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람들 릴레이인터뷰 1>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선생님은 영원한 민족의 스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동교동계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랜 시간 김 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삶을 생생히 목도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보다 더 따뜻했던, 눈물 많고 정 많은 김 전 대통령을 보았고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한 인동초 삶을 지켜봤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유훈도 평소 그가 항상 해왔던 말들이었다.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면들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되새겨봤다. 

DJ와 30년 질긴 인연, 첫 국회의원 대정부 질문이 시작
굴곡진 정치사 고비 고비 마다 DJ 곁에서 어려움 도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동교동계 인사 중에는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김 전 대통령과 같이한 30여 년 동안 그가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아끼지 않은 대표적인 측근이기 때문이다.

국상이 마무리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지난달 28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한 전 대표를 만났다. 국상 후 며칠 동안 고단했던 몸을 추스른 한 전 대표의 모습은 한결 나아보였다. 인터뷰 내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에 젖은 그의 뒤로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에서 촬영한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념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 동교동계 주요 인사로 불릴 정도로 DJ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
1981년도에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다. 1982년 10월7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의를 통한 첫 발언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말했다. 당시 나는 김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생활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이었다. (그가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본회의장에서 6가지를 이야기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석방, 광주 사태 진상조사, 전두환 대통령의 민정당 총재직 사퇴,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와 언론의 자유가 그것이다. 김 전 대통령같이 억울한 정치지도자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존경받아야 하는 인물이었다. 두 달 후인 12월 김 전 대통령이 교도소를 벗어나게 됐다. 내 대정부질의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 등 각계 인사들의 구명운동 때문이었다. 교도소를 벗어난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DJ 유언은‘화해와 용서’, 상도동계와 화해 큰 흐름
“민주당을 중심으로 화합할 수 있도록 힘 보탤 것”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1985년 귀국 후였다. 김 전 대통령에게 인사를 갔는데 내 대정부질의를 기억하고 “가족과 더불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게 인연이 됐다. 귀국한 김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추협의 양대 산맥이 됐다. 이전에도 민추협은 활동하고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이 합류하고 나서야 활발히 움직이게 됐다. 낙선한 내게 김 전 대통령이 민추협 대변인을 제의하면서 인연이 계속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미니 민주당의 야당 통합과 DJP연합, IMF 시절 노사정위원장, 민화협, 옷 로비 사건 후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청와대로 가는 등 김 전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은 고비고비마다 그와 함께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투쟁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진정성과 한길을 걸으며 인동초 같은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을 보고 김 전 대통령과 함께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 국회 본회의 발언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국회 첫 발언에서 뜻있는 말을 하는 것이 민주화 학생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나를 뽑아준 관악구민에게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일이었다. 의원직을 걸고, 목숨을 걸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8개월가량 내사를 받았었다. 주변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는데 비밀로 하라는 말도 있었고 너무 무섭기도 해 말을 하지 못했었다. 10개월이 지나 나에게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 이후 오랜 기간 DJ와 함께하며 그를 지켜봤다. 곁에서 본 DJ는 어떤 사람이었나.
김 전 대통령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산이 있으면 큰 산이라고만 하지 어떤 산이라고는 말을 못하는 것과 같다. 그는 큰 인물이었고 정치지도자였다.
인간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눈물도 많았다. 바탕이 착하고 선한 분이었다. 노력하고 인내하는 사람이었다.

- 인간적인 DJ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시골에 모시고 가면 “산을 보라”하신다. 바위가 왜 저렇게 생겼는지, 나무는 왜 그렇게 휘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항상 머리를 쓰고 창조적인 아이템을 생각해내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은 내가 김 전 대통령에게 “선생님 골프가 참 좋은 운동이죠” 했다. 그랬더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냐. 그 시간에 책을 잃고 얻는 희열이 더 크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 말이 가슴에 남아 한동안 골프를 치지 않았다. 지금도 자주 치는 편은 아니다. 계속 쳤으면 프로급일 텐데….

