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람들 릴레이인터뷰 1>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선생님은 영원한 민족의 스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동교동계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랜 시간 김 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삶을 생생히 목도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보다 더 따뜻했던, 눈물 많고 정 많은 김 전 대통령을 보았고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한 인동초 삶을 지켜봤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유훈도 평소 그가 항상 해왔던 말들이었다.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면들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되새겨봤다. 

DJ와 30년 질긴 인연, 첫 국회의원 대정부 질문이 시작
굴곡진 정치사 고비 고비 마다 DJ 곁에서 어려움 도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동교동계 인사 중에는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김 전 대통령과 같이한 30여 년 동안 그가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아끼지 않은 대표적인 측근이기 때문이다.

국상이 마무리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지난달 28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한 전 대표를 만났다. 국상 후 며칠 동안 고단했던 몸을 추스른 한 전 대표의 모습은 한결 나아보였다. 인터뷰 내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에 젖은 그의 뒤로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에서 촬영한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념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 동교동계 주요 인사로 불릴 정도로 DJ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
1981년도에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다. 1982년 10월7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의를 통한 첫 발언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말했다. 당시 나는 김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생활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이었다. (그가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본회의장에서 6가지를 이야기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석방, 광주 사태 진상조사, 전두환 대통령의 민정당 총재직 사퇴,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와 언론의 자유가 그것이다. 김 전 대통령같이 억울한 정치지도자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존경받아야 하는 인물이었다. 두 달 후인 12월 김 전 대통령이 교도소를 벗어나게 됐다. 내 대정부질의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 등 각계 인사들의 구명운동 때문이었다. 교도소를 벗어난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DJ 유언은‘화해와 용서’, 상도동계와 화해 큰 흐름
“민주당을 중심으로 화합할 수 있도록 힘 보탤 것”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1985년 귀국 후였다. 김 전 대통령에게 인사를 갔는데 내 대정부질의를 기억하고 “가족과 더불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게 인연이 됐다. 귀국한 김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추협의 양대 산맥이 됐다. 이전에도 민추협은 활동하고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이 합류하고 나서야 활발히 움직이게 됐다. 낙선한 내게 김 전 대통령이 민추협 대변인을 제의하면서 인연이 계속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미니 민주당의 야당 통합과 DJP연합, IMF 시절 노사정위원장, 민화협, 옷 로비 사건 후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청와대로 가는 등 김 전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은 고비고비마다 그와 함께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투쟁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진정성과 한길을 걸으며 인동초 같은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을 보고 김 전 대통령과 함께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 국회 본회의 발언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국회 첫 발언에서 뜻있는 말을 하는 것이 민주화 학생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나를 뽑아준 관악구민에게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일이었다. 의원직을 걸고, 목숨을 걸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8개월가량 내사를 받았었다. 주변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는데 비밀로 하라는 말도 있었고 너무 무섭기도 해 말을 하지 못했었다. 10개월이 지나 나에게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 이후 오랜 기간 DJ와 함께하며 그를 지켜봤다. 곁에서 본 DJ는 어떤 사람이었나.
김 전 대통령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산이 있으면 큰 산이라고만 하지 어떤 산이라고는 말을 못하는 것과 같다. 그는 큰 인물이었고 정치지도자였다.
인간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눈물도 많았다. 바탕이 착하고 선한 분이었다. 노력하고 인내하는 사람이었다.

- 인간적인 DJ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시골에 모시고 가면 “산을 보라”하신다. 바위가 왜 저렇게 생겼는지, 나무는 왜 그렇게 휘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항상 머리를 쓰고 창조적인 아이템을 생각해내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은 내가 김 전 대통령에게 “선생님 골프가 참 좋은 운동이죠” 했다. 그랬더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냐. 그 시간에 책을 잃고 얻는 희열이 더 크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 말이 가슴에 남아 한동안 골프를 치지 않았다. 지금도 자주 치는 편은 아니다. 계속 쳤으면 프로급일 텐데….

