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정부가 창업기업이 만든 제품을 사서 돕겠다며 만든 ‘창업 기업 제품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는 매년 꾸준히 실적을 쌓아왔다. 지난해 공공기관이 보고한 창업 기업 제품 구매 규모만 해도 5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실제 창업 기업에는 생산한 제품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막대한 실적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정부는 청년 창업 활성화와 신산업 육성을 위해 지난 수년간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중에서도 공공기관이 창업 초기 단계의 기업 제품을 일정 비율 이상 구매하도록 의무화한 ‘창업 기업 제품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는 대표적인 판로 지원 정책이다.
판로 지원?
이 정책은 시장에서 입지가 약한 창업 기업이 안정적인 첫 매출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특히 공공기관이 초기 매출 기반을 만들어주면 민간 판로 확대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제도 설계 당시부터 “창업 기업의 생존 기반 마련”이 중요한 목표로 제시돼왔다.
공공기관은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제38조에 따라 연간 총 구매액의 8% 이상을 창업 기업이 직접 생산한 제품·용역·공사로 구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매년 일정 비율로 창업 기업의 제품을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창업 기업 제품은 어디에서 들여온 완제품을 다시 파는 수준의 물건이 아니다.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제14조에는 “창업 기업이 판매 목적의 물품 포장, 상품성 유지를 위한 추가 작업 등 단순 가공을 한 제품을 공공기관이 구매한 것은 창업 기업 제품을 구매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즉, 창업 기업이 외부에서 들여온 완제품을 포장만 바꾸거나, 상품성 유지를 위한 단순 가공만 한 경우는 ‘직접 생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제도는 연도별 공공기관 실적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각 기관은 한 해 동안 물품·용역·공사 구매 내역 가운데 창업 기업 제품에 해당하는 실적을 따로 집계해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 실적은 중기부가 매년 ‘창업 기업 제품 우선구매 실적’으로 공표하며,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공공기관장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경영평가에도 반영된다.
그러나 <일요시사>가 취재한 결과 일부 공공기관이 창업 기업이 제조하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고도 이를 창업 기업 제품 실적으로 제출한 경우가 확인됐다.
대기업·외국산 제품 사서 납품
유통만 해도 창업제품으로 둔갑
가장 먼저 문제가 드러난 기관은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이하 산림진흥원)이었다. 해당 기관은 여러 창업 기업으로부터 물품을 구매해 실적으로 제출했지만, 현장 조사에서 ‘창업 기업이 직접 생산하지 않은 제품’이 실적에 포함돼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중기부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의 구매 실적을 조사한 결과, 직접 생산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제품이 포함돼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중기부 산하 기관에서도 동일한 방식의 구매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이하 기정원)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이 보고한 실적에서도 창업 기업이 생산하지 않은 제품이 창업 기업 제품 실적으로 제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기정원이 2023년에 제출한 창업 기업 제품 구매 실적 중 총 4개사의 구입 제품을 적발했다. TV·냉장고·액션캠·무선수신기 등 창업 기업이 생산하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고도 이를 창업 기업 제품 구매 실적으로 제출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조사 결과 통보서에 따르면 ‘해당 제품은 창업 기업이 직접 생산한 물품이 아니며, 창업 기업 제품 구매 실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됐다. 이들 제품 중 일부는 대기업 또는 해외 제조사 제품이었다. 적발된 기업으로는 C사, N사, H사, HM사 등이 포함됐다.
중진공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3년 구매 실적 가운데 카트리지·토너 등 사무용품과 고압 세척기, 3D 프린터 소모품 등 창업 기업이 생산하지 않은 제품이 실적에 포함돼있었다. 조사 결과에는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제38조 제1항 및 시행령 제14조 제2항을 위반한 사실도 명시돼있었다.
중진공에 납품한 업체로 언급된 곳들은 C사, N사, H사, HM사, D사, S사, U사, P사 등 총 8개 업체였다. 이 8개의 기업 중 일부 기업은 적발된 공공기관의 납품 기업과 대다수가 중복됐다.
“모든 공공기관 전수 조사해야”
중기부 산하도 허위 실적 적발
문제는 이 창업 기업들이 실제 제품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 업체는 창업 기업으로 등록돼있었지만, 실제로는 제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창업 기업이지만 실질적인 제조 기반 없이 유통만 하는 구조인 것이다.
해당 업체들의 홈페이지를 직접 확인한 결과, 이 같은 정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H사 홈페이지의 ‘공공기관 쇼핑몰’ 탭에는 해외 브랜드 완제품이 다수 판매되고 있었다.
C사 홈페이지에서도 역시 자체 제조 제품을 찾기 어려웠다. P사는 “국내 사무용품 브랜드 제품을 공급한다”고 적어 사실상 유통 중심의 사업구조임을 알 수 있었다. 산업용품을 취급하는 S사 역시 외신 장비 유통이 중심이었다.
모든 기업이 공통적으로 홈페이지에서 자사 제품을 보여주지 않았다. 창업기업으로 등록만 돼있으면 외부 제품을 유통해도 공공기관에 납품할 수 있고, 공공기관은 이 납품 실적을 창업 기업 제품 실적으로 제출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기부는 적발된 기관들에 대한 조치를 ‘경고’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조사 결과 통보서에는 “앞으로는 창업 기업이 직접 생산한 제품만 실적에 포함되도록 관리하겠다”는 정도의 개선 요구가 담겼을 뿐, 제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제38조 제5항과 관련 법령에서는 허위 실적 보고 시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확인할 수 없었다.
2024년 기준 공공기관의 창업 기업 제품 구매 실적은 약 5조7000억원 규모다. 하지만 이 중 일부는 허위 구매 실적이 포함된 수치다. 현재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기관들의 실적까지 밝혀진다면 실제 허위 실적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명무실
한편, 제보자는 “제도 취지대로 운영된다면 생산 기반을 갖춘 진짜 창업 기업들이 공공조달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허위 실적이 반복되면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기업들은 판로가 막히고, 아무 기반 없이 유통만 하는 업체들만 이익을 보는 구조가 계속된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한 3개 기관의 실적도 극히 일부만 조사됐고 바뀐 게 없다. 현재 적발된 창업 기업들이 많은 공공기관에 납품하고 있으니, 모든 공공기관을 상대로 전수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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