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비밀 [제25탄] 롯데리아 ‘불고기버거’

한국기업일까 일본기업일까 ‘헷갈리네’

[일요시사=경제1팀] 총체적 불황 속에서도 유독 잘 나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막강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이다. 기업 수익과 직결되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확보한 아성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1등 브랜드’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분명 존재한다. 소비자 눈을 가린 ‘구멍’이 그것이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 방향 모색과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히트상품의 허점과 맹점, 그리고 전문가 및 업계 우려 등을 연속시리즈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롯데리아가 지난달 25일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사람 나이로 치면 ‘이립’이다. 롯데리아는 1979년 10월25일 서울 소공동에 1호점을 최초로 열었다. 한국 패스트푸드의 원조이자 프랜차이즈 산업의 시초다. 롯데리아의 역사가 곧 국내 패스트푸드·프랜차이즈의 역사인 것이다.

롯데리아는 현재 전국에 780여 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국내 패스트푸드 시장에서 점유율 45% 이상을 차지하며 업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베스트셀러 불고기버거
한국인 입맛 사로잡다

재무상태도 양호하다. 롯데리아는 2000년 매출 3000억원을 넘어선 이후 2006년 2200억원으로 다소 주춤했지만 2007년 2400억원에 이어 지난해 다시 30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2006년 58억원, 2007년 92억원, 지난해 145억원을 기록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부채는 지난해 1300억원으로 총자산(3600억원)의 30%대를 넘지 않고 있다. 보유현금은 2007년(15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39억원 정도다.

롯데리아의 성공 비결은 까다로운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은데 있다. 변화무쌍한 소비자의 기호를 반영한 신 메뉴들을 선보인 것.


롯데리아는 1980년 ‘새우버거’에 이어 ▲불고기버거(1992년) ▲라이스버거(1999년) ▲크랩버거(2002년) ▲한우불고기버거(2004년) ▲텐더그릴치킨버거(2007년) ▲아보카도통새우버거(2008년) ▲한우스테이크버거(2008년) ▲불새버거(2009년) 등을 출시했다.

이중 롯데리아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는 ‘불고기버거’다. 1992년 첫 선을 보인 불고기버거는 18년째 평균 18%의 매출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모두 4억개 이상이 판매됐다. 이를 한 줄로 늘어놓으면 서울과 부산을 무려 45회 왕복할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양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제대로 공략한 불고기버거는 ‘한국형 햄버거’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인 불고기를 서구식 햄버거에 접목시켰다. 쇠고기 패티에 불고기 소스로 맛을 낸 것. 불고기버거는 소비자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는 라이스버거, 한우불고기버거, 한우스테이크버거 등 다양한 한국형 버거 개발의 신호탄이 됐다.

롯데리아 측은 “쇠고기뿐 아니라 해산물, 치킨 등 육해공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햄버거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며 “기존 패스트푸드 아이템과 차별화된 디저트와 계절 메뉴들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앞을 내다본 안목도 빼놓을 수 없는 롯데리아의 성공 비결이다. 롯데그룹은 197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과 맞물려 국내에서 머지않아 외식산업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롯데리아를 구상했다. 당시 이미 카페형 매장을 염두에 두고 롯데그룹의 ‘롯데’에 카페테리아의 ‘리아’를 결합한 ‘롯데리아’란 이름을 지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맥도날드, KFC, 버거킹 제치고 점유율 45%로 선두
지분구조, 한국계 80% 일본계 20% 
최대주주, 일본기업 장악 호텔롯데

실제 롯데리아는 2000년대 들어 웰빙 열풍에 맞춰 메뉴를 비롯해 ‘딱딱한’ 점포를 ‘부드러운’카페형 매장으로 바꾸고 있다. 현재 780여 개 매장 가운데 70% 이상이 고급 카페형 매장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일찌감치 추진한 해외진출 또한 롯데리아의 안목이다. 롯데리아는 2004년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에 앞서 아시아 핵심지역에 ‘깃발’을 꽂았다. 베트남과 중국이 거점이다.

1998년 베트남에 첫 진출한 롯데리아는 호치민과 하노이 등에 6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베트남 패스트푸드 시장에서 4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현지에서도 국내와 마찬가지로 불고기버거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중국에선 지난해 8월 베이징에 1호점을 오픈한 이후 현재까지 16개 점포가 성업 중이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해외시장에서 롯데리아가 성공한 것은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와 친절한 종업원 양성, 현지인 입맛에 맞는 메뉴 출시, 신선한 재료 관리 등에 남다른 노력을 들였기 때문”이라며 “특히 베트남에선 롯데리아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고급 레스토랑의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30년간 위기도 적지 않았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일도 많았다. 그때마다 롯데리아는 뛰어난 위기 대처로 ‘수렁’에서 벗어났다.

