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신음하는 동물원 실태&해법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08 09:42:36
  • 댓글 0개

호랑이도 원숭이도 “끙끙 앓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동물원은 밝고 즐거운 공간이다. 다양한 동물과의 상호작용은 가족과 연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동물들은 끊임없이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한다. 그 이면에는 동물들의 아픔이 서리어 있다.




말 못하는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 과연 어제오늘의 일일까.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테마동물원 쥬쥬에서 조련사가 바다코끼리를 발로 차고 때리는 등 학대하는 행위가 발각돼 세간에 알려지며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달 29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바다코끼리 학대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고, 지난 2일 해당 동물원을 의정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조용히 자행돼온
동물원 동물학대

이번 동물학대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리의 실태를 깨닫고 그 심각성에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에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동물을 기준 이하의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하거나 관람을 위해 위협적 방법으로 훈련시킬 경우 동물원장은 처벌을 받게 하는‘동물원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을위한행동, 핫핑크돌핀스, 동물사랑실천협회,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들과 함께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행법상 동물원과 관련한 명시적 정의 및 기준을 포함하고 있는 법률은 전무한 실정이다.


동물복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동물보호법’의 경우 동물원 내 동물에 관한 사항을 별도로 정의하고 있지 않으며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자연공원법 및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 상 각각 교양시설, 공원시설, 박물관의 한 종류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체코, 덴마트 등 해외 여러 국가는 이미 동물원의 운영 및 사육기준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어 동물원 전반에 대한 관련법 마련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돼 왔다.
장 의원이 발의한 동물원법이 통과되면 환경부는 장관 소속으로 동물원 등 관리위원회를 두고 동물원 등 설립의 허가·변경에 관한 사항 등을 심사·의결하게 해야 한다.

동물원 등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추어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동물원 등 이용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인위적 훈련이 금지되며 동물이 수의학적 처치를 요할 경우 동물원장은 즉시 적절한 방법으로 조치해야 한다.

환경부 장관은 동물원 사육이 부적합한 동물에 대해 매년 고시해 사육을 금지하게 되며 동물원 등의 장은 매년 상·하반기 각각 1회씩 동물원 사육현황을 작성해 환경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했으며 동물원 등 관리위원회 위원 또는 관계 공무원의 동물원 등에 관한 출입 및 검사권한을 가지게 된다.

장 의원은 “동물원의 건강하고 건전한 운영을 위해서는 동물원 관련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좁은 철장 안에서
평생을 사는 동물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을 방문한다. 이제는 동물원, 수족관뿐 아니라 체험전시장, 이동동물원, 체험카페, 생태체험 등의 이름으로 도시 곳곳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전시하는 시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말 나들이 장소로도, 어린 학생들의 견학 장소로도 이용되는 동물원에서 사람들은 평소 볼 수 없는 동물을 가까이서 구경하고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들은 과연 어떨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온 여러 종의 동물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 관람객에게 전시하는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노출돼 있다.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는 일, 먹이를 찾아다니는 일, 날기, 수영하기, 뛰기, 짝짓기, 땅파기 등 야생동물로서 생태적 습성에 따라 본능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모두 제약을 받는다.

심지어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습성과는 상관없는 우스꽝스러운 재주를 부리도록 훈련하는 과정에서 학대와 폭력이 발생한다. 많은 동물들이 이런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위장장애 등 만성 질병에 시달리거나 무기력증, 상동증(정신분열 증상의 일종) 등의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동물원이 동물들이 목마름과 배고픔,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적어도 정상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시설에서 사육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법적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동물자유연대를 비롯한 동물보호단체에는 전시시설에서 학대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만지려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피할 공간도, 기력도 없는 토끼와 고슴도치, 꼬집고 잡아당기는 조련사의 손에 이끌려 재주를 부려야 하는 오랑우탄, 뙤약볕에서 물 한 그릇 없이 하루 종일 철창 안을 빙글빙글 도는 곰은 모두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분명 동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이나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원에 개선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동물원 동물이 자연서식지에서와 같은 삶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되거나 부적절한 관리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을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동물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키고 있을까.

동물권 개선에
어떤 움직임 있나

도시화의 확산으로 인한 자연체험 경험의 감소, 가족중심 여가문화의 확산 및 각종 교육과정에서의 체험학습 강화추세는 동물원에 대한 수요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옛날부터 국내에 서식하지 않는 동물을 도입하여 사육했던 기록이 역사 문헌에 존재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11년(1411년)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코끼리 1마리를 10년 이상 사육한 기록이 남아있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동물원은 1909년 ‘창경원’이 시초다. 이 창경원은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조선의 권위적 상징을 지운 아픈 역사도 깃들어 있다.

본래 동물원은 종 보존, 교육, 여가 및 과학적 연구 등의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동물원에 대한 체계적인 법률 및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동물원 관련 국내·외 법률현황과 동물원에 대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동물원은 2011년 말 기준으로 수족관 5개소를 포함하여 17개소로 파악되고 있다. 동물원은 운영주체에 따라 다른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운영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과 자연공원법 시행령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업·개인이 설립한 동물원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관광진흥법을 따른다.

계속되는 학대 논란에 ‘동물복지법’급물살
체계적 제도 보완 ‘동물원 개선안’도 추진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 35조에 따라 동물원은 생물자원 보전시설로 등록될 수 있으나 시설기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5조 제1항 제 1호 및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에 기준이 제시되어 있으나 시설 종류 및 인력 등에 관한 사항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우선 영국의 경우를 보면 1984년부터 시행된 동물원 면허법으로 동물원의 허가 및 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야생동물 전시를 목적으로 연중 7일 이상 대중에게 개방하는 영구적 시설을 동물원으로 정의하고 있다. 환경식품농촌부(DEFRA)가 주무부처로서 동물원 검사자의 명단을 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실제 집행은 지방정부의 환경부서가 수행하고 있다.


