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KB호 새선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지주-은행? 더 이상 형제끼리 전쟁은 없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부사장이 KB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내정됐다. 신임회장 후보 중 가장 오래 KB에 몸담았던 경력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윤 내정자는 온화한 리더십으로 내부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인사로 꼽힌다. 앞으로 KB의 위상은 그의 손에 달려 있다. 글로벌 뱅크로 재도약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부사장이 하영구 씨티은행장과 경합을 벌인 끝에 KB금융그룹 차기 회장으로 내정됐다. 지난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는 이날 명동KB본점에서 5차 회의를 열어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김기홍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 윤종규 전 KB금융 부사장, 지동현 전 국민카드 부사장 등 4명의 2차 후보 중 윤 전 부사장을 차기 회장 최종후보로 결정했다.

첫 내부 출신
조직안정 기대
 
이날 면접 이후 실시된 회추위 1차 투표에서 윤 내정자가 5표,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 4표를 얻어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다. 최종 후보는 회추위를 구성하는 사외이사 9명 중 3분의 2 이상 즉 최소 6표를 얻어야 한다. 이어진 2차 투표에서 회추위원 1명이 하 행장에서 윤 내정자로 돌아서면서 윤 내정자가 6표를 확보해 최종 회장 후보로 결정됐다.
 
윤 내정자가 차기 회장에 내정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KB금융그룹 내부 출신이라는 점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내부 출신이 KB를 이끌어야 한다는 여론의 힘을 얻은 것이다. 김영진 회추위원장은 “회추위원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나왔다”며 “윤 전 부사장이 KB에서 오래 일했던 점, 여러 부문에서 경험을 쌓은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윤 전 부사장의 리더십 스타일은 전형적인 덕장”이라며 “KB금융과 국민은행 간 생겼던 분쟁도 잘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도 윤 내정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성낙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최악을 피해서 다행이다. 다시는 외풍에 휘둘리지 않도록 내부승계 프로그램과 지배구조 개선 등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내정자는 2002년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시절 김정태 전 행장이 삼고초려로 영입한 유능한 인사다. 국민은행 부행장으로서 재무·전략·영업 등을 두루 경험해 능력을 검증받았다. 이미 KB내부에서는 뛰어난 전략가로 정평이 나 있다.
 
윤 내정자가 차기 회장으로 선임되면 4대 금융지주 회장 중 3명이 성균관대 출신으로 채워진다. 금융권에 ‘성대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현 4대 금융지주 회장 중 서울대 출신인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을 제외하고는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등이 모두 성균관대 출신이다. KB금융지주를 새롭게 이끌 윤 내정자는 다음 달 21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정식 선임된다.
 
윤 내정자는 직원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KB금융 안정화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상고 출신으로 특별한 배경 없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KB금융지주 회장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윤 내정자는 KB금융 차기회장 후보 가운데 내부경력이 가장 길다. 국민은행 및 KB금융 경력을 합치면 총 7년이다. KB금융 안에서 비교적 최근까지 재무와 전략 등 다양한 업무경험을 쌓으면서 전문성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신망도 높은 편이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시절 직원들에게 시행한 국민은행장 선출 설문조사에서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또한 윤 내정자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통합 이후에 영입된 인물이라 두 세력이 일으키는 내부갈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은행과 KB금융에서 일하면서 양쪽 세력 모두에게 신망을 얻었다.
 
‘온화한 리더십’ 내부 신망 두터워

직원에 일일이 존대 ‘따뜻한 성품’
 
성 노조위원장은 “윤 전 부사장이 무너진 KB금융 직원들의 자존심 회복에 역점을 두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성 위원장은 “KB금융은 현실적으로 갈등이 계속 일어나는 조직”이라며 “분쟁 해결방안을 명확히 제시하고 조직의 화합에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 내정자는 국민은행 노조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노조는 KB금융 직원들의 중요한 대표기구”라며 “서로 마음을 열고 공명정대하며 투명한 상호신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윤 내정자는 KB금융사태로 크게 흔들린 조직을 안정시키는 것부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회장 최종후보로 선출된 인터뷰에서 “KB금융 회장으로서 조직의 화합을 불러오고 결속을 이루겠다”며 “그동안 불편을 끼쳤던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조직안정화에 포커스를 맞추고 직원들을 추스르며 상호소통을 실천할 것으로 보인다.
 
윤 내정자는 여러 갈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인물이라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조직화합과 소통을 최우선과제로 삼은 것은 그의 장점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회장 2차 후보 선임 후인 지난 17일 인터뷰에서도 “KB금융 직원들이 불행하게도 최근 운영상의 문제로 불협화음에 휩쓸렸다”며 “리더가 중심을 잡고 공평무사한 인사를 하면 문제가 해소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구원투수 등판 
신뢰의 리더십
 
향후 공식 회장 선임 절차가 마무리되면 윤 내정자의 조직관리 능력이 첫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우선 금융권에서는 윤 내정자의 회장·행장직 겸임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윤 내정자가 행장직을 겸임하게 되면 과거 KB 내부에서 반복돼 온 경영진 간 갈등은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다만 11개 자회사를 거느린 KB금융그룹 규모를 감안하면 비효율적인 체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김영진 회추위원장은 “회장과 이사회가 상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추후 윤 내정자의 의사가 주효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윤 내정자의 주도 아래 단행될 임직원 및 계열사 경영진의 후속 인사에도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윤 내정자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경영 현안으로는 LIG손보 인수건이 꼽힌다.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으로, 이미 LIG그룹과는 인수 계약을 맺고 금융당국의 편입승인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 달 안으로 당국의 승인을 받고 이달 안에 ‘KB손해보험’을 출범할 예정이었지만, KB사태가 불거지면서 승인 심사가 보류됐다.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현재 KB금융의 경영 능력으로 LIG손보를 인수할 수 있는지 검토해보겠다”며 “차기 회장 선임을 포함해 향후 KB의 경영 플랜과 안정화 조치가 나오는 것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윤 내정자에게 금융당국의 관계 개선 역할이 요구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KB금융은 이번 LIG손보 인수를 통해 그간 은행에 의존해온 수익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다는 계획이었다. LIG손보를 인수하면 20%(총자산 및 당기순이익 기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그룹 내 비은행 부문을 30%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다.
 