김 전 대통령은 일생을 노력하며 살았다. 진지하게 살았다. 때문에 개인적인 재미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창조적으로 엮어내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독서광이었고 이희호 여사와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이 여사에 대해 “나이가 먹을수록 정이 든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굴곡이 심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곁을 지켜준 것이 고마워서일 것이다. 나도 한숨 쉴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되니 고생한 안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깊은 정이 되더라. 
 
- 정치적인 면에서 DJ는 어떤 사람이었나.
정치적인 면에서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정치적인 목적이 생기면 온 몸으로 투쟁했다. 투쟁에 정책과 노력을 겸비했다.

- DJ는 쌓은 업적 중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공이 적지 않다.
김 전 대통령은 정적에 의해 5번의 죽을 위기를 겪었다. 그러면서도 정치적으로 끈질긴 투쟁을 했다. 민주화를 앞당긴 공이 있다.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군부에 의한 정권교체가 아닌 평면적, 평화적 정권교체는 김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YS는 삼당합당으로 대통령직에 올랐으니 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된 정권교체는 아니었다.

- 의회주의자였던 DJ에 대해 듣고 싶다.
노태우 정부 때 지방자치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을 한 적이 있다. 의원직을 사퇴하고 의원회관에서 철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단식투쟁을 벌였다. 지자제를 얻어냈지만 국회의원은 국회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굳게 한 일이었다. 국회의원은 원내에 있어야 하며 원내외투쟁을 병행하되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DJP연합에서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의원내각제라는 산을 넘어야 했다. 나는 김 전 대통령이 내각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나도 내각제를 반대하지는 않아”라고 이를 받아들였다.  
 
- 민주화 외에도 경제, 사회적으로 이룩한 공이 크다. 
집권 후 IMF라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했다. 제2의 국난이라고 불린 IMF 외환위기를 신속하게 벗어났다. 당시 나도 노사정위원장으로 노사정간 대타협을 이끌어내 국가 부도를 막는데 일조한 바 있다. 

IT 사업을 이끈 것도 김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서 힌트를 얻어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부터 지식정보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우리나라가 IT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를 만드는 등 인권 문제에도 공이 크다. 서민 복지를 위해 노력했고 동서간의 화합, 국민 통합을 위해 매진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평화를 연 최초의 대통령이다. 평화를 위한 끈질긴 노력으로 남북화해에 큰 공을 세웠다.

- 공적이 있다면 과실도 있을 수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은 한 일이 많다. 역사가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이고 순수한 의도에서 했던 일이 홍보보다 행동이 먼저 이뤄지면서 국민들의 이해를 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


- DJ의 유훈은 무엇인가.
평상시 들어온 이야기들이다. ‘화해와 용서’를 통한 국민통합이다. 서민을 위한 경제를 이룩하고 남북문제와 인권 등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뜻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줄곧 주장한 것이다.

- 그중 핵심이 되는 것이 있다면.
‘화해와 용서’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납치돼 죽을 뻔 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 설립을 승인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그를 사면 복권했다. 보복하고 싶은 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모두 용서했다. YS와 생전에 만나 화해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내가 돌아가신 분은 아니지만 YS가 화해하러 왔는데 싫다고 내칠 분은 아니다. 앙금이 있지만 자연히 화해했을 것이다.

YS가 주도하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모임이 미뤄지면서 화해 분위기가 냉각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모임은 49일 이후로 미뤄졌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인사 중 화해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화해’라는 큰 흐름은 한두 사람의 말에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인 ‘용서와 화해’를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 향후 동교동계 인사들이 DJ의 유훈에 따라 민주개혁 진영의 통합에 일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당 상임고문으로 복당한 상태다. 앞으로 민주당을 중심으로 화합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것이다. 분열이 아닌 통합을 위해 힘쓰겠다.

-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통합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정당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교체에 있다.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의석수를 늘리고 정권 장악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을 기반으로 재야는 물론 필요하다면 민주노동당까지 끌어안는 반한나라당 연합을 이뤄야 한다.

 

한광옥은 누구?

1981년 제11대 민한당 국회의원
1988년 제13대 평민당 국회의원, 김대중 평민당 총재 비서실 실장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사무총장
1998년 제1기 노사정위원장
1999년 11월 청와대 비서실 실장
2002년 통일미래연구원 이사장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2009년 2월 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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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