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13 국정감사 총결산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1.04 13: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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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놀고먹다 한건 노린 'C학점의 선량들'

[일요시사=정치팀] 2013년도 국정감사가 지난 2일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국회운영위·정보위·여성가족위 등 겸임 상임위들의 일정은 일부 남아있지만 주요 상임위원회는 이미 모든 일정을 마쳤다. 올해 국감은 역대 최다인 628개 기관을 상대로 실시됐다. 국회의원들은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며 '벼락치기 국감' '부실 국감' 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국감스타는 탄생했고 일부 성과도 있었다. <일요시사>가 키워드를 통해 2013년도 국정감사를 총결산했다.




국정감사(이하 국감)하면 빠질 수 없는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막말'이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국감장에서 윽박지르기나 막말, 저속어 사용 등은 여전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국민적 공분을 국회의원이 대신해 속 시원하게 풀어준다는 의견도 있지만, 국감 준비를 충실하게 하지 못해 부족한 논리를 윽박지르기로 대신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막말 국감
개선될까?

실제 사례를 보면 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지난달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감에서 자신보다 연장자인 방하남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진 않죠?"라며 다소 무례한 질문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고용부가 삼성전자서비스 근로감독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을 소홀히 했다는 취지에서였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은 지난달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획재정부 국감에서 부자감세 관련 논쟁 중 "민주당이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떠드는데 잘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라고 말해 여야 의원 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설훈 의원은 "내가 왜 모르냐. 숫자 다 있는데"라며 맞대응했다.

민주당 박기춘 의원은 지난달 14일 국토교통부 국감에서 국토부 산하 기관장 인사가 '청와대 낙하산 인사'라며 서승환 장관을 질타하는 과정에서 서 장관이 "낙하산 인사는 아닌 것 같다"고 반박하자 "낙하산이 아니면 공수부대냐"고 면박을 줬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밤늦게 재개된 국감에서 여당 의원들의 자리가 상당수 비자 "술이나 퍼마시고 다니고 있네"라고 발언해 여당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고성과 막말, 매년 반복되는 구태
기업인 잔뜩 불러놓고 '증인장사'?

이외에도 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지난달 14일 국무총리실 국감에서 "이러니까 '붕어 없는 붕어빵' '총리 없는 총리실 국감'이라고 비웃는다"면서 "조선시대 수렴청정하는 것이냐"고 언성을 높였고,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국토위의 서울시 국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희망제작소장 시절 기업에게 협찬 받은 내용을 거론하며 '협찬시장'이라고 맹공해 국감 NGO 모니터단으로부터 막말 국회의원 사례로 지적됐다.




두 번째 키워드는 '기업국감'이다. 올해 국감은 최악의 기업감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올해는 유독 '경제민주화'와 '갑을 논란' 등 경제와 관련된 이슈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무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등이 증인으로 출석시킨 기업인만 해도 200명을 넘어섰다.

심지어 2개 이상 상임위에 중복으로 출석해야 하는 기업인도 많았다.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의 경우는 산업위와 환노위, 정무위 등 3개 상임위 국감에 불려나가야 했다. 지난달 17일에는 환경노동위 야당 측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요구했다가 새누리당이 반대하자 국감을 파행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바쁜 기업인들을 불러놓고는 정작 국감내용은 부실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인들은 몇 시간을 기다려 고작 몇 마디 답변을 하고 돌아가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기업들 사활 건
'증인 빼내기'


때문에 일각에선 국회의원들이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불러놓고 '증인장사'를 하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국감기간 여의도에서는 대관업무를 맡은 기업관계자들이 증인출석명단에서 자신들의 기업관계자 이름을 빼내기 위해 엄청난 로비전을 펼쳤다는 후문이다. 또 국감장에 불려나온 기업들은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일부 의원들은 잘못된 자료를 바탕으로 기업들을 몰아붙여 엉뚱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일례로 과일주스인 세레스를 수입ㆍ판매하는 에스코인터내셔널은 최근 국감에서 제기된 '납 검출' 지적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납이 검출된 제품은 2011년 이전에 다른 업체를 통해 수입된 제품이어서 현재 유통되고 있지 않는데 한 의원이 과거의 일을 국감장에서 다시 들춰내면서 새삼스레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기업인들은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국정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하는데 왜 기업인들을 죄인 취급하며 몰아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 같은 국감행태는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몰지각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란 때문인지 가장 많은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채택한 정무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는 증인별 신청의원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심야국감'이다. 올해 국감은 유독 자정을 넘겨서까지 진행되는 심야국감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국감으로 언뜻 보기엔 국회의원들이 무척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한낮에는 파행으로 시간을 낭비하다 저녁때야 부랴부랴 국감이 재개돼 자정을 넘긴 경우가 대다수였다.

