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휴민트> 리얼 리뷰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6.03.03 16:23:45
  • 호수 15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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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존한다, 그래서 벗어난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류승완 감독의 신작 <휴민트>는 <베를린>에 이어 국가와 실존 사이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작품이다. 류 감독 특유의 액션 연출은 호평받고 있다. 하지만 기존 명절 흥행 영화 스타일에서 벗어난 ‘무거움’은 흥행을 막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휴민트>는 그의 2013년 작 <베를린>의 스핀오프를 겸한 첩보 액션 영화다. <휴민트>의 세계관이 <베를린>과 같다는 사실은 <베를린> 주인공 표종성(하정우 분)이 잠시 언급되면서 드러난다.

호불호 조인성

영화평론가 이용철은 <휴민트>에 별 3개 반을 주면서 “멜빌·오우삼에 맞서는 롱코트와 무스탕”이란 단평을 남겼다. <휴민트>는 <베를린>의 골격에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이 연출한 1967년 작 <한밤의 암살자>와 우위썬 감독이 연출한 1989년 작 <첩혈쌍웅>의 구조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베를린>엔 미국의 <제이슨 본> 시리즈가 크게 유행시켰던, 정체성 혼란을 느끼면서 실존을 찾아 나서는 실존주의 철학이 개입돼있었다. <제이슨 본> 시리즈 주인공 제이슨 본(맷 데이먼 분)은 기억상실 상태에서 자신의 정체를 찾다가 기억상실 직전 소속됐던 CIA의 위협에 노출된다.

<베를린>에선 표종성이 권력자 동중호(명계남 분)·동명수(류승범 분) 부자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묘사된다. <휴민트>에도 이 구조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된 유능한 북한 국가보위부 조장 박건(박정민 분)에게도 조국과 실존이란 양립할 수 없는 숙제가 주어진다. <베를린>과 <휴민트> 주인공들 모두 국가와 실존 사이에서 고뇌하고 선택한다. 여기엔 ▲적과의 인간적 유대 ▲인간에 대한 연민 ▲직업에 대한 회의 ▲알 듯 모를 듯한 사랑의 감성 등이 개입된다.

표종성과 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남측 요원 정진수(한석규 분)의 역할은 조 과장(조인성 분)이 이어받았다. 정진수·조 과장에게선 <첩혈쌍웅>에서 암살자 아쏭(저우룬파 분)과 기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이 경위(리슈셴 분)의 향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조 과장의 행동기제는 정진수보다 더 강화됐다. 조 과장은 정진수보다 더 적극적이다. 이어 <한밤의 암살자> 주인공 제프 코스텔로(알랭 들롱 분)를 상징하는 장면이 직접 오마주 된다. 조 과장·박건의 기묘한 관계엔 정진수·표종성의 관계보다 더 많은 설명이 붙는다.

13년 만에 돌아온 <베를린>의 추억
물려받은 고뇌 “국가냐, 실존이냐”

따라서 <휴민트>에선 조 과장의 감성이 정진수보다 더 풍부하게 묘사된다. <휴민트> 속 조 과장의 인간관계는 외부와 단절돼있다. 이는 <한밤의 암살자>가 코스텔로를 묘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코스텔로와 조 과장에게 인간미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 평론가가 ‘롱코트’를 언급한 이유다. <첩혈쌍웅>에선 공개 이후 아쏭의 롱코트가 대단한 화제였다. 이들의 롱코트는 단절해서 고독해야만 하는 이들의 삶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비중 있게 제시되는 이들의 집은 매우 황량하다.

<한밤의 암살자>에서 코스텔로를 쫓는 형사반장은 누구보다 코스텔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의 높은 이해는 코스텔로 추적에 활용된다. <첩혈쌍웅>은 이를 뒤집어 아쏭과 리 경위의 기묘한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 후 홍콩 누아르 특유의 뜨거운 감성과 연결했다.

