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수도권 폐기물 어디로?

일촉즉발 쓰레기 대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직매립 금지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소각장은 턱없이 부족하고, 기존 시설마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수도권 각 지자체가 부랴부랴 대책을 세워보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많은 쓰레기들은 앞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까?

내년부터 수도권의 쓰레기 처리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지난달 17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서울·경기·인천 지자체가 참여한 4자 협의체가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제도 시행에 합의하면서, 오는 1월부터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은 반드시 전처리를 거쳐야 매립할 수 있다.

시설 부족
포화 상태

그동안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가 별다른 선별이나 소각 없이 그대로 매립지로 들어가는 방식이 유지돼왔지만, 이 같은 처리는 앞으로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직매립 금지는 말 그대로 생활폐기물을 ‘그대로 묻는 방식’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다.

내년 1월1일부터 서울·경기·인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재활용품 선별을 먼저 진행하고, 남은 잔재물은 소각 등 전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처리 없이 매립지로 반입하는 기존 방식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직매립 금지는 수도권매립지의 급격한 포화 문제로 수년 전부터 논의돼왔다. 2021년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직매립 단계적 폐지가 확정됐고, 이후 수도권 지자체들은 법 시행에 맞춰 전처리 체계를 확대해 왔다. 다만 일부 지자체가 “처리시설이 부족하다”며 유예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매립지 수명을 더는 연장하기 어렵다며 기존 일정을 유지했다.


직매립 금지가 추진되는 주요 요인은 수도권매립지의 남은 공간이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생활폐기물이 인천 매립지로 들어갔고, 현재 사용 가능한 매립 공간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이다.

매립지 포화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면서 생활폐기물을 ‘그대로 묻는 방식’을 줄이고, 매립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다.

인근 주민 반발에 시설 확충 불가
서울·경기·인천 대책 없어 골머리

환경적인 이유도 크다. 전처리 없이 매립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메탄 등 온실가스를 발생시키고, 침출수 관리 부담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 부담이 크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생활폐기물을 그대로 묻는 방식을 줄이고, 소각이나 재활용하는 방법으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흐름에 맞춰 수도권 직매립 금지를 추진하게 됐다.

문제는 제도가 시행되는 내년 1월이 코앞인데도, 수도권 전체가 직매립 금지를 감당할 만큼의 처리 여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수도권에서는 하루 약 4700톤의 생활폐기물이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물량을 온전히 전처리할 만한 공공 소각시설과 선별 시설이 충분한 곳은 거의 없다. 현재 공공 소각시설이 처리할 수 있는 양은 전체 발생량에 미치지 못하며, 시설별 가동률도 이미 최대치라서 여유가 없는 상태다.

또 지역 내 공공 소각장들이 모두 정상 가동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전처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쓰레기 중 상당량이 남게 된다. 직매립 금지 이후 수도권에서 하루 약 1200톤가량의 물량이 당장 갈 곳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시설 노후화 문제도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수도권 공공 소각시설 상당수는 건립된 지 오래돼 정비나 개·보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일부 시설에서는 고장이나 정기 점검으로 가동이 멈추는 문제가 반복됐고, 이때마다 인근 지역으로 처리 물량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기존 처리 여건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고장으로 인해 가동이 중단되면 실제 처리 가능한 양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돼왔다.

가동 중단
처리 불가

선별 시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매립 금지가 시작되면 재활용품 선별 비중을 높여야 하지만, 수도권 선별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이거나 설비 자체가 낡아 처리 속도가 더디다. 전처리량이 늘어날수록 선별 과정에서 병목이 생길 가능성이 크고, 선별되지 못한 잔재물은 결국 소각으로 넘어가면서 다시 전체 처리양에 부담을 주게 된다.

쓰레기를 광역 단위로 이동해 처리하던 기존 방식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직매립 금지 시행을 앞두고 일부 지역에서는 외부 반입을 제한하거나 반입 물량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지자체가 서로의 부족한 시설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왔지만, 전처리 물량이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타지역의 쓰레기를 받아줄 여력이 없다.

