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이고 꼬인 당·정·청 ‘2인삼각구도’ 막전막후

여의도서 물 먹은 친박…인왕산 바라보며 “~마마”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숫자 3은 한민족과 가장 인연이 깊은 숫자다. 대대로 초가는 삼간으로 짓고 살았고 씨름은 삼세판을 해서 승자를 결정지었다. 삼신(三神)을 믿었고 삼재(三災)를 우려했다. 조선시대 의정부 최고 관직은 3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라 칭했다. 3이란 숫자는 음양이 결합한 완전한 수이면서 가장 균형 잡혀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일 차기 원내대표로 유승민 의원이 당선되면서 정치계에서도 ‘2인삼각구도’가 완성됐다.

그동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고독한 복서와 같았다. 박근혜 정부를 향해 펀치를 날려도 돌아오는 건 친박의 야유와 카운터펀치였다. 슬슬 그로기에 빠져들 때쯤 김 대표의 등을 받쳐 줄만한 트레이너가 등장했다. 더불어 그는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경제통’이었다. 바로 유승민 의원이다. 현재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하다는 점에 뜻을 공유하고 있는 이 둘은 ‘강한 새누리당’을 위한 한판승부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다.

완벽한 균형
2인삼각 구축

9~10일로 예정된 국무총리 인사청문회가 문제없이 흘러간다면 당·정·청은 이제 완벽한 2인삼각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청와대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가장 곁에서 보좌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있고 당에는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가, 그 사이에는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새로 임명될 이완구 총리가 위치하는 구도다.

구도는 안정적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끊임없는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논란만 봐도 알 수 있다. 유 원내대표가 당선 후 언론을 통해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이다”라고 당당히 말했는데 이는 박 대통령이 내세운 핵심공약을 향한 직격탄이었다.

실제로 유 원내대표는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앞서 4일 국회 기획재정위 현안보고에서 “담뱃값 인상이나 연말정산 공제 변경은 증세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인 최 부총리를 향해 “학문적 정의를 따질 문제가 아니고 국민들께서 느끼시기에 세금이 올랐다고 느끼면 증세”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서 유 원내대표는 “이상한 정의나 그런 것에 매달리지 말고 국민들 앞에 솔직하고 정직할 필요가 있다. 이건 굉장히 기본적인 문제”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복지와 증세에 관한 자신의 견해도 명확히 발언했다. 그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아주 장기적인 목표를 ‘중부담-중복지’로 두고 거기까지 어떤 경로로 언제 어떻게 세금을 올릴 거냐. 그 로드맵을 가지고 정치권이 국민들과 함께 대타협을 하자”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중부담-중복지 카드 또한 박 대통령이 그간 밝힌 공약 기조와는 다른 것이었다.

상호견제 가능한 삼각구도 형성
증세 없는 복지로 1라운드 시작

이러한 유 원내대표의 거침없는 발언에 일각에서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그리고 그 믿는 구석이 김 대표라고 사람들은 추측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김 대표가 유 원내대표의 발언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통해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지나친 복지로 국가재정이 흔들린 그리스와 아르헨티나를 예로 들며 포퓰리즘에 빠진 정책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당의 실세로 떠오른 이 둘의 공세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세간에서 들리는 말들이 모두 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사항에 반하는 것들이라 더욱 그렇다. 최 부총리가 즉시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그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무성·유승민
당 실세 연합

4일 최 부총리는 “복지 문제에 대해 정치권에서 컨센서스(합의)가 이뤄진 후 재원조달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즉 국회에서 해법을 찾아 달라는 의미였다. 책임회피가 의심될 법한 발언이었다.


이어 최 부총리는 재차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말을 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복지 이슈를 정치권으로 넘기면서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그는 ‘증세 없는 복지가 아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스스로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며 “현정부의 복지나 증세 문제에 대한 입장을 언론 등에서 그렇게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누가 먼저 말했느냐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지금까지 “증세는 최후의 수단”이라 주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증세를 펼친 경제부총리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것이 현재 중론이다.
 