김 전 대통령은 일생을 노력하며 살았다. 진지하게 살았다. 때문에 개인적인 재미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창조적으로 엮어내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독서광이었고 이희호 여사와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이 여사에 대해 “나이가 먹을수록 정이 든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굴곡이 심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곁을 지켜준 것이 고마워서일 것이다. 나도 한숨 쉴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되니 고생한 안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깊은 정이 되더라. 
 
- 정치적인 면에서 DJ는 어떤 사람이었나.
정치적인 면에서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정치적인 목적이 생기면 온 몸으로 투쟁했다. 투쟁에 정책과 노력을 겸비했다.

- DJ는 쌓은 업적 중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공이 적지 않다.
김 전 대통령은 정적에 의해 5번의 죽을 위기를 겪었다. 그러면서도 정치적으로 끈질긴 투쟁을 했다. 민주화를 앞당긴 공이 있다.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군부에 의한 정권교체가 아닌 평면적, 평화적 정권교체는 김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YS는 삼당합당으로 대통령직에 올랐으니 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된 정권교체는 아니었다.

- 의회주의자였던 DJ에 대해 듣고 싶다.
노태우 정부 때 지방자치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을 한 적이 있다. 의원직을 사퇴하고 의원회관에서 철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단식투쟁을 벌였다. 지자제를 얻어냈지만 국회의원은 국회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굳게 한 일이었다. 국회의원은 원내에 있어야 하며 원내외투쟁을 병행하되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DJP연합에서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의원내각제라는 산을 넘어야 했다. 나는 김 전 대통령이 내각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나도 내각제를 반대하지는 않아”라고 이를 받아들였다.  
 
- 민주화 외에도 경제, 사회적으로 이룩한 공이 크다. 
집권 후 IMF라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했다. 제2의 국난이라고 불린 IMF 외환위기를 신속하게 벗어났다. 당시 나도 노사정위원장으로 노사정간 대타협을 이끌어내 국가 부도를 막는데 일조한 바 있다. 

IT 사업을 이끈 것도 김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서 힌트를 얻어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부터 지식정보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우리나라가 IT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를 만드는 등 인권 문제에도 공이 크다. 서민 복지를 위해 노력했고 동서간의 화합, 국민 통합을 위해 매진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평화를 연 최초의 대통령이다. 평화를 위한 끈질긴 노력으로 남북화해에 큰 공을 세웠다.

- 공적이 있다면 과실도 있을 수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은 한 일이 많다. 역사가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이고 순수한 의도에서 했던 일이 홍보보다 행동이 먼저 이뤄지면서 국민들의 이해를 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

- DJ의 유훈은 무엇인가.
평상시 들어온 이야기들이다. ‘화해와 용서’를 통한 국민통합이다. 서민을 위한 경제를 이룩하고 남북문제와 인권 등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뜻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줄곧 주장한 것이다.

- 그중 핵심이 되는 것이 있다면.
‘화해와 용서’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납치돼 죽을 뻔 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 설립을 승인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그를 사면 복권했다. 보복하고 싶은 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모두 용서했다. YS와 생전에 만나 화해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내가 돌아가신 분은 아니지만 YS가 화해하러 왔는데 싫다고 내칠 분은 아니다. 앙금이 있지만 자연히 화해했을 것이다.

YS가 주도하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모임이 미뤄지면서 화해 분위기가 냉각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모임은 49일 이후로 미뤄졌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인사 중 화해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화해’라는 큰 흐름은 한두 사람의 말에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인 ‘용서와 화해’를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 향후 동교동계 인사들이 DJ의 유훈에 따라 민주개혁 진영의 통합에 일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당 상임고문으로 복당한 상태다. 앞으로 민주당을 중심으로 화합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것이다. 분열이 아닌 통합을 위해 힘쓰겠다.

-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통합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정당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교체에 있다.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의석수를 늘리고 정권 장악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을 기반으로 재야는 물론 필요하다면 민주노동당까지 끌어안는 반한나라당 연합을 이뤄야 한다.

 

한광옥은 누구?

1981년 제11대 민한당 국회의원
1988년 제13대 평민당 국회의원, 김대중 평민당 총재 비서실 실장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사무총장
1998년 제1기 노사정위원장
1999년 11월 청와대 비서실 실장
2002년 통일미래연구원 이사장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2009년 2월 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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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