수도권 직매립 금지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곳은 단연 서울이다. 서울은 수도권에서 생활폐기물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하루 발생량은 약 2888톤에 이른다. 이 가운데 약 2384톤은 소각을 통해 처리하지만, 여전히 하루 504톤은 매립지로 직행하고 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18만톤이 넘는 규모다.

그동안 서울시는 마포구에 새 소각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주민 반대와 함께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사업이 중단된 상황이다. 결국 서울시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민간 소각장 활용뿐이다. 서울시는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고, 직매립 금지를 예정대로 시행할 경우 처리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은 소각장 확충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기존 시설도 노후화로 가동률 변동이 잦아 추가 물량을 모두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처리 여력이 부족하다. 경기도 내 공공 소각시설의 하루 처리 가능량은 약 3500톤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발생량은 4700톤이 넘는다.

주민 반대
속수무책

결국 하루 약 1200톤은 민간 소각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시·군이 공공 소각시설 신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들 시설의 완공 시점은 2027년에서 2030년 사이로 예상된다. 직매립 금지 시행 시점과 시설 확보 시점 사이에 여전히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경기도 곳곳에서는 이미 기존 소각시설의 가동률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신도시 개발과 외곽 지역의 인구 증가로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꾸준히 늘고 있어 처리 수요가 앞으로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경기도는 당분간 민간 위탁과 외부 반입 조정 등을 통해 여건을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직매립 종료를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인천 또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은 지난 30여년 동안 수도권 전체 폐기물을 받아오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 이유로 인천은 지금 가장 큰 부담을 떠안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인천시는 그동안 수도권매립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매립 금지를 강하게 요구해 왔다. 수도권매립지는 이미 포화 단계에 들어섰고, 인천시는 더 이상의 직매립을 허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내왔다. 시행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자체 처리 능력 역시 부족했다.

직매립이 중단되면 인천도 연간 7만톤가량의 생활폐기물을 추가로 소각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공공 소각장은 확보되지 않았다.

직매립 금지가 실행되면 수도권 지자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사실상 하나뿐이다. 결국 수도권의 쓰레기들을 민간업체로 향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 수용 여력이 없는 지역일수록 민간업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민간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비용 부담은 커진다.

민간업체 활용 불가피
비용 부담은 시민들 몫

지금까지는 수도권매립지에 생활폐기물을 그대로 묻을 경우 1톤당 약 11만6000원 수준이면 처리가 가능했고, 공공 소각시설을 이용하더라도 12만원을 크게 넘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민간 소각장 위탁 단가는 이보다 훨씬 높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으나 보통 14만~16만원 선에서 책정되고, 일부 시설은 2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한국환경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에서 배출된 생활폐기물은 약 28만7000톤이며, 이 가운데 21만5000톤은 소각으로 처리됐지만 7만2000톤가량은 매립으로 넘어갔다. 직매립 금지가 시행되면 이 7만톤 규모를 전량 소각으로 돌려야 한다는 의미다.


단가를 20만원으로만 단순 환산해도 연간 약 140억원이 필요하고, 직매립 비용을 가장 낮은 수준인 12만원으로 잡더라도 추가 부담만 60억원에 이른다. 인천뿐 아니라 서울·경기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반복될 수밖에 없어, 민간 의존이 늘어날수록 재정 여건이 크게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비용이 인상되면 그 부담은 주민들이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인천 일부 지자체는 올 초 종량제 봉투 가격을 조정하며 20리터 기준 약 16% 오른 870원으로 인상했다. 부평·계양·남동·연수구 등이 먼저 가격을 올렸고, 다른 지역들도 인상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각 지자체는 단기 대책과 중장기 대책을 동시에 검토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민간 소각장과의 장기 위탁 계약 여부를 놓고 협의를 진행 중이며, 계약 물량 확보를 위해 여러 지자체가 같은 시기에 움직이면서 경쟁이 심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처리 물량이 많은 대도시권은 일정 규모의 물량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계약처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직매립 금지 초기 단계에서 처리 지연이나 물량 분산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자체 조정
중요한 과제

