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수사’ 검·경 갈등 폭발 막전막후

비화폰 서버 두고 옥신각신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내란 사태 핵심 물증으로 꼽히는 비화폰 서버 확보 경쟁이 치열해졌다. 경찰이 받기로 한 상황서 검찰까지 가세했다. 대통령경호처는 우선 검찰과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경찰은 검찰과의 ‘성과 배틀’이 불편하다는 분위기다. 경호처가 유독 검찰에만 호의적인 태세를 유지하면서 경찰에는 협조를 거부해 온 게 그 이유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이 확보한 비화폰 서버는 지난해 12월31일바부터 지난 1월22일까지다. 포렌식은 마무리됐고 이제 비상계엄이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들여다볼 차례다. 검찰도 비화폰 서버 확보에 동참하면서 수사는 사실상 두 기관의 ‘경쟁 레이스’로 들어섰다.

판도라
열린다

경찰은 지난해 12월3일부터 지난 1월22일까지 통화 기록을 이미 확보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 등이 받는 체포영장 집행 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관련이다.

비화폰 서버 기록은 2일마다 자동 삭제되는데 경찰은 포렌식을 통해 대부분 복구했다. 경찰은 윤 전 대통령 체포 방해 혐의 관련 비화폰 등 19대도 확보했다. 윤 전 대통령의 휴대전화도 포함됐다.

경호처는 초반과는 다르게 경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 강경파로 분류됐던 김 전 차장과 이광우 전 경호본부장이 지휘권을 잃은 이후 서열 4~5위에 해당하는 경호처 지휘관이 ‘물밑 협조’하에 경찰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경찰이 비화폰 서버 기록을 제출받는 현장에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 수사팀이 나타났다. 수사팀 소속 군검사 등은 경호처로부터 협조를 받았다며 비화폰 서버와 CCTV 영상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측은 이미 경호처와 수차례 협의해 확보한 자료라며 검찰이 끼어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항의했다. 검찰이 그간 삼청동 안가 CCTV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비화폰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던 사실도 불만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검찰은 “경호처 협조를 거쳐 절차를 진행하는 것일 뿐 경찰 수사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새치기가 아니면 뭐냐? 몇 달 동안 경호처와 협의 끝에 겨우 확보한 중요한 자료”라며 “갑자기 이제야 요청하는 건 경찰에 수사 실적을 뺏기지 않으려는 저의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경찰이 비화폰 서버 확보에 성공하면서 내란 관련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경찰은 비화폰 서버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서 윤 전 대통령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비화폰이 지난해 12월6일 원격으로 삭제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 끈질긴 물밑 협의 끝에 겨우 확보
검 끼어들기 논란 “경호처 먼저 연락”

12·3 비상계엄 선포 사흘 뒤이자, 홍 전 차장이 ‘대통령이 싹 잡아들여 정리하라고 했다’고 폭로한 날에 윤 전 대통령과 홍 전 차장, 김 전 서울청장의 비화폰이 삭제된 것이다. 이 외에도 복구된 비화폰 서버에는 통화·문자 내역 등이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증거인멸 혐의로 수사를 시작했고 서버 분석 과정서 추가적인 정황이 포착됐는지는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이 확보한 자료가 상당한 만큼 내용에 따라 국무위원들이 줄줄이 소환될 가능성도 높다. 경찰은 내란 혐의 관련 국무위원들이 수사 대상이라고 밝힌 상태다. 이번에 경찰이 확보한 비화폰 서버는 윤 전 대통령이 경호처에 체포 저지를 지시하거나,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와 관련된 자료로 한정된다.

내란 혐의와 관련된 핵심 자료의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 압수수색 영장에 명시되지 않은 다른 범죄 혐의의 증거 활용은 위법이기 때문이다. 재판서 증거로 쓰이려면 담당 재판부가 직권으로 경찰에 사실조회를 하거나, 별도로 법원이 압수수색에 나서야 한다.

경찰은 삭제를 지시한 피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불상자에 대해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7일, 김 전 차장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등의 비화폰을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윤 전 대통령도 증거인멸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수단은 지난달 30일, 김 전 차장을 불러 지난해 12월7일 경호처 실무진에게 연락해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비화폰을 보안 조치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파악하고 누구 지시였는지 추궁했다.

