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②> 2009 검찰 수사 총결산‘검풍’ 스친 기업&총수 현주소

변죽만 울린 기축년 스캔들 “구린내만 풍겼다”

검찰은 어느 때보다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 시작된 검찰발 기업 사정 작업은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올해 중반부터 속도를 냈다. 여기에 새로 부임한 김준규 검찰총장이 강한 기업비리 척결 의지를 보이면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검풍이 매섭게 몰아쳤다. 그 결과는 어떨까. ‘기업 손보기’에 나선 검찰의 기축년 성적표를 펼쳐봤다.

김준규 총장 취임 직후 전방위 기업비리 수사 속도   
전국서 동시다발 ‘사정폭풍’…윗선·정치권 겨냥


올해 들어 기업 비리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댄 검찰은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지난 상반기까지 ‘권력형 비리’란 꼬리표를 달고 수사선상에 오른 사건은 10여 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 구린내만 풍기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등 ‘소문난 잔치’ 또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로 흐지부지 끝났다.

상반기 깃털만 ‘만지작’
하반기 용두사미로 끝나

그나마 간신히 ‘은팔찌’를 채운 기업인들도 하나같이 무혐의나 집행유예, 보석, 불구속 등 개운치 않은 결과로 ‘묵은 먼지’를 털어냈다. 올해 처음 검찰에 꼬리가 잡힌 재계 인사는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이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이 회장 등이 2005년 이주성 전 국세청장과 관련 포스코 세무조사 무마 의혹에 연루된 정황을 파헤쳤지만 지난 1월 무슨 이유에선지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이 회장은 검찰의 수사 종결 발표 3일 전 돌연 사퇴해 또 다른 의혹을 낳기도 했다. 같은 시기 CJ의 탈세 의혹도 석연치 않게 마무리됐다. 검찰은 지난 1월 CJ CGV가 2005년 3월부터 2년여 동안 관람객 숫자를 조작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혐의를 포착, CJ CGV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나섰지만 흐지부지됐다.

전 자금관리팀장의 살인청부 혐의 조사 과정에서 수십억원대의 차명계좌가 확인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묻혀진’ 형국이다. 검찰은 당초 이 회장에 대해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해 소환조사 뜻을 밝혔지만 지금까지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은 회사 공금 20억원을 빼돌려 청탁 명목으로 설범 대한방직 회장에게 15억원을 건넨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가 불과 한 달 만인 지난 1월 보석으로 풀려나 ‘재벌 봐주기’란 비난을 받았다.

채 부회장은 지난 4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았다.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주가조작 의혹도 조용히 일단락됐다. 검찰은 조 부사장이 기업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가 있다는 증권선물위원회의 수사 의뢰에 따라 9개월 동안 수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지만 검찰은 각각 지난 3월과 9월 “범죄가 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무혐의 종결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MB정부의 사정기관이 권력형 비리, 부정부패 사건을 다룸에 있어 한없이 관대한 ‘봐주기’ ‘감싸기’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권 1년여 동안 깃털만 만지작거리다 전광석화처럼 덮었거나 굼벵이 수사로 지지부진한 대형 부정부패비리 사건들이 수두룩하다”고 비판했다. 수사 대상 기업들은 변죽만 울린 검찰의 헛발질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와중에 지난 5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와 이에 따른 총장 중도사퇴, 새로 지명된 총장 후보자의 낙마 등의 여파로 검찰은 사실상 ‘개점휴업’이었다. 이도 잠시, 자존심을 구긴 검찰은 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 8월 지휘봉을 잡으면서 ‘재계 손보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기업을 향한 검찰의 칼끝이 더 예리해진 것.

인사청문회에서 “특별수사에 일선 지검의 특수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김 총장은 자신의 구상대로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해 각 지역 검사장들을 잇달아 불러 토착비리와 기업비리 척결을 적극 주문했고, 이후 검찰의 사정 폭풍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매섭게 몰아쳤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이 대통령의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도 힘을 보탰다.

그 첫 신호탄이 국내 굴지의 기업인 대한통운과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해양, 현대산업개발 등이다.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강압 논란을 빚은 대검 중수부 대신 일선 지검 특수부를 각개전투식으로 선봉에 세워 이들 4개의 기업을 정조준했다. 대한통운,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해양, 현대산업개발 수사를 각각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와 인천지검 특수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울산지검 특수부가 맡은 것.

