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경남 양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과다한 보수공사비가 투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1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엔 ‘아파트 후문 공사, 이게 3900만원짜리?’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작성자 A씨는 “사진으로만 봐도 이렇게 큰 금액이 들 만한 공사는 아닌 듯하다”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동네 업체에 맡겨도 1000만원도 안 나올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가 올린 사진엔 은회색 담장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검은 철제 자동문이 덩그러니 설치돼있다. 외관상 보안 기능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방범 효과도 불분명했다.
함께 공유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 안내문에 따르면, 후문 공사는 전임 회장이 추진했고 공사 금액은 총 3916만원이 집행됐다. 문제는 전 회장이 특허 조항을 넣어 독단적으로 업체를 선정했고, 관리소장에게도 자신의 뜻대로 일을 진행하도록 요구한 점이다.
이에 대해 당시 관리소장은 “전 회장은 ‘입주민들이 알면 시끄러워지니 기타 안건으로 넣으라’ 지시했고, 입찰서 역시 그가 전달한 대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 회장의 행동이 위법하다고 생각해 불안감을 느꼈고, 저는 입사 두 달 만에 퇴사했다”며 “3자 대면이 이뤄진다면 참석할 의향이 있다”고도 했다.
입대의는 “전 회장은 재직 기간(지난 22년 1월~25년 4월8일) 동안 6건 총 9억3000만원 상당의 공사를 진행했다”며 “이전 공사 때도 특허를 넣어 특정 업체만 입찰에 참여하게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A씨는 “특허 때문이라고는 해도 도대체 어떤 특허길래 비용이 이렇게까지 불어난 것인지 모르겠다”며 “이런 사례를 보면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이 왜 장기집권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고 꼬집었다.
사연을 접한 보배 회원들은 “문을 금으로 만들었나” “390만원을 잘못 본 줄 알았다” “문이랑 펜스 설치하는 데 무슨 특허가 필요한가” “계좌나 통화 내역 수사하듯 추적하면 문제 많이 나올 듯” “구청에 민원 넣으면 조사 나온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논의도 안 하고 했다는 게 충격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한 회원은 “우리 아파트도 몇 년 전 재도색 공사 때 입주자 대표가 특허 있는 페인트 도장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했다가 결국 무마된 적이 있다”며 “이후 그 대표는 가스 회사에서 리베이트받는 듯한 행동을 보이다가 교체됐다”고 말했다.
자신이 입주민 대표를 맡은 적이 있다는 한 회원은 “제가 아파트 스크린도어 공사를 진행했을 때 1개소당 1400~1500만원이 들었다”며 “사진에 보이는 펜스까지 설치했다면 ”2500~3000만원 정도는 나올 듯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 따르면, 해당 공사의 명칭은 ‘단지 내 펜스 재설치, 자동문, 램프(경사로) 설치 공사’다. 사진 속 자동문뿐 아니라 펜스나 램프 시공 규모가 컸다면 4000만원에 달하는 공사비가 납득이 갈 수도 있다.
눈여겨볼 점은 해당 업체는 지난해 이 아파트에서 옥상·옥탑 균열 보수 및 재도장, 옥상과 바닥 방수 공사 진행 시에도 낙찰됐다는 부분이다. 당시 4곳 이상의 업체가 참여한 가운데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결정된 만큼, 경쟁입찰 절차 자체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입찰 조건에 기재된 특허의 내용이 공사와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는 점은 의문이다.
공고문 참가 자격엔 ‘친환경 MMA 수지 FLOORING SYSTEM(특허 제10-0979404호)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라고 명시돼있다. MMA 수지는 바닥 미끄럼 방지 코팅 등에 쓰이는 소재로, 일부 바닥 시공과 관련은 있지만 특허 제10-0979404호의 내용과는 다르다.
지식재산정보 검색 서비스(KIPRIS)에 따르면 이 특허는 자외선과 열을 이용해 굳히는 새로운 접착·코팅용 소재인 에폭시 아크릴레이트에 관한 것으로, 주로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 표면을 보호하거나 연마제의 접착제 등에 쓰인다.
따라서 램프·자동문·펜스 설치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기술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공고문에 적힌 특허번호가 단순 오기였다면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회장은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입대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공사를 추진해 관련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 지침 제4조 제4항은 공사나 용역 등 사업자를 선정할 때 입대의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공동주택관리법 제93조 등에 따라 과태료 부과나 직무 정지·해임 등 행정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선 전임 회장의 독단적으로 공사를 추진했을 뿐 아니라, 특정 업체와 공모해 공사비를 부풀리고 차액을 사적으로 챙겼을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 같은 의혹을 해소하려면 지자체 공동주택과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형사 고발을 거치는 등의 절차가 요구된다.
조사 결과 전 회장이 배임이나 횡령 혐의로 확인될 경우, 형법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형법 제355·356조에 따르면 타인의 재물을 임의로 사용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면 횡령죄, 타인의 사무를 맡은 사람이 임무를 저버려 이익을 취하면 배임죄가 성립된다. 두 범죄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업무상 배임, 횡령일 경우 가중된다.
입대의 비리 사건은 공사비 부풀리기, 회계 불투명, 특혜성 계약 등 공통된 양상을 보이며 곳곳에서 반복돼왔다.
앞서 지난 2022년, 광주 한 아파트의 전 회장은 하자보수금 약 7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며, 당시 관리소장도 직인과 통장을 건네준 행위가 방조로 인정돼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처분을 받았다.
지난 2021년엔 인천 한 아파트의 입대의 회장이 보수공사 입찰 과정에서 공사업체 대표로부터 4500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함께 기소된 공사업체 대표도 배임증재 혐의로 같은 형을 받았다.
한편 12일, <일요시사>는 해당 아파트에 ▲해당 특허를 입찰 자격에 포함한 이유 ▲공사 후 입주민들의 구체적인 반응 ▲회계 감사 진행 여부 등의 취재를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관리소장은 “현재 분쟁 중인 사안이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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