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타고난 것들의 딜레마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12.01 10:06:03
  • 호수 1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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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영역에 매혹적인 도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상일 감독의 <국보>가 일본 영화 역대 최대 흥행을 기록했다. <국보>는 명문 가부키 가문 내 친자·양자의 경쟁·갈등을 다룬다. 혈연·재능이란, 타고나는 것들의 딜레마를 다룬 <국보>는 주어진 운명에 대응하는 우리의 선택을 소설·영화로 그려냈다.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신작 영화 <국보>가 지난달 19일 개봉했다. 일본에선 지난 6월 개봉돼 11월24일 기준 관객 1231만명을 동원하며 일본 영화 역대 최대 흥행을 기록했다. <국보>는 일본 전통 연극 가부키 배우 명문가에서 재능을 드러내면서 사실상 양자로 대접받는 제자·친자의 경쟁·갈등을 다룬다.

일 최대 흥행

일본의 가부키 배우 명문가는 일본 최고의 명문가로 대접받는다. 이들 중 특히 대접받는 4대 가문은 황족·정치인 가문과 비슷한 예우를 받는다. 가부키 가문에선 대대로 배우로서의 예명을 세습한다. 일본에선 이를 ‘슈메’라고 한다. 가문을 이어받을 구성원은 만 2세 무렵 무대에 처음 서서 관객에게 인사한다.

이 의식은 ‘하츠오메미에’라고 한다. 다이묘가 쇼군에게 후계자를 처음 소개하던 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슈메·하츠오메미에를 치르는 후계자는 대부분 가부키 가문 당주의 친자다. 이 때문에 <국보>는 일본에선 매우 도발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가부키 가문에서 제자로서 양자가 돼 당주까지 오른 사례로는 마츠시야마 가문의 6대 가타오카 아이노스케가 유명하다.

가타오카는 아들이 없던 2대 카타오카 히데타로로부터 인정받아 양자로 입적됐는데, 이는 예외적인 사례다.

일각에선 <국보>의 갈등 구도를 놓고 “혈연·재능의 갈등은 흔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일본에선 그렇게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구도가 아니다. 일본의 역사를 바꾼 사건 중엔 친자·양자의 갈등이 많기 때문이다.

1467년 발생한 오닌의 난은 무로마치 막부의 영향력을 완전히 끝낸 사건으로 통한다. 막부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아들이 없어 스님으로 출가한 동생 요시미를 환속시킨 후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지명했다. 요시마사는 요시미를 후계자로 삼은 후 친아들 요시히사를 얻는다.

오닌의 난은 요시마사가 후계자를 요시히사로 바꾸려던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다이묘 가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다수 있었기 때문에, 막부의 후계자 교체는 막부만의 일이 아니었다. 다이묘들은 막부의 후계자 결정에 개입해 내전을 벌였다.

요시히사는 9대 쇼군이 됐지만, 내전의 여파로 막부의 영향력은 땅에 떨어졌다. 이후 일본은 센코쿠 시대를 맞았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도 친자가 없었다. 그래서 누나의 아들 히데츠구를 양자로 삼아 간파쿠 직위를 물려줬다.

일본 역사 바꾼 친자·양자 갈등 영화화
남성의 여성 연기 다룬 일본판 <패왕별희>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자 히데요리를 얻은 히데요시는 히데츠구에게 반역죄를 적용한 후 할복을 명령했다. 히데츠쿠의 가족도 모두 죽였다. 히데요시가 죽을 당시 히데요리의 나이는 불과 5세였다. 그로부터 17년 후 도요토미 가문은 오사카 전투를 끝으로 몰락했다.

<국보>의 주인공인 야쿠자의 아들 타치바나 키쿠오(요시자와 료 분)는 간사이 카미카타 가부키 명문가 당주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 분)의 인정을 받아 제자가 된다. 이 가문에선 온나가타(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 배우)를 세습한다. 미모와 연기력이 모두 뒷받침돼야 배우로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가문이다.

