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시대의 인재는 코드를 짜고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컴퓨터가 못하는 일을 사람이 대신 계산하고, 그 계산을 기계가 반복하도록 만드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IT 시대의 엘리트는 수학과 공학에 강한 젊은 두뇌들이었고, 빠르게 배우고 정확하게 적용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었다.
기술은 지식의 싸움이었고, 더 많이 배운 사람이 이겼다. 기업과 국가는 그 젊은 기술자들을 모아 새로운 산업을 만들었다.
그러나 AI 시대는 전혀 다른 규칙으로 작동한다. 이제 기계는 코드를 대신 쓰고, 통계를 대신 계산하며,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아낸다. 사람이 일일이 설계하지 않아도 AI가 스스로 모델을 만들고 최적화를 반복한다. 기술의 무게중심이 ‘설계’에서 ‘활용’으로 이동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에 어떻게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이 변화는 인재의 정의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AI는 지식을 모으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실패를 증폭시키는 기계다. 수십년 동안 영업에서 깨지고, 투자에서 속고, 조직에서 갈려본 사람이 AI를 쓰면 그 모든 실패가 즉시 유용한 데이터로 호출된다. AI는 그 실패를 새로운 패턴으로 바꾸고, 위험의 요소를 정밀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AI는 경험 없는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지 않고, 경험 많은 사람을 무섭게 만든다.
AI는 기억과 계산, 검색에서는 인간을 이미 이겼다. 그러나 어느 선택이 위험한지, 어느 타이밍이 치명적인지는 아직 판단하지 못한다. 그 판단을 하는 것은 수식이 아니라 축적된 경험이다. 그래서 AI 시대의 경쟁력은 젊은 두뇌가 아니라 오래된 판단에서 나온다.
AI 시대의 핵심 인재는 더 이상 AI 박사나 알고리즘 교수만이 아니다. 오히려 AI를 자기 일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진짜 인재다. AI는 의사보다 빠르게 진단을 보조하고, 변호사보다 더 많은 판례를 기억하며, 기자보다 더 많은 자료를 정리한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한 질문인지, 어떤 맥락이 핵심인지, 어떤 판단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지는 여전히 사람이 정한다. AI는 계산하고 정리하지만, 방향을 정하지는 않는다.
이 지점에서 경험의 가치가 폭발적으로 커진다. 경험은 데이터가 아니라 맥락이다. 산업의 굴곡, 시장의 속성, 사람의 반응, 제도의 허점, 위기의 전조 같은 것은 책이나 논문이 아니라 몸으로 겪어야 알 수 있다. 젊은 세대가 기술을 빠르게 배우는 동안, 시니어 세대는 산업과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오랫동안 살아왔다.
AI는 이 경험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기억력보다 통찰력이다.
IT 시대에는 젊은 개발자가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AI 시대에는 경험 많은 사람이 AI를 부려 쓴다. 같은 AI 도구를 써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금융을 30년 해본 사람이 AI로 시장을 분석하는 것과 이제 막 배운 청년이 같은 툴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제조 현장을 평생 지켜본 기술자가 AI로 공정을 개선하는 것과 현장을 모르는 분석가가 모델을 돌리는 것도 다르다. AI는 경험을 평준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의 격차를 더 크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AI 인재를 ‘젊은 공대생’으로 상상한다. 정부의 AI 정책도, 기업의 인재 전략도 청년 중심으로 설계돼있다. 대학과 대학원, 스타트업, 코딩 부트캠프에만 정책과 자원이 집중된다. 정작 산업과 행정을 지탱해 온 시니어 세대는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세대 차별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낭비다.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집단을 가장 중요한 기술 전환에서 배제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AI에 승부를 걸고 있는 정부가 이제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시니어를 AI 인재로 만드는 국가 전략이다. 퇴직을 앞둔 50대, 이미 현장을 떠난 60대, 여전히 현업에 있는 40대 중후반에게 AI는 ‘경험을 다시 무기로 만드는 도구’여야 한다.
이들을 위한 실용적 AI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코딩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 정의, 업무 적용, 판단 보조다. 시니어는 AI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AI로 의사결정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기업 역시 이 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시니어를 내보내고 젊은 인력을 채우는 방식은 AI 시대에는 오히려 위험하다. AI가 반복 업무를 대체할수록, 조직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주니어가 아니라 더 깊은 경험을 가진 시니어다.
AI는 시니어의 업무 속도를 높여주고, 판단을 정밀하게 만들어준다. 한 명의 경험 많은 인력이 AI를 활용하면, 여러명의 초급 인력을 능가하는 생산성을 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필자가 이전에 제기한 ‘실버산업 재정의’도 다시 읽혀야 한다. 실버산업은 노인 용품을 만드는 것이나 노인을 돌보는 복지만이 아니라, 시니어가 직접 창업하는 영역도 포함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경험 많은 시니어가 AI를 활용해 컨설팅을 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다.
자본과 인력 없이도 AI가 비서를 하고, 회계를 하고, 마케팅을 대신해준다.
문제는 이 기회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 교육, 창업, 복지 정책이 여전히 ‘은퇴=종료’라는 전제를 깔고 움직인다. 그러나 AI 시대의 시니어는 은퇴자가 아니라 경험 기반의 독립 생산자다. 이들을 위한 AI 인프라, 교육 바우처, 창업 지원, 플랫폼 연결이 필요하다.
시니어를 복지의 대상으로만 보면 국가 경쟁력은 함께 늙는다. 시니어를 AI 인재로 보면 국가는 다시 젊어진다.
AI는 기술이 아니라 시대다. 이 시대의 주역은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은 것을 겪은 사람이다. 한국은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나라다. 이것을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AI다. 경험이 축적된 사회가 AI를 손에 쥐면, 그것은 쇠퇴가 아니라 진화가 된다.
시니어가 AI 시대의 중심에 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