보안 조치는 원격 로그아웃을 의미한다. 비화폰은 원격 로그아웃이 이뤄지면 통신 내역 등이 지워져 ‘깡통폰’이 된다.

지시자
윤석열?

김 전 차장은 이날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두 차례 연락을 받았다. 윤 전 대통령은 김 차장에게 “네가 통신을 잘 안다며. 서버 관련 규정이 어떻게 되나. 서버 삭제는 얼마 만에 한 번씩 되느냐”고 물었고, 김 전 차장은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첫 통화 직후 윤 전 대통령은 다시 김 전 차장에게 전화해 “수사받는 사람들 비화폰을 그렇게 놔둬도 되는 건가. 조치해야지? 그래서 비화폰이지?”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 전화를 받은 김 전 차장은 즉시 경호처 통신 담당 실무진에게 전화해 보안 조치를 지시했다. 실무진은 김 전 차장에게 “누구 지시냐”고 물었고, 김 전 차장은 “대통령 지시”라고 답했다. 김 전 차장은 실무진과의 통화 내역을 삭제하는 등 그간 윤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에 대해 함구했다.

하지만 최근 경호처로부터 확보한 통화 내역 등이 증거로 제시되자,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령관 3명의 비화폰 원격 로그아웃(보안 조치)은 경호처 실무진의 반발로 이뤄지지 못했다.

실무진들은 보고서 등을 쓰며 “증거인멸에 해당돼 로그아웃할 수 없다”며 반발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무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 전 차장은 간부회의 등에서 수차례 “보안 조치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경찰보다 늦었지만 비화폰 서버 자료를 확보 중이다.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곽 전 사령관, 여 전 사령관, 이 전 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계엄군 지휘부, 조지호 전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가 대상이다.

김 전 장관과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계엄을 지휘한 것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비화폰 기록도 포함됐다. 검찰은 노 전 사령관이 비상계엄 선포문과 포고령, 이른바 ‘최상목 문건’ 등을 작성했다고 보고 있다.

보란 듯이
수사 경쟁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의 ‘비상계엄 관련 문건들과 노상원 작성 문건들의 유사성 검토’ 수사보고서에는 노 전 사령관이 서류를 작성하는 방식이 비상계엄 관련 주요 문건서도 발견됐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검찰 특수본은 제목이나 목차가 표기된 방식과 단락 구분에 사용한 기호 등을 토대로 노 전 사령관이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작성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경찰이 노 전 사령관을 상대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확보한 여러 한글 파일 문서를 넘겨받은 검찰 특수본이 비상계엄 관련 문건과 비교·검토한 결과, 이 같은 결과가 도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사령관 주거지서 압수한 USB 속 파일과 비상계엄 관련 서류는 모두 큰 목차에서 작은 목차로 내려갈 때 ‘■, ▲, o, -’ 순으로 기호가 매겨졌다고 한다. 그중 ‘o’ 표시를 할 때는 한글 프로그램 특수 문자 중 라틴 표기가 활용됐는데, 윤 전 대통령이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건넨 비상입법기구 문건서도 이 방식이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국무위원 등에게 건넨 문건 중 실물이 남아있는 건 최 전 부총리가 받은 게 유일한데, 이 문건과 비상계엄 선포문이나 포고령 1호 제목은 ▲가운데 정렬 ▲밑줄 ▲진하게 등의 동일한 처리가 돼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특수본은 비상계엄 관련 문건 작성 주체가 확인이 안 된 만큼, 이를 토대로 노 전 사령관이 작성자일 가능성도 검토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검찰은 비화폰 기록을 확보하지 못한 채 관련자들의 진술만으로 윤 전 대통령 등을 재판에 넘겼다. 이 때문에 비화폰 기록 분석 과정서 공소장 변경이나 증거 보완이 이뤄질 수 있다.