어쨌든 바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에는 청와대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그동안 친박의 좌장이라 불린 서청원 최고위원의 말을 들어보면 청와대의 구원투수를 자청했다는 의혹이 사실처럼 보인다.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의 파상공세에 서 최고위원이 자제를 당부한 것이다.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우리가 모두 새누리당 정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당·정·청은 칸막이 없는 한배다. 물이 새도 한쪽만 살겠다고 피할 곳도, 피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해 최근 증세 없는 복지를 사이에 두고 높아지고 있는 당·청 간의 갈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서 그는 “어려운 문제는 완급조절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에서는 서 최고위원이 ‘완급조절’을 언급함으로써 당이 청와대에 대해 비판 일변도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보고 있다. 서 최고위원이기에 가능한 발언이라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완구 의원까지 총리 자리에 앉게 된다면 완벽한 중재 라인이 형성될 것으로 청와대는 기대하고 있다. 서 최고위원이 채찍이라면 앞으로 이 총리가 당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직후 정계 인사들로부터 “큰일을 해낼 분” “소나무 같은 푸르름과 대나무 같은 선비정신을 잃지 않는 분”이란 상찬이 공개적으로 나왔을 만큼 이 총리 후보에 대한 평가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후한 편이다. 더구나 원내대표로 일하면서 김 대표와 지난 7개월간 호흡을 맞춰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기대하는 바는 더욱 클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이 후보가 지명됐다는 소식은 정계에서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이미 박근혜정부가 출범하고 꾸준히 정계를 중심으로 나돌았던 말이기 때문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가 청문회까지 가기도 전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났을 때 ‘이완구 총리론’은 기정사실화라는 얘기까지 돌았었다.

박근혜·최경환
레임덕 위기

‘이완구 카드’는 청와대의 여러 복안이 숨겨진 결과물이라는 분석이다. 첫 번째 복안은 ‘국면전환용’이다. 우선 청와대는 이 의원이 총리가 되면 한숨을 돌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총리가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 아울러 준다면 청와대 입장에서는 지지율 하락이라는 난국을 타개할 방안을 본격적으로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비박 견제용’이다. 특히 청와대 내에서는 ‘멀박(멀어진 친박)’인 유 원내대표보다 비박인 김 대표를 더 껄끄럽게 생각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측면에서 김 대표에 대한 직접적 견제가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다. 이 총리후보자가 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
 

세 번째 복안은 ‘충청 대망론’이다. 현재 친박계에는 특별한 대권주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하마평에 간혹 오르내리는 이는 최 부총리뿐인 상황이다. ‘차기 대통령 적합도’ 등 각종 설문조사에서 친박계 인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 친박을 제외한 여당에서는 김무성, 김문수를 비롯해 이번에 원내대표가 된 유승민까지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범위를 야권까지 넓힌다면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안희정 등 한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늘어난다. 친박계가 위기의식을 가지기에 충분한 상황인 것이다. 결국 원내대표에 총리까지 한다는 전제하에 ‘이완구 충청 대망론’은 자기세력을 보호하기 위해 친박계에서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그림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우선 차남 병역면제, 부동산투기 논란 등 이 총리 후보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혹여나 낙마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후보가 총리가 된 연후에 김 대표 측과 손을 잡게 되면 더 무서운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노파심 섞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은 정치계에 불문율과도 같이 들려오는 ‘영원한 적도 우군도 없다’는 논리를 들어 이같이 주장한다.

이완구·서청원, 당·청 완충역할 기대
한쪽 무너지면 도미노현상 가능성도

이 총리후보는 ‘고분고분한 친박’이라 보기에 정치적 무게감이 큰 사람이다. 자칫하다간 청와대가 정치인 이완구를 위해 대선용 레드카펫만 깔아주고 밀려나는 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혹여나 비박의 중심에 있는 김 대표, 멀박으로 돌아온 유 원내대표와 손발을 맞춰 과거 이회창 총리처럼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청와대는 사면초가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청와대가 내건 이완구 총리 카드는 즉흥적으로 꺼내든 것이 아닌 오랜 장고 끝에 나온 ‘묘수’로 볼 수 있다. 즉 주식으로 치면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투자에 비견된다.

