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 조용한 세계관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11.18 06:45:39
  • 호수 15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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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고레에다와 같은 듯 다른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아역 배우의 연기력을 대폭 끌어올리는 마스터”란 평가를 듣는 윤가은 감독의 영화 <세계의 주인>이 조용한 흥행 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윤 감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윤가은 감독의 신작 <세계의 주인>은 지난달 22일 개봉했다. 이후 지난 12일 기준 <세계의 주인>을 관람한 관객은 9만6670명이다. 독립영화로선 조용한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배우 김의성·김혜수·박정민·김태리·고아성 등은 릴레이 응원 상영회에 동참했다.

릴레이 응원

<세계의 주인>은 <우리들>과 <우리집>에 이은 윤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윤 감독은 두 작품에서 여자 초등학생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우리들>에선 교실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교우관계의 형성·갈등과 은근한 따돌림을 다뤘다. <우리집>에선 복잡한 가정환경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어른이 돼가는 아이들을 다룬다.

윤 감독은 <세계의 주인>에선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세 작품을 통해 드러난 윤 감독의 연출 특징은 ▲아역 배우의 차원 높은 연기력 ▲아이의 눈높이와 움직임에 맞춘 장면 구도 ▲절제된 미장센 ▲집중력 있는 일상 탐구 ▲진지한 시선과 문제 제기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감독의 주된 역할 중 하나가 연기 지도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윤 감독은 데뷔작에서부터 숙련된 재능을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 영화를 다수 감상한 관객이라면 윤 감독의 영화들에서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연상시킬 가능성이 있다. 윤 감독의 연출 특징 중 상당수는 고레에다 감독과 겹친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인 고레에다 감독은 절제된 미장센 속에서 아역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현실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 두 감독 모두 억지 감동을 추구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서사를 통해 관객 스스로 느끼게 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윤 감독은 이미 데뷔작 <우리들> 공개 후 ‘한국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별명을 얻었다. 윤 감독은 이 별명을 피하지 않는다. 봉준호·고레에다·중국의 지아장커 감독은 <세계의 주인>을 호평하면서 윤 감독을 지지했다. 이에 대해 윤 감독은 지난달 20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후배 영화인으로서 그분들의 길을 모방하고, 때로는 변주하면서 쫓아가는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아역 중심 숙련된 연출…“마스터” 평가
미묘한 아이들 심리 섬세한 묘사가 장점

그들 중 봉 감독은 “윤가은·고레에다·고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아역 배우를 스크린에 살아 숨 쉬게 하는 3대 마스터”라고 극찬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연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누렸다.

윤 감독의 영화는 여성 초등학생·고등학생의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묘한 갈등에 빠지고, 그 갈등을 통해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드러낸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들>에선 또래 집단에서 제외되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들의 다양한 선택과 미묘한 갈등을 다룬다. <우리들>에서 묘사되는 교실은 이미 어른의 세계다. 살기 위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 상처는 봉합되지 않는다. 때로는 진실이 드러나 의도치 않게 따돌림을 당한다.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이어지는 숙제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집>에선 가족을 다룬다. <우리들> 주인공의 가족은 가난하지만 화목했다. 반대로 <우리집> 주인공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가족이다. 가정불화가 이들을 괴롭힌다. <우리집>의 두 주인공이 친해진 계기는 이에 대한 공감대였다.

환경은 이들의 우정을 끝까지 괴롭힌다. 고레에다 감독의 2011년 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선 아이들이 어른의 불화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세계의 주인>은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얘기한다. 그 상처는 가족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가족은 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상처를 치유하려고 하지만, 때로는 그 각자의 방법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서로를 잘 알지 못해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세계의 주인>의 핵심 소재는 아동 성폭력이다. 이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이 어떻게 2차 가해를 하는지, 피해자가 살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등을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아주 서서히 드러낸다. 윤 감독은 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공들여 집중력 있게 장시간 보여준다. 이어 무르익었을 즈음 중심 소재를 서서히 드러내다가 어느 순간 폭발시킨다.

살기 위해 상처 치유 노력
“평범한 설정으로 감정 폭발”

이는 고레에다 감독이 지난 2023년작 <괴물>에서 보여줬던 연출과 비슷하다. <괴물>에선 비밀을 가진 두 남자 초등학생을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해 갈등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진실이 밝혀진 순간 폭발하는 감정을 예사롭지 않게 묘사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란 말은 일상에서 흔히 쓰인다. 두 감독은 이 흔한 말을 영화 주제로 연출 전면에 내세운다. 윤 감독은 <우리들>과 <우리집>에서 “아이의 나쁜 관행과 어려움은 어른의 환경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반대로 <세계의 주인>에선 사려 깊은 어른이 있어야 아이도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노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계의 주인>에선 어른의 역할 비중이 크지 않다. “아이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선 어른의 말 없는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아역 배우를 내세워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로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괴물>을 언급할 수 있다. 이 영화 속 아이들이 겪는 문제는 모두 어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에선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4남매가 등장한다. 아빠는 아예 존재 자체가 거론되지 않으며, 엄마는 자신만의 삶을 위해 아이들을 버렸다. 고레에다 감독은 4남매를 비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묘사해서 “엄마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비극을 암묵적으로 전달한다. 아울러 밖에서 활발하게 노는 아이들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엄마 없는 좁은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현실을 대비시켰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괴물>에선 아이를 자신의 틀에 맞추려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특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선 상반된 두 아버지를 대비시키면서 무엇이 어른의 역할인지 되묻는다. <어느 가족>에선 친부모의 폭력과 ‘양부모 아닌 양부모’의 ‘사랑 아닌 사랑’을 대비시킨다.

드러나는 세계

고레에다 감독이 다양한 환경의 캐릭터들을 통해 현실에서 아이들이 처하는 어려운 상황을 묘사한 것처럼, 윤 감독도 아이들이 처하는 환경을 다루는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아울러 <세계의 주인>에선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설정을 주인공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매개로 다루면서 일상을 표현하는 연출력도 비범하단 사실을 입증했다.

윤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서 이창동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이 감독도 <세계의 주인>과 비슷한 소재를 다룬 걸작 <시>를 연출했다. 윤 감독은 거장들의 자양분을 꼼꼼하게 흡수해 어느덧 자신만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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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