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일본 <교도통신>과 <NHK>는 “8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자유민주당(자민당)이 316석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자민당은 중의원 전체 465석 가운데 단독으로 개헌 발의선인 3분의 2, 310석을 넘겼다. 연립 파트너인 일본유신회까지 합하면 숫자는 352석까지 뛴다. 전후 일본 정치에서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이 숫자는 단순한 승패가 아니다. 일본 정치의 단계가 타협에서 실행으로 넘어갔다는 신호다. 의회 구성은 곧 국가의 방향을 뜻한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의석표를 외교 뉴스로 읽는다. 법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어디에 모였는지를 먼저 계산한다.
물론 당장 개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개헌은 중의원뿐 아니라 참의원에서도 3분의 2 이상이 필요하다. 참의원 전체 248석 가운데 자민당은 101석, 일본유신회는 19석이다. 아직 넘어야 할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다. 그 시점은 바로 참의원 전체 의석의 절반, 124석을 뽑는 2028년이다.
이제 일본의 정치는 더욱 또렷해졌다. 선거는 단순한 정권 평가가 아니라 헌법을 묻는 투표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설득과 동원, 찬성과 반대가 국가의 형태를 두고 맞붙을 것이다. 시간표는 정해졌고,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왜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면 안 되느냐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해왔다. 자위대의 위상을 분명히 하고 국가의 자격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안보 문서를 손보고, 방위비를 늘리고, 장비 수출 규제를 풀고, 정보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는 군사 국가로 향하는 설계도나 마찬가지다. 전후 일본을 규정해 온 법을 넘어서는 시도다.
결국 시선은 헌법 9조로 모인다. 전쟁과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는 원칙이 수정될 경우, 일본은 법적으로도 다른 위치에 선다. 이는 국내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질서의 문제로 확대된다. 주변국이 숫자에 민감한 이유다.
여기에 더해 다카이치가 야스쿠니 신사를 향해 보여 온 태도는 상징성을 키운다. 그는 그곳을 소중한 장소라고 표현해 왔고, 압승 이후 9일 아침에도 참배 환경을 정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역사 인식과 안보 노선이 같은 문장 안에 놓인 것이다.
316이라는 수치는 아직 완성은 아니지만, 일본 사회가 어디까지 이동할 준비가 돼있는지를 보여주는 좌표다.
그리고 시계를 돌려보면, 같은 해에 또 하나의 숫자가 등장한다. 2028년 대한민국도 총선을 치른다. 만약 더불어민주당이 200석을 확보한다면 한국 역시 개헌을 독자적으로 강행할 수 있다. 그러면 7공화국 논의는 주장이나 구호가 아니라 조문 작성의 단계로 넘어간다. 정치의 상상이 제도의 설계로 바뀌게 된다.
권력 구조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중앙과 지방을 어디까지 재편할 것인가, 기본권과 경제 질서를 어떻게 새길 것인가가 실제 설계 대상이 된다. 개헌은 늘 미래를 말하지만, 동시에 현재 다수의 의지를 반영한다. 그래서 더 뜨겁다. 주장 하나하나가 곧 권력의 배분표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변화가 같은 시간대에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 보수 정당인 자민당은 국가의 역할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한국 진보 정당인 민주당은 국가의 틀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서로 다른 선택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국내 정치의 결정이 곧바로 외교 환경을 바꾼다는 사실이다.
국민은 국내 정치에 집중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헌법은 가장 강력한 대외 메시지다. 법률보다 오래가고, 선언보다 무겁다. 상대국은 조문을 통해 의도를 읽는다. 그래서 개헌은 언제나 국경을 넘는다. 국가의 미래 계획이 가장 압축된 형태로 드러나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이 군사적 정상화를 향해 속도를 내고, 한국이 체제 개편에 몰두한다면 한일 관계를 차분하게 협의할 여유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서로를 해석하는 시간이 부족해진다. 외교가 신뢰보다 추정에 의존하게 된다. 확인되지 않은 의도가 정책보다 먼저 소비될 위험성도 커진다.
미국이라는 변수도 빠질 수 없다. 동맹 구조 속에서 이뤄지는 변화는 언제나 조율을 동반한다. 일본의 역할 확대와 한국의 체제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 외부의 압력 역시 커진다. 국내 정치의 자율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선택은 자율처럼 보이지만 조건이 더 많아진다.
경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장은 헌법 조문의 미묘함보다 방향성을 읽는다. 긴장이 높아진다고 판단하는 순간 자본은 방어적으로 움직인다. 정치의 결단이 경제의 불안을 부를 수도 있다. 예측 가능성이 줄어드는 순간 투자 역시 멈춘다.
그래서 유권자의 심리는 늘 복잡하다. 한 정당에 모든 열쇠를 맡기는 순간의 통쾌함과 그 이후의 부담을 동시에 계산한다. 민주주의가 때때로 마지막에 균형을 선택하는 이유다. 견제 장치가 사라질 때 생길 공백을 본능적으로 떠올린다.
그럼에도 역사는 여러 번 예상 밖의 결론을 만들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숫자가 현실이 됐고, 준비되지 않은 사회는 그 뒤를 허겁지겁 따라갔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확신이 아니라 가정이다. 가능성을 미리 토론한 국가만이 충격을 줄일 수 있다.
만약 두 나라 모두에서 단독 개헌이 이뤄진다면, 외교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전략을 요구받게 된다. 상대의 변화를 위협으로만 읽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이익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감정과 계산을 동시에 다루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냉정함과 상상력을 함께 발휘해야 한다.
국민에게도 질문이 남는다. 압도적 권한을 줄 것인가, 아니면 견제를 남길 것인가. 속도를 택할 것인가, 숙성을 택할 것인가. 헌법은 한순간의 선택이지만 그 영향은 오래 간다.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일수록 더 많은 숙고가 요구된다.
2028년은 멀어 보이지만 이미 시작된 시간이다. 정당은 계산을 하고, 관료는 시나리오를 쓰고, 시장은 위험을 재고 있다. 남은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투표는 가장 늦게 이뤄지지만 가장 큰 힘을 갖는다.
결국 한일 관계의 미래는 누가 더 강해지느냐가 아니라, 그 힘을 어디까지 절제하느냐에 달려 있다. 헌법은 권한을 확대하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묶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 균형을 지킬 수 있을 때 변화는 안정이 된다. 절제가 없는 힘은 주변을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압도적 다수 이후에도 대화가 가능한가. 승리 이후에도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는가. 그 준비가 돼있을 때만, 헌법의 시간은 위기가 아니라 전환이 된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