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는 병원들, 막가는 수술실 백태

환자 마취된 사이 의사·간호사 둘이…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나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병원 임상실습에 들어가기 전 간호학도들이 읊는 ‘나이팅게일 선서문’의 일부 내용이다. “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의사의 윤리 등에 대한 선서문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 내용이다. 신성한 두 선언이 최근 일부 의료 종사자들에 의해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계의 현주소를 파헤쳐보자.

지난달 28일 한 간호조무사가 개인 SNS를 통해 올린 사진은 가히 충격적이다.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J성형외과로 추정되는 병원 수술실에서 마취된 환자를 뒤로 한 채 생일 케이크를 들고 다니는가 하면 자기네들끼리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슴 성형에 쓰이는 보형물로 장난을 치는 등 몰지각한 행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수술실에서 음식을 섭취하는가하면 돈다발을 들고 찍은 사진에는 수술용 1회용 장갑을 버리지 않고 재사용 목적으로 말려놓은 장면이 함께 찍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 모습은 물론 환자의 신상이 적힌 ‘기록 카드’가 그대로 사진에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환자 뒤로하고
셀카, 생일파티

그녀들에게 ‘나이팅게일 선서’는 단순한 허례허식에 불과했던 것일까. 이런 철없는 행동은 여론의 뭇매를 맞기에 충분했다. 언론 또한 이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해당 간호조무사는 계정을 삭제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법.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의료계 전반에 대한 불신과 함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해당 사건에 대해 보건당국은 진상조사에 나섰다. 29일 관할 보건소인 강남구 보건소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병원을 실사해 사실 관계를 명확히 확인한 뒤 절차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수술 중 생일파티를 한 행위와 1회용 장갑을 재사용 목적으로 말려놓은 부분은 각각 의사의 비윤리 진료와 의료법 위반에 해당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의료법 제66조에 따르면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킬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장 1년까지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이 경우 통상 관할 보건소가 보건복지부에 자격 정지를 의뢰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보건당국은 보건복지부와 경찰 측에 수사를 의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의료진이 수술실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였고 비난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의료법 위반 여부 등을 검토 중이다”며 “피해자의 신고나 보건당국의 의뢰가 들어올 경우 즉각 수사에 착수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얼마 전 중국에서 발생한 유사한 사건을 처벌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20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수술실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올라와 논란이 된 적 있다. 중국 산시성 시안시의 한 대학 병원 수술실에서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이 누워있는 환자를 뒤로 한 채 서로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병원 측에서는 해당 사진은 수술을 마친 뒤 촬영한 것으로 성공적인 수술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찍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논란은 거세져 갔고 결국 시 당국은 병원 원장을 비롯한 책임자 및 담당자를 면직 또는 감봉 처리했다. 사건의 유사성을 고려해 볼 때 처벌의 가이드라인으로 충분한 사례다.

해당 병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해명했다. 병원 관계자는 “사진 촬영은 환자가 수술 뒤 회복 중일 때 촬영된 것이다”며 “(사진 속에 등장한 장갑은) 수술 끝나고 나서 수술 용기 같은 것을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장갑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해당 병원의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올려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사과문에는 “몇몇 직원들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책임을 통감하고 해당 직원을 절차에 따라 징계하였습니다”라고 되어 있어 일부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사과문이 올라간 후 이를 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상담의사 따로
수술의사 따로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병원에 간호사가 한 명도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버젓이 간호사 명찰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 그중에 간호사는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대부분 간호조무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개중에는 일반인도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한간호협회’는 법적 대응을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이 대응을 준비하는 이유 중 핵심은 이 사건을 통해 간호사들이 매도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진을 통해 확인되는 명찰은 간호사를 사칭한 행위라는 것이다.