세 갈래의 수사 방향은 횡령, 비자금 조성, 특혜, 로비 등 고질적인 기업 스캔들과 그룹의 ‘윗선’ 또는 정치권으로 향했다. 검찰은 지난 9월 대한통운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결국 곽영욱 전 사장을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했다. 곽 전 사장이 이 돈을 정·관계 인사에게 건넸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수사는 예상대로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었다. 곽 전 사장이 2007년 초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것.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한 전 총리에게 출석을 통보했지만 한 전 총리가 이를 거부하면서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검은돈’ 정황 캐내고
‘돈 흐름’ 단서 못잡아

검찰은 지난 7월 임원들의 개인 비리 정황을 포착, 대우조선해양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도 압수수색했다. 이어 지난 10월 계약상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대우조선해양건설 전 대표 김모씨를 구속했다. 검찰은 회사 측이 납품업체와 짜고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검은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현직 임원들이 정부지원금 79억원을 빼돌린 것. 검찰은 지난 11월 국책연구 과정에서 연구개발비용을 부풀려 정부지원금을 빼돌린 혐의로 두산인프라코어 계열사 사장 김모씨와 전직 임원 박모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임원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두산 측은 이들이 가로챈 79억원을 전액 반환하기로 했지만 그룹 전체로 수사가 확대될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하청·협력업체들로부터 불법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혐의로 현대산업개발 공사현장 임원을 포함한 전·현직 간부들을 무더기 적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던 전국 6곳의 공사현장에서 하청·협력업체 6곳으로부터 모두 30억원 상당의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검찰의 토착비리 수사는 대형 건설사들을 정조준한 형국이다.

“내사만 질질” 여전히 지지부진 사건도 수두룩
LG 곤지암, 효성 비자금, 태광 큐릭스 인수 등


재계에선 검찰의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조만간 대기업 비리에 대한 대대적 사정작업이 본격화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그 대상에 올라있는 기업은 한진, 두산, OCI(옛 동양제철화학), 신동아건설, 대림산업, SK건설, 금호건설, 롯데건설, 현대건설 등이다. 검찰 관계자는 “광범위한 사정작업은 특정 인물, 특정 기업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다”라며 “이 대통령과 김 총장이 토착비리 등에 대한 척결 의지를 밝힌 이후 기업 비리에 대해서도 축적됐던 첩보를 하나하나 확인해 수사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속도가 여전히 지지부진한 사건들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사건과 관련이 있든 없든 무수한 기업들이 도마에 오르내리는 실정이다. 의혹과 소문만 키운 채 뜸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1조원대의 부동산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 LG그룹의 곤지암리조트 특혜 의혹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직 밝혀진 사실이 전혀 없다.

지난해 12월 개장한 곤지암리조트는 LG그룹이 1995년 착수한 대형 리조트개발사업이다. 문제는 리조트가 들어선 곤지암 일대가 팔당상수원 보호구역인 탓에 그동안 개발이 제한됐는데 참여정부 때인 2004년 갑자기 사업이 재개됐다는 점이다. 검찰은 지난 3월부터 이 부분에 대해 내사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을 둘러싼 의혹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효성그룹 일본 현지법인 수입부품 거래과정에서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200∼300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부자 제보에 따라 지난 2월 수사에 착수했지만 별 성과가 없는 상태다. 검찰은 지난 9월 효성그룹 비자금 중 일부가 조석래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개인용도로 사용된 단서를 포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태광그룹의 큐릭스 인수 의혹도 답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검찰은 태광그룹의 티브로드가 올초 편법으로 업계 경쟁사인 큐릭스를 인수하면서 정치권 인사 등을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당시부터 첩보를 수집해 지난 9월 본격 내사에 나섰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2006년 12월 큐릭스의 대주주인 큐릭스 홀딩스의 지분 30%를 군인공제회가 인수한 후 2년 내에 태광그룹 산하 태광관광개발에 옵션을 붙여 되팔 수 있도록 이면 계약했다”고 주장했다.

티브로드는 방송통신위윈회가 큐릭스 인수 승인 결정 직전인 지난 3월 유흥업소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접대한 것으로 드러나 로비 의혹을 받았지만 이 역시 용두사미로 끝났다. 최근엔 검찰이 야심차게 덤볐던 SLS조선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이 싱겁게 마무리됐다. 검찰은 기업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허위로 공시한 혐의로 이국철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이 회장으로부터 공사 인·허가 등 행정편의를 봐준 대가로 미화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진의장 통영시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외주 가공업체를 설립해 공사금액을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45억원의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이 회장의 형인 이여철 SLS조선 대표이사와 계열사 관계자 등 4명을 구속 기소했지만 그 돈이 로비에 사용된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미술품 강매 사건과 해외부동산 불법 취득에 연루된 기업들에 대해서도 검찰이 수사 중이지만 뾰족한 단서를 찾지 못하는 형편이다.

검찰은 지난 8일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을 뇌물수수와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안 전 국장은 C사, L사, S사 등 기업 5곳에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부인이 운영하는 가인갤러리 미술품과 조형물 등 36억원어치를 팔았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 기업 외 굵직한 다른 대기업에 대해선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 넘긴 미스터리들
“뾰족한 수 있을까”

해외부동산 불법 취득 건도 사정은 비슷하다. 검찰은 지난 10월 재벌그룹 오너일가의 해외부동산 불법 조성 매매에 대해 수사에 착수, 부동산 자금 출처와 이동 경로 등을 추적하고 있으나 3개월째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재미교포 안치용씨는 지난 9월 자신의 블로그에 효성그룹, 두산그룹, 애경그룹 등 재벌그룹 일가의 초호화 미국 부동산 거래를 공개해 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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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