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민주당 계파혈전 막전막후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4.02.03 10: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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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중지란'은 새누리에 어부지리…벌써 떡시루 엎었다

[일요시사=정치팀]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새해 첫 일성은 '분파주의 극복'이었다. 그만큼 민주당의 계파갈등은 고질적이고 심각하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계파갈등이 봉합되기는커녕 당내 최대계파인 '친노'는 물론이고 소수계파들까지도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과연 민주당은 계파갈등을 극복하고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민주당이 계파주의 청산을 위해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패배 후 당내 주류인 친노(친노무현)가 몰락하고 김한길 대표 체제가 출범하며 계파갈등이 극에 달했다. 민주당의 자중지란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 현재 민주당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다. 때문에 김한길 대표는 새해 첫 일성으로 ‘분파주의 극복’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친노 진영에 대한 선전포고로 해석되며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계파청산
선전포고?

특히 김 대표의 신년기자회견문 초안에는 친노 강경파들을 겨냥해 더욱 강경한 발언들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친노계에 대한 김 대표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 같은 작심발언을 할 경우 당내 계파갈등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불과 기자회견 몇 시간 전 원고를 대폭 수정했다는 후문이다.

김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내부에 잔존하는 분파주의를 극복하겠다"고 공언한 직후 당내 각 계파의 수장인 문재인 의원,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상임고문 등과 릴레이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각 계파의 수장들에게 다가오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대해 문 의원은 "계파해체 선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실제로 계파라고 할 만한 모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곤혹스럽다"며 "당의 단합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그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손 고문은 "지방선거 승리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고, 정동영·정세균 고문도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당내 계파 수장들이 모두 당 지도부와의 협력을 다짐한 것이다.

각 계파, 지방선거 앞두고 세력화 움직임
해묵은 계파갈등 재발? 최후 승자는 누구?

그러나 정작 물밑에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계파 수장들의 세력싸움이 본격화된 모양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예상 밖으로 김한길 대표였다. 김 대표는 지난 15일 6·4지방선거를 겨냥해 사무총장을 비롯한 주요 당직을 개편했다. 김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를 총괄·기획할 사무총장에는 당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자신의 최측근인 노웅래 의원을 임명했다.

신임 전략홍보본부장에도 역시 자신과 가까운 최재천 의원을 기용했다. 대변인에는 원외인사인 박광온 당 홍보위원장을 앉혔다. 박 대변인은 김 대표가 지난해 장외투쟁을 하며 전국을 순회할 당시 함께 호흡을 맞춰 토크콘서트를 진행할 정도로 친분이 깊다.

공석이었던 지명직 최고위원에는 구민주계 인사인 정균환 전 의원이 지명됐다. 정 전 의원 역시 김 대표와 새정치국민회의 시절부터 인연이 깊은 인사다. 지방선거를 사실상 지휘할 당의 전략·홍보라인에서 친노계는 철저히 배제됐다.

친노계 배제
시작된 싸움

특히 일부 의원들은 당직개편 사실을 발표 당일까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친노계 배제에 대한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극비리에 당직개편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도 나왔다. 실제로 친노계 내부에서는 이번 당직개편에 대한 불만도 표출되고 있다. 한 초선의원은 "혁신이라기보다는 자기사람만 챙긴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고, 친노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선택한 계파 청산 방법이 '당내 화합'이 아니라 '친노 힘빼기'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당내에서 "존재감이 없다" "바지사장이다"라는 평가까지 받아왔던 김 대표가 신년을 맞아 계파 청산을 기치로 강공드라이브를 펼치자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는 언론이 자신을 친노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는 의원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19대 개원 이후 언론들은 해당 의원들을 꾸준히 친노로 분류해왔지만 그동안은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었다. 갑작스런 변화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다음 총선에서 무난히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당 지도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당 지도부와 친노 간의 갈등이 표출되면서 친노로 분류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해당 의원들은 "내가 친노로 분류돼 당 지도부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현재 민주당에는 친노도 없고 비노도 없다. 자꾸 이분법적으로 민주당을 재단하며 이간질을 시키려는 듯해 불쾌감을 내비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 대표로부터 의외의 일격을 맞은 친노진영은 반격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우선 김 대표가 '햇볕정책 2.0'과 북한인권민생법 제정을 강조하는 등 지지층 확대를 위한 우클릭 행보에 나선 것에 대해 친노진영이 반발하며 김 대표를 견제하고 있다.

