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람 잡는 아청법 '앞과뒤'

“미성년 야동 받으려던 게 아닌데…” 졸지에 성범죄자 낙인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유명 웹툰작가 ‘마사토끼’가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아청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은 뒤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만화를 그려 배포하면서 아청법의 맹점이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 한 번의 클릭으로 단순히 파일만 잘못 다운로드받아도 아동음란물 배포자로 기소돼 멀쩡한 청년이 성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불편한 현실이다.


유명 웹툰작가 ‘마사토끼’가 의도치 않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을 위반해 처벌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걱정을 샀지만, 마사토끼는 웹툰 작가답게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만화로 표현했다. 아청법 제도의 모순점을 생생하고 재치 있는 모습으로 지적한 것이다.

껍데기 까보니
엉뚱한 알맹이
 
지난달 28일 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마사토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만화가 겸 스토리 작가 양찬호(30)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masaruchi) 등에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라는 8편짜리 웹툰을 연재했다. 이 웹툰에 따르면 앞서 마사토끼는 지난 9월 경찰로부터 아청법상 아청법을 위반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문제의 사건을 떠올려 만화로 구성했다.
 
웹툰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에 따르면 마사토끼는 어느 날 갑작스레 아청법 위반에 대한 참고인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음란물 소지·음란물제작·배포 등)’ 그는 불안한 마음에 만화가 인생이 끝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했다. 자신을 성범죄자로 인식할 팬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마사토끼는 이 일을 평생 비밀로 안고 살아가려고 결심하던 찰나, 자신이 겪은 일을 만화로 정리하고자 결심했다. 이내 마사토끼는 불안했던 자신의 마음을 만화를 통해 풀어냈다. 자신과 비슷한 실수를 하지 말라는 공익적인 목적도 담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선 그는 출석요구서가 날라온 부산의 모 경찰서로 전화를 했다. 해당 서는 그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해줬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마사토끼는 P2P(peer to peer) 프로그램으로 한 파일을 공유했다. 경찰은 서울에서 조사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반성문을 써가면 좋다는 팁까지 알려줬다. 큰일이 아니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이후 마사토끼는 자필로 준비한 반성문을 들고 인근 경찰서 사이버수사과를 찾았다. 분위기는 강압적이지 않았고 날카로운 조사도 없었다. 그저 그가 다운로드 받은 영어와 숫자로 된 파일명을 알려줄 뿐이었다. 마사토끼는 파일명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당초 구체적인 파일명이 아닌, 검색어를 통해 다운로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제시한 파일 안에는 일본 여학생 나체사진이 가득했다. 에로 셀카 모음집이었던 것이다.
 
 

사실 마사토끼는 에로만화를 보기 위해 P2P 내에서 검색을 하던 중 특정 단어를 검색, ‘요정전설’이라는 제목의 파일을 발견했다. 이 파일에는 만화 권수마냥 넘버링까지 붙어있었다. ‘요정전설 1, 요정전설2…’. 마사토끼는 이 파일을 다운로드 받았고 이 파일은 클릭과 동시에 배포가 시작됐다.
 
마사토끼가 아청법 위반에 대한 참고인 출석요구서를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받았던 파일의 제목과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요정전설’을 다운 받은 뒤 재생시켰지만 정작 요정과 전설과 관련된 내용물은 없었다. 아동 음란물이 나왔던 것이다. 당황한 그는 해당 파일을 즉시 삭제했다. 그러나 파일을 내려받는 즉시 업로드를 하게 되는 P2P 특성상 아동 음란물을 배포한 파렴치범이 된 것이다. P2P에서는 제목과 내용이 다른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기에 충격이 더했다.

클릭 잘못했다가…
성범죄자로 등록
 
마사토끼는 가짜 파일에 속은 뒤 곧바로 다른 파일을 다운로드 받았지만 그가 아동 음란물을 다운 받은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사토끼는 결국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했고 며칠 뒤 사건 관할서가 서울로 옮겨졌고 검사가 배정됐다는 우편을 받았다. ‘마사토끼가 아청법에 걸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한 팬에 의해 그의 아동 음란물의 정체, 정확한 파일명이 ‘요정전설 13세의 성노예’인 것으로 밝혀졌다.
 
마사토끼는 해당 웹툰을 통해 자신의 사례뿐 아니라 논란이 되는 아청법의 비현실적인 부분도 짚었다. 일례로 아청법은 아동이나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배포하거나 소지한 경우도 처벌하게 돼 있는데,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의 아이들을 보호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청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면서 “다만 기왕 규제할 것이라면 무엇이 미성년자 대상 범죄의 원인인지 파악해 현실성 있는 규제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마사토끼는 비록 실수이긴 하지만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내려받고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법적 책임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마사토끼는 지난 11월28일 법원에서 벌금 200만원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4시간 이수, 신상정보 등록 명령을 받았다.
 