윤 내정자가 KB수장이 되면서 은행권에서 KB만 홀로 주가가 상승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최근 기준금리인하와 공정위의 CD금리담합 관련 언급, 모뉴엘 법정관리 신청 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은행주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KB주가가 껑충 뛰어서 관심이 쏠린다.
 
지난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KB금융의 주가는 전일대비 600원(1.56%) 오른 3만9100원을 기록했다. 동종업계인 신한지주(-2.65%), 하나금융지주(-2.17%), 기업은행(-3.75%), 우리금융(-2.85%)이 이날 일제히 하락세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기존에 내부갈등으로 불안감이 커졌던 KB금융에 새로운 CEO가 내정되면서 내외부 문제점이 해소될 것이란 기대가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윤 내정자는 KB 회추위가 최초 후보군을 9명을 선정하는 단계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초기에는 내로라하는 쟁쟁한 인물들 속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후보군이 4인으로 압축되는 과정에서 ‘관치’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후보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다. 
 
윤 내정자는 KB금융 회추위가 밝힌대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광주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18세인 1974년 외환은행에 입사해 은행원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학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해 주경야독으로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야간으로 입학해 졸업한 뒤 서울대 경영학 석사 및 성균관대 경영학 박사까지 받았다. 윤 내정자는 성균관대 금융인 모임인 ‘성금회’ 회원이기도 하다.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던 80년에는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듬해인 81년에는 25회 행정고시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학생운동 전력이 발목을 잡아 행정고시 최종 임용에서는 탈락의 쓴 맛을 봤다. 임용 탈락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하는 소송 끝에 2008년 법원은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행정고시 합격자를 임용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윤 내정자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민간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다.
 
상고 나와 회장까지…입지전적 인물

분열된 조직 추스를 적임자로 평가 
 
1973년부터는 한국외환은행 본점과 지점에 근무하면서 외환·수출입·대부 등 은행 업무 전반에 대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80년에는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해 In Charge Accountant(주임회계사) 등으로 삼성, LG그룹, 금융기관을 비롯한 국내외 기업에 대한 회계감사와 세무, 컨설팅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리스회계와 세무처리기준 정립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주도했고, 다수의 여신전문회사 설립과 관련한 각종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85년에는 Coopers & Lybrand(PWC) 도쿄 교환근무를 통해 크레디트리요네, 바클레이즈, 일본해상화재보험 등 다수의 금융기관 사업을 수행, 국제 금융 및 파생상품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91년 삼일회계법인에서는 상무이사를 거쳐, 99년에는 부대표까지 진급했다. 금융서비스본부장, 일본계서비스본부장, M&A 등 IB업무에 대한 주요 요직을 두루 경험했고, 국민은행, 외환은행, 동원증권, 미래에셋증권, 한국개발리스, BTMU 등 다수의 국내외 금융기관에 관한 책임파트너로서 회계감사 및 세무, 컨설팅을 지원했다.
 
이후 금융위기가 발생한 시점에는 은행경영평가위원과 증권회사 경영평가위원, 종금사경영평가 리스크 관리부분 실무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은행 및 증권, 종금업의 구조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우리금융지주회사 설립위원회위원과 선물거래소 설립발기인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IMF 이후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예금보험공사 운영위원(현 예금보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고 공적자금 투입 및 관리 의사결정에 관하게 되는데, 당시 쌍방울 등 회사를 매각하고 KAMCO 및 외환은행의 부실채권매각에서 재정능력을 보여줬다.
 
IB업무 전반에 관한 풍부한 지휘경험 역시 경쟁력이다. 윤 내정자는 과거 서울은행, 외환은행, 굿모닝증권 등 다수의 M&A와 관련한 실사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동아건설 등 다수의 회사에 대한 워크아웃 등의 실무를 주도하며 기업구조정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윤 내정자는 삼일회계법인 부대표였던 2002년,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제의로 통합 국민은행경영진에 합류했다.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그를 데려온 뒤 직접 보도자료에 ‘상고출신 천재’라는 글귀를 넣을 정도로 기뻐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풍부한 경험
탁월한 능력
 
이후 윤 내정자는 재무기획(CFO)과 전략기획(CSO)을 총괄하는 선임 부행장으로서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으로 출범한 KB국민은행의 합병 후 통합을 성공적으로 주도했다. 또한 국민카드와 합병에 관여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외에도 정부 지분 매입을 통해 국민은행의 민영화를 이루는 데 기여하고, 국내금융기관 최초의 하이브리드 원화채 발행 등을 주도했다.
 
 
<khlee@ilyosisa.co.kr>


[윤종규는?]
 
▲전남 나주 출생
▲광주상고 졸업
▲성균관대 경영학과 학사, 서울대 경영학과 석사, 성균관대 경영학과 박사
▲외환은행 행원
▲행정고시 합격
▲삼일회계법인
▲국민은행 재무전략기획본부장(부행장)
▲국민은행 개인금융그룹 부행장
▲김&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
▲KB지주 재무담당최고책임자(C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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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