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NET세상> 탁재훈 불륜 진실공방

“외도” vs “언플” 진흙탕 싸움

[일요시사 취재1팀] 한종해 기자 = 방송인 탁재훈이 아내 이효림씨와 진흙탕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씨는 탁재훈과의 이혼 소송 가운데 세 명의 여성과 불륜 관계였다고 주장하고 있고 탁재훈은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언론플레이라며 맞서고 있다.

탁재훈은 지난 2001년 중견 식품기업 진보식품 회장의 막내딸인 이효림씨와 결혼,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재벌가끼리의 결합이라는 사실로 화제가 됐다.

탁재훈의 부친 배조웅씨는 서울경기인천지역 레미콘협회 회장사인 국민레미콘의 오너 겸 CEO다. 탁재훈은 과거 '레미콘 홍보대사'로 활동한 바 있다.

이씨는 키 172cm의 슈퍼모델 출신으로 국내 중견 식품회사인 진보식품 이승준 회장의 막내딸이다. 진보식품은 '알지김치'로 알려진 포장 김치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며 연간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현재 강남에서 요리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카더라' 난무

탁재훈 부부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 별거설이 나오면서 부터다. 당시 두 사람이 SBS <좋은 아침>에 동반 출연, 별거설을 부인하면서 논란은 가라앉는 듯 했다. 지난해 6월 이혼설이 불거졌을 때도 탁재훈은 "잘 살고 있다"고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한 달 뒤 탁재훈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이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소송을 제기한 시기는 이혼설이 제기된 6월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연예 관계자들은 탁재훈과 이씨가 성격차이를 겪었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갈등을 좁히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 달 뒤 이씨는 탁재훈을 상대로 반소를 제기했다. 반소란 소송 중 피고가 소송절차를 이용해 원고를 상대로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혼 소송 중에 반소를 제기하는 것은 대부분 피고인이 억울하다고 판단했을 경우 이뤄진다.

같은 해 9월1일 열린 첫 번째 변론기일에 두 사람은 모두 모습을 드러내기 않았다. 법률대리인을 통해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 10일 문제의 주장이 제기됐다. 이날 한 매체는 탁재훈이 이혼 소송 중 세 명의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에 이씨가 해당 여성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씨는 "세 명의 여성이 남편과 부정한 관계를 맺어 부부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며 30대 여성 2명과 20대 여성 1명을 상대로 이미 지난달 서울가정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한 사람당 5000만원씩 배상을 요구했다.

이씨는 또 "세 명의 여성 가운데 두 명은 지난 2011년부터 지금까지 탁재훈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으며 관계를 맺었고 또 다른 여성 역시 이혼 소송 기간에 탁재훈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며 탁재훈이 이들 여성에게 수억원의 돈을 쓰면서도 정작 가족에게는 제대로 된 생활비나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탁재훈은 즉시 반박에 나섰다. 탁재훈의 법률 대리인은 "탁재훈이 바람을 피웠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다"며 "외도 사실이 있다면 간통 등으로 형사고소를 하지 왜 손해배상을 청구하느냐"고 밝혔다. 이어 "이혼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명백한 언론플레이"라며 "바람을 피웠다 식의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이나 손해배상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결혼 13년 만의 파경…쉽지 않은 이혼
소송과정서 불거진 의혹들 '사실일까'


실제로 탁재훈 측은 지난 11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탁재훈은 1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해당 언론사 및 담당기자, 이씨를 상대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및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탁재훈 측이 강경대응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켜보는 누리꾼들은 할 말 못할 말을 쏟아내고 있다. 각종 ‘카더라’격 제보도 이어지는 상황. 사태를 끝가지 지켜봐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입장도 있지만 소수의 목소리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이디 clas****은 "방법은 하나. 그 여자들 신상 밝히고 삼자대면하자. 완전 재미있는 막장 드라마일세. 있는 집 딸이 여자 말고 이혼 소송 이유가 있겠냐?"고 말했다.

아이디 rosy****도 "그런데 어차피 명예훼손은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걸 수 있음. 그거 걸었다고 탁재훈이 억울한가보다 라는 건 좀 오바 같다. 그리고 아내가 여자 3명이나 언급했으니 뭔 증거를 갖다대겠지. 없으면 진짜 이상한 여자 되는 거고. 뭐 남의 집안 싸움에 편 가를 거 있나. 애들만 불쌍"이라고 전했다. 아이디 happ****도 "돈 많은 여자가 이미지 타격 입을 거 뻔히 알면서 거짓말을 하겠어? 그리고 지금까지 들은 제보만 몇개인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라고 주장했다.

아이디 vacc****은 탁재훈이 이씨와 언론사, 기자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뉴스 댓글에 "부인이 탁재훈과 외도녀들의 일치되는 출입국 기록이랑 송금 내역이랑 카드 사용 증거 다 갖고 있다는데 그럼 그건 뭡니까?"라는 확인되지 않은 글을 올렸다.

해당 댓글은 불과 30여분 만에 20여개가 넘는 답글이 달리며 화제로 떠올랐다. tepr****과 sere****, waaw****, qkra****, bben**** 등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들은 "부인이 남편 출입국 기록이랑 송금 내역 입수하려면 해킹해야 한다" "법대 출신 회사원인 나도 모르는데 출입국 기록 누구 마음대로 알아볼 수 있나? 여긴 전부다 사시 패스한 판검사들만 있나보다" "일반인이 출입국 기록을 자기 마음대로 알아보냐. 마누라가 형사야?" "출입국 내역은 본인 외엔 떼기 힘들다" 등 "말도 안된다"는 답글을 달았다.

반면 아이디 mark****과 suha****, fran**** 등은 "이혼 소송 중이면 상대 측 통신사에 요구할 수 있다" "증거가 없었으면 소송을 어떻게 걸었겠느냐" "출입국 기록, 송금 내역, 카드 내역, 소송 중이면 상대방 측에서 다 알아볼 수 있다" 등의 답글을 달며 반박했다.

과연 진실은?

일부 누리꾼들은 "사태를 좀 지켜보자"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이디 kjsp****은 "뭐든 진실이 이긴다. 탁재훈 말이 맞다면 응당 부인과 해당 언론사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고 만약 외도가 사실이면 탁재훈은 영원히 연예계를 떠나라. 아무튼 탁재훈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써 당신의 말이 진실이길 바란다"는 의견을 남겼다.

아이디 soki****도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중요한 건 둘 중에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탁재훈씨 개그 좋아했었는데 방송에서 못 봐서 안타깝네요. 잘못한 게 있으면 인정할 건 인정하고 거짓은 밝혀져서 오해가 풀리길 바라요"라고 말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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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