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변태들의 로드뷰 사용법 ‘천태만상’

거리의 ‘쭉빵녀’ 보면서 ‘불끈’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인터넷 포털사이트 로드뷰·거리뷰 서비스를 이용하면 지도에서 해당 장소를 360도 파노라마 사진으로 볼 수 있다. 보통 초행길인 경우 미리 길을 파악할 때 사용된다. 간접적으로 나마 특정 장소에 가보고 싶을 때에도 그렇다. 로드뷰·거리뷰만 실행시키면 앉아서도 전국 곳곳을 누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 세심한 촬영 탓에 일반인들의 애정행각 등 은밀한 사진이 노출되면서 변태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9년, 포털사이트 다음은 국내 최초로 ‘로드뷰’를 선보였다. 로드뷰는 전국 각지의 실제 거리 모습을 DSLR 카메라 고해상도 파노라마로 사진을 촬영, 골목 구석구석을 생생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360도로 촬영된 파노라마 사진은 자체 제작한 플래시 뷰어를 통해서 상하좌우 둘러보기 및 확대·축소 보기가 가능하며, 원하는 지점에서 지도와 함께 확인이 가능하다.
 
클릭질 하나로
전국 누비는 변태들
 
로드뷰는 360도 파노라마를 촬영할 수 있는 특수제작된 촬영장비와 GPS 추적장치를 이용해, 서울 및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의 특·광역시 등 주요 도시 곳곳을 촬영한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에서는 차량 위에 특수촬영장비를 고정해 촬영을 진행하고, 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도로나 공원, 아파트 단지 등은 역시 특수 제작된 1인용 전동이동경비 세그웨이나 파노집을 이용해 촬영한다.
 
다음이 로드뷰 서비스를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네이버도 ‘거리뷰’ 서비스를 들고 나왔다. 로드뷰가 한 발 앞서는 시점에 네이버가 새롭게 뛰어들며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했다. 네이버 거리뷰는 기존 서비스 외에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을 촬영한 ‘항공뷰’를 연계하면서 이용자를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대형 포털사이트들이 앞다퉈 전국을 누비며 생생한 지도 제작에 열을 올리면서 많은 이용자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주기적인 업데이트도 이어지고 있어 로드뷰·거리뷰는 가히 살아있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탄탄한 서비스와 편의성 덕분에 길눈이 어두운 이른바 ‘길치’도 스마트폰 하나로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초행길에 나서기 전에 이 서비스를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정도다. 순기능만 놓고 보면 정말 편리한 서비스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 법. 로드뷰·거리뷰 서비스 시행 이후 역기능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로드뷰·거리뷰 서비스의 대표적인 역기능은 변태들의 ‘놀이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 곳곳을 누비는 거리지도 서비스 특성상 일반인들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부 변태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거리지도 서비스를 통해 시내 번화가 등 거리를 샅샅이 뒤져 몸매가 훤히 드러난 여성들의 사진을 담고 있다. 변태들에게 새로운 자극물이 생긴 것이다.
 
 
로드뷰·거리뷰를 통해 일반인의 섹시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로드뷰녀’ ‘거리뷰녀’ 등의 이름이 붙은 사진들이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급속히 퍼졌다. 특히 노란색 밀착원피스를 입은 볼륨감 넘치는 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가슴이 엄청 크네. 진짜 섹시하다” “바로 저장해야지. 오늘은 이거다” “나도 드라이브하면서 여자들 몸매 구경해야겠다” “야동(야한 동영상), 야사(야한 사진)보다 훨씬 낫다” 등 자극적인 표현이 난무했다.
 