맥도날드가 1988년 3월 1호점을 서울 압구정동에 오픈한 이후 KFC, 버거킹, 파파이스 등 외국 브랜드들이 속속 국내에 상륙해 롯데리아 아성에 도전했지만 점포수가 롯데리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등 아직까지 한수 아래로 평가받는다.

전국 780개 매장 운영
아시아 요지에 ‘깃발’

외국 브랜드들은 한국인의 주머니를 열기 위해 롯데리아 상품과 비슷한 불고기버거를 내놓았으나 원조를 추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정국 땐 롯데리아 햄버거에 미국산 쇠고기가 사용된다는 소문이 확산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당시 롯데마트 등 롯데그룹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지만 롯데리아는 “100% 한우와 호주산만 사용하고 있다. 향후에도 미국산 쇠고기의 사용 계획은 없다. 국민들에게 엄선된 최고의 먹거리만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롯데리아가 올해부터 ‘안전먹거리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2년엔 다른 업체들과 담합을 통해 음료 리필을 중단한 사실이 드러났다. 롯데리아 등은 공정위가 담합 조사에 착수하자 곧바로 리필 서비스를 재개해 빈축을 샀다. 롯데리아 측은 “앞으로 리필 서비스를 중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롯데리아는 한때 업계 선두란 명성과 달리 사회공헌에 인색하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좋은 세상 만들기’, ‘사랑 나눔 릴레이’등 각종 불우이웃 돕기 프로그램과 사회활동 캠페인을 10년 넘게 지속적으로 펼쳐 논란을 잠재웠다.

최근엔 기존의 햄버거사업과 커피사업 ‘엔제리너스커피’외에 패밀리레스토랑 사업 ‘T.G.I.프라이데이스’, 도넛사업 ‘크리스피크림도넛’등 그룹에서 운영하던 ‘골칫덩어리’사업들을 잇달아 인수해 ‘부실사 떠안기’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롯데리아는 “그룹 내 외식사업을 아우르는 핵심 계열사로 나아가 국내 외식업계를 선도하는 종합외식업체로 거듭날 것”이라며 오히려 제2의 도약을 위한 기회로 삼고 있다.

특히 롯데리아는 외국 자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소비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점이다. ‘롯데리아가 한국기업일까, 일본기업일까’란 질문이다. 소비자들이 한번쯤 떠올릴 만한 해묵은 의문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롯데리아 측은 ‘순수 토종브랜드’라고 강조한다. 업계 관행상 대부분의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연매출의 1%에서 많게는 6%까지 로열티로 외국 본사에 지불하고 있다. 반면 롯데리아는 로열티를 전혀 지불하지 않아 한국 고유의 브랜드란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롯데리아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본기업’ 인식이 퍼지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각 점포에 태극기를 갖다놓고 태극마크를 넣은 포스터와 포장지를 사용하는 대대적인 ‘태극기 마케팅’을 벌이기도 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일본으로 이익이 들어간다는 상대 업체들의 음해와 소비자들의 오해가 있지만 롯데리아는 외국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단 한 푼도 없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력과 서비스의 질이 높다”며 “똑같은 ‘롯데리아’ 상호를 사용하는 한국롯데리아와 일본롯데리아가 있지만 각각 전혀 다른 별도의 회사”라고 강조했다.

롯데리아가 일본기업이란 주장도 그럴 만 하다. 우선 지분 구조가 그렇다. 외국인(일본)투자기업으로 등록돼 있는 롯데리아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계 79.92%, 일본계 20.08%로 나눠진다. 최대주주는 사실상 일본기업인 호텔롯데로 20.2%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한국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은 일본롯데(19.21%), 일본롯데물류(15.75%), 일본롯데데이터센터(10.48%), 일본롯데애드(9.47%), 롯데전자공업(8.66%), 일본광윤사(5.49%) 등으로 대부분 일본롯데 계열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외국 지불 로열티 없다”
‘태극기 마케팅’ 동원도

호텔롯데는 롯데리아 외에 롯데쇼핑(9.29%), 롯데제과(3.21%), 롯데캐피탈(27.33%), 롯데산업(36.82%), 롯데물산(29.62%), 롯데건설(47.5%), 롯데상사(30.5%), 롯데리아(20.2%), 롯데기공(17.38%), 호남석유화학(13.64%) 등 한국롯데 핵심 계열사들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롯데리아의 국내 사업도 일본롯데리아를 도입한 것이 배경이다. 일본롯데리아는 1972년 일본에서 먼저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1979년 한국으로 넘어왔다. 1982년엔 합작계약을 맺고 지분을 참여하기도 했다. 따라서 롯데리아가 국내 최초 프랜차이즈는 맞지만 한국 순수 자금이 투입된 첫 토종 프랜차이즈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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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