지자체 간 조정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직매립 금지 시행 이후에는 그 동안처럼 부족한 지역의 물량을 인근 지역이 대신 처리해주는 방식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각 지자체는 내부적으로 자체 감량과 처리량 조절 계획을 마련 중이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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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새해 벽두부터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정치 문법으로 제시했다.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동원하는 장 대표에겐 ‘상상력 부재’란 지적을 할 수도 있다. 김종인·마키아벨리·아우구스투스가 장 대표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 12일 당명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020년 9월 당명을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꾼 후 약 5년5개월여 만이다. 이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공천 헌금·통일교 특검 수용 촉구’를 명분으로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단식을 했다. ‘택갈이’ 당명 개정 외국과 달리 한국 정당사에선 유난히 당명 개정이 잦았다. 당명을 바꾸는 주된 원인은 선거 패배 수습과 당내 쇄신이다. 당의 체질은 바꾸지 않은 채 명칭만 바꾸기 때문에 당명 개정은 ‘택갈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후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유권자들의 호응과 국민의힘 나름의 자체 개선에 대한 주목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장 대표가 단식투쟁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에 대해서도 여러 의문이 있다.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응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신임 홍익표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제1 야당 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심각하게 인식하길 바란다”며 “홍 수석을 단식농성장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강명구 의원도 같은 날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인간적 도리로 장 대표를 걱정·위로·격려하는 게 맞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홍 수석이라도 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도 한번 찾아오지 않았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며 “우리 정치 역사에 없었던 일인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직접 와서 야당 대표 얘기를 듣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통상의 정치 문법에 따르면, 대통령실·여당은 야당 대표의 극한 투쟁을 자제시키기 위해 먼저 움직인다. 하지만 장 대표의 단식투쟁에 대해선 단식 투쟁자와 그 주변에서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은 20세기 대한민국 정치, 특히 삼김 시대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엔 당명 변경이 1인자 교체·정계 개편 등 강력한 정치적 파문을 거친 후 이를 상징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단식투쟁은 군사독재 시절 야당 지도자의 최후 항거 수단이었다. 세월이 흘러 수단이 남용되면서 그 수단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가 축소됐다. 이젠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든 말든 대통령실·여당이 무시하는 시대다. 장 대표가 삼김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 문법인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선택한 것을 놓고, 일각에선 “장 대표의 정치 문법이 너무 정직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아울러 단식 중단 결정에 대해서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명 변경·단식투쟁…장의 ‘정직한 정치’ 법관 출신·위기 없는 안락함…절박함 없어 통일교·신천지의 정교유착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장 대표의 단식 하루 전인 지난 21일 신천지 전직 강사로부터 “지난 2021년 6~7월경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지역 지파장으로부터 국민의힘 가입 지시를 받아 신도들을 가입시켰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국민의힘에 가입해야 한다는 기류가 팽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민주당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을 다루는 특검법에 신천지 관련 의혹도 포함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 대표의 단식투쟁 출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들어줬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장 대표의 단식을 만류했고, 장 대표는 이를 수용해 단식을 중단한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장 대표는 “좀 더 길고 큰 싸움을 위해서”라는 단식 중단 명분을 제시했다. 아울러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 13일 장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해 제명을 결정했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고성국씨와 밀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7월에, 고씨도 지난 6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세력과의 밀착을 토대로 국민의힘 안에 ‘장동혁계’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장 대표는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관 출신이다. 