가슴 큰 여성
골라서 저장
 
또한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한 남성이 자신의 무릎 위에 여자친구로 보이는 여성을 앉히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모텔로 들어가는 커플의 모습도 그대로 담겨있었다. 이외에도 로드뷰·거리뷰를 통해 많은 여성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 중인 섹시한 몸매의 여성, 몸을 숙여 엉덩이를 드러낸 여성, 달리면서 흔들리는 가슴을 내보인 여성 등 실제 거리에서도 볼 수는 있지만 대놓고 볼 수 없었던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로드뷰·거리뷰에는 ‘미니스커트녀’ ‘원피스녀’ ‘스타킹녀’ 등의 이름을 단 다양한 사진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이중 해수욕장 앞에서 담배를 물고 오토바이를 탄 육감적인 여성의 사진 또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등 갖은 사이트를 돌다가 결국 ‘거유천국’이라는 성인사이트에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불륜커플의 모습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한눈에 봐도 불륜을 의심케 하는 남녀가 청계천에서 손을 잡고 걷는 모습도 로드뷰·거리뷰 카메라에 찍혔다. 주차된 차량도 카메라를 피할 수는 없다. 남녀가 동승한 차량 중 일부는 ‘그것’을 의심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처럼 일반인들의 사진이 여과 없이 공개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성매매 업소가 버젓이 드러나 있는 경우다. 실제로 로드뷰·거리뷰를 이용하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집창촌의 위치와 일부 성매매 여성들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속옷만 입은 채 호객행위를 하는 이들, 쇼윈도 안에서 TV를 시청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현실에서는 청소년통행제한구역이지만 로드뷰·거리뷰에선 초등학생도 홍등가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서비스 이용에 나이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은밀한 사진 노출…새로운 자극거리
‘자위감’ 찾아 클릭! 전국 누빈다
 
이 밖에도 해수욕장에서 태닝하는 여성의 모습, 술에 취해 토하는 모습 등 개인의 사생활이 지나치게 노출되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역기능이 드러나면서 각 포털은 사람의 얼굴과 차량의 번호판을 블러링(blirring·화면 흐리게 하기) 처리했다. 그럼에도 사생활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단순히 부분만 가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구글의 스트리트뷰 일명 ‘구글뷰’를 보면 국내 사례는 약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에는 영국 맨체스터의 한적한 길거리에서 성인남녀의 격한 성행위 장면이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졌다.
 
 
당시 사진에는 표범무늬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뒤로 바지를 내린 남성의 모습이 담겨있었으며 대담하게 보란 듯이 길거리에서 성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구글 측은 해당 사진을 강하게 블러링 처리했다가 결국 완전히 삭제 편집했다. 그럼에도 이 사진은 인터넷을 타고 계속 유포됐고, 이들의 성행위에 대해 ‘이게 바로 맨체스터 스타일’이라는 식의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앞서 2010년에는 영국 울버햄튼에 위치한 주택가 잔디밭에서 10대 남녀가 누운 채 키스하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사진에 등장한 소녀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다. 키스를 한 당사자들은 “우리는 단지 첫 키스를 나눴을 뿐”이라며 울며 겨자먹기로 해명을 하기도 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이 역시 구글 측에 의해 삭제 편집됐다.
 
국내는 양반
해외 더 심해
 
같은 해 영국 잉글랜드 헤리퍼드우스터주 우스터 지역에서 촬영된 스트리트뷰 사진 속에는 어린 소녀의 시신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있어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당시 외신들이 공개한 사진 속에는 한쪽 신발이 벗겨진 어린 소녀가 도로 위에 엎드린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아 사진을 목격한 주민들은 구글 측과 지역 언론사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신으로 오인을 받은 아이는 스트리트뷰 촬영 차량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동네에서 친구들과 시체놀이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된 것에 대해 오히려 신나했다. 구글 측은 개별 사진에 대한 언급은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간단한 신고 절차로 게재된 사진을 신속히 삭제하거나 블러링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독일에서 벌거벗고 차 트렁크에 들어가 있는 남성이 발견되는가 하면, 스페인 길거리에서 보란 듯이 소변을 보는 여성, 나체로 수영하는 여성, 쓰레기통에 박힌 남성, 아이에게 총을 겨누는 남자 등 엽기적인 사진들이 넘친다.
 
그런데 이러한 노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범죄현장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가 적지 않아 충격을 안겨준다. 지난 2010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살인 장면이 촬영된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글 작성자는 여러 장의 네이버 거리뷰 사진을 캡처해 올렸다. 사진 속에는 흥건한 혈흔 자국과 피해자로 보이는 사람이 주차되어 있는 트럭에 기대고 있었다.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가해자로 보이는 남성이 상의를 탈의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살해현장이다”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섬뜩한 사진에 많은 이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위 여부를 묻는 댓글은 끊이지 않았다.
 