<베를린>에 이어 <휴민트>는 두 주인공의 기묘한 관계를 <한밤의 암살자>와 <첩혈쌍웅>을 절충한 형태로 묘사한다.

<한밤의 암살자>는 실존주의 철학의 영화 교본으로 통한다. 멜빌 감독은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교류하면서 그의 철학을 <한밤의 암살자>에 담았다. 그래서 <한밤의 암살자>엔 코스텔로의 배경이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실존은 세상에 태어난 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묘사되는 그의 삶은 고독한 암살자 그 자체다. 그는 사회적 규범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규칙에만 의존한다. 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는 사르트르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설정이다.

다만 조 과장의 캐릭터에 대해선 관객의 평이 엇갈리고 있다. 코스텔로의 정체성이 많이 반영돼 설명이 빠져 핍진성을 느끼지 못하는 관객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채 ‘조 과장’으로 캐릭터가 설정된 것도 그에게 반영된 코스텔로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베를린>의 정진수에겐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사실상 버림받은 구세대 정보요원 특유의 의뭉스러움이 반영됐다. 그가 내심 느끼는 “버림받았다”는 아픔은 표종성을 이해하는 핵심 장치 역할을 한다.

리 경위는 경찰의 의무와 강호의 도리가 함께 무너지는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자신만의 규칙·도리를 지키는 아쏭과 기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첩혈쌍웅>이 걸작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우 감독 특유의 화려한 총격전 연출과 캐릭터 간 우정 묘사가 정점에 달한 작품이었단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아쉬운 건 ‘휴민트’란 제목…부실한 감정선
명절 흥행 영화 공식 벗어나 사실상 흥행 실패

<휴민트>에선 박건이 호평을 받고 있다. 캐릭터 자체도 풍부하고 섬세하게 설정됐고, 박건을 맡은 배우 박정민의 연기도 영화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박건의 감성은 표종성보다 더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이 때문에 박건에겐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1942년 작 <카사블랑카>의 주인공 릭 블레인(험프리 보가트 분)이 녹아 흐르고 있다.

릭 블레인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행 망명을 위해 거쳐야 하는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술집을 운영한다. 이 술집엔 레지스탕스 지도자의 아내가 된 옛 애인이 나타난다. 옛 애인을 오랜만에 마주했을 때를 연기하는 험프리 보가트의 눈빛과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란 대사는 영화사 불멸의 전설이 됐다.

류 감독은 박건에게 릭 블레인의 설정을 개입시켜 실존주의 철학을 극대화한다. <휴민트>는 영화 초중반 박건이 철두철미한 임무 기계에서 로맨티시스트로 변신해야 하는 데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각종 설정을 부여한다.

아쉬움은 제목이 <휴민트>란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휴민트’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첩보를 수집하는 과정 전반을 말한다. 조 과장·박건이 자신의 실존을 추구한 핵심 행동기제는 휴민트로부터 비롯된다. 박건에겐 릭 블레인의 설정이 가미돼 충분한 감정적 설득력을 제공한다.

하지만 조 과장에겐 제대로 부여되지 못했다. 코스텔로의 정체성을 조금만 자제했더라면 감정선이 더 풍부했을 것으로 보인다.

<휴민트>는 류 감독 영화답게 액션의 타격감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물론 영화이기 때문에 주인공들은 수십명 이상의 악당을 상대한다. 하지만 그 강도를 조절해서 나름대로 현실성을 조절하려고 애쓴다. 돌비 애트모스 기술을 활용한 음향 효과도 상당하다.

호평받는 박정민

하지만 소재가 무겁기 때문인지 <왕과 사는 남자>와의 흥행 대결에선 밀리고 있다. 손익분기점은 관객 400만명으로 설정돼있지만, 설 연휴가 지난 이후인 지난달 24일 기준 <휴민트>를 감상한 관객은 약 163만명에 불과하다. 명절엔 ‘온 가족 영화’가 대세란 공식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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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