민간인 노상원·김건희 통화 기록 확인
일부 국무위원 출국금지 물증 확보했나

검찰 관계자는 “아직 분석 과정이고 핵심 증거가 발견된다면 보완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통화에서 10분가량 울분을 토하며 개인적인 가정사를 언급했다”며 검찰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관련이냐”고 묻자 김 전 청장은 “개인적인 부분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영부인 특검법 얘기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김 전 청장은 헌법재판소서도 같은 증언을 했다. 그는 “어떤 특검이라든지 이런 부분 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부분들이다. 대통령님의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라고 저는 그 당시 느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헌재서 언급됐던 또 다른 증언도 주목받고 있다. 조태용 국정원장이 김건희씨와 계엄 전날(지난해 12월2일)과 당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이다. 이날 저녁 김씨가 조 원장에게 문자 두 통을 보냈고, 다음날 아침 조 원장이 김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경찰과 검찰 간 갈등이 길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비상계엄·주가조작·공천 개입 등 주요 사건에 대한 특검법 처리를 예고한 만큼 구체적 수사는 특검이 이어받을 가능성이 커져서다.

앞서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서 전 정부의 재의요구권(거부권)에 막혔던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 등 3개 특검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내란·김건희 특검법은 각각 파견검사 40명 등 총 205명 규모로 170일간, 채상병 특검법은 파견검사 20명 등 총 105명 규모로 140일간 수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만약 3개 특검이 동시에 가동된다고 가정하면 파견검사 수만 100명에 이르는 규모다. 특검 출범 시 재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3개 특검
처리 예고

특히 내란 특검법의 경우 수사 인력을 증원하는 내용의 내란특검법 수정안이 제출됐다. 민주당은 지난 4일 오후 기존 발의한 법안서 파견 검사를 40명에서 60명으로, 파견 공무원과 특별수사관을 각각 80명에서 10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내란 특검법 수정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특별검사가 추천하는 특별검사보도 기존 4명에서 6명으로 늘어난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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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발’ 국힘 파멸 시나리오