골목 구석구석 생생한 장면 확인
‘허걱’ 기존 음란물과 다른 짜릿함
 
범죄현장으로 추정되는 거리뷰 사진에 대한 의혹은 일파만파 퍼졌고 결국 공중파 방송을 탔다. 당시 방송에 따르면 대구 달서구 20대 남성 3명이 폭행사건에 연루됐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이미 조사가 끝난 사건이라고 했다. 경찰이 사건현장에 갔을 때도 3명 모두 있었고, 싸움은 끝난 상황이었다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살해 의혹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당시 네이버 측은 공지를 통해 부적절한 이미지 노출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자동차로 촬영한 내용을 리뷰하는 과정에서 더욱 세심하게 살피지 못해 이용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베타서비스 기간이라 하더라도 세심한 검토가 부족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네이버 측은 지도서비스 긴급 작업을 통해 문제가 된 사진들을 제외하거나 블러링 처리를 진행했다. 사생활보호를 위해 더욱 애쓰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충격적인 현장이 포착된 사례는 더 있었다. 과거 다음 로드뷰 이용자는 강원도의 한 지역을 확인하고자 드라이브를 하던 중 주택가 앞에 신발장으로 보이는 곳에 어린 여자아이가 힘없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확대해 자세히 보니 팔은 비정상적으로 돌아갔고 발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마치 시체 같았던 것이다. 당시 이용자는 이를 경찰에 신고했고, 시체로 확인돼 이후 블러링 처리가 됐다고 전해졌다.
 
또한 토막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아파트 내 어린이놀이터에서 여행용 가방에 담긴 신원미상의 변사체가 심하게 부패된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이 아파트 주민들은 놀이터에 수개월째 방치된 리어카에서 어린이들이 넘어져 부상을 입고 있다며 경비원에게 리어카를 치워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경비원은 리어카를 치우던 도중 사람의 손이 보이는 여행용 가방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시신은 손수레에 실린 아이스박스 안의 검은색 여행용 가방에 비닐봉지에 싸여 있었으며 알몸 상태였다.
 
범죄 현장도
그대로 노출
 
시신을 처음 발견한 경비원은 “방치된 리어카를 치우려는데 가방에서 심한 냄새가 나, 가방을 칼로 찢어보니 손발이 나와 변사체라는 생각이 들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과 함께 지문 감식을 의뢰했다. 이후 시신은 박모씨로 밝혀졌지만 범인을 붙잡지 못한 채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리어카 토막시신이 발견되기 1년여 전에 이미 한 거리뷰 이용자가 의심을 품었었다는 점이다. 뭔가 수상하다는 것이었다. 그저 평범해 보이던 거리뷰 사진 한 장에는 범죄현장의 잔혹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현재 다음 로드뷰와 네이버 거리뷰는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해당지역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업데이트 시기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업데이트 시 일반인들의 얼굴과 차량 번호판 등의 블러링 처리가 누락되는 경우다. 사생활 침해 부분에 있어 더욱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으로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구글뷰 새로운 기능
언제 어디서나 지도로 시간여행
  
구글의 스트리트뷰 일명 ‘구글뷰’가 새로운 기능을 공개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에겐 희소식이다. 구글뷰는 기간별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모든 곳의 사진도 찍는다. 남극을 포함한 모든 주요 대륙을 돌아다니며, 전 세계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심지어 구글뷰 차량이 다음에 어디를 가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구글 등 거리지도가 하지 못했던 것 중 한 가지는 과거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로의 여행이 자유롭게 됐다. 구글 측은 “드로이언(DeLoraen, 영화 백투더퓨처에 나왔던 시간여행자)은 잊어라.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구글 지도를 통해 가상으로 세계의 현재 모습과 과거를 탐험할 수 있다. 즐거운 시간여행 되시길”이라고 밝혔다.
 
이용자가 특정 지역, 예를 들어, 한국의 서울역이나 광화문에 방문한다고 가정하고, 화면 왼쪽 상단에 시계 아이콘을 클릭하면 몇 년 전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시간 경과에 따른 서울역과 광화문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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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