소리가 크게 들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적교체가 아니라는 뜻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했다. 김 대표는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에서 만장일치로 올라온 안이다”고 말했다.

현재 당협위원장 교체에 대해서는 친박과 비박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찬성하는 비박계 입장에서는 “20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만큼 새로운 인사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하는 친박계 쪽에서는 “멀쩡하게 있던 당협위원장의 목을 치는 일이고 사망선고인 만큼 앞으로 계속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입장을 전한다.

친박·비박
전면전 불가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이는 ‘소리 없는 전쟁’이라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당권을 잡고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음과 동시에 이미 이러한 일이 예견된 사태라고 말한다. 실제로 국무총리후보자로 당시 이완구 원내대표가 지명된 후 기존 원내대표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각 언론사들은 비박과 친박 간의 전쟁을 예상한 바 있다.


당협위원장 교체는 차기 공천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두 세력 모두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선거가 치러지는 해당 지역의 위원장으로서 정당의 지역책임자를 뜻한다. 결국 이들의 존재는 공천 시기가 다가올수록 더욱 중요해진다는 말이다.

김 대표가 공약한대로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할 경우 당협위원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일반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선출하는 방식인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면 당협위원장은 결국 국민과 후보자 간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할 것이고 그렇다면 당협위원장의 입김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 친박계 관계자들은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상황에서 이번에 당협위원장 교체까지 주장하는 것을 보면 결국 그의 의도가 엿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부에서도 친박인사들이 당협위원장 교체의 의도를 친박계 ‘공천살인’으로 해석하는 것을 두고 지나친 억측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책상 치며 “뭐 하자는 거냐” 고성에 막말
친박계 ‘공천학살’, 비박계 ‘부실당협 교체’

결국 ‘부실 당협위원장’으로 낙인찍힌 위원장들은 지난 4일 김 대표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내는 등 강수를 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김 대표는 지난 대표경선과정에서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내년 총선을 불과 1년 앞두고 현역 당협위원장들을 몰아내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또한 질의서를 통해 김 대표를 둘러싼 의혹을 제기했다. 질의서 내에는 “특정인을 내려보내기 위해 지역을 비우려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이게 공천 관여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즉 세간에서는 지금 ‘김 대표가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다’는 불편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당무감사 결과를 보면 김 대표가 당협위원장 교체를 주장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당협위원장들이 지역구에 거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지역 민심에 스며들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동안 당협을 방만하게 관리해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전직 당협위원장이 자기와 친한 사람을 ‘대리 위원장’ 자리에 앉히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의혹에 부실 당협위원장으로 분류된 김형진 당협위원장(서울 동대문을)이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시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협위원장에 선출된 이후 동대문구 장안동으로 이사했고, 줄곧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지역구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다”며 “날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칼바람을 맞으며 수많은 행사에 참여하는 등 지역을 다져온 그 많은 노력과 시간들이 이처럼 간단히 무시될 수 있다는 게 의아하다”고 주장했다.

여러 의혹에 이번 부실 당협위원장을 선정한 조강특위는 공식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보도자료를 보면 “해당 지역의 시·도당위원장의 의견 청취 후 8곳을 선정하여 3월2일 최고위원회 의결사항으로 보고한 것이다”며 “당헌당규상 절차적인 문제는 없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또한 ‘미리 내려올 사람이 있다’ ‘특정인을 내려 보내기 위해 지역을 비우려 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라 보도했다.

대표경선 후
갈등 최고조

두 사람은 당대표를 두고 이미 한판 승부를 펼친 적이 있다. 이 시점을 두고 결정적으로 두 사람을 멀어지게 된 계기라는 의견이 정계 관계자 대부분의 주장이다.

지난해 7월 새누리당은 새로운 당대표 선발을 위한 전당대회를 치뤘다. 총선까지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라는 의미에서 두 사람에겐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대부분의 정치평론가들은 당선이 되는 사람이 최하 대권주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후보에 머물지 않고 대권을 잡을 수도 있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왔다. 두 사람 모두에게 건곤일척의 순간이었다.

결과는 김 대표의 승리로 돌아갔다. 여야 모두 의외의 결과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김 대표보다 서 최고위원이 경력이나 영향력 측면에서 더 우세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서 최고위원이 친박의 좌장격인 정계원로라는 측면에서 더욱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김 대표가 3만9553표를 받아 서 최고위원(2만8427표)을 약 1만1000여표 차이로 크게 누리고 대표에 당선됐다.

당선이 발표되자 서 최고위원은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발표가 끝난 후 그는 “김무성 후보가 당대표가 된 것을 대단히 축하한다”며 “김무성 대표가 위기의 대한민국, 박근혜정부,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화답해 김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며 “새누리당이 보수 혁신의 아이콘이 되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당대표 두고 건곤일척 대립 ‘불화의 서막’
악순환 끊지 않으면 동반 추락 가능성도

그러나 이후 김 대표가 보여준 모습은 서 최고위원이 기대하던 것과는 많이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당선 직후 김 대표는 간담회 자리에서 향후 당·청 관계에 대한 질문에 “그동안 당에서 청와대에 말할 것은 했지만 부족하다고 많이들 생각한다”며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할 말은 하는 당·청관계를 수립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김 대표의 발언을 친박계에서는 곱게 볼 리 만무했다.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두 사람은 여러 사안에서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여 왔다. 대표적인 것이 여의도연구원장(이하 연구원장) 임명을 두고 벌인 기 싸움이었다. 서 최고위원은 김 대표가 박세일 연구원장 임명을 강행하면 사퇴를 불사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때도 그들은 회의장에서 고성을 주고받았다.


서 최고위원은 불편한 심기를 여러 차례 여과 없이 드러냈다. 지난 1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서 최고위원은 김 대표 취임 후 다소 소원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당·청 관계에 대해 “김무성 대표가 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대표가 열심히 교감도 하고 정부의 정책을 성사시키는 데 노력하고,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김 대표가 지금 잘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진배없었다.

정치전문가들은 두 거물 간의 싸움이 결국 계파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계파 간의 갈등을 점점 줄여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에 반해 새누리당은 계파간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


학살의 악순환
공천 트라우마

현재 친박계는 과거 ‘공천학살’ 사건을 떠올리며 현실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08년 총선이 있기 전 친이계 쪽에서 공천권을 휘둘러 친박계 인사들을 대거 탈락시킨 일을 회상한 것이다. 이후 친박계는 ‘연대’를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자칫 계파 와해까지 갈 뻔한 사건이 쉽게 잊혀질리 없었다.

결국 이는 피의 보복으로 이어진 바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친박계가 친이계 인사들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킴으로서 보복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이러한 악순환은 현재까지 끊어지지 않아 문제시되고 있다. 이전 사례를 참고해 앞으로의 일을 유추해 보면 2016년 총선에선 비박계가 친박계를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킬 차례라는 것이다.

김성한 시사평론가는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되풀이되는 현 상황을 우려했다. 그는 “(공천 학살에 의한) 트라우마를 한번 겪게 되면 정치인들은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이번만큼은 정치인들이 공천 트라우마를 다시 겪지 않도록, 그런 악순환을 끊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다”고 말했다.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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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