‘전한길발’ 국힘 파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하자, 국민의힘은 또 내홍 속에 빠져들었다. 국민의힘의 극우화 징후가 더욱 짙어지는 가운데, 당내 친한계와 안철수 의원의 걸음도 바빠졌다. 전씨는 역설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을 돕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면서 강경 보수의 떠오르는 별이 된 전한길씨(본명 전유관)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민의힘 정점식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한길씨가 입당한 날은 지난달 9일이고, 입당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안 반대 반발 이어져 정 사무총장은 “온라인으로 입당했기 때문에 중앙당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며 “시·도당으로 입당하므로, 시·도당에서 확인 후 먼저 논의했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전씨가 본명으로 입당했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후문도 있다. 전씨의 입당 사실이 알려지자, 친윤계(친 윤석열)와 대립하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던 김용태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씨를 즉각 출당하라”며 “극단적 정치 세력과 절연하는 게 국민 보수를 재건하는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석열 어게인의 아이콘을 국민의힘에 입당시키는 것을 국민께서 어떻게 보실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도 “이제 친길계(친 전한길)를 만들 거냐”며 “친길 당 대표·친길 원내대표를 탄생시켜, 당을 내란당·계엄당·윤어게인당으로 완전히 침몰시킬 생각이냐”고 비판했다. 계파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 지적을 이어가는 윤희숙 혁신위원장도 “개인의 목소리를 크게 증폭시키는 건 정치인의 몫”이라며 “그런 행위가 우리 당을 점점 위태롭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윤 위원장은 “전씨를 초청한 토론회를 열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과 윤상현·장동혁 의원을 인적 쇄신 대상으로 지목했던 바 있다. 반발이 이어지자, 송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개인의 입당을 놓고 호들갑 떨 것 없다”며 “국민의힘의 자정 능력을 믿어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판 여론은 잦아들지 않았고, 송 비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의견을 바꿨다. 그는 “전씨에 대한 여러 의견을 경청·수렴하고 있다”며 “전씨의 언행을 확인하고, 당헌·당규에 따른 적절한 조치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 소속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같은 날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지금이라도 당원 자격 심사를 하면 된다”며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최수진 수석대변인은 “당원 자격 심사는 입당 신청 후 7일 이내에 해야 한다”며 “기간이 이미 지났고, 시·도당이 모든 사람을 일일이 조치할 순 없다”고 해명했다. 전 입당하자 김 환영…삼각동맹 급 탄생? 이재명의 중도보수 전략 돕는 1등 공신들 실제로 국민의힘은 전신 자유한국당 시절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진행자 중 1명인 김용민씨가 지난 2017년 2월 입당하자, 신속하게 제명했던 전례가 있다. 당시 김씨는 자유한국당 경기도당을 통해 입당원서를 제출해 자동으로 입당 처리됐다. 이를 파악한 경기도당은 “김씨가 당을 조롱할 목적으로 입당했다”고 판단한 후 긴급 윤리위원회를 개최해 김씨를 입당 후 8시간 만에 제명했다. 전씨가 본명으로 입당해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김씨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전씨는 입당 후 순식간에 당 대표·최고위원 출마설로까지 거론되는 등 국민의힘 내 뜨거운 감자가 됐다. 전씨는 지난 18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 전당대회에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후보가 없으면, 내가 직접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당헌·당규상 전씨는 전당대회에 출마할 수 없다.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만이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후보 등록일은 오는 30일부터 2일 동안이고, 전씨는 다음 달 10일부터 책임당원이 될 수 있다. 전씨의 입당 목적은 국민의힘을 좌지우지할 실질적 영향력을 얻는 것이다. 전씨는 지난 1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TV’를 통해 “전한길을 품는 자가 당 대표가 될 것”이라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입당 목적임을 공표했다. 그는 친윤계 의원으로 알려진 윤상현·장동혁 의원이 주최한 행사에도 참석했다. 또 윤 전 대통령 구속적부심 심사가 진행되던 서울중앙지법 근처에서 진행된 집회에 참여해 “우리가 국민의힘을 차지해서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후보를 당 대표로 선출하자”고 주장했다.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서울 여의도에서 윤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손 목사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대규모 강경 보수 집회를 주도하는 양대 축이다. 전·손 목사 집회 양대 축 전씨가 차기 전당대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사실상 손 목사와 전씨가 함께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는 지난 21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수십만 규모의 ‘우파 개딸(이재명 대통령의 여성 팬)’을 만들 생각도 있다”며 “전한길TV 시청자 10만명이 당원으로 가입했고, 더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10만명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의 추종자들이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면, 전당대회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아울러 이들의 경쟁자로 알려진 전 목사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함께 자유통일당을 창당하는 등 정치적 야심을 오래전부터 드러냈다. 전 목사가 이들의 활약으로부터 자극받아 국민의힘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이들이 국민의힘의 외부 행보를 실질적으로 좌우할 가능성도 있다. 윤 의원과 장 의원은 이미 전씨와 행보를 함께 하고 있다.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도 지난 21일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김영수입니다>에 출연해 “전씨의 입당은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다 환영하고, 다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씨를 일컬어 “강한 우파”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친윤계 의원들은 탄핵 정국에서 이들의 거대한 동원 능력을 확인했다. 이들이 각각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개최한 집회엔 최소 수만 인파가 몰렸다. 