정신 나간 일부 의료 종사자들
수술 앞두고 찰칵…음주 집도도
실종된 의료 윤리에 국민 불안

1960년대에 간호인력 부족현상이 심화되자 간호사 대체인력으로 신설된 간호조무사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이 있으면 가능하며 ‘국·공립간호조무사양성소’나 ‘사설간호조무사양성학원’에서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한 교육 및 훈련을 받기만 하면 된다. 반면 간호사는 간호학과(3·4년제)를 졸업하고 국가(한국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에서 시행하는 간호사 시험을 합격한 후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해야 된다. 의료법상 지위도 간호사는 ‘의료인’으로 구분되는 것에 반해 간호조무사는 ‘간호보조인력’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 경계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병원에서는 급여가 훨씬 적은 간호조무사를 간호사로 속여 근무시키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이다. 환자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의료 영역에 의료인이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비단 해당 사건은 간호조무사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에는 의사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등장하는데 설명에는 “원장님과 함께”라고 적혀있다. 그녀들을 관리·감독해야 되는 의사가 이 같은 행위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했다는 점에서 더욱 비난받고 있다.

이러한 의료계의 비도덕적 행위는 예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지난달 19일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 윤곽 수술을 받던 21살 여대생 정모씨가 끝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광대뼈와 턱뼈를 깎는 수술을 4시간 동안 받은 그녀는 수술 직후 회복실로 옮겨졌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그녀를 집도한 담당의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치과의사라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치과의사가 안면 윤곽 수술을 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환자의 혈압저하 등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한 행위라고 말한다. 또한 숨진 정모씨는 당초 1000만원에 해당되는 수술비를 지불하는 대신 ‘비포-애프터’ 모델이 되는 조건으로 검사비 100만원만 냈다는 정황이 포착돼 정모씨의 수술에 일부러 전문의를 배치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혹을 샀다.

환자로서는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어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마취가 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부지기수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를 악용한 사례도 다수 발생한다. 속칭 ‘쉐도우 닥터’라 불리는 사람이 대리 수술을 하는 것이다. 집도하는 의사의 수술 경험과 능력에 따라 외적 변화가 확연히 차이나는 성형외과 같은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성형외과의 경우 의사의 이름값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보니 몇몇 의사에게 환자가 집중된다. 그러나 실상은 유명의사가 환자를 상담한 후 환자가 마취에 들어가면 다른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하기도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눈뜨고 코 베인 격이다. 외국인들이 성형관광을 위해 한국에 입국하는 등 국내 성형시장이 팽창했지만 그에 맞는 인력 수급이 되지 않아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 치부하기에 윤리적 공백이 너무 크다. 이미 물질만능주의가 성형외과 업계에 팽배해 있다는 방증이다.

술 마시고 수술
위생은 뒷전

술을 마시고 수술대에 오르는 의사도 있다. 지난해 11월28일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3살배기 남자아이의 봉합수술이 진행됐다. 바닥에 쏟은 물에 미끄러져 넘어진 아이는 턱뼈가 보일 정도로 심하게 찢어졌다. 하루빨리 조치를 취해 아이를 안정시켜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집도하러 온 의사 A씨의 행동이 이상했다. 비틀비틀거리며 수술실에 들어온 A씨는 위생장갑을 끼지도 않고 찢어진 부위를 얼기설기 세 바늘 꿰맸다. 이를 본 아이의 부모는 병원에 항의했고 그제야 병원 측 관계자는 다른 의사를 불러 여덟 바늘을 꿰매 정상적으로 수술을 종료했다.


A씨는 그 당시 술에 취해 있던 것으로 판명 났다. 1년차 전문의인 그는 3년차 선배와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했고 당직실로 복귀한 후 응급실 당직 콜이 울리자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원래 이 수술은 본인이 맡아야 될 수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병원 측에 따르면 그 당시 당직 의사는 2년차 선배 B씨였는데 “1년차인 A씨가 선배 B씨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본인이 직접 들어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문제의 A씨는 해당 병원에서 파면조치 당했다.