김한길 "계파청산!"…친노에 대한 선전포고?

김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햇볕정책을 보완해야 하는 근거로 “당시 정책은 북한이 핵을 갖췄다는 게 전제되지 않은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유권자층이 점점 보수화되고 있는 가운데 종북몰이에서 벗어나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 전략적 우클릭을 하겠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민주당 대북정책의 근간이다. 당장 당내 동교동계와 친노계, 학생 운동권 출신 의원 등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동교동계 박지원 의원은 "햇볕정책 때문에 북이 핵을 개발했는가"라며 당 지도부를 비판하며 햇볕정책을 조금이라도 수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친노계 홍익표·김기식 의원 등도 '당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내 반발이 높아지자 김 대표는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SNS나 언론 인터뷰를 거론하며 "내부에서 서로 총을 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경고했지만 친노 강경파로 분류되는 정청래 의원은 다음날 보란 듯이 자신의 SNS를 통해 "며칠 전에 당의 우경화를 걱정하면서 트위터에 몇 마디 썼더니 김한길 당대표께서 내부 총질 운운하며 겁박을 했다"며 김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김 대표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를 갖고 계파 청산에 나섰지만 오히려 당 지도부와 친노진영 간의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친노진영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태업'함으로써 당을 선거에서 지게 만들고 당 지도부를 전격적으로 탈환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까지 회자된다.

소수계파
캐스팅보트


자칫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키면 친노계를 겨냥해 연일 계파청산을 요구하고 있는 당 지도부에 더욱 힘이 실릴 우려가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게 되면 현 당 지도부는 더 이상 직을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미 친노진영에선 3선의 모 의원을 차기 당대표로 점찍어 두고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친노로 분류되는 박영선 의원은 최근 원내대표에 도전할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현 전병헌 원내대표의 임기는 오는 5월까지다.

당 지도부와 친노진영 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민주당 내 소수계파들도 움직임을 본격화하려는 모양새다.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데다 당 지도부와 친노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과정에서 소수계파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친노-당지도부 갈등 격화 '내부 총질'
캐스팅보트 쥐고 미소 짓는 소수계파

우선 손학규 상임고문은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활동을 통해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손 고문은 최근 재단의 신년토론회에 참석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손 고문은 경기지사를 지낸 이력이 있어 오는 7월 재보선에서 보선이 확정된 경기 평택을과 수원을 지역구 출마 가능성도 벌써부터 회자되고 있다.

정세균 고문은 국정원개혁특위 위원장을 맡고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고, 정동영 고문은 전북도지사 차출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의 활동 재개와 함께 평소 이들의 사람으로 분류됐던 인사들도 활동 폭을 조금씩 넓혀 가고 있다. 소수 계파 수장들의 몸값은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춘추전국 계파
민주당은 갈림길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계파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각 계파별 이합집산과 대립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의 '춘추전국' 계파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아무리 김 대표가 이전과는 달리 계파청산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지만 민주당의 해묵은 계파갈등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민주당 의원 중 약 30% 가량이 친노로 분류되는데 과연 힘으로 찍어 누른다고 계파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친노와 비노 간 갈등은 지난 총선 당시부터 벌써 2년째 지속되고 있고 그동안 계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있었지만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사실상 계파갈등 청산은 어렵고 차라리 새누리당처럼 계파의 구분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한 쪽이 힘을 잡으면 다른 한 쪽은 누그러지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4년 새해 민주당의 계파갈등은 해소될 수 있을까? 민주당은 지금 갈림길에 서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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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