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식 사정, 일석이조 플랜 해부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7.22 13: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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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털어 정치권 목줄 잡는다

[일요시사=정치1팀] '박근혜식'기업 사냥이 시작됐다. 한마디로 무시무시하다. 국세청이 선봉에 서고 검찰이 종지부를 찍는 모양새. 노무현·이명박 때와는 게임이 안 된다. 그야말로 속전속결. 게다가 정밀타격식이다. 문제는 기업을 털면 비자금이 나오기 마련. 비자금은 로비, 곧 정치권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래서 재계를 덮친 '사정 칼바람'방향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회를 어지럽히는 기업은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여러 번 재계에 경고를 보냈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그리고 곧바로 재계엔 '살생부'가 돌았다. '사정 칼바람'을 맞을 이른바 검찰 수사 블랙리스트였다. CJ그룹도 그중 한곳이었다.

검찰이 지난 18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62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운영하는 과정에서 2000억원에 달하는 횡령·배임·탈세 혐의로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첫 대기업 수사라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명박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단 두달 만에 마무리 지어 더욱 그랬다.

정밀타격 수사에
세무조사 '병행'

대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이어 이 회장까지, 재계 10위권 그룹 총수 3명이 동시에 구속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 이런 상황에서 검찰발 '사정 폭풍'이 언제 어디로 휘몰아칠지 몰라서다. 특히 살생부에 사명이 오르내린 기업들은 더하다. 좌불안석이다. 예견된 검찰의 움직임이 족집게처럼 맞아떨어지고 있어서다.

재계는 "불황에 검풍까지 겹친다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검찰의 매서운 칼날은 재계 전방위로 확산될 조짐이다. 여기에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등 '대기업 저승사자'들도 가세해 재계 여기저기에 묻은 '먼지'를 털어낼 태세다.


정치권에선 대기업 수사가 정관계 수사로 번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의 최종 표적이 전 정권 또는 전전 정권 인사로 향해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검찰은 기업의 비자금을 집중적으로 털고 있다. 정치인을 솎아내는 데 비자금만한 통로가 없다. 비자금이 곧 정관계 로비로 연결돼서다. 검찰이 과거 정권의 특정 인사를 잡기 위해 그들로부터 특혜를 받거나 유착관계에 있는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검찰이 전 정권에서 불거진 각종 비리와 비자금 조성, 특혜·로비 의혹 등 구린내 나는 사건들을 다시 꺼내들 것으로 안다"며 "재계를 향한 검찰의 수사는 결국 정치인으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당초 CJ 수사도 비자금을 조성해 이를 정관계에 뿌렸을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검은돈'종착지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이 회장이 MB정권 핵심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워 섣불리 결과를 예측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CJ그룹은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권력 상층부에 줄대기를 했다는 의심을 받았지만, 이번 수사에선 '미제'로 남은 상태다.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자금 사용처에 대해 "개인 사생활"이란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국세청 선봉 서고 검찰 종지부
진짜 표적은 전 정권 핵심인사

일각에선 검찰과 이 회장이 혐의를 낮춰주는 조건으로 정관계 로비리스트를 '딜'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특정 인사들의 목줄을 잡고 흔들기 위한 박근혜정부 차원의 '히든카드'로 남겨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생부에 거론된 검찰의 다음 타깃들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같이 정관계 유착 의혹을 받고 있다.

CJ그룹에 이어 도마에 오를 것으로 유력한 대기업은 적게는 1∼2곳, 많게는 3∼4곳으로 압축된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수사 방향은 크게 두 갈래로 정리된다.


우선 그동안 검찰의 내사를 받았던 기업들이 위험하다. 한화, SK, CJ가 모두 같은 과정을 거친 이유에서다. 검찰 안팎에선 박근혜정부 출범 전부터 전국 각 지검 특수부 등이 주축으로 기업들의 비자금 조성, 횡령, 재산 국외도피 등 각종 비리 정보를 싹싹 긁어 모아놨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재벌 오너의 검은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후문. 이 과정에서 유수한 기업들이 검찰 캐비닛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문과 소문만 키운 채 구린내만 풍기다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A그룹과 B그룹의 비자금 의혹이다.