여의도엔 수많은 법관 출신 정치인이 있었다. 법관은 법전·판례란 과거의 흔적을 토대로 현재를 심판한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현재를 토대로 과거를 참고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법관도 새로운 판례를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땐 미래를 의식하지만, 판단의 중심은 현재에 맞춰져 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대선 출마 당시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로부터 “북한이 서해 5도에서 무력 도발하면, 즉시 육법전서를 가져오라고 할 사람”이란 비난을 들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각종 선거 기법을 활용해 많은 고비를 넘는 선거를 치른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 전 대표가 패배했던 이유가 함축됐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판사 출신 정치인에게 한정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개혁신당 이준석 대표·한 전 대표 등 정적들에게 검사 재직 시절 관성으로 범죄자를 바라보듯 대응하다가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한 전 대표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지난 2024년 총선을 지휘하면서 이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한 ‘이조심판론’을 과도하게 내세우다가 패배했다. 현재의 문제점을 토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선거 영역에서 과도하게 직업적 관성을 내세우다가 정치적으로 패배한 사례들이다. 장 대표는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 이후 큰 정치적 위기를 겪지 않았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후 겪은 좌절은 제21대 총선 패배와 대전시장 경선 패배가 있다. 물론 이 같은 사례는 다른 정치인도 흔히 겪는 일이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좌절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얻은 것 잃은 것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이어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아직 2년이 지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초선 의원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을 만큼의 의정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는 현재 제1야당 대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난 1983년 단식은 신군부 군사정권과 맞설 정상적 정치 수단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단식을 만류하던 민주정의당 권익현 당시 사무총장이 외국행을 제안하자,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이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외국에 나가느냐. 나를 외국으로 보내고 싶으면, 시체로 만들어 보내면 된다”고 응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가택연금 중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사건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다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떠나 있었다. 김종필 전 총리는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몰려 정계에서 축출당한 후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실·여당이 장 대표의 단식을 무시하는 이유는 이 같은 큰 그림과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람의 상상력은 절박한 위기에서 나온다. 판사 출신으로서 갖는 관성과 위기를 겪은 적 없는 정치 행보가 상상력 부재로 이어져 당명 변경·단식투쟁 등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대여 투쟁 방법으로 제시하는 현 상황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2022년 1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를 일컬어 “내가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윤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선대위가 알려준대로 연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후보는 선대위에서 해주는대로 연기만 잘할 것 같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늘 얘기한다”며 “대선후보는 자신의 의견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실언 논란 때문에 하락하고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의 당시 발언은 “군주는 모든 미덕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갖춘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국가원수는 국가의 상징이다. 국가원수가 되려는 자의 발언·행보엔 큰 정치적 의미가 부여된다. 뉴스에 나오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강하고 믿음직해야 하지만, 실제로 강하고 믿음직할 필요는 없다. 국민의 눈에 강하고 믿음직하게 보이는 것이 권력의 본질이다. 아울러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이 같은 전략·도구를 ‘가상’이라고 표현했다. 윤 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투박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게 여우의 교활한 연기를 통한 가상 구축을 주문한 것이었다. 