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 사는’ 동물들의 반란 막전막후

관람객도, 사육사도 위험하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더 이상 진짜 동물이 아니다” 인도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가 말했다. 하지만 동물은 자신의 타고난 본능을 거부할 수 없었다. 행복과 즐거움이 있어야 할 동물원. 불과 2년 전 호랑이에 물린 사육사가 숨진 데 이어 또 다시 맹수에 의한 동물원 사육사 사망 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대낮에 사육사가 사자 두 마리에 물려 숨진 것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내 동물원 맹수마을에서 사육사 김모(52)씨가 사자 방사장 안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내실 소방점검 중이던 동료직원이 발견했다. 사고는 오후 1시에 20분간 진행된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끝나고 김씨가 방사장에 혼자 남아 뒤처리를 하면서 발생했다.

방사장 혼자 정리
사자에 물려 숨져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된 당시 곁에는 암수 사자 한 쌍이 있었다. 사자가 갇혀 있어야 할 내실 4개 중 1개의 문이 열린 상태였다. 김씨를 처음 발견한 동료는 방사장에서 김씨가 하의가 벗겨진 채 엎드려 있었고, 그 주변을 암수 사자 한 쌍이 어슬렁거렸다고 증언했다.
 
김씨를 공격한 사자는 2006년생 수컷과 2010년생 암컷으로, 두 마리 모두 어린이대공원에서 자체 번식한 종이다.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1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김씨는 당시 얼굴과 우측 목, 양쪽 다리에는 물린 것으로 보이는 깊은 이빨 자국이 발견됐다. 종아리와 넓적다리 근육까지 손상된 상태였다.
 
사자들은 내실 문이 열리면 방사장에서 내실 안으로 스스로 이동하도록 훈련돼 있다. 사육사는 사자들을 모두 내실로 몰아넣고 내실 문을 잠근 뒤 방사장에 들어가 청소 등을 한다. 어린이대공원 관계자는 CCTV 분석 결과 방사장과 격리하기 위한 내실 문을 미처 닫지 않은 김씨가 이 사실을 모른 채 방사장에 들어갔다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사장은 내실 1, 2 로 바로 앞쪽에 있고 방사장과 격리하기 위한 문이 있다. 방사장에서 훈련 등이 끝나면 문을 통해 바로 내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잇단 인명사고…안전불감증 동물원
“안전조치 대책 마련” 또 뒷북 대책
 
김씨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사자 두 마리를 내실로 유인했다. 김씨는 사자가 좋아하는 내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내실 1, 2문을 모두 열었다. 사자 두 마리는 모두 내실 2로 들어갔다. 김씨는 내실 2에 있던 사자 두 마리를 다시 내실 1로 옮겼고 열었던 내실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내실 2의 문은 닫았으나 내실 1의 문을 닫지 않았다. CCTV를 살펴보면 내실 2의 문을 닫는 모습은 보이나 내실 1의 문을 닫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고 이후 동물원 측은 사자 우리를 폐쇄하고 사자를 완전히 격리 조치했다. 어린이대공원은 AI(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지난 8일 이후 동물원 전체를 폐쇄하는 임시휴장에 들어가 시민 관람객은 없었다. 김씨는 사육사 경력 20년에 맹수사육만 3년째 맡아왔다고 대공원 측은 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며, 사고 원인규명을 철지히 하는 동시에 예우에 맞게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어린이대공원은 14일 “서울시설공단 인사규정에 따라 고인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 한다”며 “한 직급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능동 어린이대공원 사자 방사장에는 CCTV가 있지만 사자 두 마리가 30여 분간 방사장을 떠도는 상황을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허술한 관제센터 관리와 119 늑장신고 등 안전관리 수칙 부재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숨진 사육사는 이날 오후 2시22분 방사장 청소를 위해 방사장에 들어가 1분 후 사자 두 마리의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사육사가 최초 발견된 시간은 오후 2시34분. 소방담당 직원이 소방점검을 위해 사자 방사장을 찾았을 때였다. 어린이대공원 CCTV관제센터는 사자 방사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자 방사장에는 동물 움직임에 따라 촬영되는 CCTV 한 대가 가동중이었다. 소방담당 직원은 방사장 출입문을 닫은 뒤 인근 다른 사육장 동료에게 알렸다. 오후 2시36분이 돼서야 다른 직원들에게 무전으로 상황을 전달했다. 무전을 받은 다른 사육사 4명이 오후 2시37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2시47분에 수의사가 사고현장을 확인한 뒤 119에 신고했다.    
 