국민의힘은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김건희 여사·채 상병·내란)을 방어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대응할 수단이라고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이 장외 집회엔 두 목사와 전씨가 동원하는 인파로 채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세 특검 모두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서로 명분과 실리를 골고루 챙길 수 있다. 친한계와 쇄신파 의원들이 전씨의 입당을 비판하는 것과 달리, 친윤계가 이 때문에 침묵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아울러 지난 21일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 전 장관은 “전씨의 입당 절차엔 하자가 없다”며 “여러 사람이 열린 대화를 하는, 더 높은 수준의 단합을 이루는 용광로 같은 조직이 국민의힘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전 목사의 지원을 받은 김 전 장관이 손 목사와 전씨의 지원까지 얻으면, 가장 유력한 당 대표 후보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씨의 입당은 ▲언더 찐윤 ▲김 전 장관 ▲손 목사 등을 실 하나로 꿸 수 있는 결정적인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을 주도하기 위한 삼각 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쌍권을 쌍전으로? 물론 김 전 장관과 친윤계는 지난 5월 발생한 대선후보 교체 시도 이후 좋은 관계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되던 과정과 같이 조직이 필요하다. 친윤계는 “윤석열정부를 망친 원흉”이란 비난을 듣고 있고, 대선후보 교체를 주도했던 쌍권(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을 대신할 새 얼굴이 필요하다. 친윤계 의원 중 국민의힘의 텃밭인 영남·강원을 지역구로 두고,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실질적으로 당을 주도하는 의원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으로선 이미 효용 가치를 다한 쌍권을 ‘쌍전(전광훈·전한길)’으로 교체해서 나쁠 게 하나도 없다. 대중 동원 능력이 없는 쌍권과 달리, 쌍전은 대중 동원 능력까지 갖췄다. 언더 찐윤의 새 얼굴이 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극우 정당 득세 과정과 똑같아서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극우 정당은 전통적인 기득권과 대중 앞에서 광대 노릇을 할 포퓰리스트가 결합해 득세한다. 독일의 나치당도 독일 전통 귀족 융커와 대중선동에 능한 아돌프 히틀러가 “배후에서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게 만든 유대인·공산당을 몰아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뭉쳐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연합도 부유층과 저소득층을 지지 기반으로 두고 있고, 장마리 르펜이란 선동가가 창당해 차근차근 키운 이후 돌풍을 일으켰다. ▲언더 찐윤 ▲보수 성향의 전통 지지 기반 ▲대중 선동에 능한 쌍전의 결합 등도 위 사례들의 흐름으로 연결되지 않으리라 보장은 하기 어렵다. 이들의 결합이 국민의힘의 비극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이재명 대통령이 발표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18일 선언으로부터 비롯된다. 당시 이 대통령은 유튜브 채널 ‘새날’에 출연해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다”라며 “중도 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니다”라며 “앞으로 대한민국에선 민주당이 중도 보수 정권으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후 3연속 총선 패배 극우 10만명 입당이 해결책? 이후 진보 진영 내에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을 극우로 규정하는 기사와 칼럼이 다수 나오고 있다. 작가 박권일씨는 <한겨레21> 기고 칼럼들을 통해 이 의원을 “극우 엘리트주의자”라고 규정했다.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고 칼럼을 통해 “새 정부는 이 의원과 같은 극우 정치인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상욱 의원도 지난 15일 <일요시사>와 만나 “이 의원은 사회 갈등과 혐오에 기반해 선동한 후 자기 세력을 만드는 극우 정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강경 페미니즘 세력과 격렬하게 다투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이 의원의 행보를 매개로 “이 의원은 극우 정치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선 다양한 찬반 의견이 나온다. 이 의원 지지자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반대하고, 국민의힘에서 각종 극단주의 세력과 다퉜던 이 의원이 왜 극우 정치인이냐”고 반발한다. 이 움직임을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선언과 맞물려 판단해보면,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을 한 데 묶어 극우로 규정한 후, 민주당이 전통적인 보수 영역을 차지하고, 진보 진영의 외연도 함께 확대하려는 장기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이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런 흐름을 강하게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극우 컬트 정당으로 어떻게 이재명정부를 견제할 수 있겠느냐”며 “이대로 가면 보수 정치가 완전히 무너져 민주당이 일본 자민당 같은 입지를 차지하는 1.5당 체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 전 대표는 같은 날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났고, 전날인 19일엔 안 의원을 만났다. 당의 극우화를 막기 위한 ‘반 극우연대’ 논의를 위한 만남으로 해석되고 있다. 안 의원도 지난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 같은 취지의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의 극우화 징조와 언더 찐윤의 부각은 3연속 총선 참패로부터 비롯된다. 국민의힘은 새누리당이었던 지난 2016년 이후 진행된 3번의 총선에서 모두 참패했고, 의석도 나날이 줄었다. 특히 치명적인 것은 수도권 참패였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 내 수도권 기반 정치인의 힘이 약해졌고, 전통적 지역 기반에서 조용히 기득권을 누리는 의원들은 ‘언더 찐윤’으로 조직화했다. 이들과 다퉈왔던 친한계 의원들과 안 의원은 수도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이들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도 보수’ 선언을 했던 지난 2월은 국민의힘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전 대통령을 겉으로만 비판할 뿐 체포 저지를 시도하고,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도 겉으로만 반대하는 상황이 일어난 이후였다. 점점 짙어지는 극우화 징조 이 대통령과 민주당·진보 진영으로선 국민의힘이 현실적 자정 능력을 사실상 잃었음을 파악한 후 “자신 있게 동진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진 전략은 영남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지리적 차원의 전략이었다. 반면 이 대통령의 동진 전략은 이념적 차원의 전략이다.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해 김 전 장관·언더 찐윤과 손잡고, 전당대회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만약 이 대통령과 민주당·진보 진영의 동진 전략이 성공한다면, 쌍권과 쌍전이 1등 공신으로 역사에 남을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