지난달 14일부터 25일까지 상임위별 국감 가운데 밤 11시를 넘겨 끝난 경우는 14차례나 됐다. 그 중 자정을 넘겨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경우도 8차례나 됐다. 이중 상당수는 국감 안건과는 무관한 정치적 공방으로 인한 파행이었다.




특히 국감기간 6년 연속 파행을 빚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올해도 첫날 교육부 국감에서 최근 논란이 됐던 교과서 논쟁과 관련해 교학사 집필진 3인에 대한 증인채택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다 파행을 거듭했다. 결국 이날 국감은 새벽 1시가 넘어서 산회를 했다.

또 국감이 길어지는 이유로는 의원들이 이미 질의한 내용을 반복 질의하는 경우가 많고 국감 종료시간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국감을 늦은 밤까지 진행할수록 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언론 등을 통해 비중 있게 보도되는 경우도 많아 심야국감을 내심 반기기도 한다고 한다.

반가운 심야국감?
공무원은 죽을 맛

하지만 피감기관들의 입장은 다르다. 한 피감기관 관계자는 "피감기관은 물론이고 증인들까지 잔뜩 불러놓고 여야 의원들이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싸우다 국감을 파행시켜버리면 기다리는 사람들은 정말 미칠 노릇"이라며 "의원들이야 어디 가서 푹 쉬고 오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마땅히 갈 곳도 없다"고 하소연 했다.

네 번째 키워드는 '충성국감'이다. 매년 반복되는 피감기관들의 과도한 충성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감기간이 되면 피감기관들은 의원 전용 주차장을 마련하고 국회의원들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곳곳에 내건다. 의원 전용 주차장에 밀려 일반 민원인들은 주차에 불편을 겪기도 한다.

민원인보다 의원님 먼저 '충성국감' 여전
국감스타 초선의 활약, 대형스타는 '아직'


경찰청 국감장에선 여경들이 의원 안내를 전담하는 역할을 맡고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등장했다. 피감기관이 제공하는 의원 전용 화장실과 의원 전용 칫솔은 이미 관례화된 지 오래다. 한 의원은 칫솔을 한번 쓰고 버리기가 아까워 가지고 오다보니 국감이 끝난 후 남는 것은 칫솔뿐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피감기관들은 감사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의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한다. 한 피감기관은 건물 자체가 금연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내에서 의원들의 흡연을 방치해 구설수에 올랐고, 공군 제1전투비행단의 경우는 국감 현지시찰에서 국방위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HI-TAXI'(지상고속활주·활주로를 고속으로 달리는 이륙 전 단계) 행사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과잉충성이라는 지적을 받고 취소하기도 했다. 

국감스타?
반짝스타!

다섯 번째 키워드는 '국감스타'다. 올해 국감도 '부실 국감' '정쟁 국감'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어김없이 국감스타는 탄생했다. 과거와는 달리 여야의 중진의원들도 국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초선의원들의 경우는 특히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정책 국감'을 실현하는 데 큰 몫을 해냈다.




이번 국감은 특히 첨예한 여야의 정쟁 틈바구니에서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해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온 초선들의 재발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도 국감하면 떠오를 만큼의 대형 국감스타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가다.

올해 국감에서는 오히려 증인과 참고인이 뜻밖에 스타로 떠오른 경우도 있었다. 유례없는 검찰 항명사태로 법제사법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윤석열 수원지검 여주지청장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국감장에서 이른바 계급장을 떼고 제대로 붙어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 지검장은 이 과정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국감 NGO 모니터단은 보고서에서 "국정감사는 의정활동의 백미다.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정부에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감사하는 자리인데, (올해 국감은) 국민을 대신하기 보다는 정당을 대신했다"며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올해 국정감사는 'C학점'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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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