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녹십자 후계경쟁 내막

삼촌이냐 조카냐…경영권은 어디로?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녹십자 ‘모자의 난’은 끝났다. 현재 녹십자는 고 허영섭 창업주의 동생 허일섭 회장이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남은 과제는 2세 승계 작업. 후계자들의 물밑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녹십자 2세 경영이 본격 가동됐다. 녹십자는 최근 허은철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내년부터는 허 신임 대표가 경영권을 발휘하게 된다. 허 대표는 고 허영섭 창업주의 차남이다. 이렇게 후계구도는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근 허 대표의 형인 허성수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 지붕 두 가족

녹십자가 임원인사를 마무리지었다. 단독 대표를 맡았던 조순태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허 대표와 각자 대표 체제다.

그동안 녹십자 후계구도는 명확하지 않았다. 녹십자는 2009년 고 허영섭 전 회장의 별세 이후 동생인 허일섭 회장이 경영 전반을 관리해왔다. 허일섭 회장은 녹십자홀딩스의 대표이사 회장과 녹십자 회장을 맡고 있다. 즉, 녹십자 경영 구조는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다.

후계구도는 허 대표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내년부터 허 대표가 본격적으로 녹십자 경영 전반을 관리하게 된다. 상속에서 제외된 고 허 전 회장의 장남 성수씨는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후 회사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도 차남 허 대표를 중심으로 2세 경영이 본격 가동될 것으로 보았다. 후계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성수씨가 최근 녹십자홀딩스의 지분을 대거 매입했다. 녹십자홀딩스는 녹십자의 지주회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성수씨는 지난달 28일부터 네 차례에 걸쳐 녹십자홀딩스의 주식 6500주를 장내매수했다. 지분율을 0.95%(46만51주)까지 끌어올렸다.

이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우선 업계 안팎에서는 성수씨가 경영 복귀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회사를 떠난지 6년만이다. 지분을 매입해 향후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향후 후계구도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모자의 난’ 끝나고 승계 물밑작업
‘차남 시대’ 돌입…장남 지분 매입

녹십자는 지난 2009년 고 허영섭 회장이 뇌종양으로 사망하면서 모자 간에 유산 분쟁을 겪은 바 있다. 고 허 전 회장이 “장남을 유산 상속자에서 배제한다”는 유언을 남기면서 성수씨는 한주의 주식도 상속받지 못했다. 성수씨가 어머니 정인애씨에게 유언 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모자의 난’이 시작됐다.

3년에 걸친 소송 끝에 재판부는 정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성수씨는 유언 무효소송 패소 직후 보유주식 주식 40만4730만주를 전량 처분했다.
 

상속에서 제외된 성수씨는 다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2010년 별도로 제기했던 유류분 반환 소송에서 승소했다. 지난 8월 성수씨는 목암연구소(11만3520주), 목암과학장학재단(11만3520주), 미래나눔재단(23만6551주) 등 총 46만3551주(0.94%)를 돌려받았다. 100억원에 가까운 녹십자 지분을 얻었다.

게다가 형에서 동생으로 경영권이 이어진 탓에 향후 2세 승계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현재 고 허 전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녹십자홀딩스 지분은 서로 비슷비슷한 수준이다. 장남 성수씨, 차남 허 대표, 3남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은 각각 3% 이하의 지분을 갖고 있다.

회사 경영을 하고 있는 허 대표(2.36%)와 허용준 부사장(2.44%)의 지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고 허 전 회장이 보유했던 주식 619만6740주 대부분을 공익재단 등에 기부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정인애씨도 당초 보유했던 주식 55만주 전량을 처분했다. 현재 지분율만으로는 향후 후계 구도의 향방을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모두 고만고만한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데다, 삼촌인 60세의 허일섭 회장은 아직 기업의 수장으로서 젊은 편이다. 녹십자홀딩스는 녹십자의 50.06%를 차지하고 있어 녹십자를 지배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허일섭 회장은 10.82%를 가진 최대주주다. 허일섭 회장을 제외하면 4%이상의 지분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따라서 고 허 전 회장의 동생인 허일섭 회장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가능성을 대비한 지분 확보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형제들 뿐 아니라 허일섭 회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녹십자홀딩스는 허일섭 회장 일가가 장악하고 있다. 만약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허일섭 회장이 자녀들에게 주식을 넘겨준다면 또 다른 시나리오가 나오게 된다. 다만 허일섭 회장의 자녀 3명은 아직 회사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허일섭 회장이 향후 자신의 지분을 자식들에게 넘겨줄 경우 누가 녹십자의 차기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삼촌 지배

녹십자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녹십자 관계자는 “(성수씨가) 6500주를 매수했다 해도 지분율은 0.95%에 그쳐 크게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회사 자체 보다는 가정사 문제인 만큼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녹십자 경영권을 두고 형제간의 혈투가 될지 혹은 오히려 뭉쳐서 가족 경영을 이룰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후계 구도가 수면 위로 올라오려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녹십자홀딩스 지배구조

녹십자의 지주회사 녹십자홀딩스. 창업주 고 허영섭 전 회장의 동생인 허일섭 회장이 장악하고 있다. 녹십자의 지주사는 지분 50.06%를 보유한 녹십자홀딩스로 최대주주는 허일섭 회장 일가다.

지난 2009년 타계한 녹십자 창업주 고 허영섭 전 회장은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 했다. 아들에게는 가급적 적게 나눠줬다. 게다가 장남 허성수씨는 상속을 받지 못했다.

이후 허일섭 회장은 2대 주주로 올라섰다. 허 회장은 꾸준히 지분을 늘려 2009년 말 9%에서 올해 10.82%까지 확대했다. 허일섭 회장에게는 부인 최영아 여사 사이에 장남 허진성, 차남 허진훈, 장녀 허진영씨 등을 두고 있다. 부인 최영아 여사(0.47%)와 장남 허진성(0.38%) 차남 허진훈(0.34%) 장녀 허진영(0.26%)의 지분까지 더하면 모두 12.27%다. 아울러 허 회장은 2대주주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9.29%)의 이사장도 역임하고 있다. 허 회장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20% 이상인 셈이다.

반면 고 허 전 회장의 장남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0.94%), 차남 허은철 녹십자 신임 대표(2.36%), 삼남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2.44%)의 지분은 5.74% 수준이다. 허 회장 일가 지분에 절반도 못 미친다.


허 회장의 장남과 차남의 녹십자홀딩스 지분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 안팎에서는 허 회장이 단계적으로 지주사 경영 승계에 나서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조심스레 회자되고 있다. 실제 장남 진성씨는 8월부터 9월까지 녹십자홀딩스 지분 5만8901주를 사들였다. 지분율은 0.26%에서 0.38%로 0.12% 상승했다. 차남 진훈씨도 같은 기간 5만8798주를 취득해 0.22%에서 0.34%로 0.12% 지분율을 늘렸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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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