정치도 일종의 상품이라서 포장지가 필요하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여우의 교활한 연기’는 대중에게 교묘하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정치적 포장지를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사람은 대체로 손으로 만져보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를 ‘연기’라는 두 글자로 축약한 것이다. 큰 그림과 의지 부재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중 기만·속임수의 극치를 보여준 사람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였다. 아우구스투스는 40년 동안 황제로서 로마를 통치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하지 않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후 종신독재 관직에 취임하면서 로마군의 최고사령관을 겸직했다. 이후 로마에선 카이사르 동상에 왕관이 씌워지거나, 일부 카이사르 지지자가 카이사르를 향해 “왕”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에게 왕관을 씌우자, 카이사르가 이를 벗고 안토니우스에게 돌려주는 이벤트도 있었다. 공화정 사수를 주장하는 보수파는 이를 보고 크게 불안해했다. 결국 마르쿠스 브루투스 등 보수파 일부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한 카이사르를 향해 무기를 들고 덤볐고, 카이사르는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카이사르의 조카손자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정계에 입문해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을 거쳐 로마의 통치자가 됐다. 그는 대중을 속여 양아버지의 전철 답습을 피하면서 로마를 통치해야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창조한 속임수는 원수정이었다. 그는 내전 승리 직후 “권력을 원로원과 로마 시민에게 반납한다”면서 자신의 통치 체제를 “회복된 공화정”이라고 명명했다. 이어 ▲제1시민·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란 존칭이 갖는 권위 ▲최고사령관 직위 ▲근위대 지휘권 ▲호민관 특권 등을 이용해 로마를 통치했다. 제1시민은 공화정 말기 로마 원로원에서 최고 원로를 명예롭게 예우하기 위해 사용된 호칭이었다. 카르타고 전쟁에서 한니발 바르카스를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도 부여됐던 호칭이었다. 최고사령관 직위를 의미하는 ‘임페라토르’는 승전한 장군에게 병사들이 경의를 표하던 호칭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를 군권 1인자란 의미로 활용해 군권을 독점했다. 이탈리아 반도 내에 주둔하는 군대는 근위대가 유일했기 때문에 근위대 지휘권은 매우 중요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근위대 지휘권을 통해 근위대장 임명권을 행사하면서 근위대를 통제했다. 김종인 ‘연기’ 발언 속 마키아벨리 철학 통찰해야 정치적으로는 호민권 특권을 요긴하게 활용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귀족 가문 출신이라서 평민 출신이 독점하는 관직 호민관에 오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호민관의 권한만 가져왔다. 그가 가져간 호민관 특권은 ▲신체 불가침권 ▲입법권 ▲원로원 결의 거부권 등을 의미한다. 제1시민이란 존경을 받는 군권 1인자가 호민관 특권을 가져가면 원로원보다 우월한 지위가 확고해진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 아닌 황제’로 40년 넘게 로마를 통치했다. 이런 교묘한 정치 행위는 우리 정치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념·행적이 전혀 다른 김종필 전 총리와 DJP 연대를 구축한 후 대통령에 당선돼 의원내각제식 연립정권을 구축했다. 비교적 진보 성향을 드러내는 소수 야당 후보로서, 거대 여당에서 분리돼 독자노선을 걷는 강경 보수 야당과 연대해 선거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 후 연립정권을 구축한 독특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세대포위론이란 정치공학 이론이 등장했다. “2030세대 여성·4050세대 다수가 지지하는 민주당을 이기기 위해선 민주당에 적대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대 이상 노년 세대가 연합해 포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론이었다. 이는 새로운 국민의힘 지지층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고, 젊은 보수 정치인이 다수 등장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줬다. 하지만 민주당과 지지자들로부터 “세대·남녀 갈라치기를 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갈등 끝에 새로 수혈된 2030세대 신진 정치인과 지지층 상당수는 이 대표를 따라 개혁신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는 “인간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손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현실 정치에 구현된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이 대통령보다 중도층 지지를 더 많이 얻었다”는 평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층은 정치 변화의 의지가 담긴 신선한 정치 문법 제시를 선호한다. 정치 문법은 결국 정치인이 대중 앞에서 선보이는 연기에 달렸다.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 견제를 원했던 로마 최고의 논객·정치인 키케로를 상대로 예의 바른 청년 행세를 하면서 속여 그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한 연설을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정치 기반이 안정된 후엔 “키케로를 숙청해야 한다”는 안토니우스의 요구를 묵인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당시 20세였다. 카이사르 사후 양자로서 정계에 등장한 후 불과 2년 만에 구사한 속임수였다. 아우구스투스 59년 교훈은? 안토니우스를 몰아낸 이후엔 40년 동안 원수정을 통해 로마인을 교묘하게 속였다. 아우구스투스는 만 77세로 사망하면서 “내가 인생이란 연극에서 내 배역을 충분히 잘 연기했다면, 기쁜 목소리와 박수로 날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이란 삼김 시대 방식 정치 문법을 구사하는 장 대표는 그의 배우 인생 59년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