결국 CCTV관제센터는 소방담당 직원이 최초 발견할 때까지 30여 분간 방사장에서 떠도는 사자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어린이 대공원 관계자가 “CCTV담당 직원이 방사장만 지켜보고 있을 순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30분이란 시간을 감안하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어린이대공원 측
사실상 방치 지적
 
어린이대공원 측은 또 김씨를 방치한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단 측은 “최초 무전으로 연락 받고 동물을 마취해 제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며, “사람을 먼저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에 신고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맹수들의 공격성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울대 수의학 신남식 교수는 YTN과 인터뷰에서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자연상태와 달리 사육공간이 좁아 운동량이 적고 무료함을 느낀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놀잇감을 넣어주거나 먹이를 숨겨 활동성을 높여 건강상태를 좋게 유지하는 활동이다”고 반박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향후 시설물에 대한 안전조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육사가 방사장에 들어가기 전 동물 내실 출입문의 개폐 여부 확인과 사육관리 동선상에 경보장치를 설치하겠다고 덧붙였다. 
맹수 퇴치용 스프레이, 전기 충격봉 등 개인 안전 장구류를 추가로 확보해 유사시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매뉴얼에는 ‘맹수는 반드시 내실 입실 후 마릿수와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방사장에 들어간다’ ‘100% 안전한 상태에서만 작업하며 항상 침착하게 행동한다‘ 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번 사고는 지난 2013년 11월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호랑이에게 사육사가 물려 보름 만에 사망한 사건과 판박이다. 사고 발생 옆 휴게음식점 주인이 혼자 쓰러진 사육사를 최초로 발견하고 근처 동물사 사육사에게 연락했다. 현장에 사육사들이 도착했을 당시 이번 사고와 똑같이 방사장 문이 열린 채 호랑이가 나와 있고 사육사가 쓰러진 상태였다. 해당 직원은 1987년 서울시에 입사한 20년차 베태랑 사육사다. 
 
이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방사장 안전관리를 위해 사육 방사장 별 한 개씩 CCTV를 설치했다. 개폐시 알림 장치와 사육사 이동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여 관리자의 안전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육사는 매일 안전수칙을 읽고 근무에 임하도록 매뉴얼을 바꿨으며, 우리에 들어갈 때는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상시 무전기를 휴대하도록 했다. 특히나 당시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측은 “2인 1조로 근무했어야 했는데 잘못했다”며 “앞으로 사고방지를 위해 반드시 2인1조 근무를 철칙으로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다짐했다.
 

그러나 이번에 숨진 김씨는 혼자 근무를 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과천 어린이대공원은 자기 실정에 맞게 매뉴얼을 만들어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굳이 과천 서울대공원의 매뉴얼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능동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은 모두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동물원이다.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는 게 당연하다. 이 때문에 어린이대공원의 설명은 ‘어리석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대공원의 ‘사육관리 업무 일반 수칙’에는 <사육사는 안전에 가장 역점을 두고 침착하게 행동하며 단 한 번의 실수나 무관심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동물사 출입문은 반드시 잠금장치를 하고, 열쇠는 근무자가 소지하며 퇴근시 당직근무자에게 인계해 동물원 열쇠함에 보관한다><동물사 순찰 및 청소 시 신호용 호루라기나 무전기는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이외에도 사육사 업무 일반수칙은 10여가지나 된다.
 
하지만 이날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2인 1조 근무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날은 동료 사육사가 휴가를 낸 상태여서 김씨 혼자 근무했다는 것이 어린이 대공원 측의 설명이다. 관계자는 “사육사 두 명이 대부분 맹수를 관리하다 보니 휴무일 등으로 일주일에 두 번은 사육사 한 명이 관리한다”고 말했다. 숨진 사육사 김씨는 결국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변을 당하고 홀로 방치됐다. 

“타고난 본능은
거부할 수 없다”
 

이날 김씨는 신호용 호루라기나 무전기도 소유하지 않았다. 여론은 어린이대공원은 서울대공원의 사육관리에 준하여 운영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이 평소 김씨에게 사육사 관리 수칙 등을 정확하게 교육을 했는지에 대해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비극의 현장, 어린이대공원 사자 방사장에 들어선 김씨는 혼자였다. 열린 문도 무심코 지나쳤고 맹수를 발견하고도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쓰러지고 난 뒤에도 목숨이 오가는 천금같은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다.
 
어린이대공원 측의 CCTV 판독 결과 발표대로 이번 사고 원인이 사육사가 사자 두 마리가 있던 내실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명의 사육사가 크로스체킹을 했을 경우 내실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좀 더 정확히 확인할 수도 있었다. 
 