검은돈 종착지
"끝까지 찾는다"

검찰은 MB정부 때 A그룹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를 포착해 내사에 나섰다. 여러 회사를 인수·합병(M&A)하면서 인수대금을 부풀려 검은돈을 마련했다는 내용이다. 비슷한 시기 검찰은 B그룹도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 등 해외 현지법인의 거래 과정에서 납품 단가를 부풀리는 수법 등으로 수백억원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첩보를 입수, 관련 정보와 자료를 수집했다.

두 기업은 모두 전 정권 핵심 인사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물론 현직 정치인들의 이름도 거론된다. 검찰은 두 그룹에 대한 내사 이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자칫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는 MB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수사를 일단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정권에서 갑자기 급성장한 기업도 안심할 수 없다. 정부의 비호를 등에 업고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때문이다. 이 시기 기형적으로 덩치를 키운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는 롯데그룹이 그렇다.

롯데그룹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제2롯데월드 건축허가 등 굵직한 사업들을 승인받아 최대 수혜기업으로 지목돼 왔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쉽게 나서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롯데그룹 핵심인 롯데호텔에 이어 롯데쇼핑에 대한 국세청의 고강도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정치권을 향한 사정 분위기가 감지된다.

세무조사를 맡은 곳은 다름 아닌 '대형사건 전담반'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그만큼 사안이 중대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게다가 광고계열사 대홍기획은 공정위 조사를, 롯데시네마는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다. 이들 조사 결과 부정한 자금흐름이 드러날 경우 오너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족집게처럼 맞아떨어지는 '살생부'
정관계 로비 초점…대형쓰나미 예고

사정기관 관계자는 "전 정권의 제2롯데월드 건설 인허가 등을 두고 그동안 계속 말들이 많았다"며 "거물급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료 등이 개입한 특혜설이 일었다"고 지적했다.

세무당국 관계자는 "다른 부서도 아닌 조사 4국이 세무조사를 진행한다면 뭔가 특별한 의미나 배경이 있을 것"이라며 "국세청 주변에선 롯데그룹의 탈세 혐의를 포착했다는 얘기가 들려 검찰 수사와 맞물릴 경우 예상보다 파괴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그룹도 전 정권의 비호 아래 사업을 추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M&A 시장에 나온 매물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한 결과다. 급하게 덩치를 키우면서 잡음도 많았다. 특혜설이 제기됐다.

M&A 자금 중 대부분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면서 특혜 대출 의혹이 제기됐다. 한 업체를 시장 적정가격보다 2배가량 비싸게 사들여 논란이 일었고, 사실상 오너의 개인회사를 인수하면서 자금 마련을 위해 계열사들을 무리하게 동원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오너가 거액을 횡령했다' '정치권에 비자금을 제공했다' '수상한 돈이 해외로 흘러나갔다'등 C그룹의 비리 첩보와 제보가 검찰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향한 '검날'
어디까지 꽂힐까

마찬가지로 그때마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 이름이 오르내렸다. 지난 정부 실세였던 모 의원이 연루됐다는 의혹이다. C그룹의 로비 대상엔 참여정부 인사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수사여부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이와 별개로 '거액을 탈세했다' '옛 임원이 창업한 하청업체와 부당한 거래 중이다'란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전해진 국세청과 공정위도 C그룹을 잔뜩 벼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정치권을 향한 '표적 사정설'에 대해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딱 잡아뗀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출범 전후 나돈 기업 수사 시나리오가 점차 현실로 드러나면서 사실상 정치권 사정작업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재계를 정조준한 '검날'이 어디까지 꽂힐지 주목된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검찰 '다음 타깃'은?

정보라인 풀가동…방패막이도 영입


검찰의 '다음 타깃'으로 거론되는 기업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발뺌하면서도 혹시 모를 '불똥'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마냥 방치했다간 폭풍을 머금은 '칼바람'이 언제 어디로 몰아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체 정보라인을 풀가동하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일부 기업은 '방패막이'로 영입한 법조인 출신의 임원들을 통해 검찰의 동향을 살피고 있다.

모 그룹 한 직원은 "혹시 모를 검찰의 수사에 대비해 대관업무 담당 부서를 풀가동하고 있다"며 "이들은 정·관계, 사정기관 등의 동태를 살피며 수집한 정보를 상부에 수시로 보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그룹 측은 "정보팀도 모자라 법조인 출신 임원들을 동원해 사정기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며 "꼭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괜한 구설에 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 차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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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