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보다 더한’ 극우 세력 반발, 왜?

탄핵 트라우마가 만든 결집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파면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23일. 123일 동안 나라는 서서히 두 쪽으로 갈라졌다. 2025년 대한민국 위로 2017년의 그 날이 겹쳐진다.

지난 4일 헌법재판관 8인의 일치된 의견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이 결정됐다. 헌법재판관 전원이 탄핵소추 사유 5개를 파면에 이를 정도로 위법한 사안이라고 본 것이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8년 만에 만장일치로 파면된 대통령이 됐다.

분열의 씨앗

문형배 헌법재판 소장이 주문을 읽자 이를 대형 스크린으로 지켜보던 한 보수 지지자가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은 망했다” “헌재를 부수고 들어가야 한다” 등 고함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법조인들은 헌재의 만장일치 결정을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함으로 봤다. 그럼에도 광장으로 뛰쳐나온 보수 지지층은 쉽사리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탄핵 반대 집회는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부정하며 여전히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탄핵 심판 선고 닷새째인 지난 8일에도 일부 지지자들은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재출마를 촉구했다.


진영 간의 갈등은 탄핵 이후에도 곳곳에 스며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가족, 친구, 동료, 연인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던 도중 정치색이 달라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였다는 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던 때에도 보수 지지층은 분노했지만 지금처럼 탄핵 반대 여론이 높지 않았다. 8년이 지난 지금 유독 갈등이 심화한 이유로는 계엄으로 인해 ‘계몽’된 이들의 ‘박근혜 트라우마’가 있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진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민의힘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궤멸됐다. 그런 트라우마가 크다 보니 이번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라며 “심리적 내전 상태에 이르게 된 건 보수와 보수 진영 유권자의 박근혜 학습 효과, 그리고 이에 따른 반작용 때문”이라고 봤다.

특정 집단을 겨냥한 혐오 표현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탄핵 정국서는 탄핵 찬성 세력과 탄핵 반대 세력이 한자리에 마주하는 경우가 잦았다. 서울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헌법재판소 앞 그리고 남태령 시위 현장까지 경찰의 철제 펜스를 사이에 두고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파면 인정 못 하고 “윤카 어게인” 거리로
길어지는 심리적 내전…극으로 향하는 갈등

두 달 넘게 이어진 집회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STOP THE STEAL’ 팻말을 든 남성은 지나가는 여성을 향해 “호남 좌빨X”이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탄핵 찬성 측에 선 이들 중 누군가가 태극기 부대를 향해 “보수 틀딱”이라고 맞받아쳤다. 정치적 갈등이 진영을 넘어 성별·지역·세대 갈등으로 번진 것이다.

이처럼 탄핵 집회가 혐오 집회로 둔갑한 데에는 새로 탄생한 ‘아스팔트 극우 전사’가 중심에 있다는 설명이다. 7년 전과 달리 개인 유튜브 등 1인 미디어가 빠르게 발달하면서 자극적인 발언이 곧 돈이 되는 악순환으로 굳어졌다.


지지층의 분노를 이끌어내기 위한 ‘경쟁 심리’가 사회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매주 주말마다 곳곳서 집회가 열렸고 그들의 발언은 여과 없이 실시간 송출됐다.

‘말이 칼이 될 때’ 저자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에는 혐오보다 정치적 분노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특정 대상을 희생양 삼고 있다. 어떤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 전가하는 형태의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혐오를 당하는 집단이 사회서 소외당한 계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적으로 힘이 약하거나 만만한 상대를 선택한다”며 “그렇기에 혐오는 쉽게 다른 집단으로 옮겨갈 수 있다, 혐오가 확산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형사 처벌 방식만이 아니라 집단서 규제하는 방식도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정치인이 발언을 격화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혐오를 부추기는 방법을 어떻게 통제할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종국에는 탄핵 반대 세력도 두 갈래로 쪼개졌다. 이른바 여의도파와 광화문파가 갈라지면서 또 다른 혼란을 낳은 형국이다.

새로운 보수 세력으로 주목받은 전한길 강사와 세이브코리아가 주도해 온 여의도파는 헌재 결정 이후 승복 메시지를 내고 집회를 중단했다. 반면 전광훈 목사와 자유통일당이 이끌어 온 광화문파는 “정치적 공세와 편향된 언론들의 여론몰이에 의해 이뤄진 부당한 결정”이라며 불복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설마 빨갱이야?” 성별·지역·세대별로 분열
여의도 VS 광화문 갈라선 까닭…사분오열 국론

여의도파의 승복 메시지에 광화문파는 전씨와 세이브코리아 대표인 손현보 목사를 겨냥했다. 조나단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손현보를 때려잡자” “날강도”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광화문에 모인 보수 지지층 역시 여의도파를 “좌파 프락치”로 부르며 각을 세웠다.

탄핵 반대를 외치던 두 세력이 갈라서게 된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쏠린다.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우후죽순 신흥 보수 세력이 생겨났고, 한정된 보수 지지층 파이를 나눠 먹기 위한 견제가 감정싸움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사회통합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정치인은 물론 경제, 종교 등 각계각층서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 같은 분위기 속에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탄핵 정국 못지않게 국론이 갈라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라며 “미래 세대에게 보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모두 함께 절제와 인내의 미덕을 발휘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경제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논평을 내고 “엄중한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제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 국정이 조속히 정상화되고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을 위한 노력이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뭉쳐야 산다?

지난 석 달에 걸쳐 굳어진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워 보인다.

최 평론가는 “상처를 덮기 위해 윤 전 대통령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듯 잘못된 것은 처벌해야 한다”며 “사회통합 메시지가 나오더라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뚜렷한 해법은 없지만 우리 사회에는 마지노선으로 지켜온 헌법 정신과 40년 동안 도도하게 흘러온 민주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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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