생일파티에 보형물로 장난
찍은 사진 SNS에 올려 파문

이 사건으로 병원의 방만한 인력 관리와 허점투성이 시스템이 문제로 지적됐다. 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대학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도제식 인력관리와 응급 의료관리 시스템에서는 1년차 전문의가 술을 먹고도 응급실로 떠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A씨에게서 술 냄새가 나고 위생 장갑을 끼지 않는 등 상태가 평소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근무자들이 A씨의 행위를 제지하지 못했던 점은 그만큼 병원의 응급 의료 시스템에 구멍이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12년 연속 ‘최우수 응급 의료 기관’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올해 초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에서는 자신들의 수술 횟수를 홍보하기 위해 ‘턱뼈로 쌓은 탑’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이 되었다. 병원 로비 한편에 위치한 탑은 바로 수술을 한 환자의 턱뼈를 모아 쌓은 것이다. 인체의 적출물을 폐기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그것을 탑으로 쌓아 홍보에 이용하려 했다는 점은 엽기를 넘어 괴기스럽기까지 했고 이를 본 시민들은 경악했다.

결국 해당 사건은 미국의 <타임지>에 까지 보도되었다. 이런 자신들의 행동이 의료 폐기물 관리법 위반인지도 몰랐던 병원장은 과태료 300만원을 물었고 당연히 ‘턱뼈 탑’에 대해선 철거 명령이 내려졌다.


병원과 의료계의 현주소가 이렇지만 소송을 통한 구제는 요원하기만 하다. 수술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보니 법을 적용하기 어렵고 수사를 하더라도 지극히 전문적인 영역이라 과실을 찾아내기 힘들다. 또한 증거 인멸 등이 행해져도 알아낼 방도가 없다.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간호조무사 셀카 사건’이나 언론에 보도된 사고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져만 간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설사 처벌이 행해져도 병원 측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당일 예약취소 등 환자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진료는 계속할 수 있다. 근무하는 많은 의사 중 사고를 낸 의사 몇 명만 쉬면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병원 명을 바꾸든지 아니면 새로 병원을 차리면 된다. 의사 자격이 박탈당하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목숨을 잃은 환자는 다시 살아날 방도가 없다.

환자 턱뼈로
병원 로비에 탑 쌓아

프랑스 태생의 의사이자 사상가인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후대에도 존경받는 이유는 비단 그가 아프리카로 의료 봉사활동을 떠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생명을 존중했고 인류애를 강조했다. 그는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며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했다.

슈바이처의 정의에 따르면 몇몇 병원과 의사 그리고 간호조무사는 악이라 불러도 될만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몇몇 사람으로 인해 국민은 물론 선량한 의료인들까지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관련 피의자의 죄질에 합당한 법 적용과 대승적 차원의 근무 환경 개선, 부도덕한 의료행위의 근절을 위한 지속적 교육 및 지도·감시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환자 38명 살해, 악마 간호사 엽기행각

한 달 동안 무려 38명의 환자를 죽이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은 이탈리아 간호사가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38명의 환자를 살해한 뒤 충격적인 사진을 촬영한 이탈리아 간호사’라는 제목으로 다니엘라 포지알리(42)의 행동을 보도했다.

포지알리는 단지 짜증난다는 이유로 사형수에게 쓰이는 독극물을 투여해 환자 38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살인을 저지른 후 죽은 환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점이다.

공개된 사진에 의하면 그녀는 사망한 환자 바로 옆에서 엄지를 올리는가 하면 입을 벌리고 찍는 등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은 그녀의 직장 동료인 것으로 드러났다. 동료 간호사는 경찰 조사에서 “포지알리에게 저항할 용기가 없었다”며 “그녀는 보복심리가 강했고, 단순히 다음 근무 조를 고생시키기 위해 환자들에게 설사약을 투여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포지알리와 동료 간호사는 모두 병원에서 해고된 상태며 포지알리는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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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