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고혈 짤' 다음 정책은?

담뱃값은 약과…진짜 옥죄기 지금부터!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법은 누구를 위한 걸까.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나 요즘엔 더 그렇다. ‘담뱃값 인상’ ‘단말기유통법’ ‘도서정가제’ 등 논란이 된 법안이 처리되면서 서민들의 원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의 서민 주머니 털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처음 불을 당긴 건 ‘담배 값 인상’이었다. 정부가 한 갑 당 2500원인 담배가격을 내년부터 4500원으로 2000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세수를 확보하려는 게 아니냐는 식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담뱃값 인상 소식에 흡연자들의 심장은 내려앉았다.

취지는 그럴싸
 
지난달 11일 정부는 금연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담뱃값을 대폭 인상하고 물가상승률만큼 오를 수 있도록 물가연동제를 도입, 주요 비가격 정책으로 오는 2020년까지 성인남성흡연율을 29%까지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담뱃값 인상을 통한 예산 확보로 이를 금연 치료에 투입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담뱃값 인상 소식에 여론은 요동쳤다. ‘증세 없는 복지’를 외쳤던 정부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됐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같은 달 19일에는 한 남성이 ‘담뱃값을 올리는 순간 청와대를 폭파하겠다’고 협박전화를 걸어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지난 1일 청와대는 담뱃값 인상으로 세수가 늘어나는 것은 증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담뱃값 인상은 흡연으로 인한 국민 건강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늦었지만 지금 하고자 하는 주요 정책 중 하나”라며 “청소년 흡연이 굉장히 싼 담뱃값 때문이라는 연구는 수없이 많고 이런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일환으로 담뱃값 인상이 이뤄지는 것이어서 서민증세가 아닌 (정책의)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흡연자들 대부분이 서민이라는 점이다. 세계 각국의 연구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흡연율이 고소득층에 비해 높게 나타나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세부담을 지게 되는 역진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3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는 내용의 ‘지방세법’ 및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김 의원은 “청소년과 저소득층의 흡연율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서민경제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2000원 인상하더라도 이번에는 1000원만 인상하고 3∼5년 경과기간을 두고 나머지 1000원을 추가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공동발의 명단은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 김태원 의원, 최봉홍 의원, 이에리사 의원, 안홍준 의원, 이운룡 의원 그리고 민주통합당 김성곤 의원, 김영록 의원, 박민수 의원, 인재근 의원, 이인영 의원이다.
 
담뱃값 인상은 빙산의 일각이다. 휴대전화를 비싼 가격에 구입하는 ‘호갱(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을 없애자고 만든 ‘이동통신단말장치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전 국민을 호갱으로 만들게 생겼다. 이달부터 시행된 단통법의 취지는 이동통신 시장의 과열현상과 소비자 간 불평등을 바로잡는다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다르다.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보조금에 익숙하던 소비자들의 원성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통행료, 수도·전기요금 등 줄줄이 인상
부족한 세수 충당하기 위해 서민만 타깃 
 
단통법이 소비자들의 부담을 줄이기는커녕 휴대전화 가격만 올려놨다는 불만이 쏟아지면서 여야 정치권에서는 이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14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단통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여야는 단통법이 기업의 배만 불리게 했다는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그런데 지난 5월 단통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 여야 의원 중 반대한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은 제조사와의 장려금과 이동통신사의 지원금을 분리 공시하는 단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이통사의 지원금과 제조사의 지원금을 각각 분리해 공시하고, 제조사가 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장려금 규모를 제조사별로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분리공시제가 능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해 5월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은 단통법을 대표발의 했다. 조 의원은 “법의 효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한데도 초기부터 제도 실패 등을 운운하는 것은 제도 정착의 장애요인이 된다”며 (제도 정착에는) 두세 달 이상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공동발의 명단은 전원 새누리당이다. 권은희 의원, 김성찬 의원, 김영우 의원, 김태원 의원, 김한표 의원, 남경필 의원, 안덕수 의원, 이우현 의원, 홍지만 의원이다.
 
책값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음 달부터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의 취지는 동네서점을 살리자는 것이다. 현행법에서는 발간 18개월 이전의 신간은 10%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다. 이를 18개월 이후 구간으로 확대, 전 분야에 정가제를 적용해 할인율을 10%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11월21일부터는 50∼60%를 넘나들던 책값 할인율이 10% 이내로 제한된다.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의 책 가격이 비슷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출판 유통 구조가 투명해지고 신간 창작도 활기를 띨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일부 소비자들은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구간 사재기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의원은 도서정가제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공동발의 명단은 새정치민주연합 윤관석 의원, 이상직 의원, 도종환 의원, 홍종학 의원, 배기운 의원, 김재윤 의원, 전병헌 의원, 강동원 의원, 신경민 의원, 이학영 의원, 최민희 의원, 박주선 의원, 정성호 의원 그리고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이다.

정부·국회 합작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부가 연내 고속도로 통행료 4.9% 인상을 추진하는 가운데 수도요금, 전기요금까지 줄줄이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에 따른 적자를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KT가 월정액제인 초고속인터넷 요금제를 부분종량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인터넷 종량제가 도입되면 사용요금에 따라 사용총량에 따른 차등 요금이 적용될 전망이어서 인터넷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우버택시’ 금지 논란
 
스마트폰을 이용한 차량공유 앱 ‘우버(Uber)택시’를 금지하는 법 개정안이 추진될 전망이다. 지난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 등은 우버택시를 금지하는 내용의 여객운수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정보통신 서비스를 이용해 여객운수를 알선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우버택시를 겨냥한 법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이를 어길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됐다. 더불어 우버택시 운행을 신고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받는 신고포상금제도도 추가될 전망이다.
 
우버택시는 2010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시된 이후 현재 세계 40여개국 170여 도시에서 진행 중인 서비스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카풀 내지 차량공유형태로 차량과 승객을 연결해주고 이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형태로 이뤄진다.
 
우버택시는 우리나라에 2013년 8월 도입됐다. 리무진 업체와 고객을 중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택시 면허를 받지 않고 택시 영업을 하는 위법행위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우버 측은 단순한 정보 제공이라고 이를 반박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방법원은 지난달 초 우버택시에 대해 영업금지 명령을 내렸다가 2주일 만에 철회한 바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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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