왜 어린이대공원은 맹수사에서 2인1조 근무제를 의무적으로 운영하지 않았을까. 공식적인 해명은 어린이대공원은 사육사 혼자서도 관리할 수 있는 단순한 동선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전하다는 구조는 이번 사고처럼 부주의 한번에 무너질 만큼 허약했다.
 
어린이대공원을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사고가 난 동물원은 현재 96종 505마리의 동물을 14명의 사육사가 관리하고 있다. 맹수사 사육사는 2명뿐이다. 하루도 쉬지않고 두 사람이 일주일 내내 함께 근무할 수는 없다. 공백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결국 사육사를 증원해야 하는데, 공기업인 서울시설공단이 운영하는 어린이대공원의 인력증원은 제약이 많다. 증원하더라도 전문성과 경험이 요구되는 사육사를 단기간에 키우기는 어렵다.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 동물전염병이 돌 때마다 휴장해 관람객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적자액도 매년 50억∼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육사 매뉴얼에서도 2인1조 근무제는 논란이 된다. 서울대공원은 2013년 사육사가 호랑이 공격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2인1조 근무를 의무화하도록 매뉴얼을 고쳤으나 어린이대공원 매뉴얼에는 여전히 이 같은 규정이 없다.
 
이는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이 같은 서울시 산하지만 조직 성격이나 운영주체가 다르고 업무 연계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대공원은 서울시가 사업소 형태로 운영한다. 동물원과 식물원을 직영하고 놀이공원인 서울랜드는 민간에 위탁을 하는 형태다. 직원 신분도 공무원이다. 
 
반면 어린이대공원은 서울시가 위탁을 준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고 있다. 직원도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하는 일은 거의 같은데 조직은 별개인 셈이다. 서울시가 서울대공원이 운영방식을 바꿔도 어린이대공원이 굳이 따라가지 않게 되는 배경이다.
 
스트레스 극에 달한 
동물들 갈수록 포악
 
이 때문에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을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합이 안된다면 활발한 연계 업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실제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 통합은 서울대공원 호랑이 참사 후 구성된 서울대공원 혁신위원회 논의 과정에서도 거론됐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정기회에서도 통합 필요성이 제기되자 박원순 시장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동물원 관련 법규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동물원법’이 발의 2년 만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동물원법은 동물원 내 동물의 사육환경을 향상시키는 내용이다. 사육환경을 개선해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완화하면 관람객이나 사육사에 대한 공격도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깔렸다. 동물원법은 그동안 주 소관 부처를 어디로 하냐는 문제를 둘러싼 부처 간 갈등으로 표류했다. 현재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환경부가, 동물보호법은 농림축산식품부가, 해양생태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해양수산부가 각각 따로 관리하고 있다. 2년여 간의 논의 끝에 결국 해당 법은 환경부 소관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지금은 동물원 시설관리 및 소속 동물의 사육조건 등을 규정한 법령이 전무한 상태다. 동물보호법과 농림축산식품부의 시행령이 전체 동물의 관리에 대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동물원의 설립 규정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제각기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육 규정한 법령
아직 전무한 상태
 
동물원법은 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과 사육동물의 관리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용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동물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훈련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동물원법이 통과될 경우 사육의 편의 등을 위해 전기충격기, 채찍, 족쇄 등을 사용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또 동물의 개체 수, 폐사, 질병의 발생에 관한 현황 등 사육현황을 매년 2회 환경부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육사 죽인 사자, 어떻게 되나?
 
전문가들은 동물원에서 ‘사고 사자들’에 대해 사고 원인과 사자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2년 전 비슷한 참극을 일으켰던 서울대공원의 호랑이는 현재 징계 중이다.
2013년 11월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한 과천 서울대공원의 수컷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는 지난해 5월 개장한 ‘백두산 호랑이 숲’ 내 60∼70평 정도의 공간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당시 서울대공원은 사육사를 물어 죽인 호랑이 처리를 놓고 고심했다. 일부에서는 살처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른 측면에서는 2인1조 근무제를 어기고, 호랑이를 작은 여우우리에 수용하는 등 동물원의 관리 책임도 커 호랑이에게만 가혹한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여론도 강했다. 당시 사고를 일으킨 시베리아 호랑이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멸종위기종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동물원에서 비슷한 사고가 생겼을 경우를 보면 상황이 위급하면 현장에서 사살하기도 한다. 2013년 제주도 동물원에서 사육사를 물어 죽인 반달곰 두 마리의 경우 사살됐는데 현장에서 진정하지 못하고 계속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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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