유 원내대표의 당선일을 박근혜정부에 대한 레임덕이 시작되는 날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특히 이러한 시각이 보수언론을 통해 먼저 보도됐다는 점에서 청와대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레임덕을 거론한 언론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대로는 내년 총선에서 죽는다는 의원들의 위기감이 유승민을 선택하게 한 것”이라고 발언했다.

“유승민 의원이 이긴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진 것”이라는 수도권 중진 의원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또 다른 매체는 “유 원내대표 선출은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를 향해 여당 의원들이 사실상 ‘옐로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비선실세 국정농단 파문 이후 박 대통령의 인적쇄신 거부와 연말정산, 건강보험료 파동 등 국정운영 난맥상을 그대로 뒀다가는 내년 총선 참패 등 ‘당·청 동반몰락’이 불 보듯 뻔하다는 위기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는 현재 변화와 혁신을 모토로 한마음 한뜻으로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둘 다 원조 친박에서 멀박 또는 비박으로 위치 이동한 상황이라 서로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당 중심의 국정 운영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본적으로 두 사람이 생각에서 온도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예로 들면 그 차이가 확연히 감지된다. 김 대표는 증세보다는 복지 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에, 유 원내대표는 증세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는 5일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기본적으로 세금 올리는 것도 어렵지만 줬던 복지를 뺏는 것은 더 어렵다”며 “세금은 돈 되는 사람한테 좀 거둬가는 것이지만 복지축소는 무지 어렵다”고 말했다. 즉 복지축소보다는 증세가 국민들의 저항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이다.

반면 김 대표는 평소 “복지는 늘려야 한다”면서도 “복지는 재원이 없으면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즉 복지확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속도조절과 재원을 고려한 지출 구조조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증세를 하기에 앞서 세금이 중복되어 사용된다든지 필요 없는 곳에 쓰여진다든지 하는 비효율성을 먼저 개선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유 원내대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복지 지출 구조조정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면서도 “그러나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복지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 모두 ‘증세 없는 복지’의 문제점에 대해선 뜻을 같이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특히 법인세 문제를 놓고는 시각차가 극명하다. 유 원내대표는 5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 “만약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다양한 세금 종류 중에서 ‘법인세는 절대 못 올린다’고 성역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며 법인세 인상의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김 대표는 “법인세 인상은 제일 마지막에 할 일”이라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현재도 장사가 안 되는 기업이 있어 세금이 안 들어오는데 거기다 세금을 더 올리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완구·서청원
완충지대 역할론

현재 수세에 몰리고 있는 청와대 입장에서 이러한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 모두 평소에 강한 발언을 아끼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도 서로 간에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박이 당권을 잡으면서 가속화된 레임덕을 어떻게든 지연시켜야 하는 청와대는 벌써부터 권력을 당에 넘겨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아무리 총선이 눈앞에 있어도 권력 중심의 이동은 확실한 레임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삼각관계를 이루게 된 당·정·청이 갈등과 견제 속에서도 서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다가올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힘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이라는 우상에 사로잡혀 서로에 대한 지나친 네거티브가 이어진다면 중심의 한 축이 깨져 결국 균형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무너진 균형으로 뒤통수가 깨지는 쪽은 삼각구도 위에 앉아 있는 국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와대 000들
비선실세 존재 암시한 그의 일침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지난해 10월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이거 누가 하는 거냐”며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거냐”고 일갈했다.

이는 정부의 서투른 외교적 대응을 질타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지만 일각에서는 청와대 비선실세라 알려진 존재들이 외교 문제까지 좌우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청와대 애들 가만히 안 놔두겠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잘 못 모신다. 청와대 조무래기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김상민 의원 결혼식 뒤풀이 자리에서 청와대 문건 파동의 배후로 음종환 전 행정관이 자신을 지목했다는 말을 전달 받고 한 것으로 알려진 말이다. 김 대표는 이후 발언 내용에 대해 ‘오보’라고 일축했다.

현재 새누리당 최고의 자리에 오른 두 사람의 이전 발언, 또는 발언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 말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교집합은 ‘청와대의 000들’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000들의 존재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에서 잘 나타난다. 아래로부터 개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가 보여줄 ‘개각ver.2’가 어떤 모습일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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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