유명 웹툰 작가 만화 다운받다가 걸려
카톡 대표 얼떨결에 피의자 신분 소환
  
남일 인 줄 알았던 아청법을 피부로 직접 느낀 마사토끼의 실화를 접한 팬들은 그를 비난하기 보다는 현실과 맞지 않는 아청법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한 팬은 “마사토끼는 비난받아야 할 아청법 위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실수한 부분을 무시하고 법전의 글자만을 근거로 입건한 경찰 측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청법 관련 헌법소원을 진행 중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동 포르노를 봤다고 해서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인과관계는 어디에도 없다”며 ”아청법은 현실 세계의 아동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도치 않게 성범죄자로 몰린 마사토끼 사건의 핵심에는 P2P가 있다. P2P 파일 전송 네트워크는 서버란 개념이 없다. 어떤 사용자가 한 파일을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내려 받는 방식이다. 올리는 쪽과 내려 받는 쪽 모두 동시에 접속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오디오나 비디오, 데이터 등 임의의 디지털 형식 파일의 공유에 적합한 서비스로 과거부터 꾸준히 사용돼 왔다.
 
이처럼 이용자 간 공유가 활발히 이뤄지다 보니 일부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는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P2P에 떠도는 음란물 중 10%가량이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즉 지뢰찾기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특정 콘텐츠를 다운 받고자 검색해서 클릭해도 막상 파일을 실행해보기 전까지는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P2P는 10년이 넘도록 이어져온 파일공유 서비스다. 어느 정도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그간 큰 문제 없이 수많은 이용자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아청법 시행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파일 제목에 낚여 잘못 다운로드 받았다가 수백만원의 벌금과 함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신상정보 등록 등 성범죄자로 낙인찍힐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기존의 이용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설익은 법…
엉뚱한 화살
 
아청법의 화살은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에게도 향했다. 지난달 10일 이 대표가 아청법위반 혐의로 경찰에 소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 대표는 10일 대전 서구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이 대표는 다음과 합병하기 전 카카오에서 대표로 있을 당시 ‘카카오그룹’을 통해 유포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대해 사전에 전송을 막거나 삭제할 수 있는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온라인 서비스 대표에게 아청법을 적용해 입건한 첫 사례였다.
 
이후 24일 이 대표는 아청법 위반 혐의를 받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말이 많다. 경찰이 이 대표를 검찰에 송치한 법률적 근거는 아청법 제17조 1항이다. 관련법에는 ‘자신이 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거나 발견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즉시 삭제하고, 전송을 방지 또는 중단하는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아동음란물 배포 안 해도…줄줄이 기소

“본래 취지와 달리 과도하게 집행” 지적
 
이 법에 따르면 이 대표는 카카오그룹에 유통된 자료들 가운데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을 찾아내 즉시 삭제하거나 사전에 이러한 자료들이 이동할 수 없도록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설익은 법이 멀쩡한 사람을 괴롭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아청법을 따르자면 카카오그룹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봐야한다. 그러나 카카오그룹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에 해당되기 때문에 아청법을 실행하면 통비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
 
통비법 제3조에는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정취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가운데 감청이란 ‘전기통신에 대하여 당사자의 동의없이 전자장치·기계장치 등을 사용하여 통신의 음향·부호·영상을 청취·공독하여 그 내용을 지득 또는 채록하거나 전기통신의 송·수신을 방해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실시간 모니터링은 ‘감청’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특히 아청법은 ‘사전적 기술조치’를 요구하지만 관련법 시행령에는 구체적인 조치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현재 네이버나 다음은 성인음란물에 대해 ‘해시값(복사된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한 암호 같은 수치)’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 기술적으로 음란물 유통을 막고 있다. 온라인 포털 또한 이용약관을 통해 아청법 관련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어 감청 논란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법률 간 충돌
과도한 법집행
 

반면 카카오그룹에는 동일한 적용이 어렵다. 통비법 위반 소지도 그렇지만 아청법 11조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즉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 DB 구축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음란물 이동을 막을 길이 없다.
 
아청법은 지난 2011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던 최형희 당시 민주당 의원은 음란물이 온라인으로 유포될 때 온라인서비스제공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넣은 아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해 9월15일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 이듬해인 2012년 3월16일부터 개정된 아청법이 시행됐다.
 
아청법은 개정안 시행 이후에도 꾸준히 개정됐지만 17조 조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또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전적 기술조치에 대한 기준도 명확히 마련되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통비법과의 충돌도 여전한 상태로 ‘미완의 법’으로 남아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소관부처 간 칸막이가 높아 의견조율이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졸속으로 법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애당초 법을 제정할 때 법 간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충분히 검토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교복 성인물’ 판결 보니…
“발육 상태로 성인 판단”
 
음란물에서 교복 입은 인물이 성행위를 하더라도 명백히 아동·청소년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면 이 음란물의 제작·유포자를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23일 부산지법 형사합의 1부는 아청법에 위반되는 행위로 기소된 채모(46)씨의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100만원에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동영상 속 여성이 외모나 신체 발육 등에 비춰 아동·청소년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해 성행위를 한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 해당 동영상은 아동·청소년 성 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 이번 판결의 발판은 지난 9월에 있던 재판이었다. 당시 박모(34)씨도 앞서 채씨 처럼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해당 성인 동영상에 교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해 음란행위를 하지만, 외관상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지 않는 만큼 아청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며 박씨에게 벌금 300만원에 성범죄 재발방지 강의 40시간 수강 등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 연출된 인물이 음란 행위를 하는 동영상은 일반인에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다며 벌금 300만원과 성범죄 재발방지 강의 40시간 수강을 선고한 바 있다.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배포·제공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이를 소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아동 음란물 단속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지만 모호한 법 조항 때문에 수사당국이나 법원에서 사건마다 판단이 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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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