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을 위한 면허취득 절차는 공고, 제출, 심의, 허가(또는 불허), 조건부여의 총 5단계로 진행되며, 발급된 면허는 신규발급의 경우 4년, 갱신의 경우 6년간 유효하다. 면허 발급 후에도 동물원에 대하여 정기검사, 특별검사, 비공식 검사 등이 이루어진다. 검사는 지방정부가 지명하는 3인(수의사 1인, 기타 2인)에 의해 이루어지며 ‘현대동물원운영기준(SSSMZP)의 준수 여부가 주된 검사대상이 된다.

동물원 운영기준을 보면 DEFRA는 2000년 3월 동물원 면허법 제9조에 따라 동물원과 동물에 대한 관리기준을 정했다. 여기에서는 동물원 동물복지 5대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물과 음식, 적당한 환경, 동물 건강관리, 가장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보호 제공 등이 있다. 동물원 환경에서 동물들이 정상적인 행동과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편의시설과 치료 및 공포·고통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동물원 이용객이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할 사항 및 보존과 대중교육 등에 대한 사항 등을 담고 있다.




동물원 검사자는 동 기준을 토대로 검사를 수행하고 검사결과에 따라 동물원 면허 발급 여부를 결정하여 지방정부의 관련부서에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과학자, 수의사, 동물보존기구 관계자 등 동물복지 및 보존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물원 포럼이 동물원 동물 관리 편람을 만들어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EU는 1999년 동물원이 야생동물 보존, 동물복지, 대중 교육 및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도록 규정한 지침을 제정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동 지침은 동물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각 회원국으로 하여금 지침의 목적을 따를 수 있는 기술적 기준들을 작성하고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동 지침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2002년 4월까지 국내법으로 지침 내용을 구체화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영국은 동물원 관련 별도의 법령에 지침의 내용을 반영한 반면, 독일의 경우 자연환경보전에 관한 법률에 지침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각국의 상황별로 다른 방식과 수준으로 지침의 내용이 반영됐다.

동 지침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회원국들이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고 종다양성을 보전하도록 동물원의 허가 및 검사에 관한 사항을 채택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연간 7일 이상 대중 전시를 위해 야생 종의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영구적 시설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 최초
동물복지법 발의

지침은 동물원의 역할을 종에 대한 보존, 보존 기술의 훈련, 종 보존 정보의 교환, 적절한 포획·번식·재생산 및 야생으로의 재입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개별 종의 생물학적 보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들을 제공하고 높은 수준의 동물 사육 기준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토착종에 대한 생물학적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종의 탈출과 외래종 유입을 예방하며, 보유한 종에 대한 기록을 최신상태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회원국들은 지침에 따라 기존 및 신규 동물원이 지침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충족할 수 있도록 허가 및 검사를 위한 수단들을 채택해야 하며, 만약 지침에 따른 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 해당 동물원을 폐쇄시키거나 별도로 허가 조건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회원국 가운데 27개국이 동 지침에 대한 국내법적 수용 작업을 마무리했다. 동물원 관리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국가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데 비해 핀란드, 스페인 등은 지역 및 지방정부가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보건부(오스트리아), 환경부(체코), 법무부(덴마크), 농업부(네덜란드), 환경식품농촌부(영국) 등 각국마다 상이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침의 수용 수준에 있어서 독일은 지침과 관련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국내법에 포함시킨 데 비해 영국은 지침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사항들을 국내법으로 반영하는 등 지침의 국내법적 수용 수준에 있어 각국마다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1877년 28시간법(동물 수송 시 28시간에 한번씩 물과 사료를 공급해야하는 규정) 이후 다수의 동물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있으나 동물원 관련 별도의 법률은 없다. 그러나 민간단체인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가 수행하는 동물원 인증제가 실시되고 있다.

AZA는 동물원의 서식환경, 사회적 그룹유지, 동물관리와 치료에 대한 협회 기준 준수 여부, 수의·교육 프로그램, 안정정책 및 과정 등 광범위한 항목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인증을 실시하고 있으며 2007년 기준으로 미국 내 216개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한 인증을 실시한 바 있다. 부여된 인증서는 5년간 유효하도록 정하고 있다.

국내 17개소 운영…대부분 관리 부실
스트레스 시달리다 정신질환 증세도

우리나라에는 다수의 동물원이 존재하고 있지만 동물원의 설립, 운영 및 관리에 대한 법률 및 체계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칭)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관련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이 과정에서 다음의 사항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첫째, 동물원의 정의, 범위 및 역할이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여러 법률에 분산되어 있는 동물원의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 EU 및 영국의 사례와 같은 동물원 인증제 실시를 검토할 수 있다. 인증제는 동물원 관리 주체로 하여금 동물원 관리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이용객에게 해당 동물원의 관리운영 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셋째, 동물원 관리의 주무부처의 지정은 동물원의 주요 기능, 관련 인력의 관리 등을 토대로 검토되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와의 역할 분담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 한명숙·진선미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 및 녹색당, 생명권네트워크 변호인단,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등은 지난 1일 국회에서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명칭을 바꾸고 동물학대 금지조항 및 처벌 강화, 실험동물 지위 부여, 동물복지축산 원칙 제시 등을 핵심으로 하는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물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지 이미 오래”라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복지개선과 함께 인간과 함께하는 동물의 복지가 개선되어야 한다”며 이와 같이 밝혔다.

이들은 “동물조차 존중받는 세상이라면 당연히 인간도 행복한 세상일 것”이라며 “동물복지법이 실효성 있는 규범이 된다면, 단언컨대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또한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의된 동물복지법은 동아시아 최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