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타난 오세훈 노림수

복지 논란 틈타 여의도 향해 “날 좀 보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정책적으로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은 바로 ‘증세 없는 복지’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많은 경제학자와 조세학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박 대통령은 끝까지 이 공약을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핵심공약사항 중 하나였다. 그러나 기존 주장과는 달리 눈에 띄는 서민 증세로 항간에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여론이 악화되어 가던 중 언론에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인터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잊혀졌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진원지는 바로 언론이다. 지난 6일부터 인터뷰를 통해 소개되던 오 전 시장의 근황은 최근 불거진 증세와 복지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더욱 주목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민들은 인터넷을 통해 「돌아온 오세훈 “밖에서 바라본 한국은 답답했다”」 「오세훈 “복지논쟁, 국민이 바르게 복원 중”」 등과 같은 제하의 인터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상급식 반대

2011년 8월경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투표로 가는 과정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오 전 시장이 전면적·단계적 무상급식 안을 주민투표에 부치려 하자 반대하는 측에서 서울행정법원에 집행정지신청을 냈던 것이다. 그러나 ‘투표문안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사유로 기각됐고 주민투표는 그대로 진행됐다.

한편 오 전 시장은 투표결과에 시장직을 내걸어 화제가 됐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할 경우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선거가 시작되기 3일 전 밝힌 것이다. 그는 “최근의 복지 논쟁은 ‘아니면 말고’식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며 “(주민투표에) 정치인생을 건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았다. 당시 오 시장과 한나라당은 저소득층 30%에 해당되는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교육감선거와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를 의식한 전략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사태를 지켜보던 당시 민주당은 초등학생은 물론 중학생까지, 의무교육 대상자라면 누구에게나 무상급식을 시행하라는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른다.

투표결과는 참담했다. 2011년 8월24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서울시민들의 최종투표율이 25.7%에 그쳐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투표함은 개봉도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면 하늘도 도와주지 않았다. 투표가 있기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최악의 수해가 서울시를 덮쳤던 것이다. 민심이 악화됐고 부정적 여론이 급속히 확산됐다. 결국 오세훈은 8월26일 시장직을 사퇴했다.

본인이 여론을 악화시킨 면도 있었다. 한창 주민투표에 대한 갑론을박이 진행되던 2011년 8월12일 갑자기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이다. 시민들은 오 시장이 주민투표를 10여일 앞둔 시점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투표결과에 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벌인 '정치쇼'에 불과하다며 쓴소리를 했다.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지원 의원은 이런 오 전 시장을 두고 “시장직을 지키려고 주민투표 선거운동 하느냐”며 비판했다. 여·야를 통틀어 의원들 사이에서는 ‘오 시장이 대권주자였냐’는 반응도 있었다.

결국 주민투표에 실패한 오 전 시장은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저의 거취로 인한 정치권의 논란과 행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즉각적인 사퇴로 저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민투표에 대해서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4년 후, 오 전 시장은 인터뷰를 통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련의 발언 속에서 오 전 시장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를 대하는 여론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여전히 복지를 늘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고수한다. 


MBN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오 전 시장은 “선거 때마다 표를 얻기 위해서 복지정책을 내놨기 때문에 지금 누더기복지가 된 것이다”고 주장했다. 다른 채널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야당은 표 복지, 표 세금 얘기를 여전히 하고 있지만 국민은 이미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오세훈 왈 “4년 전 지금 상황 예견”
책 출간은 여의도 복귀 위한 출사표?

오 전 시장은 현재 불거지고 있는 ‘복지 논쟁’에 대한 화살을 야당 쪽으로 겨누고 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야당의 무상급식 주장은 결국 표 복지(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적 복지)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해 야당을 향한 날선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행한 복지에 대해서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오 전 시장은 여러 언론을 통해 “대통령께서 지금 무언의 설득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며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 복지혜택이 늘어나기 힘들겠구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정도로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의 이 같은 발언은 언뜻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이 ‘증세가 없으면 복지는 필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일깨우기 위해 일부러 실시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 논란이 예상된다.

이러한 오 전 시장을 두고 세간에선 ‘선별 복지의 투사’라 여긴다. 또한 “이미 4년 전에 오늘과 같은 상황이 일어날 줄 예측하고 있었다”는 그의 말을 인용해 예지력을 지닌 정치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국민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니 새누리당 내에서도 그의 복귀에 대한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동시에 복귀 시점에 대한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오 전 시장의 복귀를 기정사실로 두고 4·29재보선을 통해서냐 아니면 총선을 통해서냐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복귀시점 관심

오 전 시장의 생각은 어떨까.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현실정치 참여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는 3월경으로 예정된 본인의 책 출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복귀를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치인에게 책은 제갈량의 출사표와 같다는 의미에서 대부분 정계 복귀를 예상하고 있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는 4·29재보선에 오 전 시장을 내보내야 된다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선별복지’ ‘복지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오 전 시장의 성향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맞아떨어진다는 측면에서 김 대표가 오 전 시장에게 공천을 주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재보선 지역으로 결정된 곳에 새누리당이 내놓을 카드가 마땅찮다는 측면에서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내년 총선을 노린다는 의견도 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오 전 시장은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 출마의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말을 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면서도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겠다. 3~4년 떠돌 만큼 떠돌았다”고 말해 정치 재개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정치평론가들은 오 전 시장을 두고 ‘기존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먹고 성장한 인물’이라 평한다. 공직선거법이 ‘오세훈 법’이라 불린다는 점을 증거로 제시한다. 그 덕분에 서울시장은 물론 대권 얘기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도 마찬가지라 주장한다.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오 전 시장은 논란의 중심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을 보면 일종의 기시감마저 든다. 과연 이러한 오 전 시장의 행보가 전략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복지 문제를 걱정해서인지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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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