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제과 ‘갑질’ 백태

허니버터칩, 대박 비결은 영업소 쥐어짜기?

[일요시사 경제2팀] 최현목 기자 = ‘갑을’관계에서 승자는 언제나 ‘갑’이다. 그들은 사회적 피라미드 속 정점에 위치해 ‘을’을 압박한다. 그중 거대 기업은 ‘슈퍼 갑’이다. 크라운제과는 얼마 전 퇴사한 영업사원 유씨를 상대로 2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지난 14일 크라운제과의 패소 판결을 내려 사실상 ‘을’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떻게 이러한 판결이 날 수 있었을까. 크라운제과 ‘갑질’ 사건을 면밀히 살펴보자.

초코하임, 마이쮸 등을 제조·유통하는 국내 굴지의 과자 전문 업체인 크라운제과는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던 유모(35)씨와 그의 신원보증인 임모(56·여)씨를 상대로 “2억55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유씨가 “업무처리 기준에 위반한 가상·덤핑판매 같은 비정상적인 판매를 해 제품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덤핑판매 강요

유씨는 지난해 1월 크라운제과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경기도의 한 영업소에서 과자류 제품을 거래처에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 크라운제과는 그런 유씨를 포함해 본사는 물론이고 각 지점과 사원 개인에게도 매일 판매목표를 할당하여 거래처에 과자를 팔아오게 시켰고 수시로 판매량을 보고하도록 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영업 행위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이를 채울 때까지 퇴근을 시켜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씨를 포함한 영업사원들은 재고가 남은 과자를 자차 트렁크에 싣고 회사에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보고했다.

트렁크에 실려 있는 과자는 ‘덤핑판매’로 처리했다. 그들은 거래처를 전전하며 시장가격보다 낮게 팔았다. 여기에서 오는 차액은 고스란히 영업사원들 몫이었다. 결국 그들은 부족한 판매대금을 개인 대출로 메우는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씨에게는 입사한지 9개월 만에 2억원이 넘는 빚이 생겼다. 견디다 못한 유씨는 결국 지난해 10월 퇴사했고 11월에는 서울중앙지법에 개인회생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크라운제과의 ‘갑질’은 비단 영업사원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갑’인 대형마트에 나가는 제품에는 43%이상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준 반면 ‘을’인 소매점에게는 35% 할인에 그쳤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매업자들은 크라운제과에 대형마트와 동일한 할인율을 요구했고 크라운제과는 이를 받아들였다.

할인율의 증가는 부메랑이 되어 고스란히 영업사원의 피해로 이어졌다. 기준목표액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제품의 가격이 낮아지니 더욱 많은 수를 판매해야 됐고 그러다 보니 덤핑하는 과자 수도 늘어나 대출을 받아야 되는 금액도 점점 높아져만 갔다.

유씨는 크라운제과에 입사할 때 곧바로 덤핑판매나 가상판매 등 비정상적인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크라운제과에는 실제 거래가 있는 것처럼 가장해 매출을 잡고 나중에 덤핑으로 판매하는 행위(가상판매)를 금지하는 규정을 내부적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반했을 시 차액은 고스란히 영업사원이 변상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영업현장은 규정과는 달랐다. 영업소장은 일별 판매목표를 채우지 못한 영업사원의 퇴근을 막았고 재고는 반환받지 않았다. 급여와 성과급도 판매량에 따라 차등지급했다. 사실상 가상·덤핑판매를 회사가 부추긴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크라운제과는 차근차근 책임회피를 준비하는 영악함을 보였다. 가상·덤핑판매로도 차액을 매우지 못한 영업사원에 대해 회사는 ‘나중에 갚겠다’는 변제각서나 ‘판매대금 일부를 횡령했다’고 적힌 각서 등을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민사소송의 근거자료로 마련해 뒀다.

판매 할당 정해 영업사원 압박
기업 손해 명목으로 2억 소송

크라운제과의 막무가내식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1월,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던 오모(37)씨를 상대로 크라운제과는 유씨와 동일한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적 있다. 2005년부터 근무한 오씨가 8년 동안 근무하면서 발생한 미수금 6300만원을 갚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7300만원에 달하는 판매목표치를 오씨는 감당할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회사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 "머릿속에 생각이 있느냐" 등 격한 표현으로 오씨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오씨가 퇴직하려 하자 크라운제과는 오씨에게 돈을 모두 갚고 나가겠다는 각서를 쓰게 했고 그래도 돈을 갚지 않자 회사 측은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이다.

이 두 소송에 대해 법원은 유씨와 오씨가 갚을 필요가 없다는 동일한 판결을 내렸다. 비정상적인 판매 강요로 발생한 손실은 영업사원 몫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유씨의 소송 건에 대해서 재판부는 “크라운제과는 사실상 판매되지 못한 제품의 대금을 가상판매를 통해 영업사원에게 전가했다”며 “유씨가 행한 가상판매는 크라운제과에 손해를 끼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매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서 “크라운제과가 유지해 온 이 같은 거래 구조에서는 손해가 온전히 영업사원인 유씨의 가상 판매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통상 법원이 회사와 영업사원의 책임을 5대 5로 인정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크라운제과의 영업이 그만큼 비상식적으로 진행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막무가내식 소송

크라운제과 측은 이번 유씨에 대한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명목상으로는 영업 방침을 위배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영업사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함이라 밝혔지만 실제로는 기강잡기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항소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지난 10월 식중독을 일으키는 ‘황색포도상구균’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유기농 웨하스를 5년 동안 31억원 어치나 판매해 비난을 받았던 전적이 있어 어린이들이 많이 먹는 과자를 제조·유통하는 기업 입장에서 이번 행보는 ‘제살 깎아먹기’가 될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허니버터칩’품귀 현상, 진짜 이유가…

‘허니버터칩’의 품귀 현상은 원재료 부족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허니버터칩을 판매처에서 볼 수 없는 이유는 원재료인 감자 수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예상치 못한 대박이 터지면서 농가와 계약한 수량 이상으로 많은 감자가 사용되다 보니 수급 불균형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수입 감자로 대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감자를 해외에서 수입해 오기 위해서는 농가에 사전주문을 하고 배를 통해 국내로 들여와야 한다. 기간은 보통 6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감자 재배에 약 4∼5개월, 운송(약 20일) 및 통관에 한 달이 소요된다. 한때 “생산공장에 불이 났다” “업체가 물량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아니냐” 등 괴담이 오고갈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한동안 소비 대비 공급 미달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허니버터칩은 지난 10월10일 ‘식중독 웨하스’로 추락하던 모기업 크라운제과의 주가를 끌어올린 1등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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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