일부 관객들은 이로 인해 첸카이거 감독의 1993년 작 <패왕별희>를 함께 거론한다. 이 영화의 중심 소재는 항우·우미인 부부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경극 ‘패왕별희’였다. <패왕별희>는 20세기 중국의 각종 격변 속에서 몰락하는 경극과 두 남성 배우의 묘한 사랑을 담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거론되는 것은 언제나 우미인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는 청뎨이 역을 맡은 장궈룽의 미모였다.

이 감독도 <패왕별희>를 언급했다. 이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학창 시절 <패왕별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언젠가 이런 영화를 찍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2010년 무렵 가부키의 온나가타를 중심으로 찍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감독은 <국보>의 원작 소설을 집필한 요시다 슈이치와 오랫동안 상의했고, 요시다의 원작 소설 출간에 이어 영화화를 추진했다.

친자·양자의 갈등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도 1980년 작 <카게무샤>에서 보여줬다. 센코쿠 시대 다이묘 다케다 신겐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좀도둑을 카게무샤로 삼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겐이 사망하면서 남긴 유언은 “3년 동안 나의 죽음을 숨기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카게무샤는 신겐의 대역으로 활동했고, 아들 다케다 카츠요리는 당주가 되지 못했다. 중심 소재는 스스로 신겐이라고 생각하면서 닮아가는 카게무샤와 그를 바라보면서 조바심을 느끼는 카츠요리의 갈등이다. 변형된 친자·양자의 갈등이라고 볼 수도 있다.

관점에 따라 카게무샤가 다케다 가문의 당주 자격을 이어받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이어받은 주제 의식·화면
극중 공연 자막 설명으로 이해 도와

이 감독은 화면 구성 과정에서도 가부키 특유의 화려한 색감을 전면에 내세운다. 특히 두드러지는 연출은 흰 눈과 붉은 피를 대비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구로사와 감독의 1985년 작 <란>의 색감과 비슷하다”는 평이 있다. 이 감독 스스로는 “구로사와 감독의 1958년 작 <이키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보>는 세트 구성과 가부키의 재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국 관객은 극중 등장하는 가부키 공연에 익숙하지 않다. 수입사는 자막을 통해 극 중 공연의 줄거리와 특성을 설명하며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카게무샤>와 <국보>의 공통점은 일본의 오랜 고정관념에 도전한단 것이다. <카게무샤>는 일개 좀도둑이 다이묘에 동화돼 스스로 다이묘라고 생각하는 등 일본 사회에선 용납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을 넘본다.

<국보>는 혈연·재능의 갈등을 다룬다. 좀도둑이 스스로 다이묘라고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사회에서 야쿠자의 아들이 가부키 명문가의 일원이 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2011년 이후 일본에선 야쿠자를 겨냥한 폭력단 배제 조례가 전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야쿠자는 자신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설할 수 없고, 은행 거래를 할 수 없다. 자동차를 가질 수도 없고, 사회보장보험도 적용받지 못한다.

이레즈미 같은 문신을 하면 목욕탕에도 갈 수 없다. 일본 야쿠자 영화에서 야쿠자 조직이 사무실에 금고를 두고 현금을 보관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폭력단 배제 조례는 야쿠자를 사회에서 격리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고, 야쿠자 가족에게도 사회적으로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등 사실상의 연좌제가 적용되는 사례가 많다.

매혹하는 선택

재능과 혈연은 모두 타고나는 것이다. <국보>에서 다루는 것은 타고난 것들의 충돌·비극·이해다. 타고난 것 때문에 웃고, 타고난 것 때문에 운다. 타고난 것으로 인해 교만에 빠질까 봐 궁지로 몰기도 한다. <국보>는 타고난 것의 모든 딜레마를 다룬다. 주어진 운명에 대응하는 다양한 선택은 고대 그리스 비극 이래 오랫동안 우리를 매혹한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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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